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광주드림에 강제학습 논란과 관련 찬·반 입장의 기고가 이어지면서 이 문제에 대한 지역민의 관심이 한층 뜨거워졌다. 이번 기고 릴레이서 보듯 지역에서 진보와 보수, 중도 등 정치적 경계를 두지 않고, 지역민들이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도록 지면을 운용하는 열린 언론이 있다는 게 참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특히, 갈등과 논란이 생기면 기관의 입장은 수그러들거나 피해가기 마련인데, 개인적인 글이지만 기관 종사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는 게 필자의 주변 평이다.
하지만, 김옥희 광주시교육청 연구원의 기고는 독자들이 오해할 만한 점을 몇 가지 던졌다. 이에 반박하는 이민철 님이 기고에서 지적했다시피, 시민단체는 광주시교육청에게 강제학습을 하지 않도록 대책을 요구한 것이지, 자율학습을 폐지하라고 주장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옥희 님은 마치 시민단체가 자율학습을 폐지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던진 것처럼 기고했고, 자율학습 폐지론을 두고 교육주체들의 갈등을 조장했다.
“강제학습 반대지 자율학습 폐지 아냐”
물론 강제학습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율학습이 폐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사람들도 일부 있다. 청소년인권단체인 아수나로에서도 학습시간에 대해 사회적 규제가 필요하다며 하루 6시간을 기준으로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이유는 학생들이 부담스러운 학습량에 허덕이거나, 무의미하게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현실을 개선해보자는 것이다. 아침·오후·저녁시간을 돌려받고 충분한 여가 시간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학생뿐 만 아니라, 기성세대들에게도 주워져야 할 너무 당연한 권리이다.
한편 이민철 님은 기고 제목으로 ‘강제학습이 강제노동과 같다’는 비유를 했다. 이는 학습이나 노동이 강제적으로 ‘장시간 동안 한다’는 함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열악한 한국의 노동시장도 한국의 교육환경처럼 하루 반나절 동안 노동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근로기준법상으로도 1일 근로시간은 8시간, 1주일 근로시간은 40시간 이상을 못하게 되어 있는데, 이러한 법적 배경에는 노동자 개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보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여름방학 중 학생들의 행복지수는 어떠할까? 광주시교육청의 정규수업 이외 교육활동 지침을 살펴보면, 고 1·2·3학년의 경우 보충수업은 하루 5교시 제한, 고 3학년의 경우 밤 10시(고1·2학년의 경우 6시)까지 자율학습을 할 수 있게 여지를 마련했다. 사교육비를 낮추기 위한 공익형 대체 학습의 성격이 강한 만큼 학생들의 자율적인 선택에 의해서 이뤄져야 하지만, 실제로 대다수의 학생들이 자신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방학 중 학교에 머무르고 있다. 실상 보충수업 형태도 학기 중처럼 교과중심 시간표대로 운영되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방학일수는 고작 3~4일 정도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식의 방학 운영은 그 자체로 교육청 지침 위반일뿐 아니라, 학생의 자율적 선택권이 무시된 채 교사의 강압 또는 관리자 지시에 의해 방학 중 자율학습이 강행되고 있지 않은지 의심을 키우고 있다. 이른바 진보교육감 체제 안에서 조차 학력지상주의에 편승해 노골적으로 장시간 정규수업 이외의 교육활동 지침을 내리고, 강제·불법마저도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다.
정녕, 학생들 건강을 지키자며 9시 등교를 추진하던 광주시교육청의 태도는 방학 중 강제학습 시행과 별개란 말인가?
“찬성이든, 반대든 표출이 생산적”
올해 초부터 시민단체는 학기 중 강제야간학습 뿐만 아니라, 주말 강제학습이나 동아리 형태의 심화반 운영 등 학교들의 파행적인 학습사례들을 광주시교육청에게 고발한 바 있다. 그런데, 현재 시교육청이 파행사례를 조사하거나 대책을 마련하는 수준을 보면 손을 놓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명문대 입학 성과를 자랑으로 삼는 왜곡된 학력주의를 위해 파행사례들을 암묵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들 지경이다.
다행이도 광주드림 기고 릴레이 이후, 광주시교육청이 이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교육청 관리자들이 강제학습 반대 캠페인 현장에 찾아오기도 하고, 관계부서와 시민단체 간의 허심탄회한 간담회도 가졌다. 설령 시교육청의 최근 움직임이 언론을 의식한 반응이더라도 이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논란과 참여, 갈등이 있을수록, 강제학습 반대 운동이 갖고 있는 의미와 실천력은 더욱 값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말인데 김옥희 님의 글처럼 강제학습 반대운동에 대해 방관자로 있기보다, 강제학습 반대(학습권 보장) 운동을 비판하거나 협력해주면 좋겠다.
인권의 무지는 ‘인권을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권을 방기하는 사람’이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강제학습 반대운동의 반응을 보여주길 바란다.
