서울대 연석회의의 기묘한 지방대 걱정

[주장] 단과대학생회장 연석회의 '서울대 분리이전 논의 중단 요구'를 비판한다

 

8월 13일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직무대행 2020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는 '지방대학 발전, 교육공공성 강화로 실현하라'를 발표했다. 성명서는 최근 행정수도 이전 논의에 부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학체제 개편논의를 서울대 분리이전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서울대 분리이전이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일이며 지방대학의 발전은 국공립대에 대한 국고지원 확대와 사학에 대한 공적통제로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명서 전문 https://www.facebook.com/snuchong/posts/4231215890283788)

고등교육에 대한 지원강화와 사학에 대한 공적통제와 같은 내용, 학생자치라는 발표주체 등으로 인해 언뜻 보기에 이 성명서는 개혁적인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학벌주의 교육체제의 정점인 서울대가 그 피해자인 지방대의 발전방안을 논의한다는 지점은 이타적이기까지 하다. 학벌주의 청산을 위해 노력해온 지방대 학생인 나로서는 이제 지방대 개혁도 서울대가 주도하려는 건지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그러나 이번 서울대 학생자치의 성명서는 기업인 단체가 하는 노동운동 걱정과 같은 것이다. 그들이 이런 주장을 발표할 때는 사실 개혁 움직임을 어떻게든 저지해보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이번 서울대 학생자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글은 서울대 학생자치의 성명서가 어째서 반개혁적인지, 이들의 숨겨진 의도와 전제하고 있는 세계관이 무엇인지 지적하고자 쓰였다는 점을 밝혀둔다.  
 
1. 종합대학 서울대학교는 신성불가침?
 
성명서는 가장 먼저 서울대가 분리이전되는 것이 단과대간의 유기적 결합을 훼손해 종합대학으로서의 역량을 저하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정책을 정치인들이 쉽게 설명한 것에 대한 트집에 불과하다.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정책은 모든 국공립대학을 하나의 체계로 통합한 후 각 학과를 특성화하여 지역별로 분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정책이며 독일과 프랑스 등에서 시행 중인 대학체제를 모델로 하고 있다. 서울대 학생자치의 주장은 정책에 대한 몰이해이거나 일부러 맥락을 숨긴, 매우 부정직한 것이다.
 
서울대 학생자치의 성명서가 일부 정치인들의 설명과정에서 생긴 오해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미 서울대의 학생들은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정책 등의 대학서열 철폐 정책에 대해 공공연한 반감을 표현한 적도 있다. 만약 성명서가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정책에 대해 종합대학에 대한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한 것이라면 이는 종합대학이라는 대학제도가 발생하고 변천해온 역사와 시민사회의 논의과정을 도외시한 주장이다.
 
근대 종합대학의 형성과 한국 고등교육의 시작
 
대학이 처음 등장한 것은 중세유럽의 도시였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자치권을 가진 도시에 협동조합 혹은 길드의 성격을 가진 대학을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은 교회나 국가 등의 권력에 포섭되어 자유로운 지식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권위적인 엘리트 양성기관으로 전락했다. 그 대신 인쇄 혁명을 통해 형성된 대학 밖 지식인들의 네트워크, 그리고 이 지식인들이 모여 토론할 수 있었던 아카데미 등이 학문의 발전을 이끌게 된다.
 
위기의 대학을 구출한 것은 19세기 독일 민족주의 국민국가였다. 당시 독일의 지식인들은 나폴레옹의 프랑스에 패배한 원인을 반성하며 프랑스의 아카데미나 전문학교 등에 대항할 고등교육 제도를 요청했다. 칸트의 대학론에서 시작된 독일 지식인들의 논의를 현실화시킨 것이 바로 훔볼트였다. 훔볼트는 기존의 강의 중심 대학을 세미나와 실험실의 도입을 통해 연구중심 대학으로 개혁했다. '그는 지식이 이미 규정된 부동의 것이 아닌, 교사와 학생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형성되는 것이라 생각했고' 1) 이를 위해 학생이 주체적인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고안해낸 것이었다.
 
훔볼트 모델은 곧 그 탁월성을 입증해 전 세계의 모범으로 인정받았다. 서양 세계의 변방에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던 19세기의 미국에서도 이 훔볼트 모델을 도입하려 했다. 그리고 이는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대학원 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구현되었다. 학부와 대학원의 구분으로 미국의 대학 제도는 대중적인 고등교육의 보급과 연구중심 고등교육으로의 발전이라는 목적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었다. 또한 전통에 영향을 더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던 유럽에 비해 미국 사회의 실용주의적 경향은 경영학과 시장화된 대학 모델을 발달시켰다.
 
근대화 초기 일본은 서양의 문명을 수입하고자 전문학교 형태로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단순히 서양의 기술을 따라잡는 것을 넘어 서양과 대등한 제국이 되어야 한다는 발상에서 이러한 전문학교들을 통합하여 종합대학인 제국대학이 탄생했다. 제국대학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설립되었으나 완전히 국가에 동화되지도 않는 자율성을 나름대로 구현해냈다는 점에서 독일의 훔볼트 모델이 전제하고 있던 위상까지 일본화하는 데에 성공했다.
 
일본이 제국으로의 도약을 본격화하면서 식민지인 조선과 대만에도 제국대학이 설립되었다. 식민당국 주도의 고등교육에 맞서 조선인들은 민립대학을 설립하려 했으나 조선총독부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인의 고등교육기관 설립 시도는 계속되었고 '조선인들은 사립대학이 아닌 사립 전문학교라는 차별적 지위를 견디면서 조선인에 대한 고등교육을 실시할 수 있었다.'2)
 
광복 이후 미군정은 사립전문학교의 설립자와 교수 등으로 조선교육심의회를 구성하고 이들로 하여금 고등교육 개편안을 심의하게 했다. '조선교육심의회를 주도한 핵심 인사 대부분은 미국 유학-기독교-한민당의 경력을 갖고 있었다. 또한 위원들 역시 대부분 친미-반공-보수 성향의 인사들이었다.'3) 이들은 제도는 물론 교육의 내용까지 미국의 것을 수입하려 했고 그 결과 발표된 것이 '국립서울대학교설립안(국대안)'이었다.
 
종합대학 서울대의 형성
 
국대안은 경성제대와 서울지역의 관립 전문학교들을 통폐합해 종합대학으로 만드는 한편 미국인으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미국인 교수와 교재로 교육을 실시하려는 계획이었다. 국대안을 구상하고 추진을 주도했던 미군정 문교부 차장 오천석은 '관립 전문학교에서는 보유 장서가 5만 권도 채 안 되는데 경성대학은 60~70만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서 고작 몇백 명의 경성대학 학생들만 혜택을 입고 있으며 고등교육기관 내 파벌주의를 청산해야 한다.'4)는 등의 대의를 역설했다.
 
그러나 국대안은 기습적으로 발표되어 구성원들의 의사를 무시했으며 미국에 의한 식민교육을 실시하려 한다는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게 되었다. 국대안 문제는 해방기의 학생운동과 지식인들의 좌우대립과 결합해 국대안에 반대한 과학자들의 김일성종합대 합류로 이어지기도 했다. 결국 미군정은 한국인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미국인 총장과 같은 부분을 수정하고 국대안 반대운동으로 퇴학조치된 학생들을 복학 조치하는 등 타협안을 내놓았다.
 
서울대가 지금과 같은 형태의 종합대학으로 거듭난 것은 군부독재 시절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1968년 '서울대학교 종합화 10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형식상으로는 하나의 대학이었으나 실제로는 네 곳의 단과대학으로 흩어져 있었던 서울대학교를 관악캠퍼스로 집중시켰다. 이와 함께 교육과정에도 개입하여 '실험대학'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대학교육의 질을 제고하려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결국 전자의 집중 부분만 성공하고 후자의 대학교육의 질 제고에는 실패했다.
 
근대 종합대학의 발상지인 독일과 미국, 그리고 이것을 수입한 일본과 한국의 역사에서 살펴볼 수 있듯 종합대학의 형성에는 민족주의 국민국가의 발전이라는 의도가 자리 잡고 있다. 독일과 미국에서는 이렇게 형성된 종합대학이 학문의 발전을 이끌기도 했으나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그것은 '세미나와 실험실 중심의 교육', '경영학과 같은 실용 학문의 적극적인 수용'과 같은 혁신적인 교육 패러다임이 전제된 것이었다. 종합대학에 투자를 집중시킨 것은 이것의 구현을 뒷받침한 것인데, 두 차례에 걸친 종합대학 서울대의 형성은 교육 패러다임의 혁신과 같은 학문은 없고 시설과 투자의 집중을 이용해 학벌만 남겼다.
 
학벌주의 대학체제는 교육과 학문의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했고 2000년대에 이르러 시민사회에서 대안정책인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가 제출되었다. 서울대 학생자치는 국공립대 통합으로 학과들이 지역별로 나누어지면 연구가 불가능한 것처럼 전제하고 있으나 대학 간 교류와 통신을 금지하지 않은 이상 필요한 학술 활동을 못할 이유가 없다. 대학서열이 없는 독일의 경우 대학마다 주력 분야가 다르고 같은 분야에서도 각 학파들이 거점으로 삼는 대학이 나누어져 있다. 또한 대학 간 전학이 가능해 학생은 자신의 전공이나 학문적 입장에 따라 대학을 선택하고 이를 바꿀 수 있다. 시민사회에서의 논의과정과 모델로 참조된 독일의 대학체제를 살펴본다면 서울대 학생자치의 종합대학 논의는 진정한 학문발전의 조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득권 지키기일 뿐이다.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와 함께 한국의 대학에는 기초학문 분야와 응용학문 분야를 분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앞서 밝혔듯 양자 사이에 필요한 학술교류가 있다면 설령 학교 조직이 달라도 못할 이유가 없다. 더 나아가 아예 대학강의 자체를 완전히 개방해버려서 수강 자체는 누구나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정말로 서울대 학생자치가 학문 간 유기적 결합을 중요시한다면 이런 제안을 제출해야 한다. 지금 한국의 대학들이 종합대학을 고집하는 것은 학문 간 유기적 결합 같은 이유가 아니라 학벌이라는 권력 집단을 형성하고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능한 성격이 다른 분야들을 조직상 분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종합대학이라는 형태는 오히려 해체되어야 할 개념에 가깝다.
 
