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필요최소한의 학습정보만 담기 위해 ‘학습환경 조사서’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선 학교에서는 부모의 출신학교와 학력·직업까지 적도록 필수 항목을 만들어 명시하고 있다. 학부모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 구성원의 출신학교와 학력까지도 쓰라고 하는 학교도 상당수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이런 개인정보를 묻는 건 인권침해라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왔지만 지금까지도 고쳐지지 않는 건 엄연한 현실이다.

 필자도 소싯적 부모님의 출신학교와 학력을 요구하는 학교와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걸 묻는 교사들이 있었다. 이런 정보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은 학력(학벌)과 인성은 비례하다는 생각을 하는 게 흔하다. 물론 이들이 통계적으로 잘 설명내리지 못했지만, 어른이 되고 인성이 바르게 되려면 결국 공부해서 대학 가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곤 한다. 이처럼 문화는 항상 전위되기 마련인 것. 현세대 부모님들도 소싯적 대학 가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기에, 학력과 인성의 상관관계는 부모세대를 넘어 전통처럼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최근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재지정을 촉구하는 학부모들도 자사고 유지 배경으로 학력과 인성을 내세우며 전통성을 보였다. 학부모들은 ‘송원고 학생들은 인성이 귀족이다’ 문구의 시위피켓을 들었는데, 이는 자사고가 다른 일반고에 비해 대학을 잘 보내기 때문에 인성이 좋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제대로 따지고 보자면 대학을 잘 갔다고 해서 특별한 인성을 발견할 수 없고, 반대로 일반고라 해서 인성이 높다고도 규정지을 수도 없다. 인성은 그야말로 사람의 성품이다. 사람들마다 제각각의 성질과 성격, 됨됨이가 있는데 누가 우월하고 나쁘다고 볼 수 있겠는가. 이렇게까지 억지스런 논리를 피우는 것을 보면, 그동안 인성은 학력을 드러내기 위한 단순 포장역할을 해온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된다.

 최근 광주광역시교육청에서 뿌린 홍보물은 인성교육을 빙자한 학력주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4년 수학능력시험 표준점수 1위라는 쾌거를 달성하였는데 인성과 학력이 조화를 이뤄냈다며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대로 학력이 좋다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인성을 거론한 것은 나름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동안 보수층들이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등으로 인해 광주교육의 학력이 떨어졌다는 주장을 해왔는데, 그동안 오해를 말끔이 털어내고 학력이 높다는 것을 입증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수능점수와 같은 학력을 드높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지원들과 노력들이 있었는지 광주광역시교육청은 고백해야 한다. 0교시 수업이나 방과 후 학내 보충 자율학습을 제한하였지만, 여전히 대다수 학교들은 강압적으로 참여시키거나 자율적인 곳은 사교육으로 빠지고 있는 게 실정이다. 예를 들어 학기 초마다 학생들이 교육청 홈페이지로 자율학습 민원을 제기하거나, 사교육비가 전년보다 올해 3.5% 높은 것은 이 상황을 절묘하게 증명하게 된다. 특히 대학입시설명회는 지난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달 개최하며 학력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공교육의 본래적 의미를 되찾기 위해, 민주인권평화 교육과 혁신학교 등 특성화교육도 병행하고 있지만, 소위 대학 잘 보내기 위한 입시교육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광주광역시교육청의 딜레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육이 가야할 길을 말하지만 현실 앞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위 진보교육감 다수 당선되더라도 학력과 인성을 함께 키우겠다는 공약을 던지는 것을 보면 현실을 인정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처럼 학력을 위해 오직 입시에 매달려 살아가는 학생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궁극적인 대학입시 철폐와 같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 교육이 가야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번 자사고 재지정 요구와 반발에 휘말리며, 자사고 폐지에서 한 발 물러서는 광주와 서울교육감의 모습을 보면 더욱 안타깝다는 생각이 마구 든다.

 그저 지금 진보교육감이 할 수 있는 것은 학력보다 인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해내고 보편화하는 것일 텐데, 우선적으로 인성이 ‘학력과 구별짓고 교육의 정치적 용어로 사용되지 않기’를를 소망해본다.

박고형준<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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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드림_ 정치인 아닌, 진보교육감의 책무 다하길


 이번 광주지역 지방선거는 이 지역이 민주당의 변함없는 독식체제임을 다시 확인해줬다. 시장을 포함해 구청장, 시의원까지 모조리 민주당 후보들이 선거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그나마 시의회를 통해 권력을 감시해왔던 정의당과 통합진보당마저 이번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지방자치의 근간인 견제와 균형이 완전히 사라진 셈이 되어버렸다. 물론 이런 현상이 온전히 잘못되었다고 단정지을 수 없고, 지역민들의 잘못된 선택이라고 탓을 돌리긴 힘들지만, 수 년 간 광주의 선거판도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게 뭔가 허탈한 건 사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민선1기 광주광역시교육감에게 국회의원까지 지낸 민주당 유명인사가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승리했다는 점. 이번 민선2기 광주교육감 선거에서 장휘국 교육감은 양형일 후보와 접전을 벌린 끝에 재선에 성공했고, 광주를 포함해 13개 지역의 진보성향 인사들이 교육감에 선출된 등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민선1기 진보교육의 성과 때문인지, 박근혜 정권의 심판론 때문인지, 수십 년간 입시경쟁체제를 이제 한 번 바꿔보겠다는 것인지 유권자들의 선택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동안 철옹성같이 지켜왔던 보수 교육감들의 독식을 끊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이번 지방선거의 허탈감을 다소 해소해 준다.