교육이 출세나 신분 상승을 위한 도구가 아니란 점은 누구나 인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란 이유로 대다수 사람들이 현 교육제도를 경쟁수단의 도구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만큼 취업의 관문이 좁아지기도 했고, 출신학교명에 따라서 인생의 성공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에 교육에서만큼은 누구라도 이중의 잣대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초·중·고, 대학교를 나와 취업에 이르기까지의 교육과정에 수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그뿐 아니라, 문제풀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각종 자격시험, 사교육을 받으며 온전히 꿈꿔야 할 이상마저 장시간 보류하기도 한다. 한국의 교육은 시대적 배경만 바뀌었지 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예전보다 더 한 폭력과 경쟁, 차별, 사회적 양극화를 재연하며 한 개인의 이상을 교육의 논리로 지배하고 있다. 그러한 지배현상 중에 하나가 고등학교 자율학습이다.
학습 선택권, 학교도 교육청도 의지없음
자율학습은 말 그대로 자율적으로 공부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학생인권조례의 풍요속에 살고 있다는 요즘 학생들 역시 여전히 강제적 학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광주지역 강제학습 실태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조기등교, 강압적인 방과 후 학습과 야간자율학습, 주말학습까지 진행하며 강제학습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광주시교육청에서는 학습을 선택할 권리를 내세우며 선택권을 보장하도록 모든 학교에게 강권하고 있다고 하지만 학교 측에선 이를 이행할 의지가 없어 보이며, 시교육청 역시 암묵적으로 대학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며 이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학교 기숙사 내에서도 자율학습을 장시간 강압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최근 광주지역 고등학교 기숙사 운영규정 조사에 따르면, 본래 기숙사는 원거리 학생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 거동이 불편한 학생 등 사회적 소수자를 위해 지원조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교 기숙사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 위주의 선발을 통해 대학입시의 도구로서 운영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또한 휴대폰 사용 제한이나 외박·외출 통제, 이성교제 금지 등 사생활을 제한하는 경우도 있어, 기숙사가 ‘치외 법권’ 지역으로 느껴질 정도로 인권 침해의 문제가 심각했다.
그 누구도 학생들에게 학습을 강요하거나 지배할 권리는 없다.
현행 교육기본법 제8조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은 초등·중등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의 본래 취지는 국가가 학교 교육과정을 통제하거나 국민들에게 교육 의무를 부과하는 대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의무교육 경비를 부담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자율학습이나 기숙사 생활은 수익자 부담원칙을 하고 있다. 즉, 국가나 지자체가 학생들의 자율학습을 통제하거나 기숙사 교육의무를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의 교육·인권에 대한 감각 수준은?
사실 우리가 이러한 의미와 강제학습, 기숙사 파행운영이 되고 있는 걸 모르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수십 년 간 고질적인 한국의 교육제도와 학교의 문화로서 경험해왔고, 이런 문제는 매년 되풀이되어 제기되지만 그 누구도 해결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현 교육제도의 탓으로 돌릴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우리의 숨은 편견이 문제의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우리의 고정관념은 학생을 편견과 차별의 대상으로 내몰고 있다. 경쟁을 피해 다양성을 찾아 학교를 벗어나 다른 배움의 길을 택한 이들에겐 학교부적응자의 낙인을, 대학입시를 거부하는 학생에겐 비현실적이란 이유로 사회부적응자의 낙인을, 기존 교육을 거부하고 대안학교를 선택한 학생들은 단순히 돈 많은 부모의 자녀로 치부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결국 우리가 가진 ‘학생’에 대한 고정관념과 싸워야 하는 것이 해결의 실마리이지만, 이러한 관념이 만들어진 긴 시간만큼 뿌리도 깊어 그 편견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논쟁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사회가 점점 경쟁과 성장의 구도로 변해가면서 당연시되는 사회적 통제와 억압의 장치에 우리는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다. 참된 배움이 사라지는 학교, 자율이 없는 자율학습, 관심과 보호가 변질된 기숙사는 우리교육의 현주소일 뿐만 아니라 교육과 인권에 대한 우리들의 딱딱해져버린 감각임을 직시하자.
방학 중 진행되는 자율학습 문제가 인권침해 논란으로 지역사회의 이슈로 떠오르는가 싶더니,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뜨거웠던 논쟁의 분위기가 금세 수면 아래로 잦아들고 있다. 아마 새 학기가 시작돼 이슈의 흐름을 놓친 탓일 수도 있고, 그간 대수롭지 않게 대해왔던 우리의 인권감수성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율학습 문제는 지난 수십 년 간 쌓여온 한국교육 문제의 단면이고, 그 인권침해 정도의 수위가 심각해지고 있어,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되는 과제로 여겨진다.
광주시교육청 강제학습 사실상 방치
특히 학교 측에서 자율학습을 편법으로 운영하는 방식이 날로 교묘해지면서 그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학생의 동의서 없이 강제로 시키는 건 다반사이고, 신청서를 나눠주고 강제로 참여하게끔 겁박하는 교사도 있으며, 부모님의 서명까지 요구하는 학교도 있다. 또한, 이번 시민단체의 조사에서도 드러났지만 명절연휴에 등교해 학습하는 경우, 예체능 진로를 두고 있는데 내신 성적의 불이익을 준다며 겁박하는 경우도 있으며, 기숙사생은 취침하기 전까지 무조건 학습해야 하는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이상의 강제학습을 통한 부당함을 겪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강제학습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지도감독기관의 지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광주시교육청의 경우, 학생들의 인권을 중시하며 각급 학교에게 선택권을 보장하라고 매년 지침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침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학교장들이 다수 있고, 이를 동조하는 일부 학부모나 교사들의 의견으로 인해 자율학습이 버젓이 강제학습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교육청의 지침은 허사로 돌아가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식의 해명만 되풀이 되고 있다.