2. 기득권 수호를 위해 움직이는 서울대 학생자치
 
서울이라는 특권
 


종합대학에 대한 주장 다음으로 성명서는 서울대의 분리 이전이 실현될 경우 그에 따른 이사로 구성원들의 삶이 흔들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서울이 학벌주의를 이용해 지역의 인재들을 빼앗고 있는 현실에 대한 고려가 결여된 주장이다. 지방의 학생이 서울지역의 대학에 진학해 비싼 월세와 열악한 주거환경에 처하는 것이야말로 삶이 흔들리는 문제이다. 지금 행정수도 이전 논의와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대학체제 개편은 이러한 서울집중을 해소해 지방의 발전과 인간적인 주거환경을 보장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보다 더 직접적으로는 대학 간의 전학이 자유롭게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결국 대학 기숙사 확충도 함께 논의될 수밖에 없다. 과도기에는 기숙사가 부족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방대학의 근처에서 자취방을 얻는 것이 훨씬 더 저렴하고 쾌적한 조건이다. 서울대 학생자치의 주장은 주거환경에 대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주장이며 대안도 될 수 없다. 이들의 주장은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에서도 쾌적한 주거환경이 가능한 재산을 가진 계층의 입장에 서 있다.
 
서울에서 지방으로의 이사가 자신들의 삶을 위협한다는 저들의 호들갑은 자신들에게는 학문이 중심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특권이 중심이라는 것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애초부터 서울의 철학도가 광주에서 철학을 공부하게 되면 그의 삶이 흔들리기까지 할 이유가 무엇인지 광주사람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진정으로 학문의 발전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국공립대 통합으로 인한 학계의 질서 재편과 드디어 한국에서도 학파가 등장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기만적인 대안 제시
 
자신들이 받을 것이라 예상되는 피해를 모두 늘어놓은 뒤 성명서는 지방대 발전을 위해서 지방거점국립대를 중심으로 한 고등교육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높은 사립대학 비율과 사립대학의 부패를 지적하고 정부가 이를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있다며 비판한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하는 대안과 사학에 대한 입장은 자신들이 발 딛고 있는 학벌이 사학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요소임을 망각하고 있다.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가 섣불리 확대되지 못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대학교육이 공공재가 아니라 사유재산이기 때문이며 이는 결국 대학을 공립도서관처럼 완전히 개방하지 않는 한 해소될 수 없다. 대학이 학벌의 권력과 부의 세습을 정당화하는 현실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국고지원은 빈부격차를 세금으로 가속하는 꼴이다. 학벌주의에 대한 언급을 쏙 뺀 채 국고지원 확대만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계속 누리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는 주장이다. 특히 지방거점국립대학교를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하라는 강조는 그야말로 자신들의 학벌주의적 세계관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교육개혁의 대상으로 사학을 지목하는 것은 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자신들의 책임을 은폐하고 시선을 돌리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교육개혁의 핵심목표인 대학서열 철폐와 사립대학 공영화를 못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학벌주의자들이 자신들은 노력했으니 평생 특별대우를 받아야 함을 주장하고 사학재단들이 사유재산의 자유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이라도 없으면 교육개혁에 진전이 생길 것이다. 따라서 서울대 학생자치가 정말로 사학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학벌주의 철폐에 나서서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확대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는 일에 일조해야 한다.
 
우려스러운 행보
 
서울대 학생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들은 대학서열 철폐에 대한 아주 작은 가능성에도 늘 호들갑을 떨며 과잉된 반응을 보여왔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에서는 청년 대 민주당의 구도를 만들기 위해 이를 부추겨 왔으며 이번에도 그러고 있다. 보수언론을 매개로 학벌-사학재단-보수정당의 반교육개혁동맹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대의 학생자치는 학벌에 기반해 있으면서도 학벌주의 수호를 공개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았던 체면조차 벗어던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첫 번째 대선 도전 때부터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정책을 공약했고 당선 직후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된 김상곤 교수는 자신의 임기 내에 반드시 이를 달성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었다. 그러자 서울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마치 자신들의 제도의 피해자인 양 선전이 시작되고 지방대의 SNS 커뮤니티에서는 여러분의 정든 모교가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로 사라질 위기라는 선동이 나타났다.
 
2019년 조국 전 법무장관 반대시위는 그야말로 순수혈통수호 운동이었다. 학벌의 잣대로 보면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청산 대상임에도 이들은 굳이 조국 전 법무장관만을 특정해 공격하는 협소한 구도를 만들었다. 이들의 주장은 사회정의를 내걸고 있지만, 결국 비서울대 학생과 대학 밖 시민들의 참여를 제한하는 데에서 순수혈통수호라는 그 의도가 드러났다. 그때 정말 궐기했어야 했던 것은 학벌에서 배제된 전체 시민이었고 외쳐야 했던 구호는 대학서열 철폐여야 했다. 서울대라는 정체성은 누구를 비판할 입장이 아니라 비판받아야 할 대상이었다.
 
3. 학벌주의와 청년 정치
 
김태년 원내대표를 시작으로 문재인 대통령 등의 정치인들이 행정수도 이전을 다시 꺼내 들었을 때 나는 오히려 이들이 학벌주의 청산이라는 자신들의 약속을 점진적으로나마 어떻게든 실현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벌주의는 서울중심주의와 결탁한 지배체제이기 때문에 둘 중 하나가 먼저 흔들리면 나머지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대 학생자치의 성명서는 이러한 수도 이전 논의가 목표하고 있는 한국사회 기득권 해체에 자신들도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상한 구호가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시대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것은 학생자치와 청년계층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자신은 아직 권력을 누려보지 못했다고 여기는 청년계층의 반성 능력 상실이 반개혁의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 학벌주의자들의 억울함이란 근본적으로 하나회 소속 초임장교의 억울함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기득권 체제에 진입했다는 개인적인 사정이 사회구조에 대한 개혁을 가로막을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는데, 지금 서울대의 일부 학생들은 그 두 개를 뒤섞어버리고 있다. 또한 이들의 주장과 관점이 청년의 목소리를 참칭하며 청년 정치로 둔갑하기까지 하고 있다.
 
청년 정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다른 세대의 주류집단과 대결하기에 앞서 먼저 자기계층 내에서의 부조리를 극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은 사회의 모순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생각과 그에 기반해 부당한 사회질서를 연장시키려 하는 가짜 청년 정치부터 청산해야 한다. 내로남불이 정말 이 시대의 문제라면 그걸 극복하자고 주장하는 세력은 적어도 일부일처를 지키든가 더 나아가 '나는 조국과 결혼했노라'는 결기를 보여주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혈연적 씨족이 무의미해졌어도, 아니 바로 그 때문에,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삭막한 사회관계 속에서 자신을 의탁할 새로운 씨족, 새로운 문중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사람들은 결코 변경될 수 없는 귀속과 유대 그리고 동시에 확정된 상하관계를 규정해주는 현대판 씨족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현대판 씨족, 현대만 문중이 바로 학벌이다." - 김상봉, <학벌사회>
 
이미 2000년대 초에 지적된 바 있듯 학벌은 봉건시대의 문중을 대체하여 등장한 대가족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모교의 품속에서 자라난 동문은 서로를 형제자매처럼 밀어주고 끌어주었고 이제 그게 잘 안되니 과잠을 맞춰 입고 자신들만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양반 대접을 받아보려 하는 것이다. 이런 구시대의 잔재를 그대로 지닌 채로는 민주화, 산업화 등의 세대로 규정지은 기존의 주류집단을 극복할 수 없다. 정작 그들 내부에서는 반성의 목소리와 움직임이 있는데 청년 정치라고 하는 것에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관심조차 받을 가치도 없는 서울대 학생자치의 성명서를 굳이 공들여 비판한 것은 청년 정치의 실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학벌주의 철폐를 호소하기 위함이다. 서울대 학생자치는 이번 성명서를 통해 자신들이 누릴 기득권 수호를 위해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제 시대는 이들에 맞설 대오의 등장을 요청하고 있다. 내로남불로 시끄러운 가족주의 사회를 종식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어갈 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의 첫 번째 과제는 청년계층 내부에서 학벌을 수호하고자 하는 서울대 학생자치에 대항하는 일이다.

참고
1) 요시미 순야, <대학이란 무엇인가> (서재길 옮김), 글항아리, 2014, 111쪽
2) 김정인, <대학과 권력>, ㈜휴머니스트 출판그룹, 2018, 49쪽
3) 2번과 같은 책, 58쪽
4) 하성환, '국대안 사건의 교육사적 함의', <진보평론> 제69호, 292쪽~293쪽

 

 

 

 

 

서울대 연석회의의 기묘한 지방대 걱정

[주장] 단과대학생회장 연석회의 '서울대 분리이전 논의 중단 요구'를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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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근거>

2020년 6월 29일 국회의원 10인의 참여로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었다. 바로 다음날인 3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전원위원회를 열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예상대로 종교계 일각에서는 차별금지법 입법시도에 크게 반발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정치인들은 좀처럼 명확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별로 희망적이지 않은 장면들로 인해 이번에도 안될거라 기대를 접었지만 지난 7월 10일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에서 열렸던 정책간담회에서 다소 뜻밖의 낙관적인 전망을 들었다. 낙관의 직접적인 근거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속적인 노력과 설명으로 종교계 일부를 적극적인 반대에 나서지는 않겠다는 정도로 설득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법안발의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에게 비난과 압력이 가해지고 반대집회까지 열리고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또한 10인의 국회의원들에게 가해지는 요란한 압력보다 나머지 국회의원들에게 가해지고 있을지도 모를 조용하면서도 확실한 힘이 얼마인지 가늠되지 않아 혼란스럽다.

시민사회의 일각에서는 차별금지법이 도입된 해외의 사례를 들어 언젠가 한국에도 도입될 것이라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구상에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나라가 더 많고 차별금지법과 같은 제도는 OECD 회원국과 같은, 이른바 제 1세계 국민들이나 누리는 특권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더 나아가 차별금지법 등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조직화되어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더욱 이러한 관점이 희망의 근거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이 글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낙관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무엇인지 탐구하기 위해 쓰였다. 먼저 한국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이 등장하고 전개되었던 주요국면을 되짚어보며 무엇이 달라졌는지 살펴본다. 그런다음 이번 차별금지법 제정권고와 발의가 가능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배경인 2017년 촛불혁명과 2020년 코로나19의 대유행까지의 한국 근현대사에서 차별금지법의 단초를 찾아본다.

<2006년, 2013년, 2020년>

차별금지법 제정의 역사는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무총리에게 제정을 권고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듬해인 2007년 노무현 정부는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으나 17대 국회의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되었다. 그 이후 일부 국회의원들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했고 2013년에는 50명이 넘는 국회의원이 공동발의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자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차별금지법에 맞서는 종교조직이 결집되었고 차별금지법의 찬성대오는 법안발의 철회로 주저앉아버렸다.