 하지만 진보든 보수-중도든 권력에 들어서게 되면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법. 막상 당선자들이 시정-의정활동에 들어가면 선거공약처럼 자기 존재성을 드러내기보다는 현 자기조직을 우선시 바라보며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리 상급기관에서 잘못된 정책이 내려와도 유착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이건 엄연한 정치인들의 현실이다. 최근 광주시교육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송원고등학교의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재심의’ 절차를 보아도 그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듯하다.


 자사고 폐지를 공약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장휘국 교육감 본인이 이번 송원고의 자사고 재지정과 관련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절차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이유 중 자사고 재심사 결과에 의해 탈락하는 학교가 반발할 것이라는 의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절차는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절차인지 따져봐야 하는데, 이번 경우처럼 관공서의 명분 쌓기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며 그러한 절차 역시 시교육청 자체적으로 수행한다.


 참고로 이번 자사고 운영평가 자료를 시교육청이 비공개했다. 지난 6월 한 시민단체가 시교육청에게 자사고 운영평가 자료를 정보공개를 요청했지만, 시교육청이 이를 거부한 것이다. 물론 시교육청 입장처럼 의사결정과정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정보를 비공개할 수 있다. 하지만, 자사고 평가를 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과 시민들의 의견수렴을 고려해야 함에도 이를 무시하고 보이지 않는 절차에 따라 재지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광주시교육청은 최근 자사고 자료를 정보공개심의를 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회의자체를 비공개했고, 직원들을 대동해 청구인의 회의장 이동경로를 가로 막았다. 이는 과거 보수 교육감 시절에나 있었을 만한 일이다. 


 이처럼 왜 광주시교육청은 진보교육감이 있어도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것일까? 정말 유착관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해서인지, 장휘국 교육감의 의지와 리더십의 문제인지, 시교육청 조직의 보수성이 문제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진보교육감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잘못된 것인지 지금이라도 제대로 따져보지 않으면 민선-진보교육감의 역할이 올곧게 자리매김하기 힘들어 보인다.


 이번 광주시교육청의 광주교육에 대한 새로운 슬로건은 ‘질문이 있는 교실, 행복한 학교’이다. 더 이상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자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를 주도하고 있는 시교육청의 모습은 ‘질문을 기피하는 태도’, ‘질문에 불응하는 태도’인데 학교현장에서 무얼 기대해야 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장휘국 교육감의 본연의 생각과 진보적 철학을 자기조직에게 관철시키고, 보수적 유착관계를 넘어 폭넓은 교육가족들을 위한 교육감이 되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수 년 간 호남에서 권력을 세습하는 기존 정당 정치인들처럼 교육감 독식을 위한 ‘유지행위’로 밖에 비춰지지 않을 것이다.


박고형준<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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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세월호 사건의 분위기가 가시지 않은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과를 했지만 제대로 된 대책은 마련하지 않았고, 국민들의 실망감은 점점 더 쌓여가지만 정부는 귀를 닫고 있어 분노가 극에 다다르고 있다. 그 무엇보다 남은 실종자 가족들이 아직도 팽목항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현재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대책을 그 누구에게 돌릴 수 없듯이, 사고로부터 우리 사회가 얻어야 할 교훈이 하나로 수렴될 순 없다. 다만, 안전을 책임지겠다며 나선 공인이 있다면 그 약속을 온전히 지키길 바랄 뿐이다.


 이번 지방선거의 대다수 후보자들이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안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안전이 단순한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국민이 원치 않은 안전 정책이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그 부적절한 안전의 예로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가 내세운 CCTV를 강화한다는 정책이 있다. CCTV의 식별 능력을 높이고 관제센터를 확충하겠다는 것인데, 사실 이 정책은 인권침해와 더불어 개인 사생활이 어디까지 보여일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물론 CCTV가 학교나 골목길 등 사회 안전을 책임지는 방편으로 활용될 수 있지만, 그것이 주가 되기보다는 학교지도와 사회적인 해결을 통해 나가는 것이 옳다. 세월호 사고의 교훈을 보았듯이, 안전사고는 불합리한 제도와 우리 사회의 어둡게 가려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교육제도와 학교사회는 세월호 사건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단순히 많은 이윤을 벌어들이기 위해 빠르고 불안한 여정을 떠나야 하는 항해처럼, 흔히 이름 값 있는 명문대를 가거나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학생들은 입시경쟁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가고 있으며, 불합리한 입시제도와 학교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가려져 학생들은 죽음의 난간에 몰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육은 ‘가만히 있으라’는 통제만 요구하고 있는 것이 참 슬픈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학생들을 난간으로 몰아세운 교육 마피아를 몰아내고, 잘못된 지시와 권위로 지탄받을 교육관계자는 안전을 위해 무얼 고민해야 할지 풀어가야 할 것이다.