이렇듯 선택권의 보장이 안됨에도 불구하고 광주시교육청이 강제학습을 사실상 방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 사례와 학교의 현실을 토대로 본다면 광주시교육청이 자율학습을 개선할 의지가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왜냐면 의지가 있다면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고 개선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광주시교육청이 이렇게 자율학습을 방치하며 지속하고자 하는 진짜 속셈은 무엇일까.
“사교육비 절감·불안 해소위해서”라고…
지난 2월27일 자율학습 금지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관계자와 광주시교육청 자율학습 담당 공무원과의 면담 자리에서 그 속셈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담당공무원은 학습공간이 필요한 소수 학생들의 배려를 위해 혹은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문제나 불안을 최소하기 위해 자율학습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상당한 모순이 담겨있다. 학생들의 건강권을 위해 9시 등교를 추진하고 있으면서, 자율학습 추진은 건강권 뿐만 아니라 학생자치활동의 확장이나 자유의 신장에 대한 논의를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광주시교육청이 일부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을 제공할 의무와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학생에게 최선의 교육을 제공할 유일한 기관인지는 의문이 든다. 교육활동 제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제는 학생들이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싶은 욕망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율학습을 선택할 자유를 주는 것보다, 다른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하고, 이것이 진정한 자율의 의미라고 여겨진다.
이제껏 자율학습은 학생이 아닌 기성인들의 욕구에 부합하는 학교 문화로 인식되어 왔으며, 결국 지금처럼 자율이란 미명 하에 자유를 통제해왔다. 지금이라도 학생들에게 온전히 시간을 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사회의 변화, 발전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며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많은 광주지역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조직을 떠나거나 장기 휴식을 취하는 일이 최근 들어 많아지고 있다. 세대를 이어갈 젊은 활동가들이 시민운동계를 떠나가고 있어 비슷한 동년배 활동가로서 마음이 아프다. 한 친구는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몸이 좋지 않아 그만 두었고, 다른 한 친구는 복귀 이후 열심히 활동하나 싶더니 돌연 사직했다. 또 구속을 강요하는 조직 보다는 자유로운 활동을 원한다며 그만둔 친구까지…. 각자 다양한 사연들로 제 역할을 찾지 못하고 차근차근 시민단체를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갈수록 시민운동이 노령화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위기상황에서, 그나마 기대를 갖고 버티고 있던 청년활동가들 마저 그만두니, 지금처럼 젊은 시민운동가의 수급이 절실할 때가 없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시민단체 활동에 발을 들이기도 힘들다.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과 성찰, 토론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하루 이틀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월급도 변변치 않은데 평소에 사회적인 문제의식과 지식, 쪽팔림을 감수하고 다양한 행동까지 하라고 하니, 단순한 직장의 개념으로 지망한 사람들에겐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청년활동가들 그만두는 시민사회
즉 시민운동가는 자기 삶의 지향으로서 만들어가는 충분한 과정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만한 투철한 희생과 봉사정신이 있기에 직업으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투철한 희생만을 강요할 수는 없다. 물론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이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그렇다고 자기 인생의 많은 부분을 쪼개가면서 일을 하기엔 그 댓가가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로 많은 시민운동가들이 그만두는 이유 중 하나가 경제적인 부분임을 무시할 수 없다. 예컨대 광주의 모 여성단체는 최저임금도 안주며 법정근로시간을 지키라 하고, 또 다른 광주의 모 청소년단체는 야근수당도 안주면서 청소년과 함께 하는 저녁 프로그램을 진행하길 강요한다.
물론 대다수 우리가 알고 있는 시민단체는 가난하기 때문에 각종 수당과 임금을 줄 여유가 많지 않다. 그렇다하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휴일을 마련해주거나, 근무시간을 줄이는 방법은 고려하면 안 되는 것인가? 급속도로 진화하는 사회에 발맞춰 대응해야 하는 많은 사회문제들이 존재하지만 그것들을 일일이 쫓아가며 대응하기엔 시민운동 세력이 많이 위축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결국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제대로 해결하는 게 시급할 것인데, 시민단체들은 무엇에 목말라 있는지 규모에 넘치는 많은 사업들을 따와 성과를 돋보이려 하고 있다.