2013년 이전 차별금지법이 그저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좋은 제도 정도로 여겨졌을 때는 발의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2013년 이후 차별금지법은 종교계의 거대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벌집과 같은 존재가 되어 단 한번의 발의도 성공하지 못했다. 더 나아가 수많은 정치인들이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미신적인 문구를 긍정해야 했다.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차별금지법은 상식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청년정치인들이 당선되었고 이들은 법안 발의 요건인 10인의 국회의원을 간신히 모을 수 있었다. 2013년 이전의 발의가 따라올 시련을 알지 못했던 시도였던 것에 반해 2020년의 발의는 다가올 압력을 알고서도 굴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초라하지만 분명한 진보이다. 2013년의 시도는 순식간에 흩어졌지만 2020년 정부, 국회, 언론, 시민사회, 종교계의 차별금지법 찬성파들은 단단한 대오를 이루었다.

<팬데믹과 민주주의>

2020년의 변화는 2017년 촛불혁명과 2020년 코로나19의 대유행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 두사건은 선거시기를 전후로 하여 전개되어 선거결과에 분명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정치공학적인 측면보다도 더 근원적으로 어떻게 이 사건들이 차별금지법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범유행(汎流行)이라고들 번역하는 팬데믹(pandemic)은 유행성 질환이 광범하게, 특히 전지구적으로 확산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이것은 고대 희랍어를 현대어로 만든 것인데, 전철 ‘판pan-’은 ‘모두’를 뜻하고, 명사 ‘데모스dēmos’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뜻하며 이것의 어미 ‘-os’ 대신 달아놓은 영어 어미 ‘–ic’는 ‘~과 관련된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팬데믹을 있는 그대로 옮기자면 ‘모든 사람과 관련된 일’이다.”

- 양진호, 「팬데믹, 주인은 누구인가」 -

철학자 양진호는 팬데믹이라는 용어의 어원을 밝히며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에서부터 2020년의 K-방역 현상을 하나의 흐름으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팬데믹은 고대 그리스어를 응용해서 새롭게 만든 용어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판데메이(pandēmei, 모두 함께)라는 부사형태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어서 양진호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모든 아테네 사람들이 전쟁에 참여한 판데메이의 경험이 아테네인들의 평등의식을 일깨워 민주주의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갑오년, 유무상자(有無相資)를 끄덕이며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서로 손을 내놓았던 사람들, 금남로에서 주먹밥을 뭉치고 황금동에서 피를 나누었으며 택시와 버스를 몰고 와서는 기꺼이 계엄군과 대치했던 사람들, 명동 어느 담벼락 너머로 얼굴 없이 초코파이를 던져주던 사람들, 광화문 거리에서 염화미소를 지으며 귤과 핫팩을 나누던 사람들, 그렇게 묵묵히 민주주의의 지분을 넓혀왔던 사람들. 우리는 이들로부터 이미 판데메이를 배워 알고 있었다.”

- 양진호, 「팬데믹, 주인은 누구인가」 -

고대 그리스의 언어와 역사에 대한 설명을 마친 양진호는 우리나라로 시선을 돌린다. 그는 한국 근현대를 이어온 민중항쟁의 경험이야 말로 판데메이를 연습해온 역사라는 결론을 내린다. 양진호의 결론처럼 이미 많은 표어들이 ‘국난극복’이라는 말로 시민들의 익숙한 기억을 이끌어내고 있다. 대통령 탄핵을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오는 것과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방역지침을 준수하는 것은 외견상 정반대의 일로 보이지만 그 본질은 모두 국난극복을 위한 시민들의 참여이다.

판데메이와 민주주의의 흐름을 거부하며 다시 차별과 억압의 사회로의 회귀를 말하는 주장의 구심이 되어버린 종교 또한 한국 근현대사에서는 차별철폐를 앞장서서 외쳤던 선구자들의 구심이었다. 조선의 기독교인들은 천주 앞의 평등을 믿었고 그 믿음을 위해 순교했다. ‘시천주’를 외치며 모든 인간을 신처럼 모실 것을 강조한 동학은 차별철폐를 위해 죽창으로 기관총에 맞서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차별철폐를 위해 순교한 수많은 종교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차별금지법 제정시도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뿌리>

촛불혁명과 코로나19에 맞선 방역의 경험은 한국사회의 평등의식을 급진적으로 일깨우고 있다. 기본소득에 대한 요구가 급증해 재난지원금이라는 실험이 이루어지고 차별금지법 등 보편적 인권에 대한 제도화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흐름은 한국 민중항쟁사의 진행이자 결과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낙관할 수 있는 희망의 근거는 종교인들의 희생으로 시작된 민중항쟁의 엮사라는 우리의 뿌리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인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우리민족이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가? 차별금지법 반대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과거의 차별적인 문화와 억압적 질서, 혹은 인종적 동일성이 아니면 ‘우리’가 해체될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1894년 새로운 사회를 갈망하며 봉기했던 사람들부터 2020년 방역지침을 준수하는 사람들까지 이 땅에 살았고 살고있는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의 전통적 가치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문화나 생활양식 같은 것이 아니며 인종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오직 민중항쟁을 가리키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지극히 한국적인 제도이며 우리의 빛나는 전통에 잘 부합하는 제도이다. 지금 어떤 힘이 국회에 작용하고 있을지라도 우리의 뿌리인 민중항쟁의 흐름보다 더 근원적일 수는 없다. 결국 우리사회는 차별금지법으로 통합될 것이며 차별금지법은 우리를 설명하는 예시가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이번에 발의된 차별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알지 못하겠다. 그러나 돈과 조직을 앞세운 종교계 일각의 힘보다는 우리의 뿌리를 믿겠다. 그리고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탤 것이다. 부디 300명의 21대 국회의원들도 그러길 바란다.

 

황법량(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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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제안] 학생자치는 무엇으로 사는가 1

지난 3년간 대학교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소문으로만 들었던 학생회 문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학생회의 위기'가 아니라 학생회가 있건 없건 대학교육의 질은 낮아졌고 학생은 대학 운영에서 배제되어 갔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좋은 학생자치를 만들 것인가? 축제나 체육행사가 아니라 교육의 질과 대학 운영에 집중하는 학생자치는 불가능한가? 이러한 물음에 답을 찾던 중 '재정감시운동'이 그 대답이 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공익재정연구소 이상석 소장의 강의를 듣고 실제로 총학생회 지원금 지출내역을 검토하면서 학생자치의 자원이 대부분 축제와 같은 행사에 쓰이는 원인을 알게 됐다.

학생자치는 왜 필요한가? 그 이유는 교육받는 사람의 권리를 찾고, 교육기관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런데 지금의 학생자치는 학생회비에 더해 등록금과 국고지원으로 대학회계·교비회계에서 편성된 연간 억대의 지원금을 축제에 쏟아붓고 있다. 얼마나 호화로운 축제를 했는가로 평가받는 학생회는 잘못되었다. 학생자치가 이래서는 안 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광주지역 4개 대학 총학생회의 지원금 결산을 분석했다. 먼저 정보공개와 행정심판 청구 과정을 설명하고 실제 자료를 토대로 학생자치의 실태를 살펴본 뒤 내가 생각하는 대안을 제시한다.

정보공개 청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보를 특정하는 것이었다. 학생회의 재정은 두 가지 부분으로 나뉘는데 정보공개가 가능한 것이 있고 불가능한 것이 있다. 첫째, 사립학교의 경우 교비회계, 국공립대학의 경우 대학회계라고 불리는, 등록금과 국고지원금으로 편성된 회계의 학생회 지원금이다. 둘째, 매 학기 학생들이 납부하는 학생회비와 학생회 자체 수입이다. 일부 학생회는 공개하지만 온라인으로 공개하는 곳은 많지 않고 공개하더라도 정확히 보고하지 않는 곳이 많다.

교비회계나 대학회계의 경우 총학생회가 사용처를 결정하더라도 실제 계약은 대학본부에서 담당해 관련 자료가 대학본부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특정해야 할 정보는 교비회계 혹은 대학회계에서 총학생회 관련 결산자료다. 여기에 더해 학생회와 관련해 정확히 어떤 문서들이 존재하는지 알기 위해 '문서목록'을 추가해야 한다. 이 자료들을 통해 어떤 지출내용과 문서가 존재하는지를 알면 그다음 세부적인 자료 청구가 용이해진다.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국공립대인 전남대학교는 해당하는 자료가 너무 많아서 비용이 청구된다고 답변했다. 그렇다면 정보목록을 먼저 달라고 하자 전남대에서는 목록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정보를 주지 않기 위한 교묘한 거짓말이었다. 전남대는 모든 세부공문과 증빙자료 전체를 뭉뚱그려서 '정보량이 너무 많다', '전체 정보가 다 적힌 목록은 없다'고 답한 것이다.

자료를 열람하러 간 자리에서 담당 주무관은 총학생회 관련 지출내역 목록을 주며 이 중 원하는 정보를 말하면 개인정보를 가린 후 열람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제시한 제한 시간을 초과할 시 비용 부과 방침까지 더해져 그 자리에서 충분히 자료를 볼 순 없었다. '목록'이 있다는 것과 계약과정에서 첨부해야 하는 문서의 종류만 확인한 뒤 해당 문서의 목록을 특정해 다시 정보공개를 청구했고 그제야 의도했던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행정심판

사립대인 광주대학교, 조선대학교, 호남대학교에서는 '비공개', '부존재' 처리하거나 일부만 공개했다. 이럴 경우 청구인은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있고 여기서 지면 행정소송을 청구할 수 있다. 행정심판을 하지 않고 행정소송을 청구할 수도 있으나 소송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보통은 행정심판을 청구한다.

3개 대학 총장을 상대로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청구서에는 정보공개청구와 피청구기관의 처분이 있었던 날짜를 적시해 사건 개요를 설명하고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처분이 취소되어야 하는 이유를 제시했다. '부존재' 처분의 경우는 교비회계 지출내역이 부존재할 수 없다는 점, 대학업무가 전산화된 현실을 고려하면 검색을 통해 해당 정보에 관한 목록을 추출할 수 있다는 지적을 추가했다. 원본 자료를 가공해서 일부만 공개한 경우는 비공개된 정보가 존재하는 정황을 지적하고 원본 그대로 공개해야 함을 주장했다.

몇 달이 지나 각 대학에서 보낸 답변서가 온라인으로 송달되었다. 광주대에서는 부존재 처리에 대해 '실무자의 법률 지식 부족에서 발생된 착오'라며 법 규정에 따라 공개하겠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조선대와 호남대에서는 해당자료가 공개될 경우 학생자치가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점, 개인의 경영상·영업상 비밀로 법인의 정당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들어 행정심판 청구 기각을 주장했다.