 이번 교육감선거에 진보적인 후보들이 선출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진보적인 교육감은 학생들이 무얼 요구하는지 목소리를 함께 존중해주며 문제를 풀어나갈 여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생각,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용기라고 보여진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 느꼈겠지만, 지난해 해병대 캠프 사건 역시 학생들에게 원치 않는 캠프를 거부하고 위험한 지시를 거부할 자유가 보장되었다면 피할 수 있던 사고이지 않을까? 즉 학생들의 안전은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권리이며, 쉬운 말로 학생인권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진보 교육감이라면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학생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 순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보적인 교육감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만은 없다. 민선1기를 통해 느꼈듯이 학생인권을 보장받기 위해선 예컨대 학생인권조례와 같은 제도나 예산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우리 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보호주의와 권위주의 등의 보수성을 풀어야 하는 숙제도 있다. 그런 뜻에서 더 이상 학생들이 미성숙하다거나 불안의 노출대상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권리를 유보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입 밖으론 안전을 이야기하면서, 마음 속엔 ‘튀지 말아, 시킨대로 해, 가만히 있어’등 수동적인 요구들을 하고 있진 않은지 기성세대들은 다시 한 번 돌이켜봤으면 한다. 그리고 안전을 위한 문제해결과 책임요구, 아픔을 이겨내기 위한 과정도 동등한 위치에서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나갔으면 한다. 이것이 희생된 학생들에 대한 애도의 길이자, 학생인권을 다시금 되새기는 의미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세월호 피해자들에게 위로와 연대를 표한다.


박고형준<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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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위험한 그 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

밀양 송전탑에 삶터 빼앗길 어르신들 “보상도 싫다 그저 옛날처럼 살고 싶을뿐”


  만약 국가 간 전쟁이 일어나면 누가 가장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하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총을 발사하고 폭탄을 날리고 각종 무기로 서로를 죽이려드는 군대가 가장 피해를 받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군인보다 민간인이 많이 죽고 군대시설보다 민간인 거주지역이 더 많이 파괴된다고 한다. 2000년대 크게 일어난 이라크 전쟁만 보더라도 군인 사망자와 경찰 사망자를 합해도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 10만 명을 뛰어넘지 못했다. 이처럼 전쟁은 민간인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끼쳤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를 좌지우지 하는데 그 전쟁의 잔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하다.


 민간인 피해자 중에서 특히 피해를 보는 계층이 있는데, 바로 거동이 힘들거나 물리적으로 힘이 약한 아동, 청소년, 여성, 장애인, 노인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소수자 혹은 사회적 약자라 부르기도 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는 속담처럼 누구도 원하지 않는 타자들의 싸움에 소수자들이 피해를 받는 전쟁은 지금도 국내 곳곳에서 크고 작게 일어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보전지역인 제주도 강정마을 내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문제가 있다. 자연환경과 지역공동체를 파괴한다는 마을주민들의 반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무자비하게 건설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이 해군기지는 미국과 아시아 국가 간의 전쟁 거점지로 여겨져, 건설이 완공된다면 언제 전쟁 피해지역이 될지 모를 위기에 처해있다. 물론 이 피해는 마을주민 더 나아가 제주도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최근 정부산하 한국전력공사에서 추진하고 있는 밀양지역 송전탑건설 문제도 마찬가지 사안이다. 76만5000볼트라는 국내 최대 전력이 흐르는 이 송전탑은 인근 마을주민과 농작물, 가축, 야생동물들을 위협하고 있는데, 한국전력은 ‘전 국민에게 공급할 전력의 수급문제’를 근거로 건설을 원하지 않는 주민들에게 암묵적인 협박을 넣고 있다. 강정마을과 마찬가지로 주민 계층의 대부분은 힘없는 노인들이다. 시골 노인들은 통상적으로 밤 10시가 되면 불을 끄고 새벽같이 해가 뜨면 농지로 일을 나가며 필요한 최소한의 전기만 사용하는 분들이다. 왜 그런데 이 분들이 송전탑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정작 이 에너지 전쟁의 원인인 개개인들과 산업용전기를 야간에 마음 놓고 사용하는 공장, 기업들에게 아무런 피해가 없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처럼 일찌감치 보이지 않는 전쟁은 예고되었고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를 위기에 숨 졸이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이웃나라 일본 후쿠시마에서 벌어진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가 에너지 전쟁의 결과를 보여주었고, 한국도 마찬가지로 신고리나 영광지역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가동중단 사태를 통해 전쟁예고 신호탄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이 또한 지역주민들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대체 에너지 개발을 통한 원자력 발전소 개수를 줄여나갈 의지를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대다수 국민들 또한 정부가 추진하는 원자력 의존성을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처럼 한국도 그리 터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 피해는 역시 죄 없는 발전소 마을주민들과 반경에 있는 지역민들에게 고스란히 갈 것이다. 