그렇다고 사업을 집행하는 노력만큼, 현안문제에 대해 거세게 요구하거나 끈질기게 문제해결에 전념하는 것도 아니다. 대다수 광주 시민단체들이 지자체 보조금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지자체에 대한 비판이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며, 때문에 팔이 안으로 굽고 있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시민단체가 해야 할 비판과 대안을 내세우지 않으므로 인해 시민단체의 정체성은 흐려지고, 사업계획서 작성과 결과보고서, 정산서 제출 등 잡다한 행정업무에만 집중하다 보니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 곳에 일하는 활동가들은 처음 시민단체를 들어오게 된 목적과 개인적 삶의 지향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고, 집중된 행정업무, 과도한 근무조건 등으로 인해 지쳐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활동가들 살뜰히 살피고 조직 점검할 때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하지 않는 조직의 태도이다. 특히 시민단체장들은 지금의 세대활동가처럼 시민운동을 경험했거나 지원해왔던 선배들인데, 그런 과거들은 잊고 자기 명분과 조직의 명예를 위해서만 일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솔직히 말해, 얼마나 사업비를 가져오는지를 통해 조직의 성과를 판단하고, 어떻게 하면 공공기관에 제휴하거나 입성할까 협상하며, 행사에 머리 수 채우고 자기 이름 알리는 데 사활을 거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면 수평적인 시민단체의 수장이기 보다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조직의 우두머리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는 사이, 이미 조직은 피폐해지고 활동가들은 비전도 못 찾고 시간과 생계에 쪼들리며 건강마저도 잃는 것이다.
최근 광주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5·18기념재단에서 조직개편을 위해 무기계약을 앞둔 계약직 사원을 해고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역량있는 청년활동가들을 붙잡아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조직 구성원들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대표자의 권한을 이용해 일할 기회마저 빼앗아버린 단체의 결정이 안타깝기만 하다. 언제까지 그 놈의 조직타령만 할 것인가? 이미 이빨 다 뽑히고 잇몸만 남은 광주 시민단체들이 허다하고, 많은 활동가들이 불안하고, 답답한 시민단체를 떠나거나 주변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이 2015년을 새롭게 계획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시기인 만큼, 조직의 사업규모·성과를 따져가며 다양한 일들을 진행해 가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더 늦기 전에 함께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살뜰히 살피고, 조직과 개인의 삶의 지향을 다시 한 번 점검하면서 함께 나아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 본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광주 시민단체 대표들, 활동가들과의 진심어린 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엎치락뒤치락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경기로 국민들이 열광하고 있는 지금, 롯데자이언츠의 CCTV 감시 문제가 프로야구계의 또 다른 이슈로 자리 잡고 있다. 구단 측이 원정숙소 CCTV로 선수들의 사생활을 침해한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며 논란이 된 것이다. 특히 사장이 직접 지시를 내려 ‘어느 선수가 누구와 함께 나가고 언제 들어왔는지’ 등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했다는 데, 그 수준이 아주 국정원 못지않아 충격적이다.
개인정보 수집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갈수록 문제가 불거지자 불법사찰이라는 오명 하에 롯데자이언츠 구단은 사장과 단장의 사퇴를 단행했다. 하지만 야구팬들의 분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프런트(전 직원)의 사퇴를 요구하며, 집단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국가인권위원회까지 구단을 상대로 직권조사에 들어갔다. 개인정보침해 시정명령이 내려질 것으로 보여 구단에서 자체적인 해결점을 찾지 않는 이상 쉽게 문제가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롯데자이언츠 사건은 개인정보수집 문제에 대한 높은 파장을 만들어냈지만, 사실 이런 사례는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올해 초 주요 카드사의 1억4000만 건의 개인정보 유출로 인해 국민들이 큰 피해 겪어 집단적으로 카드사를 탈퇴했고, 대형메신저인 카카오톡도 검찰·경찰이 감청한 사실이 드러나자 외국계메신저인 텔레그램으로 망명하는 등 일상적으로 개인정보가 침해당하고 있거나 새나가고 있다는 것은 국민 대다수가 경험하거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특히 개인정보 중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정보수집 및 활용돼야 할 CCTV마저 이번 사건처럼 일상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게 현실로 확인됐는데, 이는 탈퇴나 망명 등 도피할 방법이 없어 더 막막하다.
2014년 6월 안전행정부의 자료에 따르면, 시·도 자치단체가 공개된 장소에 직접 설치한 CCTV 대수는 2013년 무려 56만5723대(광주 5165대)라고 한다. 민간의 영역에서 설치한 CCTV 대수를 포함한다면 수백만 대의 CCTV가 국민들을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 거주한 국민들은 CCTV의 감시망에 갇혀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탈퇴·망명이 능사 아냐…경각심 키우자
물론 국가와 민간을 막론하고,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CCTV 설치 자체를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법률에 제시된 범죄 및 근로자의 안전사고 예방 등 제한된 요건이 아닌, 권력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활용을 일삼는다면 CCTV 설치는 재론의 여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광주시교육청 감사실에서 벌어진 CCTV 정보 수집 횡포 역시 이같은 관점에서 되새겨볼 일이다. 광주시교육청 감사실은 모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한 감사에서 교직원들의 시간외 근무실태를 대대적으로 점검했다. 그런데 실태조사 방편으로 교직원들의 동의도 없이 학교 측에 CCTV 자료를 요구한 게 문제가 됐다. 다행이 문제제기를 통해, 향후 감사실에서 교사들의 근무 감시를 위해 CCTV 정보 수집을 하지 않기로 했고, 광주시교육청은 지금까지 없었던 CCTV 운영지침을 별도로 만들기로 하고 사태가 일단락 됐다.