나는 용역이나 품목에 대한 가격 및 업체명이 경영상·영업상 비밀이 아니라는 취지의 보충서면을 제출했다. 나머지 근거들은 법령에서 정한 비공개 사유가 아니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광주대, 호남대, 조선대에 대해 부분인용취지의 재결서를 받아볼 수 있었다. 광주대와 호남대의 경우 정보보존기간인 2013년 자료에 대해서 기각되었고 조선대의 경우 관련 서류에 카드번호와 업체주소, 전화번호 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계약업체와 증빙자료에 관한 부분이 기각되었다.

가격이나 품질에서 경쟁력이 있는 것이 아닌데 총학생회가 유착관계에 있는 특정업체와 계약하는 경우가 있다. 내부자들의 증언이 있지 않은 이상 이런 정황을 알아내기는 매우 어렵다. 다만 자주 계약되는 업체의 등기를 발급받아 임원사항을 확인한다거나 계약내용에 대해 비교 견적을 받아보는 형태로나마 단서를 추적할 수 있다. 따라서 계약업체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연결고리다. 추가적인 정보공개 청구와 행정심판 그리고 행정소송이 필요하다.

대법원에서는 '법인 등의 상호, 단체명, 영업소명, 사업자등록번호 등에 관한 정보는 법인 등의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하지 아니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판례 2003두8302).

지난해 10월 10일 조선대 재결서 송달을 마지막으로 광주지역 3개 사립대학을 대상으로 한 행정심판은 일단락되었다. 행정심판 청구 대상 기간이 2013~2017년이었던 까닭에 행정심판 이후 2018년 자료에 대해 추가적으로 청구해 받아보았다. 그러던 중 단과대 학생회는 총학생회와 다른 경로로 별도의 지원금을 받고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부 단과대 학생회 지원금에 대해서도 정보공개를 청구해 자료를 받았다.

광주 4개 대학 총학생회 지원금 2014~2018 자료가 모두 모인 것은 지난해 12월 19일이었다. 그때부터 약 2주간 지출내역을 검토하고 사업분야별로 분류했다. 그리고 1월 5일 '[보도자료] 광주소재 4대 대학 총학생회 결산자료 분석', 1월 7일 '[보도자료] 광주지역 대학 총학생회 지원금 부정·부패 심층분석'을 배포했다. 이 밖에도 추적해야 할 부패의 단서가 보였지만 확보한 자료만으로는 정황을 추정하기 어려웠다. 앞으로 더 많은 시민들과 협업하여 밝혀내야 할 것이다.

총학생회 지원금 주요지출 내용과 학생자치의 문제

2014~2018년 광주지역 대학의 총학생회 지원금 5개년 결산 자료를 살펴보면 학생자치는 모두 동일한 경향을 띠고 있다. 4개 대학 모두 축제에 가장 많은 돈을 집행했다. 그 밖에 지원금이 많이 사용된 사업은 출범식과 캠프·기행이다. 연예인을 초청하는 축제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대략이나마 알고 있겠지만 출범식과 캠프·기행 사업, 복지사업은 학생회 관계자가 아니면 그 실상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 출범식
매년 1학기 초에 임기를 시작하는 학생회가 실시하는 행사이다. 일부 지방대에서는 예비군 전우회나 군 관련 학과 학생들이 사열하는, 학도호국단의 부활처럼 보이는 광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출범'만 하고 끝나기도 하지만 연예인 섭외 공연을 배치해 축제처럼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

- 캠프기행 사업
과거 80~90년대 학생회는 학생운동의 연장 선상에서 '실천단', '선봉대', '농민-학생 연대활동'과 같은 사업을 했다. 이러한 사업들은 2010년대에 이르러 정치적 맥락이 제거되고 일종의 '수학여행' 더 나쁘게는 학생회 간부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여행' 같은 것이 되었다. 여전히 농촌을 가기도 하고 국토순례를 한다면서 제주도, 독도를 가거나 역사기행을 한다면서 백두산, 일본을 가기도 한다.

- 복지사업
흔히 시험기간 간식행사를 실시한다. 이번 4개 대학 자료에서는 예비군 훈련 간식 사업, 학기 초 이삿짐 운반 지원 사업, 시험기간 야간 버스 운영 등이 있었다. 4개 대학 공통적으로 지원금을 이용한 복지사업 지출은 대부분 단체 야구 관람에 쓰였다.

이런 사업들이 도대체 왜 대학에서, 그것도 등록금과 국고지원금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1년 임기의 학생회 선거에 출마하여 축제나 체육행사 등을 폐지하고 그 돈을 정책연구사업과 재정감시 그리고 이것들에 필요한 인력운영에 쓰겠다고 한다면 당선될 수 없을 것이다. 총학생회라는 기구는 학생자치를 현 상태에 가두는 가장 큰 구조적 원인이다. 총학생회를 청산하지 않으면 학생자치의 혁신은 불가능하다.

 

황법량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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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제안] 학생자치는 무엇으로 사는가2

 

축제의, 축제에 의한, 축제를 위한 학생자치 정도만 되어도 양호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축제를 기획하고 연예인을 직접 보겠다는 열망으로만 사람들이 동원될 수는 없다. 특히 총학생회라는 거대한 정치기구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열망보다는 더 실질적인 보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부정 부패이다.
   
전남대 광주캠퍼스 학생사회에서는 전직 총학생회 간부가 사내이사로 있는 특정 업체와 총학생회가 유착관계를 가지고 총학생회의 계약을 몰아준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왔다. 이번 정보공개 과정에서 확인한, 전남대 광주캠 총학생회 지원금이 집행된 사업 중 이 특정 업체와 계약한 건은 총 9건(8156만 2340원)이다. 주로 캠프·기행 사업이나 축제 기념품을 제작하는 사업을 담당했다. 사내이사였던 그 전직 총학생회 간부는 2019년 대표이사로 취임했으며 현재 역대 전남대 광주캠 총학생회 간부들이 소속된 ㅎ단체의 광주전남지부 임원이다.

또한 나도 2019년 1~4월 총학생회장 권한대행을 수행했던 시기에 다수의 축제업체로부터 직접 그리고 간접적인 경로로 리베이트 제안을 받기도 했다. 리베이트를 제안했던 사람은 '회장님이 먹지 않으면 어차피 업체들이 먹게 되어있다, 고생한 집행부들에 술이라도 사려면 필요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는데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호남대 총학생회 자료에선 '해외장학연수'라는 항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의 매년 연말이나 연초에 새롭게 임기를 시작하는 학생회 간부들이 참여한 해외연수다. 여행지는 오사카, 후쿠오카, 방콕, 파타야 등이었다. 학생회 간부 1인당 25~30만 원을 부담하고 교비회계에서 1700~3400만 원을 지원받은 사업이었다. 2016년에도 조선대 총학생회의 해외탐방 용역입찰 공고가 게시되었다가 학생들의 큰 비판을 받고 사업 자체가 취소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도 호남대 총학생회는 버젓이 이런 사업을 실시했던 것이다.

해외연수 자체는 오히려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독일이나 북유럽의 교육제도를 견학하고 세계 각지의 학생자치·학생운동과 교류한다면 학생자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국제적인 학생자치 연대를 조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이런 방식의 해외연수라고 할지라도 학생사회의 합의와 철저한 연수계획 보고가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의 해외연수는 그저 보상여행일 뿐이다. 해외연수뿐만 아니라 학생회 간부수련회 자체가 그렇다. 부끄럽게도 나 또한 2019년 총학생회장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는 동안 그런 간부수련회를 집행했었다. 공동체에 대한 고민과 붕괴해가는 학생자치에 대한 최소한의 논의를 만들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그것은 등록금으로 대관한 수련시설에서 학생회비로 술 먹고 노는 행사였을 뿐이었다. 대표자 역할을 자처한 사람들이 겪는 고충을 공유하는 정도만 해도 의미 있는 행사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행사로 만들지 못했다.

3년간의 학생회 활동과 4개 대학 총학생회 지원금 결산을 분석하며 학생자치 활동에 주어져야 할 정당한 보상이란 무엇인지 고민했다. 나는 학생회 간부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그 대답의 단초라고 생각한다. 노동계급의 대표자가 의회에 진출하면서 무보수 명예직이었던 의원에게 월급을 지급하라는 운동이 전개되었던 것이 민주주의의 역사이다. 대표자에게 노동의 대가를 주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를 부유한 자들의 것으로 만들려는 음모이거나 스스로 통치자가 될 생각이 없고 평생 타인의 지배를 받으며 살겠다는 노예의식이다.

지금의 학생자치는 기형적인 보상체계를 가지고 있고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주의가 확대되어감에 따라 그마저도 붕괴하고 있다. 보상만으로 학생자치를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보상에 대한 논의 없이도 개혁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학생자치는 교육정책과 대학운영에 집중할 수 있으면서 간부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주어지는 체제여야 한다.

학벌 vs. 시민

현재의 총학생회 중심 학생자치는 청산되어야 한다. 개별 활동가들의 헌신과 업적은 훌륭한 것이지만 교육정책과 무관한 사업 위주의 관성과 친목 중심의 조직 질서가 문제다. 이러한 경향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총학생회와의 충돌은 피하기 어렵다. 사학재단, 교수집단, 관료집단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학생사회 내부의 군기 문화와 폐쇄적인 친목집단이 지배하는 대학에서 '시민'이라는 정체성은 끊임없이 불화를 일으킬 것이다.

2020년대 학생자치 갈등은 운동권 대 비운동권의 구도가 아니라 학벌 공동체의 학우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학생시민이 될 것인가를 기준으로 전개될 것이다.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나 나는 대학생들이 그럴 역량을 충분히 갖추었고 갖추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학생자치가 대학 운영에 참여할 주체성을 갖는 일이다. 제도로만 보자면 등록금 심의위, 재정위, 대학 평의원회 등 학생이 대학 운영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는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그런 제도가 있어도 대학은 대부분 사학재단과 대학 교직원들이 수립한 계획으로 운영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새로운 시민의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고 그것을 확장시켜나갈 운동이 필요하다.

나는 광주지역 4개 대학 총학생회 지원금을 시작으로 전국의 대학 총학생회 지원금, 총장 및 학장 업무추진비 등 대학재정감시의 영역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또한 전국의 모든 학생운동 단위에 대학재정감시 운동을 제안하고 설득할 것이다. 이를 통해 친목 중심의 총학생회 인맥과 구별되는 시민들의 연합을 조직하고 학생사회의 대학 운영 및 교육정책 참여를 확대해나갈 것이다.
 
개혁의 방식과 방향

나는 3년간의 학생회 활동에서 제도나 정책은 종종 바꾸는 데 성공했지만 '정치화'에 있어서 늘 실패했다. '정치화'는 결국 개인들의 성찰과 결단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특정 개인이 열심히 하는 것으로 그것의 내용이나 그것에 이르는 과정을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시민출현'이라는 현상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방식은 더 많은 시민들의 참여로 만들어질 것이다.