 위에서 제시한 강정마을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문제를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 해당 마을주민들은 피해보상을 원하지 않는다. 둘, 그저 살던 동네에서 아무 것도 훼손되지 않은 채 평화롭게 농사짓고 살고 싶어 한다. 셋, 그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 제공자는 마을주민들이 아니다. 누구도 위험한 그 곳에서 살고 싶지 않은데 왜 그들에게 피해를 몰아가려고 하는 것인가? 나만 아니면 된다는 개인 이기주의와 주변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정부가 부추기는 이 전쟁을 하루 빨리 접기 위해서 개개인의 양심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자신의 주거지에서 떠날 위기에 놓인 시골 주민들과 도시 안의 상황은 전혀 다르지 않다. 이미 도시 안의 수많은 공동체, 문화, 생태계는 파괴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킬 수 있는 시골 마을이라도 파괴되지 않게끔 노력하는 게 양심의 우선순위다.


박고형준<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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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인권이 만났을 때


 광주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3주가 넘게 광주광역시교육청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단순하게 교육청 앞에서 진행하는 천막농성이 아닌, 교육감실 점거농성이라는 높은 수위의 직접행동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청에서 일하는 장학사들은 매일 같이 돌아가며 당번을 서며 이례적으로 비상근무체제에 들어간 상황이다. 그동안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이 교육청을 상대로 각종 문제제기와 요구했던 사례를 비교하면, 이번 노조에서의 행동은 장휘국 교육감 취임이후 최고 수위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농성을 강행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영어전문강사 제도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한 때 유행어인 ‘오~렌지’를 기억하는가? 이명박 정권의 영어교육 프렌들리 정책에 의해, 전국 약 6200여 명의 영어전문강사가 학교 비정규직으로 채용된 바 있다. 현재 4기까지 운영 중인 영어전문강사 제도는 1년마다 강사들이 재계약으로 갱신해왔다. 문제는 이 중 2009년 채용된 1기 영어강사가 한 학교에서 근무가 가능한 4년을 채워 당장 오는 8월부터 계약이 만료된다. 1기 영어전문강사들의 재고용을 보장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법으로 4년 이상 재고용이 불가능하다는 단서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영어전문강사는 쓰고 재생 불가능한 휴지조각 인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제도로 인해 강사들만 노동권의 피해를 받는 것은 아니다. 바로 학생·교사들의 학습권 문제도 있다. 전교조 입장 중 일부 강사의 전문성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가 영어교육을 강화,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행 당시, 진보적인 교원단체나 시민, 학부모단체에서는 영어전문강사 제도는 말만 바뀐영어몰입교육이고 비판한 적이 있다. 학생들에게 영어라는 또 하나의 학습고통을 주며, 입시경쟁을 부추기는 비교육적인 교과학습구조를 만들기 때문이다. 비단 이 비판은 지금까지도 학교 안 밖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영어전문강사의 노동권과 학생·교사들의 학습권이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건 불가피한 상황일까? 물론 교육부가 영어전문강사 제도를 지속하거나 무기계약 등 고용안정 대책을 내놓았을 경우 상황은 좀 더 여유로워질 수 있다. 그러나 여유를 보는 건 영어전문강사들 뿐이다.


 한편으로 학생·교사들의 학습권에 대해서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이미 영어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도입취지가 무색하게 오히려 영어 사교육이 더욱 번창해 영어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영어중도탈락자 발생 등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게 돌이킬 수 없는 영어교육의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영어가 수능에 한 몫 하면서, 다른 과목은 ‘기타’과목으로 취급받고 있는 것 또한 또 다른 현실이다.


 이 제도에 문제제기하는 교사, 학생, 강사는 모두 학교구성원이다. 영어전문강사 제도 도입 초기부터 강사해고 문제와 영어몰입교육 문제가 맞물릴 것이라고 학교구성원들이 예상했다면, 갑작스럽게 일어난 지금의 상황을 대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점쳐본다. 서로 과거를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머리를 맞대어 보자는 얘기다. 물론 두 개의 인권이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때, 생각처럼 그 프레임을 뛰어넘어 사고하거나 권리를 옹호할 수 있는 논리들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모든 인권의 역사에서 보듯이 우리를 멈추게 했던 현실론을 뚫고, 권력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을 뛰어넘었을 때, 비로소 가려져 있던 권리에 다가설 수 있었다. 


 이것은 소통하는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고 힘이다. 지금이라도 영어전문강사와 학생, 교사 모든 학교구성원들의 소통을 통해 두려움 없이 함께 의견을 나누고 찾아가는 시도들이 필요하다.


박고형준<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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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비공개인가?


박근혜 정부에서는 ‘정부 3.0’ 정책을 밝히고 모든 공공기관이 유리병처럼 투명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 내용을 면면히 살펴보니 정부는 모든 공공기관의 공공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도 선언했다. 그리고 정보공개법을 개정해 정보공개청구가 없이도 정부 기록을 원본 그대로 공개하고,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모든 위·수탁 기관에 정보공개 대상기관을 만드는 작업도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정부와 발맞춰 서울시도 예산낭비신고센터를 개설해 서울시가 추진하는 사업 예산과 관련해 자체적으로 보유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며, 서울시가 서울시민들에게 자발적인 감시를 요구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정보공개를 보편화하려는 발가벗은 정부의 움직임은 칭찬해줘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제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진보교육을 앞세워 정책을 추진하는 광주광역시교육청 마저 공공기관의 정보를 감추려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시민단체인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은 시교육청에 ‘국외출장 및 연수에 관한 내역’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이에 대해 시교육청은 구체적인 설명 없이 ‘특정인의 이익 또는 불이익’이라는 이유로 해당정보를 비공개했다. 하지만 해당근거는 부동산투기, 매점매석 등의 경우만 해당되기 때문에 비공개 처분근거에 해당되지 않다는 건 너무 쉽게 밝혀졌다.