개인정보의 수집과 활용이 난무한 시대에서 내 개인정보가 어떠한 피해를 보았는지 살펴보고 탈퇴·망명 등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필요도 있지만, CCTV처럼 아무렇지도 않고 내 개인정보의 노출을 허락한다면 그 침해는 사회 곳곳에서 이뤄질 것이다. 내 집, 회사 앞에 설치된 CCTV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겠다.
<광주드림 칼럼_ 광주학생인권조례 3년…학교현장은?> 박고형준_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상임활동가
2011년 광주 초·중·고등학생들의 최대 화두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이었다. 학생들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구호의 수준을 넘어 학생인권을 사회적 규범으로 정하고, 이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조례로 만든 것이다. 제정 과정만은 순탄치 않았다. 광주가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처음으로 시도한 도시였고, 조례 제정에 걸린 시간이 기나긴 만큼 사회적인 논란과 교육주체 간의 갈등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민선1기로 뽑힌 장휘국 교육감이 공약실현의 의지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했고, 조례가 시행된 지 벌써 3년이 넘어섰다. 과연 지난 지금 학교현장은 얼마만큼 학생인권이 안착화 되었고, 학생들의 행복지수는 얼마나 높아졌을까?
학교밖에서 보면 후한 평가
제정과정에서 갈등이 많았던 만큼 그 실현과정도 많은 시련과 아픔이 있었을 것이라 걱정이 들지만, 길거리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인권은 날로 진화해 가는 듯 보인다. 가지각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학생들도 보이고, 교복도 자기 개성에 맞춰 입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등굣길 교문 앞에서 진행하는 용의복장 단속은 아예 사라진 듯 보인다. 이처럼 학교 밖에서 보이는 학생들의 모습은 학생인권이 어느 정도 보장받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으며, 낙관적이지 못한 상황 속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박수쳐줘야 할 대목이다.
그렇다고 외부인이 보는 시선이 광주학생인권을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학생들이 많은 시간을 머물고 있는 곳이 학교 안이고, 그 내부 실태가 어떠한지 외부인이 쉽게 열람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교는 ‘최근 일고 있는 군대 내 인권문제’와 유사한 점들이 많기에 그 실태를 파악하기가 정말로 힘이 든다. △관리자는 학교 안의 인권 문제를 외부로 노출시키지 않는다. △인권문제가 발생할시 당사자 간의 합의를 유도하거나, 더 강한 폭력과 겁박을 이용해 문제를 없던 일처럼 진화시킨다. △외부에서 문제를 개입하려들거나 언론에서 보도될 시 가해당사자는 뒤로 숨고 상급기관은 뒤늦게서야 관리·감독한다.
이러한 공통점을 두고 봤을 때, 학교 안에서 발생한 학생인권 침해사건도 뿌리 깊은 문화로서 잠식되어 있을 가능성이 많은데, 최근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에서 대응한 사건들이 이러한 가능성을 증명해주고 있다. 모 고등학교에서는 중앙현관과 계단의 학생 출입을 금지하며 이동권을 침해했으며, 모 중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성적을 기준으로 자리를 배치하며 성적에 따른 차별을 했다. 특히 중앙현관과 계단의 학생출입금지는 자체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일부학교에서만 일어나는 인권침해가 아니어 그 충격이 크다.
“있어서는 안 될 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과거부터 지속돼 온 뿌리 깊은 적폐다. 국가 혁신 차원에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육군 28사단에서 발생한 가혹행위 사망사건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이다. 정권의 비판과 낮아져가는 본인의 인지도를 극복하기 위해 한 말이지만, 시교육청도 이런 비판을 피해가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인권침해 문제를 조사하고 사전예방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데 광주시교육청이 학생인권에 관한 예산과 조사권, 직무담당자를 제대로 배치시켰는지는 의심이 간다. 예산을 둘째 치고, 학생인권조례에 따라 학생인권침해 구제업무 담당자는 배정해뒀지만 고작 2명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 1명은 고용이 불안한 계약직이기 때문에 학생인권침해 조사력이 불안전하다.
광주시교육청 학생인권 상담 및 구제조치 현황을 정보공개청구한 결과, 학생들이 매년 300~400여 건의 인권침해 상담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과연 단 2명이 이 모든 학생인권 현안들을 조사하고 침해를 예방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광주교육이 균형 잡힌 시각에서 다양한 교육주체들의 인권을 고려하고 정책화해야겠지만, 광주시교육청이 학생인권을 표방하고 역점사업으로 두고 있는 만큼 그만한 지원과 권한을 부여하고, 내용을 만들어가는 것은 필연적일 것이다.
광주, 인권침해 구제 담당자 고작 2명
광주학생인권조례 3년차, 이제는 0교시와 야간강제학습 금지, 최근에는 9시 등교를 추진하며 학생인권의 광범위한 정책을, 광주시교육청이 마련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 생겨날수록 불법과 파행사례가 성행하고, 특히 사립학교는 불응하고 있다는 것은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렇다면 광주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 정책을 통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단순히 교육감 표심과 정치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진실된 모습을 교육주체들과 시민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다. 광주학생인권조례가 낡은 정책, 거짓 허물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교육부가 필요최소한의 학습정보만 담기 위해 ‘학습환경 조사서’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선 학교에서는 부모의 출신학교와 학력·직업까지 적도록 필수 항목을 만들어 명시하고 있다. 학부모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 구성원의 출신학교와 학력까지도 쓰라고 하는 학교도 상당수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이런 개인정보를 묻는 건 인권침해라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왔지만 지금까지도 고쳐지지 않는 건 엄연한 현실이다.