내가 제안하는 방법론과 대안체제 구상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제출하는 것이며 더 많은 논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나의 제안을 통해 더 많은 시민들이 이 논의에 참여하길 바란다.

첫째, 재정감시 교육과 후속활동.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재정감시 운동의 방법론을 보급하고 실제로 대학재정 감시의 영역을 확장해나갈 교육사업이다. 재정감시운동 활동가를 초청해 정보공개 청구와 행정심판 절차 그리고 대학재정의 기본적인 사항을 학습한다. 그런 다음 실제로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문제점을 분석하고 문제의식을 뒷받침할 수 있는 통계자료도 작성한다. 동시에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사립대를 대상으로 행정심판을 청구한다. 4~6회의 교육이 끝나면 문제의식을 설명한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부정 부패에 대한 감사실시를 촉구하는 등의 후속 활동을 실시한다.

둘째, 네트워크 건설. 교육사업을 통해 각 지역별로 재정감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임이나 교류가 만들어지면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건설한다. 기존 학생운동에서와 같이 무거운 형태의 조직이 아니라 연대체 형태로 1년에 한 번 총회를 통해 회원 여부를 결정하고 갱신한다. 조직의 목적은 재정감시 활동가들이 활동에 필요한 정보를 교류하고 자료를 보관하는 것이다. 정기적인 회비나 후원은 필요 없으며 총회나 특별한 대규모 정보공개가 필요한 경우 모금한다.

셋째, 시민사회 형성과 정당운동과의 결합. 핵심은 모든 자원활동이 그렇듯 이것이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고 개인적으로도 유익한 활동인가에 달려있다. 여기에 더해 열성 활동가들에게 이 운동이 정치적 성장의 기회가 된다면 지속가능한 구조를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정당운동과의 결합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시민사회의 기반 위에서 제 정당의 대학생 조직들이 각자의 입장에 따라 적극적인 토론을 이끌어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대학생은 정당의 대학생 조직을 통해 정책역량을 학습하고 타 정당 대학생 조직과 경쟁하며 정치인으로서의 능력을 검증받을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제도개혁. 학생운동의 혁신이 성공한다면 학생자치제도 또한 그에 걸맞게 개혁되어야 한다. 나는 대학 평의원회의 학생 평의원을 직접선거로 선출해 총학생회와 분리하는 것이 제도개혁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교육정책과 대학 운영에 적절한 권한과 필요한 만큼의 대표성만을 가진 직책을 두고 각 정당의 대학생 조직들이 공개적인 경쟁을 펼쳐야 한다. 축제나 복지사업은 대학본부나 생협에 넘기고 총학생회는 학과학생회 협의체 정도로 위상을 축소하여 학생자치의 대표성과 권한을 분산하는 일이 필요하다.

더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기다린다

앞서 밝혔듯 위와 같은 제안과 구상은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글과 재정감시 운동을 통해 더 많은 시민들이 자치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가이다. 운동의 방향이나 제도개혁 또한 그것을 촉진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 도구여야 하므로 이 글은 논의의 시작일 뿐이다.

매우 부분적으로나마 대학재정을 살펴보면서 이 많은 재정을 효율적으로 통제한다는 것이 대학관료의 역량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타당성이 없는 사업은 너무 많고 그것을 성찰하여 대안을 만들어낼 인력은 턱없이 모자라다. 전문적으로 공공재정을 감시할 체계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통치와 운영에 참여하는 시민의 숫자가 대폭 증가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대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닐 것이다. 지방정치와 국가정치에 있어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며 재정의 규모로 본다면 오히려 더 심각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여전히 학생운동이 사회운동과 정치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어쩌면 그것이 청년정치의 한 방향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부디 2020년대는 대학생 시민들이 명실상부한 대학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시대가 되길 바란다.

 

황법량,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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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8일 국가교육회의 위촉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대학 입학 제도 개편안의 핵심은 공정과 단순, 국민의 공감이었다.

현재 대입 제도가 지나치게 복잡해 사교육 의존도가 높고 가정의 경제 수준에 따라 학생들의 입시 결과가 달라진다는 우려가 잇따르자, 개편안을 마련해 이를 해소하겠다는 취지를 밝힌 것이다.

교육부 장관 교체 등 여러 논란 끝에 지난 11월 28일 교육부는 대입 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하였다.

먼저 교육부는 학생부 종합 전형(이하 학종) 실태 조사에서 학종 전형의 불투명성과 실질적인 고교 서열화를 확인했다고 발표하였다.

교육부는 대입 전형 자료의 공정성 강화를 위해 정규 교육 과정 외의 활동 대입 반영 금지, 학교와 교사의 책무성 강화 등의 방안을 발표했으며 평가의 투명성·전문성 강화를 위해 출신 고교 블라인드 처리, 세부 평가 기준 공개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이 같은 보완 정책에 덧붙여 교육부는 정시 확대를 골자로 한 대입 전형 구조 개편안을 제시하였다.

특히 2023학년도까지 서울 소재 16개 대학을 대상으로 수능 위주 전형을 40%까지 달성하겠다는 정시 확대 계획이 발표되었다.

교육부는 16개 대학 선정 기준에 대해 2021학년도 대입 전형 시행 계획 기준으로 서울 소재 대학 중 학종과 논술 위주 전형 합산 45% 이상 대학을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11월 5일 교육부에서 발표한 주요 13개 대학 학생부 종합 전형 실태 조사 결과에서는 현재 학종이 고소득층 학생들에게 유리하다는 근거를 확인할 수 없었으며, 사흘 뒤 실태조사 결과에 대한 교육부 해명에서도 마찬가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결국 학종 실태 조사를 통해 확인된 것은 고교 서열화 등 불공정 사례일 뿐이다.

그럼에도 교육부가 11월 28일 전격적으로 정시 확대 방침을 발표한 것은 대통령의 시정 연설 등에 따른 정시 확대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냐는 의혹에 무게 중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대입 제도가 아니라 학벌 서열이다.

이미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교육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학벌 서열임을 밝히고 국공립 통합 네트워크, 공영형 사립대 등 대학 개혁 정책을 공약하였다. 또한 고교 학점제 도입으로 학업 부담을 줄이는 것을 고교 개혁의 국정 과제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결국 문 대통령의 정시 확대 입장은 학벌 서열 철폐나 학업 부담 경감이라는 애초의 방향에도 역행하는 것이자 국민과의 약속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설령 교육부와 문재인 정부가 정말로 정시 확대가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판단하더라도, 굳이 대부분이 사립대인 서울 소재 주요 16개 대학만을 선정해서 정시 확대 조치를 취하는 것은 학벌주의 발상이다.

지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은 한국 사회의 학벌주의가 여전히 부의 세습과 빈부 격차를 심화하는 기반임을 드러냈다. 즉 학생부 종합 전형에 대해 국민적 반감이 생긴 근본 원인은 국민 대다수가 학벌 서열에 따른 권력 배분을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데 있으며, 학벌 기득권을 고소득층이 독점하고 세습하고 있음을 체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문제의 원인을 명확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책임 있는 자세로 해결하기보다 여론에 기대는 무책임 정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로 인해 수능을 대비하는 학생들은 잦은 교육 정책의 변화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문재인 정부는 학벌주의를 철폐할 수 있는 대책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박고형준,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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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1월 26일 다수의 언론이 광주광역시 소재 사립중학교의 반인권적인 ‘용의 및 생활규정’에 대해 보도했다. 해당 학교에서는 학교장 방침으로 학생들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복장, 두발, 용모를 구체적으로 정해놓고 이를 준수하지 않을 시 처벌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여학교로 한국사회가 강요해왔고 지금도 강요하고 있는 ‘순종적인 여성상’에 부합하는 기준을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러한 인권침해에 저항하며 ‘겨울에 외투를 착용할 시 안에 교복재킷을 반드시 입어야 한다’는 규정의 완화를 요구했다. 학생 대표자는 이러한 요구를 학교장에게 전달하였으며 일부 교사들 또한 반인권적인 규정에 문제를 제기했으나 학교장은 모든 요구를 묵살했다.

 

 더 나아가 2019년 11월 1일 학교생활규정 제·개정 위원회를 열어 ‘학생회는 학교장 직무에 관한 행정사항에 관여할 수 없다’는 내용의 학교생활규칙을 제정했다.

 

 학교장의 이러한 조치에 반발하여 학생들은 ‘우리의 몸은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대자보와 포스트잇을 학내에 게시했다.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해당 학교장의 처분이 광주학생인권조례를 위반한 것에 대해 광주교육청의 단호한 조치를 요구하는 민원을 제출했다.

 

 ‘인권도시’와 ‘민주시민교육’을 표방하는 광주는 2011년부터 광주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여 헌법상 보호받아야 할 초·중·고 학생 시민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오고 있다. 그리고 광주학생인권조례는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자치와 참여에 관한 권리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용모 및 생활규정’과 ‘학교생활규칙’ 등은 광주학생인권조례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보여주는 것
 
 민주공화국에는 국가의 주인으로서 통치에 참여하고 부당한 억압에 맞설 수 있는 시민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학벌주의 입시교육에 발이 잡힌 한국교육은 형식과 당위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을 표방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억압적인 노예교육을 유지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사학재단’의 문제가 결합하면서 여전히 반인권적인 규정을 시행하는 학교가 다수 존재하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은 이러한 한국교육의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 모순은 광주에서 더욱 극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광주시교육청은 인권조례 제정 이후 인권 무법지대였던 학교를 바꾸려 꾸준히 노력해왔고 학생자치 활성화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체제에서는 일제 강점기와 군부독재 시기의 교육관을 가진 학교장 1인만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학교를 그 시절에 머무르게 할 수 있다. 그 결과 이미 수많은 여성이 성차별에 맞서 싸우고 있는 대한민국, 그것도 인권도시를 표방하는 광주에서 공식적인 교육기관이 성차별을 교육하고 강요하는 풍경을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이러한 암울한 모순뿐이 아니다.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자유의 황무지’ 같은 사립중학교에서 자유를 위한 시민항쟁이 싹텄다는 것이다. 누가 이 학생들에게 혁명을 사주했는가? 학생들의 배후에 어떤 강력한 음모집단이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학생들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도 이 작은 사립중학교의 현실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학생들은 학교장의 처분에 굴종하지 않고 스스로의 결단으로 자유를 외쳤다. 광주교육이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은 ‘실력광주’ 따위의 노예족쇄가 아니라 학생들이 억압에 맞서 자유시민으로 거듭난 바로 지금이다. 1929년 ‘노예교육 철폐’를 외쳤던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정신이 다시 광주교육에 나타난 것이다.
 