 정보공개청구 답변 중 가장 최악의 답변은 무작정 비공개나 부분 공개하는 사례다. 특히 국외연수에 대한 내역은 법적으로 공개해야 할 대상항목이지만, 온갖 편법을 사용해서 비공개를 하고 있는 기관들이 많다. 광주시도 마찬가지로 해외연수 내역 정보공개와 관련해 매 년마다 행·의정 감시단체인 ‘밝은 세상’에게 행정심판 및 소송을 맞아 끝끝내 공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처럼 충분히 기록되어 있을 만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은 업무상 핑계에 불과하다. 이는 정보공개법의 취지를 명백히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공공기관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다.


 해외연수란 무엇인가? 선진국 사례를 습득함으로써 지방자치의 발전을 이루려는 것이 본래의 취지며, 이에 사용된 비용은 공무원여비규정에 맞게 연수 당사자가 예산집행을 하고 다녀오면 얼마 사용했는지 보고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단지 공무원이 아닌 사인(私人)이 해외 연수를 다녀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국민의 세금으로 행해진 것이라면, 당해 사인의 성명은 익명으로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마땅히 일반 국민이 그 세부 내용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시교육청의 예산으로 공무원이 아닌 사인이 해외 연수를 다녀왔다면, 그 사인이 어떠한 이유로 해외 연수 혜택을 받게 되었는지, 수혜 대상을 선정하는 방법과 절차는 공정했는지, 그에 따른 경비 지출이 공익에 부합하는지 등에 대하여 일반 국민은 이를 마땅히 알 권리가 있다. 


 알 권리는 헌법에서 보장한 국민의 권리이며 인권의 항목이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주권자로서 국가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알 수 있어야 하며, 정보공개법에서도 국민에게 공공기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정보공개청구라는 행위를 통해 사람들은 국가에 주권자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이는 자연스럽게 국가가 독단적이고 폐쇄적으로 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견제장치가 된다. 또한 공공기록의 철저한 관리를 통해 국가 업무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담보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하지만 ‘광주광역시교육청 국외연수 내역 비공개 사례’처럼 우리는 알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알 권리를 터부시 하는 경향 탓도 있지만, 기록자체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니 알려줄 거리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록의 의무가 지켜지지 않으면 알 권리가 충족될 수 없다. 기록이 없이는 기록의 공개도 없고, 공개가 되지 않는데 알 권리가 지켜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번 광주광역시교육청의 정보공개 비공개처리에 대해 정보공개청구 단체에서 행정심판청구를 제기했다. 어떤 면에서는 진보교육감과 진보단체의 갈등으로 안 좋게 비춰질 수도 있지만, 꼭 승소해 시교육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만약 밝혀내지 못한다면, 오늘도 어디선가 누군가의 배를 불리기 위해 온갖 편법을 사용해 해외연수를 추진해 쥐도 새도 모르게 은폐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해외연수는 사실 관행적인 행사다. 해외연수를 관광으로 가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헌데, 이와 같은 현실을 알고 있지만 스스로 자백하지 못하는 것이 조금 씁쓸하다. 누가 정보를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 떳떳하게 정보를 밝힐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 이게 바로 정보공개의 선행과제이다.


박고형준<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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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쇠하고 있는 방사능 학교급식


만약 길을 가다가 바닥에 떨어져있는 멀쩡한 사과를 발견한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어떤 사람은 주어서 물에 잘 씻어 먹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먹어도 될지 의심을 하며 그냥 지나치거나 근처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다. 저마다 떨어진 사과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겠지만, 심리적으로 그 사과가 안전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공통된 지점일 것이다. 즉, 식품에 대한 안전함을 우선하지만 그 기준이 개개인마다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와 방사능 유출사고로 인해 해안수산물에 대한 불감증이 심각해진 가운데. 한국은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안전기준을 어떻게 세우고 있을까? 먼저 식약청에서 제시한 국내 방사능 기준을 살펴보면, 방사능 물질 중 인체에 해로운 세슘 성분이 370Bq이하이면 안전하다고 제시되어 있다. 반대로 후쿠시마 사태 이후, 뒤늦게 서야 일본은 100Bq로 기준을 내렸다. 아직까지도 한국정부는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기준을 사용하며 후진국임을 자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방사능 기준을 낮춘다고 해서 모든 식품이 안전하다고 말해주지는 않는다. 방사능은 몸에서 떠나지 않고 누적되기 때문에, 피폭된 성분량이 많아지면 건강위험이 증가된다. 즉 우리가 안전을 위해 관심 가져야 할 대목은 ‘식품 기준치’가 아니라, ‘신체에 누적된 방사능 수치’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부는 국민들의 피폭 성분량을 줄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마련하고 있지 않다. 결국 해결책은 개인이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것이 답이다. 특히 세포분열 속도가 빠르고 적은 양의 방사능에도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어린이 청소년에게는 음식에 대한 많은 숙고가 필요하다.