필자도 소싯적 부모님의 출신학교와 학력을 요구하는 학교와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걸 묻는 교사들이 있었다. 이런 정보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은 학력(학벌)과 인성은 비례하다는 생각을 하는 게 흔하다. 물론 이들이 통계적으로 잘 설명내리지 못했지만, 어른이 되고 인성이 바르게 되려면 결국 공부해서 대학 가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곤 한다. 이처럼 문화는 항상 전위되기 마련인 것. 현세대 부모님들도 소싯적 대학 가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기에, 학력과 인성의 상관관계는 부모세대를 넘어 전통처럼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최근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재지정을 촉구하는 학부모들도 자사고 유지 배경으로 학력과 인성을 내세우며 전통성을 보였다. 학부모들은 ‘송원고 학생들은 인성이 귀족이다’ 문구의 시위피켓을 들었는데, 이는 자사고가 다른 일반고에 비해 대학을 잘 보내기 때문에 인성이 좋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제대로 따지고 보자면 대학을 잘 갔다고 해서 특별한 인성을 발견할 수 없고, 반대로 일반고라 해서 인성이 높다고도 규정지을 수도 없다. 인성은 그야말로 사람의 성품이다. 사람들마다 제각각의 성질과 성격, 됨됨이가 있는데 누가 우월하고 나쁘다고 볼 수 있겠는가. 이렇게까지 억지스런 논리를 피우는 것을 보면, 그동안 인성은 학력을 드러내기 위한 단순 포장역할을 해온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된다.
최근 광주광역시교육청에서 뿌린 홍보물은 인성교육을 빙자한 학력주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4년 수학능력시험 표준점수 1위라는 쾌거를 달성하였는데 인성과 학력이 조화를 이뤄냈다며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대로 학력이 좋다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인성을 거론한 것은 나름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동안 보수층들이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등으로 인해 광주교육의 학력이 떨어졌다는 주장을 해왔는데, 그동안 오해를 말끔이 털어내고 학력이 높다는 것을 입증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수능점수와 같은 학력을 드높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지원들과 노력들이 있었는지 광주광역시교육청은 고백해야 한다. 0교시 수업이나 방과 후 학내 보충 자율학습을 제한하였지만, 여전히 대다수 학교들은 강압적으로 참여시키거나 자율적인 곳은 사교육으로 빠지고 있는 게 실정이다. 예를 들어 학기 초마다 학생들이 교육청 홈페이지로 자율학습 민원을 제기하거나, 사교육비가 전년보다 올해 3.5% 높은 것은 이 상황을 절묘하게 증명하게 된다. 특히 대학입시설명회는 지난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달 개최하며 학력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공교육의 본래적 의미를 되찾기 위해, 민주인권평화 교육과 혁신학교 등 특성화교육도 병행하고 있지만, 소위 대학 잘 보내기 위한 입시교육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광주광역시교육청의 딜레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육이 가야할 길을 말하지만 현실 앞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위 진보교육감 다수 당선되더라도 학력과 인성을 함께 키우겠다는 공약을 던지는 것을 보면 현실을 인정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처럼 학력을 위해 오직 입시에 매달려 살아가는 학생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궁극적인 대학입시 철폐와 같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 교육이 가야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번 자사고 재지정 요구와 반발에 휘말리며, 자사고 폐지에서 한 발 물러서는 광주와 서울교육감의 모습을 보면 더욱 안타깝다는 생각이 마구 든다.
그저 지금 진보교육감이 할 수 있는 것은 학력보다 인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해내고 보편화하는 것일 텐데, 우선적으로 인성이 ‘학력과 구별짓고 교육의 정치적 용어로 사용되지 않기’를를 소망해본다.
이번 광주지역 지방선거는 이 지역이 민주당의 변함없는 독식체제임을 다시 확인해줬다. 시장을 포함해 구청장, 시의원까지 모조리 민주당 후보들이 선거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그나마 시의회를 통해 권력을 감시해왔던 정의당과 통합진보당마저 이번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지방자치의 근간인 견제와 균형이 완전히 사라진 셈이 되어버렸다. 물론 이런 현상이 온전히 잘못되었다고 단정지을 수 없고, 지역민들의 잘못된 선택이라고 탓을 돌리긴 힘들지만, 수 년 간 광주의 선거판도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게 뭔가 허탈한 건 사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민선1기 광주광역시교육감에게 국회의원까지 지낸 민주당 유명인사가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승리했다는 점. 이번 민선2기 광주교육감 선거에서 장휘국 교육감은 양형일 후보와 접전을 벌린 끝에 재선에 성공했고, 광주를 포함해 13개 지역의 진보성향 인사들이 교육감에 선출된 등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민선1기 진보교육의 성과 때문인지, 박근혜 정권의 심판론 때문인지, 수십 년간 입시경쟁체제를 이제 한 번 바꿔보겠다는 것인지 유권자들의 선택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동안 철옹성같이 지켜왔던 보수 교육감들의 독식을 끊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이번 지방선거의 허탈감을 다소 해소해 준다.