▲학생, 대표자, 교사의 용기
 
 한 명의 시민으로서 학생들의 자유투쟁을 지지하며 법과 역사, 그리고 시민사회가 여러분의 편이라는 것을 강조드린다. 지금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일탈행동을 하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헌법정신이 아니라 제국주의와 군부독재의 교육관에 따른 처분을 보여준 학교장이다.

 

 그리고 여러분의 행동은 민주주의 사회의 도덕과 한국의 역사와 전통에 걸맞은 학교를 만들기 위한 지극히 정당한 행위이다.

 

 한 명의 학생운동 활동가로서 학생의 편에 선 학생 대표자의 용기에 지지를 보낸다. 그동안 수많은 학생 대표직은 이른바 ‘모범생’이라 불리는 학생들의 차지였고 이들은 학생의 의견을 대변하기보다 학교의 편에 서서 학생들의 혁명을 사전에 방지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것은 학생운동의 전통이 사라진 지금의 대학교학생회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학교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받게 될 엄청난 압력에도 학생의 편에 선 학생 대표자의 선택으로 이번 사건은 새로운 지평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학생의 편에서 인권침해 규정을 문제제기한 교사들에게도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 민주주의를 교육하고 인권보호에 앞장서야할 교사들이 정작 학생자치를 탄압하고 인권침해를 자행해온 것이 한국교육의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의 편에 서서, 그리고 스스로 압제의 부역자가 되는 것을 거부한 교사들의 양심과 용기는 더욱더 값지다.

 더 많은 교사가 학생의 편에 서 민주공화국 교사의 모범을 보여주길 바란다.
 
▲시민사회는 연대에 나서야 한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여성과 청소년을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하지 않는 차별주의자들이 온갖 모욕과 비난을 학생들에게 퍼붓고 있다. 반면 광주의 시민사회는 아직 이번 사건을 제대로 접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너무 사안이 명백하여 광주교육청의 빠른 조치를 예상하는지 별다른 호응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규정이나 제도적인 부분보다도 학생들의 투쟁이다. 지금 상황은 학생들이 학교 밖의 세상에 소식을 전하자 모욕과 비난만 돌려받은 것이다. 교육청의 조치와는 별개로 시민사회에는 연대의 의무가 있다. 교문을 박차고 나온 학생들이 마주해야 할 것은 차별주의자들이 아니라 그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위대한 용기를 보여준 것을 축하하는 시민들이어야 한다.

 

 또한 이번 사건을 ‘구출을 기다리는 어린 여성에 대한 것’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차별주의자들의 관심을 끌뿐, 다른 시민들의 연대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결국 구출은 교육청과 제도의 몫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해방을 스스로의 결단으로 쟁취하지 못하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외부의 간섭’이 되어버린다. 시민사회는 학생들을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하고 연대해야 한다.

 

 학생들이 판단하기에 필요한 것이 교육청의 조치일 뿐이라면 보다 많은 시민들이 교육청의 신속한 조치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학생들이 보다 빠르고 확실한 사태해결을 원한다면 기자회견, 공개 토론회, 집회 등을 실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 투쟁에서 판단과 책임은 학생들의 몫이지만 그들의 선택에 함께하는 시민들이 있으며 다양한 지원이 있을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은 시민사회의 일이다. 억압을 가르쳤으나 자유를 외치고 있는 이 기적 같은 학생들의 투쟁에 광주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줄 만한 강력한 연대와 지지로 화답해야 한다.


황법량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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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의 투쟁

 관광과 국제교역의 도시로만 여겨졌던 홍콩은 돌연 2014년부터 자유와 억압이 격돌하는 전선이 되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부터 꾸준히 민주화를 요구해왔던 홍콩의 시민사회와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며 통제와 검열을 강화해온 중국 정부가 2014년에 이르러 정면충돌한 것이다.

 2011년 중국 정부가 홍콩의 초·중·고 교육과정에 국민교육을 도입하려 한 정책을 저지하면서 민주화운동을 시작한 홍콩 청년들은 2014년 시위의 선두에 나섰다. 홍콩 경찰은 폭력적인 진압으로 시위를 억눌렀고 이들의 최루탄 발포에 맞서 시위대는 우산을 펼쳤다. 수많은 인파의 시위대가 우산을 펼치는 장면으로 인해 2014년 홍콩에서의 투쟁은 우산혁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우산혁명은 간선으로 선출되던 홍콩 행정장관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문제를 두고 중국 정부가 발표한 방안에 홍콩 시민사회가 반발하면서 촉발되었다. 중국 정부는 중국 전체인민대표대회가 지명한 후보들만이 직선제 선거의 후보로 출마할 수 있는 방안을 발표했고 홍콩 시민사회는 완전한 직선제를 요구했다. 약 3개월간 진행되었던 우산혁명 시위는 결국 직선제 개혁을 쟁취하지 못하고 광장의 시위대 농성천막이 철거되면서 끝났다.

 우산혁명의 청년활동가들은 2016년 홍콩의 입법의원으로 당선되는 등 투쟁을 이어나갔다. 4명의 민주파 의원들이 중국에 충성을 맹세하는 의원 선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원직이 박탈되고 시위에 앞장섰던 조슈아 웡 활동가는 투옥되는 등의 탄압이 이어졌으나 2019년에 이르러 홍콩의 시민사회는 다시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홍콩 정부가 추진하는 ‘범죄인 인도법안’이 홍콩내 민주화 인사들을 중국 본토로 체포하고 언론자유를 탄압할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2014년, 우산혁명의 실패를 경험한 홍콩의 청년들은 보다 더 준비된 자세로 다시 한번 역사의 흐름에 뛰어들었다. 일각에서는 1980년 5·18에서 2017년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한국에서의 장기적인 민주화운동을 참고하여 홍콩 청년들이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범죄인 인도법안’ 추진은 철회되었으나 경찰의 폭력진압 중단과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시위는 이어지고 있다.

 2019년 홍콩에서의 투쟁은 7월 1일 홍콩 입법회 청사를 점거한 후 ‘오늘의 사건이 폭동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며 일군의 활동가들이 마스크를 벗고 카메라 앞에 나선 사건, 한 홍콩 출신 프로게이머가 ‘나는 대회 준비에 4년을 썼으니 4년을 잃지만 홍콩이 진다면 그것은 영원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징계를 각오하고 국제 게임대회 우승 직후 ‘광복홍콩, 시대혁명’을 외친 사건 등 위대한 투쟁의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홍콩시민들의 연대요청

 2019년 6월 가석방된 조슈아 웡 활동가는 9월 한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촛불혁명이 홍콩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며 한국에 연대를 호소했다. 10월에는 재한 홍콩 시민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2019년 홍콩’은 ‘1980년 광주’라며 한국 시민사회의 지지를 구했다. 중국 정부 수립 70주년 기념 반대시위 광고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이 가장 먼저 등장하기도 했으며 홍콩 시위의 주제곡 ‘영광이 다시오길’의 한국어 버전이 인터넷에 공개되기도 하는 등 홍콩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한국의 지지와 연대를 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호소에도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는 이렇다 할 연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외교적인 문제를 고려하여 정부와 집권여당이 침묵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시민사회의 침묵과 의도적인 연대 거부에는 실망을 넘어 배신감이 들 지경이다.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시위를 주도하는 청년들이 노동자 계급이 아니라 중산층 대학생이다’, ‘ 서방세계의 연대를 구하는 것을 보니 제국주의 세력에 부역하는 운동이다’ 등의 주장으로 홍콩에서의 투쟁을 폄훼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영화 ‘택시기사’의 모델이 된 힌츠페터 기자의 연대를 잊었는가? 1980년 5월 18일 전남대 정문에 모인 대학생들도 노동자 계급이 아니라 특권적인 지식인 계층이었다는 것을 모르는가? 미국의 항공모함이 입항한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이 광주시민들을 구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광주시민들을 모욕할 셈인가? 활동가들이 성폭행을 당하고 변사체로 발견되는 와중에 도움을 줄 만한 곳이라면 어디든 만나야만 하는 홍콩시민들의 절박함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못하는가?
 
▲광주의 의무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은 전 세계의 시민들에게 빚을 졌다. 외신기자들의 진실보도와 기록으로 인해 80년대 대학생들은 5·18의 진실을 생생히 접할 수 있었다. 5·18의 학살에 책임이 있는 미국에서조차도 시민들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연대하고 함께 미국정부를 규탄하기도 했다. 2017년 영광스러운 혁명의 성공은 우리 스스로 이룬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받은 세계시민들의 연대를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이제 한국의 시민사회에는 아직 민주화 투쟁이 진행 중인 곳의 시민들과 연대해야 할 의무가 있다. 특히 5.18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표방한 광주는 이 의무에 앞장서야 한다.

 ‘5·18의 세계화’라는 말은 이제 우리가 전 세계의 민주화운동에 앞장서겠노라는 무거운 짐을 진 표어이다. 외국인들이 80년 광주의 이야기를 알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현지어로 된 홍보자료를 배포한들 외국인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굳이 찾아볼 이유는 없다. 그러나 광주시민사회가 먼저 세계 각지의 인권탄압과 자유투쟁의 현장에 연대한다면 그들이 먼저 5·18의 의미가 무엇이길래 자신들을 돕는지 물어올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투쟁이 승리한 후 그들도 자신들이 받았던 도움을 기억하고 연대에 나설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5·18의 세계화’가 실현된 모습이다.

 1980년 5월을 떠올리며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홍콩은 ‘5·18의 세계화’ 실현을 위한 첫 번째 계기가 되어야 한다. 만일 광주가 끝끝내 홍콩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5·18이 보여준 이상세계의 꿈을 우리 스스로 꺾어버리는 일이며 5·18을 광주와 한국이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일어난 우연적인 사건으로 격하하는 것이다.

 한편, 위와 같은 이유와 더불어 우리는 동아시아인으로서도 홍콩에 연대해야 할 이유가 있다.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민주화운동이 탄압을 받을 때 자주 등장하는 논리 중 하나가 ‘아시아와 서양은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의 박정희가 주장한 ‘한국적 민주주의’, 싱가포르의 리콴유가 주장한 ‘아시아적 가치’ 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민주주의나 자유 같은 것은 결국 서양인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며 아시아인에게는 억압적인 정치체제와 문화가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이다.