 최근 위와 같은 당위성을 근거로 녹색당, 환경단체에서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학교급식조례’제정 운동을 벌리고 있다. 일찌감치 일부 조례내용이 후퇴하긴 했지만 경기도와 서울시는 조례가 제정된 상황이며,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조례 제정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광주도 역시 조례 제정의 움직임이 있지만, 서로 고민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만 떠돌고 있다. 이유는 뭘까? 가장 큰 문제는 학교급식문제를 시행해야 할 광주광역시교육청이 사실상 조례 제정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이 광주시교육청에게 ‘방사능 안전학교급식조례’ 정책 제안을 했다. 하지만, 시교육청은 방사능 학교급식 검사를 외부기관을 통해 단 한 차례 실시했고, 각 급 학교에 방사능 안전지침 공문을 보냈을 뿐. 조례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시행계획(검사, 교육, 담당자, 정책계발)이나 예산들을 마련하겠다는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다만, 특정 외부기관을 통해 방사능 검사를 수시로 의뢰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해당기관 책임자가 원자력 필요성을 제기한 사람인만큼 방사능 식품검사에 대한 신뢰성을 갖기 힘든 상황이다.


 이러한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태도는 교육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조례안을 책임지고 통과시켜야 할 광주광역시의원들의 태도도 미온적이다. 일부의원은 학교급식 조례 내용에 ‘방사능’단어 하나만 삽입하는 수준에서 개정하려는 시도를 보이는가 하면, 방사능 안전학교급식 조례 제정을 관련단체와 소통없이 먼저 선점하려고 하는 의원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어린이와 청소년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사안인 만큼 이 정책이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판단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이미 2년 반이나 되는 시간동안 아무런 대책 없이 일본산 수산물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급식에 제공되었다. 어쩌면 대다수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체내에 방사능이 누적되어 있을지 모를 상황이다. 그만큼 사안이 급박하고 하루 빨리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시기이다. 혹시 지금도 안전기준치를 따지고, 제도적 실현여부를 파악하고, 예산부족을 얘기하며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학교급식조례’를 주저하고 있는가? 불이 났을 때는 불을 꺼야 한다. 불을 앞에 두고 불이 왜 났는지를 따지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관계자들에게 바란다.


박고형준<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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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꼬집기]대학도서관을 시민들의 품으로

도서관 출입 막는 바코드 인식기 대학 독점 지식 사회 환원해야


 요즘 신축 학교들을 살펴보면, 학생들의 등·학교 길의 상징인 ‘담벼락’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학교들은 담벼락 대신 화단을 만들거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몇몇 대학 역시 담벼락을 허문 곳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학교 구조의 담벼락을 넘어, 최근 서울대학교는 해당학교 강의를 시민들에게 인터넷으로 무료공개하며 지식의 담벼락을 허물고 있다. 이처럼 학교의 닫힌 이미지를 깨기 위해 담을 허물어 학교를 개방하는 계기를 만든 점은 충분히 칭찬할만한 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껍데기만 열어 두고, 알맹이는 손도 대지 못하는 상황이 학교의 현실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대학도서관의 개방’문제다.


 요즘 대학도서관 출입구에는 바코드 인식기가 떡하니 서있다. 이 기계는 이용카드를 소지한 사람 이외의 출입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이용카드는 대게 학교구성원들이 별도로 소지하고 있거나, 학생증이나 교직원·교원 신분증으로 이용카드를 대처한다. 즉, 해당학교 구성원이 아닌 사람들에게 바코드 인식기는 커다란 벽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설령 시민들이 이용카드를 발급받을지언정, 도서 대출 및 열람실 이용이 학교구성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하면서 이중차별을 겪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해당 학교에 어떤 장서가 몇 권 있는지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것조차 제한하고 있을 정도로, 대학도서관의 폐쇄성과 그로 인한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시민의 출입을 막는 그 벽 너머에는 보통의 시·구립도서관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많은 수의 훌륭한 장서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그런데 대학 본부는 지자체 공공도서관의 수십 배에 달하는 지식과 정보를 대학구성원에게만 배타적으로 보장한다. 그 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에 비해 수십 배 이상의 정보를 사적으로 독점하는 것은 너무나도 불공평한 일이다. 특히 요즘처럼 정보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에 정보 독점은 대학에 들어간 사람들과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불평등의 골을 더욱 깊게 팔 우려가 있다. 