하지만 진보든 보수-중도든 권력에 들어서게 되면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법. 막상 당선자들이 시정-의정활동에 들어가면 선거공약처럼 자기 존재성을 드러내기보다는 현 자기조직을 우선시 바라보며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리 상급기관에서 잘못된 정책이 내려와도 유착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이건 엄연한 정치인들의 현실이다. 최근 광주시교육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송원고등학교의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재심의’ 절차를 보아도 그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듯하다.
자사고 폐지를 공약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장휘국 교육감 본인이 이번 송원고의 자사고 재지정과 관련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절차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이유 중 자사고 재심사 결과에 의해 탈락하는 학교가 반발할 것이라는 의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절차는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절차인지 따져봐야 하는데, 이번 경우처럼 관공서의 명분 쌓기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며 그러한 절차 역시 시교육청 자체적으로 수행한다.
참고로 이번 자사고 운영평가 자료를 시교육청이 비공개했다. 지난 6월 한 시민단체가 시교육청에게 자사고 운영평가 자료를 정보공개를 요청했지만, 시교육청이 이를 거부한 것이다. 물론 시교육청 입장처럼 의사결정과정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정보를 비공개할 수 있다. 하지만, 자사고 평가를 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과 시민들의 의견수렴을 고려해야 함에도 이를 무시하고 보이지 않는 절차에 따라 재지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광주시교육청은 최근 자사고 자료를 정보공개심의를 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회의자체를 비공개했고, 직원들을 대동해 청구인의 회의장 이동경로를 가로 막았다. 이는 과거 보수 교육감 시절에나 있었을 만한 일이다.
이처럼 왜 광주시교육청은 진보교육감이 있어도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것일까? 정말 유착관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해서인지, 장휘국 교육감의 의지와 리더십의 문제인지, 시교육청 조직의 보수성이 문제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진보교육감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잘못된 것인지 지금이라도 제대로 따져보지 않으면 민선-진보교육감의 역할이 올곧게 자리매김하기 힘들어 보인다.
이번 광주시교육청의 광주교육에 대한 새로운 슬로건은 ‘질문이 있는 교실, 행복한 학교’이다. 더 이상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자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를 주도하고 있는 시교육청의 모습은 ‘질문을 기피하는 태도’, ‘질문에 불응하는 태도’인데 학교현장에서 무얼 기대해야 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장휘국 교육감의 본연의 생각과 진보적 철학을 자기조직에게 관철시키고, 보수적 유착관계를 넘어 폭넓은 교육가족들을 위한 교육감이 되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수 년 간 호남에서 권력을 세습하는 기존 정당 정치인들처럼 교육감 독식을 위한 ‘유지행위’로 밖에 비춰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세월호 사건의 분위기가 가시지 않은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과를 했지만 제대로 된 대책은 마련하지 않았고, 국민들의 실망감은 점점 더 쌓여가지만 정부는 귀를 닫고 있어 분노가 극에 다다르고 있다. 그 무엇보다 남은 실종자 가족들이 아직도 팽목항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현재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대책을 그 누구에게 돌릴 수 없듯이, 사고로부터 우리 사회가 얻어야 할 교훈이 하나로 수렴될 순 없다. 다만, 안전을 책임지겠다며 나선 공인이 있다면 그 약속을 온전히 지키길 바랄 뿐이다.
이번 지방선거의 대다수 후보자들이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안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안전이 단순한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국민이 원치 않은 안전 정책이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그 부적절한 안전의 예로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가 내세운 CCTV를 강화한다는 정책이 있다. CCTV의 식별 능력을 높이고 관제센터를 확충하겠다는 것인데, 사실 이 정책은 인권침해와 더불어 개인 사생활이 어디까지 보여일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물론 CCTV가 학교나 골목길 등 사회 안전을 책임지는 방편으로 활용될 수 있지만, 그것이 주가 되기보다는 학교지도와 사회적인 해결을 통해 나가는 것이 옳다. 세월호 사고의 교훈을 보았듯이, 안전사고는 불합리한 제도와 우리 사회의 어둡게 가려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교육제도와 학교사회는 세월호 사건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단순히 많은 이윤을 벌어들이기 위해 빠르고 불안한 여정을 떠나야 하는 항해처럼, 흔히 이름 값 있는 명문대를 가거나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학생들은 입시경쟁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가고 있으며, 불합리한 입시제도와 학교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가려져 학생들은 죽음의 난간에 몰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육은 ‘가만히 있으라’는 통제만 요구하고 있는 것이 참 슬픈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학생들을 난간으로 몰아세운 교육 마피아를 몰아내고, 잘못된 지시와 권위로 지탄받을 교육관계자는 안전을 위해 무얼 고민해야 할지 풀어가야 할 것이다.