 나는 그 어떤 서양인의 인종차별적인 표현보다도 이런 주장들에 분노를 느낀다. ‘한국적 민주주의’ , ‘아시아적 가치’ 라는 말은 결국 아시아인들에게 자유를 누릴만한 존엄이나 이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에 맞선 반독재 투쟁과 리콴유와의 공개적인 논쟁으로 이런 주장을 반박했다. 그리고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라는 반봉건 투쟁에서부터 2017년의 민주주의 혁명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민중봉기사는 민주주의와 자유가 모든 인류에게 보장되어야 할 가치임을 증명했다. 시진핑의 ‘중국식 민주주의’에 맞서는 홍콩 시민들은 한국에 이어 다시 한번 그것을 증명하려 하고 있다.

 학벌주의라는 이름의 카스트제도와 말 그대로 ‘살인적인’ 노동자들의 현실 등 한국의 민주주의에는 모순이 분명하다. 그러나 천황제 미신과 봉건영주 가문 정치인들의 지배를 받는 일본, 공산당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황조가 통치하는 중국 등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2017년의 촛불은 자유로 향하는 길을 비추는 동방의 등불이다. 중국 정부 수립 70주년 기념 반대 시위 광고영상에서 다른 어떤 서양 정치인보다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이 먼저 나왔던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광주시민에게 고함

 2020년은 5·18 광주민중항쟁이 있은 지 4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나는 이글을 통해 5·18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자처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든 홍콩을 외면하지 않는 40주년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호소한다. 조슈아 웡을 비롯한 홍콩의 민주화운동 활동가들을 광주로 초청하여 전남대, 구도청, 민주묘역을 비롯한 5·18의 공간을 소개하고 그들에게 기자회견과 강연회의 기회를 주어 전 세계에 민주화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을 제안한다.

 이제 우리는 홍콩을 시작으로 티베트, 카탈루냐, 쿠르드 등 세계 각지에서 힘겹게 자유를 위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시민들을 광주로 불러 ‘5·18의 세계화’를 실천해나가야 한다. 돈이 많은 중국 공산당에 굽신거리는 서양의 자본과 기업들이 주장하는 거짓 자유가 아니라 시민의 손으로 만든 진정한 자유의 역사를 보여주자. 빛의 도시 광주가 칠흑 같은 압제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희망이 될 수 있도록.


황법량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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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5일 '서울'의 학벌없는사회는 마지막 총회를 갖고 해산했다. 그들은 해산선언문을 통해 '이제 자본독점 앞에 학벌독점도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진단하며 더 이상 학벌타파 운동은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처럼 말했다.

그 이후 서울대를 비롯한 고학벌 대학 학생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부정하는 데에 이 해산소식은 빠지지 않고 근거로 사용되었다. 학벌없는사회를 만들겠다던 사람들의 주장이 정작 학벌 있는 사람들의 입장을 뒷받침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해산선언문을 끝까지 살펴보면 해산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 긴 시간 학벌없는사회의 이념에 동의하고, 우리 단체를 후원해주신 많은 분들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단체 활동을 중단하게 된 더 현실적인 까닭은 활동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있는 인적인 토대가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천만씨앗이나 학교밖 인문학, 월례토론 등의 다양한 활동이 있었지만, 단체 초기부터 함께 했던 분들은 활동의 공간을 이전했음에도 새로운 활동가를 세워 내지 못했다."

종종 운동단체들이 자신들의 실패를 시대전체의 문제로 확대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단체내부의 운동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단체가 제시하는 의제가 사회적 의미를 상실한 것인지는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그런데 해산선언문은 '학벌이 더 이상 권력획득의 기제'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학벌은 여전히 교육문제의 질곡이며 학벌사회를 깨뜨리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다소 모순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

그러다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단체내부의 문제로 활동을 이어갈 수 없다는 진짜이유를 밝히고 있다. '서울' 학벌없는사회의 해산은 단체 내부의 문제와 시대의 문제를 뒤섞어 버렸고 그 결과 오히려 학벌타파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근거가 되는 역설을 만들었다.

'서울'의 학벌없는사회는 '광주'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펼치던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당시 광주시민모임)이 있었음에도 자신들이 학벌타파 운동 전체를 대변하며 역사를 닫으려 했다. 서울에 소재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이 운동의 전부라는 생각이 전제된 해산선언은 학벌서열에서 소외된 지방의 시민들을 시민운동에서조차도 배제한 잘못된 일이었다.

'서울'의 학벌없는사회가 살펴봐야 했었던 것은 학벌 없는 시민들이 받는 차별이지 학벌 있는 청년들의 권력 독점 실패가 아니다. 서울의 학벌 있는 대학생들이 학벌없는사회 운동에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은 결코 해산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설령 해산선언문의 주장처럼 더 이상 학벌이 권력획득의 기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학벌주의 입시교육으로 고통받는 청소년들이 있는 한 학벌타파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광주'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의 활동

2008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던 '광주'의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광주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독자적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9년 1월 18일에는 정기총회를 갖고 단체 명칭을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에서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으로 개정했다.

'서울'의 학벌없는사회가 해산한 마당에 굳이 스스로 '광주'라는 제한을 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부터도 '광주' 활동은 '서울'의 활동과 방식이 달랐을 뿐 그 범위가 '광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명칭개정은 이러한 이유와 더불어 전국의 시민들에게 다시 학벌타파 운동을 만들자는 제안이기도 했다.

2019년 10월 8일 '광주'의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2016년 '서울'의 학벌없는사회 해산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선언문을 토론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학벌없는사회 운동을 되돌아보다'를 주제로 채효정 '서울' 학벌없는사회 전 사무처장과 박고형준 '광주'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상임활동가의 발표가 있었다.

채효정 전 사무처장은 해산선언문의 판단은 잘못되었으며 학벌타파는 다시 시작해야 할 운동이라는 취지로 발표했다. 박고형준 상임활동가는 단체의 역사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발표했다.

토론회를 전후로 한국사회를 뒤덮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은 학벌을 통한 부와 권력의 세습 문제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규탄한다는 학벌 있는 청년들의 집회는 자신들이 발딛고 선 학벌주의에 대한 성찰을 찾아볼 수 없는 '기득권 지키기'일 뿐이었다. 정작 학벌 없는 청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학벌 있는 청년 대학생들의 무책임한 집회 소식과 학벌 없는 청년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사망소식은 극단적인 대조를 보여주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가 특권적인 교육을 받았다는 소식보다도 그 소식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과 언론이 이를 다루는 방식에서 학벌주의의 모순이 더 극명하게 드러난 광경이었다.

'광주'의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3차례의 논평을 통해 이번 사건의 핵심이 학벌주의에 있음을 밝히고 다시 한번 전국의 시민들에게 학벌타파 운동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민주당 정치인들의 위선을 비판하는 것은 그들과 똑같은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학벌 없는 청년, 입시교육에 고통받는 청소년, 세습과 독점에서 배제된 모든시민들의 몫이어야 했다.

서초동과 여의도에서 촛불집회를 이어가고 있는 시민들의 '검찰개혁'이라는 외침은 옳은 주장이다. 그러나 검찰총장을 국민직선으로 선출하는 혁명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번 사건이 보여준 학벌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순 없을 것이다.

 


10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의 배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서울' 학벌없는사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학벌타파를 공약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유력정당의 정치인(한나라당 이회창, 국민통합21 정몽준)과 군소진보정당의 정치인(민주노동당 권영길, 사회당 김영규)까지 서울대 출신인 상황에서 '고졸' 노무현 후보의 선언은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고졸' 대통령 한 명이 탄생했다고 해서 권력을 바꿀 수는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 임명된 13명의 청와대 수석비서관 중 단 1명을 제외한 모두가 서울대 출신으로 채워졌다. 2017년 경향신문이 발표한 취임 100일 기준 역대 정부의 고위공직자 출신대학 통계에서는 노무현 정부시기 정부 고위공직자 45.8%가 서울대 출신이었으며 연세대와 고려대를 합하면 61.2%였음을 밝히고 있다.

취임 직후 임명된 수석비서관 중 단 1명의 예외였던 문재인 민정수석비서관은 2017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첫 번째 대선출마 때부터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정책을 통한 학벌철폐를 공약했다. 2017년 대선에서는 4월 6일 목포대학교를 방문하여 강연회를 갖고 대학 서열화 철폐가 교육문제 해결의 근본 방안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학벌 있는 청년들은 문재인 정부가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실현하지 않을까 재빠르게 비난을 퍼붓고 자신들이 국공립대 통합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선동에 열중했다. 그러나 그들의 걱정은 기우였고 임기 내에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이루겠다던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교체되었다.

2019년 10월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정시 확대를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 방향을 제시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을 두고 교육부가 교육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입시공정성 강화'라는 협소한 대책을 내놓았을 때부터 문재인 정부는 '학벌서열' 철폐 공약을 저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10월 22일 시정연설은 이것을 넘어서 한국 교육의 무의미한 입시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시험위주의 입시제도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청소년들이 겪는 학업부담의 고삐를 더 세게 조이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말하는 '공정성 강화'란 결국 그런 것일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정시 확대는 없으며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혀온 교육부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같은 날 열린 부교육감회의에서 '서울·수도권 일부 주요대학들의 학종 선발 비율이 높기 때문에 균형감 있게 정시비율을 확대하는 등의 방안을 당정청이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로 전날인 21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도 '정시를 확대하면서 사교육을 낮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등의 김해영 최고위원의 발언을 통해 정책방향 선회가 예고되기도 했다.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는 문재인 대통령뿐만 아니라 민주당의 공약이기도 하다. 2012년 1월 이용섭 현 광주광역시장은 당시 민주당 정책위의장으로서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정책을 민주당의 교육개혁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해 6월 21일 이해찬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시 민주통합당의 대표로서 민주통합당 정책위원회가 주관한 "대학서열화·학벌 타파를 위한 국립대학 체제 개편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기도 했다.

결국 10월 22일 대통령의 시정연설과 그 전후로 발표되는 민주당 정치인들의 '정시확대' 주장은 '당정청' 모두의 배신이다.

 


다시 한번, 학벌타파 운동 제안

나는 2016년~2019년 동안 지방대학의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주변 지방 대학사회의 실태를 보았다. '학벌'이 '주체성'을 앗아간 지방 청년들의 사회는 침묵 그 자체였다. '정치'라는 사회적 목소리를 잃어버린 대학사회에서는 불합리와 부정부패가 판을 쳤고 학생자치는 어용화되거나 무의미해졌다. 자신이 발딛고 있는 지역 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사리지고 지방대학은 서울진출에 탈락한 사람들의 수용소, 대기소가 되어버렸다.

노무현과 문재인 두 대통령의 배신은 정치인의 공약만으로 학벌주의가 해소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민주주의가 공짜로 주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학벌이 독점하는 정치·경제·사회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도 시민들의 투쟁이 필요한 일이다.