 최근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은 광주지역 소재 17개 대학교를 대상으로 ‘도서관 이용에 관한 정보공개청구’를 실시했다. 정보공개청구 답변을 종합해 본 결과, 여러 대학들이 시민들에게 대학도서관을 개방하지 않고 있었다. 열람실의 경우 17개 중 6개 대학만 시민들의 이용이 가능했고, 스터디실이 있는 12개 대학 중 3개 대학만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었다. 자료실의 경우 8개 학교만 시민들의 도서열람 및 대출이 가능했으며, 대출기간·권수·이용시간은 학교 구성원보다 시민들의 제약이 많이 따랐다. 또, 시민들에게만 예치금 제도를 적용하므로 인해 접근하기 번거롭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처럼 대학도서관을 대학 내부의 주체들만 이용하는 것은 여러 문제점이 있다. 먼저, 시민 혹은 가까운 지역주민들이 학습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 여러 법률에 나온 것처럼 교육은 국민 누구나 받아야 할 권리이기 때문에 공공 교육기관에서는 함부로 시민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 그리고 사립대학을 포함한 모든 대학은 공공성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국민 누구라면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대학도서관이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주체들이 이용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주장은 옳지 않다. 대학도서관은 국가와 지자체의 직접적 재정지원 등 사회적 비용이 투입됐다. 뿐만 아니라, 졸업생들의 유·무형의 기여와 대학 안팎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회적 노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국 국가세금을 내는 누구나 대학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도서관을 걸어 잠그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완전 개방되었을 경우 도난사건이 빈번하거나 청소년들이 소란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이유에서라면 직원을 더 많이 고용해서 문제를 사전에 막을 수 있도록 운영하도록 해야지 않을까? 결국 이 사유는 청소년들에 대한 역차별이자, 대학교 내부 노동인력을 최대한 줄이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있다. 이런 전자시스템 도입으로 인해 언제 인력축소, 정리해고가 될지 모를 일이다. 고속도로 하이패스나 승차권(각종 티켓) 예매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인력을 줄인 대표적인 사례처럼 말이다. 노동운동단체도 대학도서관 개방 문제에 관심을 놓쳐서는 안 되는 대목이다.


 이처럼 현재 대학도서관의 개방은 많은 현실론에 부딪치고 있다. 하지만 대학의 본질만 놓고 보면 대학도서관 개방의 의미는 더욱 뚜렷해진다. 대학은 출세를 위한 학벌 재생산 공장으로 여기는 왜곡된 인식이 아닌, 사회적으로 필요한 지식을 생산하고 그것을 사회로 환원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은 독점적으로 확보해왔던 지식을 사회에 환원해야 하며, 대학도서관의 장서를 시민들과 공유해야 하고, 대학도서관은 이를 위한 제도적·실질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대학도서관 시민개방은 단순히 대학의 여유 공간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는 시혜적인 차원이 아니다. 이제까지 만들어내지 못했던 대학의 본래적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정보독점이 학벌,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고, ‘교육문화 공간’이어야 할 도서관의 기능을 복원하려는 것이다. 즉, 대학도서관 개방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온 대학을 향한 문제제기인 것이다.


박고형준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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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간의 관심인 세월호 침몰사고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수학여행을 떠나던 학생들이 대거 실종하거나 사망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절망과 상실감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가라앉는 배를 망연자실 바라보면서 국민들의 슬픔과 분노 역시 심장 저 밑바닥까지 차 들어가 사회 전반의 우울증을 가져오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생존자를 발견하기는커녕 국정 책임을 방관하거나 민간에게 문제를 떠넘기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결국 국민들의 거센 분노에 못 이겨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단순히 국정책임자가 그만뒀다고 이 사건이 쉽게 수그러들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학여행 금지가 대안인가?


 물론 국가 차원에서 아무 것도 안했다고 볼 수는 없다. 정부가 내세운 여러 대책들 예로 지난 21일 교육당국이 제시한 ‘1학기 수학여행 전면 금지’가 있다. 이번 수학여행 금지내용은 세월호 침몰사고를 결정적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교육당국 차원의 안전대책을 논한 임시정책으로 유일하다. 하지만 교육당국이 내세운 이 대책이 근본적인 이 사건의 해결책인지는 따져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안전을 위한 가장 적극적인 태도는 상호협력, 현장과 상황에 대한 이해, 면밀한 소통이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수학여행 떠날시 징계한다는 내용을 포함하며 학교주체들을 겁박하고 있다. 이처럼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상태는 안전도모에 있어 주도성, 민감성, 적극성을 저해하여 도리어 대처능력이 줄어들게 할 것이 우려된다. 학교는 교육활동을 도모하는 터전이자 책임소재지이다. 즉, 이러한 사건이 터질수록 학교 자체적으로 능동적이게 대처할 수 있는 안전대책과 프로그램을 계발하는 것이 책무일 것이다.


 현재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로 수학여행을 진단하는 핵심은 ‘단체여행’이다. 대게 수학여행은 한 학년 전체가 참여하는 다수의 형태였다. 그러므로 인해 교사와 학생의 생활공간이 분리돼 크고 작은 생활문제가 일어났고, 프로그램의 차질없이 진행하기 위해 무리한 관광버스의 꼬리물기 운행을 암묵적으로 요구했다. 또한 수학여행 저녁엔 교사들의 은밀한 단합대회로 변하고, 학생들 또한 나름대로 일탈의 현장으로 변하는 등 수학여행의 본질은 날로 훼손되며 관행화되어 가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 차원에서 바라볼 때 이제 수학여행은 소규모 테마수학여행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여행지 선정부터 학생들이 참여해 직접 결정하고, 각 학급이 주제를 정하는 쪽으로 수학여행 방식이 변해야 한다. 청소년이 수련활동을 포함한 각종 청소년활동을 기획하고 참여할 권리는 행복추구권에 내포된 일반적 행동 자유권으로서 자유권적 기본권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당국 정책으로 수학여행을 제한할 경우 헌법이 규정한 기본권 제한의 일반원칙을 준수하여야 마땅하다.