이번 교육감선거에 진보적인 후보들이 선출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진보적인 교육감은 학생들이 무얼 요구하는지 목소리를 함께 존중해주며 문제를 풀어나갈 여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생각,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용기라고 보여진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 느꼈겠지만, 지난해 해병대 캠프 사건 역시 학생들에게 원치 않는 캠프를 거부하고 위험한 지시를 거부할 자유가 보장되었다면 피할 수 있던 사고이지 않을까? 즉 학생들의 안전은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권리이며, 쉬운 말로 학생인권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진보 교육감이라면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학생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 순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보적인 교육감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만은 없다. 민선1기를 통해 느꼈듯이 학생인권을 보장받기 위해선 예컨대 학생인권조례와 같은 제도나 예산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우리 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보호주의와 권위주의 등의 보수성을 풀어야 하는 숙제도 있다. 그런 뜻에서 더 이상 학생들이 미성숙하다거나 불안의 노출대상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권리를 유보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입 밖으론 안전을 이야기하면서, 마음 속엔 ‘튀지 말아, 시킨대로 해, 가만히 있어’등 수동적인 요구들을 하고 있진 않은지 기성세대들은 다시 한 번 돌이켜봤으면 한다. 그리고 안전을 위한 문제해결과 책임요구, 아픔을 이겨내기 위한 과정도 동등한 위치에서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나갔으면 한다. 이것이 희생된 학생들에 대한 애도의 길이자, 학생인권을 다시금 되새기는 의미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만약 국가 간 전쟁이 일어나면 누가 가장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하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총을 발사하고 폭탄을 날리고 각종 무기로 서로를 죽이려드는 군대가 가장 피해를 받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군인보다 민간인이 많이 죽고 군대시설보다 민간인 거주지역이 더 많이 파괴된다고 한다. 2000년대 크게 일어난 이라크 전쟁만 보더라도 군인 사망자와 경찰 사망자를 합해도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 10만 명을 뛰어넘지 못했다. 이처럼 전쟁은 민간인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끼쳤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를 좌지우지 하는데 그 전쟁의 잔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하다.
민간인 피해자 중에서 특히 피해를 보는 계층이 있는데, 바로 거동이 힘들거나 물리적으로 힘이 약한 아동, 청소년, 여성, 장애인, 노인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소수자 혹은 사회적 약자라 부르기도 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는 속담처럼 누구도 원하지 않는 타자들의 싸움에 소수자들이 피해를 받는 전쟁은 지금도 국내 곳곳에서 크고 작게 일어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보전지역인 제주도 강정마을 내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문제가 있다. 자연환경과 지역공동체를 파괴한다는 마을주민들의 반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무자비하게 건설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이 해군기지는 미국과 아시아 국가 간의 전쟁 거점지로 여겨져, 건설이 완공된다면 언제 전쟁 피해지역이 될지 모를 위기에 처해있다. 물론 이 피해는 마을주민 더 나아가 제주도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최근 정부산하 한국전력공사에서 추진하고 있는 밀양지역 송전탑건설 문제도 마찬가지 사안이다. 76만5000볼트라는 국내 최대 전력이 흐르는 이 송전탑은 인근 마을주민과 농작물, 가축, 야생동물들을 위협하고 있는데, 한국전력은 ‘전 국민에게 공급할 전력의 수급문제’를 근거로 건설을 원하지 않는 주민들에게 암묵적인 협박을 넣고 있다. 강정마을과 마찬가지로 주민 계층의 대부분은 힘없는 노인들이다. 시골 노인들은 통상적으로 밤 10시가 되면 불을 끄고 새벽같이 해가 뜨면 농지로 일을 나가며 필요한 최소한의 전기만 사용하는 분들이다. 왜 그런데 이 분들이 송전탑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정작 이 에너지 전쟁의 원인인 개개인들과 산업용전기를 야간에 마음 놓고 사용하는 공장, 기업들에게 아무런 피해가 없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처럼 일찌감치 보이지 않는 전쟁은 예고되었고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를 위기에 숨 졸이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이웃나라 일본 후쿠시마에서 벌어진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가 에너지 전쟁의 결과를 보여주었고, 한국도 마찬가지로 신고리나 영광지역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가동중단 사태를 통해 전쟁예고 신호탄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이 또한 지역주민들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대체 에너지 개발을 통한 원자력 발전소 개수를 줄여나갈 의지를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대다수 국민들 또한 정부가 추진하는 원자력 의존성을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처럼 한국도 그리 터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 피해는 역시 죄 없는 발전소 마을주민들과 반경에 있는 지역민들에게 고스란히 갈 것이다.
위에서 제시한 강정마을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문제를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 해당 마을주민들은 피해보상을 원하지 않는다. 둘, 그저 살던 동네에서 아무 것도 훼손되지 않은 채 평화롭게 농사짓고 살고 싶어 한다. 셋, 그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 제공자는 마을주민들이 아니다. 누구도 위험한 그 곳에서 살고 싶지 않은데 왜 그들에게 피해를 몰아가려고 하는 것인가? 나만 아니면 된다는 개인 이기주의와 주변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정부가 부추기는 이 전쟁을 하루 빨리 접기 위해서 개개인의 양심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자신의 주거지에서 떠날 위기에 놓인 시골 주민들과 도시 안의 상황은 전혀 다르지 않다. 이미 도시 안의 수많은 공동체, 문화, 생태계는 파괴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킬 수 있는 시골 마을이라도 파괴되지 않게끔 노력하는 게 양심의 우선순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