진보진영 일각에서 학벌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정작 학벌타파를 위한 구체적인 운동의 계획에 대한 토론은 없어 이번 사건이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게 아닐지 걱정이다.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학벌의식을 바꾸는 것이 선언과 주장만으로 가능한 일이었다면 이미 2000년대에 학벌은 철폐되었을 것이다.

서초동과 광화문 그 어디에도 갈 수 없었던 청년들의 목소리를 이끌어내고 이들을 나라의 주인, 공동체의 주인으로 내세우고자 한다면 지금 필요한 일은 학벌 없는 시민들의 운동을 차근차근 조직하는 것이 아닐까. 다시 한번, 전국의 시민들에게 학벌타파 운동을 제안한다.

 

 

황법량,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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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개요와 주요 논점

광주의 중학교 윤리교사 배이상헌 교사는 성윤리 수업 중의 발언과 수업자료로 활용한 영상에 대한 민원을 이유로 2019년 7월 24일 직위해제 처분을 받았다. 광주시교육청은 해당 사건을 ‘성비위 사건’으로 규정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아동복지법 위반 등의 이유를 들어 이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광주시교육청이 문제 삼은 발언에 대해 배이상헌 교사는 정확한 표현도 다르고 그런 종류의 의견들을 비판적으로 소개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설명했다. 또한 광주교육청이 문제로 여긴 ‘억압받는 다수’라는 단편영화는 성차별 현상을 고발하는 영화이며 성평등 수업의 일환임을 밝혔다. ‘억압받는 다수’에 대한 광주시교육청의 성비위 규정은 광주를 넘어 한국교육의 논란이 되었다.

이 사건을 두고 인권운동, 여성운동 일각에서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이유로 배이상헌 교사의 구명활동을 규탄했으며 배이상헌 교사의 수업은 성평등 교육이 아니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배이상헌 교사의 수업은 성평등 교육이고 이에 대한 성비위 규정은 성평등 교육에 대한 탄압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광주시교육청을 비판했다.

이 사건에 대한 광주시교육청 처분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해서도 논쟁이 벌어졌다.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직위해제와 경찰수사의뢰’ 조치가 있기까지 해당 교사의 변론이 진지하게 고려된 의사결정이 없었다는 점, 학내자치기구인 성희롱·성고충 심의위원회에서 성비위가 아니라고 결정한 점 등을 이유로 광주교육청의 처분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광주교육청 일부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직위해제’는 징계조치가 아니며 광주교육청은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니라 신고에 따라 행정절차를 진행했을 뿐이라고 맞대응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시민사회 일각에서 아쉬운 점은 있겠으나 광주교육청의 처분은 절차적으로 크게 부당한 점이 없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중심주의 담론과 광주교육청의 강력한 매뉴얼은 그동안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묻어왔던 한국사회와 학교현실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민사회 일각의 주장 또한 배이상헌 교사의 경우처럼 부당해 보이는 처분을 받거나 잘못에 비해 과도한 처벌을 받은 교사들의 고통에 대한 응답이다. 피해자의 고통과 다른 피해자의 고통이 충돌하는 지금의 이 난제는 한국사회가 풀어야 할 중대한 과제일 것이다.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의 역할

이러한 난제 앞에서 ‘피해자’를 내세우는 지금의 운동과 담론이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더 나아가 이 사회를 더 좋게 만드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좋은 사회, 정의로운 사회란 차별이 없는 사회, 약자의 권리가 보호되는 사회인 것이지 약자가 곧 정의인 사회가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사회운동이란 ‘약자가 세계를 책임질 수 있는 주인으로 거듭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운동, 인권운동 일각에서 주장하는 ‘피해자 중심주의’와 ‘안전한 환경 조성’이라는 주장은 옳은 주장이지만 한편으로 위와 같은 관점에서 논의를 이어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시각에서 나는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학생운동과 그에 따른 담론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의 중요 당사자인 교사집단의 경우 나름대로 입장과 관점이 보이고 어쨌든 그것을 만들어갈 조직이 있지만, 학생의 경우 그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 난제는 학생이 교사와 대등한 주체로 거듭날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배이상헌 교사의 수업은 어떤 학생에게는 충분히 불편한 것이었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 잘못된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학생은 그 자리에서 혹은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배이상헌 교사의 수업을 비판하고 책임 있는 논박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학생에게 교사를 비판할 자유는 보장되어 있지 않고, 한국의 교육제도는 그런 이견을 수용할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절차를 가지고 있지 않다. 배이상헌 교사가 학생의 비판을 수용할만한 신념을 가진 것과 별개로 학생에게는 그럴 힘이 없다.

한국학교에서 일어나는 성차별에 대해 학생이 할 수 있는 대처는 양극단이다. 참든지 아니면 해당 교사를 성비위자로 고발하든지이다. 이런 극단은 오히려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일상적인 차별과 폭력에 대해 침묵하게 만든다. 다른 한편 억울한 처분을 받는 교사가 생길 가능성도 커진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런 극단은 학생을 주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육청의 피보호자로 머물게 만든다.

청소년은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한 존재라는 점에서 보호와 조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은 이민을 온 외국인, 기업에 취직한 신입사원, 군대에 입대한 신입병사, 면허를 취득한 초보운전자 등 어떤 시스템에 진입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과 같은 기준과 목표로 운영되어야 한다.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추는’ 현실이 청소년을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 것처럼 그에 대한 현재의 보호 및 구제조치도 결국 청소년을 동등한 시민으로 보고 있지 않은 것이다.

▲ 각자 시민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자!

이 사건이 드러낸 한국교육의 모순은 학생운동의 역할을 요청한다. 더 크게 보자면 청소년 시민운동의 역할을 요청하고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광주 그리고 전국의 수많은 초·중·고 학생회 임원, 청소년 활동가들에게 그 시대적 요청을 전하고자 한다. 지금 여러분은 학생·청소년 시민의 대표자, 옹호자로서 이 문제에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

광주의 학생의회, 어린이·청소년 의회는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수렴하고 제도개혁안을 도출하기 위한 공론장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치기구를 둘러싼 단체 및 대표자들은 각자의 관점과 입장을 제출하고 토론에 나서야 한다. 그래서 청소년이 스스로의 세계를 책임질 수 있는 권력을 쟁취하라.

한편, 시민사회 전체에는 배이상헌 교사가 겪고 있는 불의를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나는 교실에서 온갖 성차별, 인권침해 발언과 폭력을 쏟아내는 수많은 교사들의 지배 아래 청소년기를 보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그랬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교육을 바꾸고자 노력해온 사람이, 그 노력의 과정을 이유로 처벌받고 있다. 양심과 지성을 갖춘 시민이라면 성차별주의자 교사들이 아무런 반성도 없이 학교현장에 남아있는 반면 그걸 바꿔보자고 몸부림쳤던 교사는 학교에서 쫓겨난 이 불의를 용납해선 안된다. 배이상헌 교사의 수업방법에 대한 토론은 그다음의 문제인 것이다.

광주교육의 현실, 한국교육의 현실은 ‘시민’의 역할과 책임을 절실히 요청하고 있다.


황법량<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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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0월2일) 광주광역시 관내 초·중·고교 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바로 광주광역시교육청(이하, 광주시교육청)이 발송한 공문 한 장 때문이다.

광주시교육청은 10월1일 오후5시 태풍 ‘미탁’ 대비 긴급 대책회의를 개최해 태풍 소멸 시까지의 안전 대책을 확정하고 이 날 오후6시45분 긴급 공문을 전 기관과 유치원을 포함한 각급 학교에 전달하였다.

이 대책에 따르면 10월2일 정규 수업 이후 교내에 학생이 잔류하지 않도록 각 학교 방과후학교 수업, 돌봄, 야간학습활동(자율학습), 기숙사, 스포츠클럽 활동 등을 취소(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단, 불가피한 경우 학생 안전을 확보한 후 학교장이 판단해 수업과 개별 활동, 행사 취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광주시교육청이 이러한 대책을 담은 공문을 10월1일 저녁에서야 보냈고, 일제히 모든 학교가 10월2일 오전에서 공문을 수신하여 다급히 학부모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전달내용은 정규수업 이후 학교의 모든 활동을 취소하는 등 즉시 하교(원)를 요청하는 내용이었으나, 맞벌이부부나 ‘하교가 빠른 초등학생’ 등 즉시 하원이 불가능한 경우에 대한 대비책은 안내되지 않았다.

또 다른 문제는 광주시교육청의 재난대비에 대한 불분명한 판단이다. 태풍으로 인해 긴급한 재난대비가 필요할 경우, 기관 및 각급 학교와 비상연락망 체계를 유지하고, 계기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폭풍우와 홍수 등 풍수해와 관련한 행동요령과 안전수칙을 안내하도록 하며, 특히 실시간으로 태풍경로를 확인하여 긴급 시 대피 및 조기하교 할 수 있도록 보호자 등에게 충분한 안내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광주시교육청은 안전에 대해서는 너무 조급하거나 불감한 나머지, 공문 발송 등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재난대비 대책을 실시하였다. 태풍 ‘미탁’의 직접적인 영향권인 제주도교육청은 유치원 방과 후 과정과 초등학교 돌봄교실은 재난 매뉴얼에 따라 안전을 확보할 경우 운영한 것에 반해, 광주시교육청의 대책은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을 한 것이다.

광주시교육청은 ‘중요/긴급’, ‘정규수업 이후 하교 원칙’이라는 수식어를 공문에 남길 만큼 이번 태풍에 대한 재난대비가 시급하거나 중요했다면, 재난대비 긴급 대책회의 직후 교장, 교감 등 학교 관리자에게 회의결과를 상세히 안내하고, 학부모들에게 사전 안내가 되어 태풍대비에 만전을 다할 수 있도록 협조체제를 갖춰야 했다.

참고로 광주의 경우 10월2일 태풍의 위력은 평소 우기철 정도의 강수량이었다. 이 정도의 태풍이면 안심하고 자녀를 학교에 맡길 수 있을 정도인데, 공문 한 장과 광주시교육청·일선 학교의 편의주의 행정 때문에 맞벌이 학부모는 하던 일을 멈추어 학교로 향했고, 많은 학부모들이 정해진 일정을 변경한 채 자녀들을 귀가시키느라 분주한 하루였다.

세월호 이후 다시는 인재로 인한 대형 참사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안전 불감증이 만연해 있다. 어쩌면 광주시교육청은 타시·도교육청보다 안전에 대한 대비가 높은 것일지도 모른다. 허나, 재난대비가 지금처럼 공문으로만 존재하는 매뉴얼이 아니라, 실질적인 예방과 교육·훈련, 현장 중심의 재난대응이 될 수 있도록 운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광주시교육청은 늘 상기해야 할 것이다.

박고형준,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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