 어른들의 말만 믿고 대기했다가 수많은 인명피해 당한 학생들을 생각해보자. 학생들을 존엄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복종만 가르쳤던, 교육적 사회적 풍토가 나은 처참한 결과를 다시 한 번 돌이켜보게 된다. 그리고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마련된 수학여행 금지 정책에 대해서도 다시금 되짚어보자. 많은 폐해가 예상되는 만큼, 지금이라도 즉각 수학여행 금지 조치를 중단하고 학생, 교사, 학부모 등 학교현장과 대화의 장부터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세월호 피해자들의 고통과 사회 구성원이 받은 상처에 함께 하는 사회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다. 이처럼 학교현장은 세월호 침몰사고에 둔감하다. 계기수업을 하지는 못할망정, 교육당국은 허위사실 유포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학교현장의 침착함을 권고한다. 결국 도덕 교육은 받지만, 공감 교육을 경험하지 못한 학생들은 이 사태에 대해 큰 감정적 흔들림이 없을지도 모른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그렇게 공감 능력을 잃은 학생들이 우리의 미래세대 인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구조를 기다리는 일도, 남은 상태를 극복하는 과정도, 문제 해결과 책임 요구 등 교육주체들이 힘을 모으는 공감 과정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박고형준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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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하자마자 정치공방이 뜨겁다. 선거 초반부터 새정치연합이 독자 창당을 준비하면서 양당 선거체제가 깨지는가 싶더니, 최근 합당결정에 의해 도로 민주당이 되면서 다시 양당 경쟁으로 선거분위기가 반전됐다. 정치는 양적인 투표로 결정되는 것이고, 득표를 많이 받기 위해서는 특정정당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야합은 한국정치에 익숙한 풍토로 자리잡고 있다. 결국 이런 정치문화가 세속되다 보니, 광주에서는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공천 받아서 홍보물에만 실려도 당선된다는 말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즉, 어느 출신이란 것은 선거에 유·불리함을 가릴 수 있는 절대적 수단이다.


 이처럼 한국정치의 경쟁 시스템은 개인의 능력에 대한 공정한 평가이기보다는 정당에 의해 배타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또 다른 배타적 평가 잣대가 있는데 바로 ‘출신학교’이다. 학벌을 통한 승자 독식체제 또한 그 대물림 현상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음을 자랑하고 있다. 출신학교가 국민들의 드넓은 의식까지 깊은 영향을 주며 정치적 판단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 후보 중 36%가 SKY(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이었다. 300명 중 무려 109명이며, 109명 중 62명은 서울대 출신이다. 이에 반해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대 최종학력 출신은 16%뿐이었다(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조사결과). 비단 이 현상은 국회의원 선거에만 머물지 않고 지방선거, 대통령 선거에도 비슷한 양상을 나타나고 있다.


 결과를 보면 느끼듯 좌파-우파, 보수-진보를 가릴 것 없이 주요 정당에서 후보로 나온 사람들의 다수가 서울대 등 특정대학 출신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며, 이는 한국정치에서 특정대학의 학벌이 권력의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마디로 특정대학 출신이 이 나라의 성골인 셈이다. 하지만, 정치적 선택의 기준은 후보자의 정책, 양심, 소신 등 가치가 중심이어야지, 특정정당과 출신학교를 통해 판단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대선에 김순자 후보는 자기소개에 출신학교를 기재하지 않았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구)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 7명 전원이 출신학교를 기재하지 않았다. 홍세화, 박노자 등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지식인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후보들의 출신학교를 기재하지 않은 것은, 출신학교 기재가 진보정당이 지향하는 학벌 철폐라는 방향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의 이런 목소리는 지금도 변함없다. 이번 지방선거에만 보더라도 노동당 광주시당에서는 시장후보 뿐만 아니라, 당내 모든 후보가 출신학교를 미기재하여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녹색당 등 진보정당에서도 일부 예비후보들이 출신학교를 기재하지 않는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이런 출신학교 미기재 운동은 단순한 정치문화를 극복하기 위한 운동만은 아니다. 청년들 또한 ‘구직이력서의 출신학교 기재’로 인해 불필요한 편견과 차별로 구직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이들에게 취업기회를 확대 제공하고, 경제력이 부족한 소수자들의 구직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구직이력서에도 출신학교 미기재가 적극 권장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로 최근 서울시에서는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신학교를 적지 않는 차별 없는 표준 이력서 도입을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이력서는 개인능력과 무관한 차별요소를 제거하고 직무중심으로 공정한 채용을 진행하고 있으며, 직업역량과 무관한 과도한 스펙 쌓기를 조장하는 요소도 삭제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 속에서도 대게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이름 다음으로 ‘어느 학교 다니세요?’라는 질문을 자주 던진다. 관습적인 이 질문을 누구도 피해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진보정당과 서울시의 의미 있는 출신학교 미기재의 열풍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수사람들의 인식이 쉽게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된다. 하지만 변화와 희망을 기대해보자. 2010년 김예슬의 자퇴서를 되새기며….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대학생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박고형준<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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