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꼬집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 발전한다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약 2달 간 광주시교육청 정문 앞에서 매일 진행해온 강제학습 반대 시위를 잠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시위를 중단하게 된 배경은 광주드림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강제학습 대책을 요구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대안적인 시민운동으로 거듭나자는 재출발의 의미가 담겨 있다. 특히 교육청과 교총·전교조·시민사회단체의 협의를 통해 강제학습 대책을 마련·시행하고 중장기적 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는데, 이를 신뢰하고 정기적으로 교육청과 협의하자는 약속도 그 배경에 깔려있다.


광주시교육청 성실 이행해야


 이처럼 올해 1학기 내내 끄떡없던 교육청을 협의의 장으로 끌고 갈 수 있었던 건, 시민사회단체의 주장(강제학습 사례와 근절 필요성)이 실체·타당성이 있기도 했지만, 실제 언론이나 시민들의 여론에 의해서 작용한 면이 크다고 보인다. 즉, 교육청이 스스로 나서 강제학습 문제 해법을 찾았다기보다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협의의 장을 마련한 가능성이 크다고 정황상 보이는데, 이런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협의회에서 결정된 대책을 성실히 이행해 나가야 하고, 중장기 계획도 시민사회단체·전교조 등과 함께 마련해나가야 할 것이다.


 한편, 강제학습 반대 시위와 더불어, 같은 시간 교육청 앞에서 교육공무직노동조합에서도 연일 시위를 하고 있었는데 여전히 해결이 안 된 모양이다. 교육공무직노동조합에서 시위를 통해 교육청에게 요구하는 내용은 강제학습 대책보다 더 간단하다. 유치원 교사 등 비정규직 학교에 재직 중인 노동자들을 무기계약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이들 노동자들은 기존 정규직 노동자를 대신해 근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상시적으로 필요한 인력인데다가, 다른 노동조합에 속한 같은 직종 노동자는 교육청이 무기계약으로 전환한 선례가 있다.


 그간 선례도 있고 법적으로도 타당한데, 왜 이들은 무기계약으로 전환되지 못하는 것일까? 내부사정은 잘 알지 못하지만, 아마 이 문제도 여론형성 없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학교 경비원으로 72시간 연속근무를 하다가 사망한 사건도 마찬가지, 교육청은 끝끝내 ‘(박근혜 식으로) 아몰랑’하다가 관련 노동조합과 노동단체가 목소리를 내고 언론이 들끓자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처럼 교육청이 모든 문제에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실제 진지한 고민과 대책도 없고, 법과 제도·예산만 가지고 형식적으로 행정하며, 괜히 잘못된 일 손대다가 또 다른 논란을 낫기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강제학습 문제를 협의하기에 앞서, 교육감 면담신청이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던 이유도 교육감이 시간이 없었다기보다, ‘대책이 없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라는 게 교육청 측근의 설명이다. 그런데 교육청과 시민사회 등 협의회 이후, 강제학습 대책 및 하반기 계획이 마련되자 도리어 교육청에서 교육감 면담을 추진했다. 교육청도 의지가 생겼으니, 훈훈하게 마무리 하자는 의미가 담긴 면담이었던 것이다.


법과 예산, 현실 한계 넘어서야


 최근 두 가지 사례(강제학습·학교 경비원)를 보았듯이, 교육청이 대책과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자기하기 나름이다. 법과 예산, 현실이 바뀌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시민들의 주장을 중요한 권력으로 생각한다면 문제해결에 유용하게 사용하게 될 것이다. 만약 지금처럼 교육청이 법과 예산, 현실을 한계로 모든 걸 판단한다면, 늘 문제는 같은 이유에서 귀결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교육청이 모든 법과 예산, 현실을 한꺼번에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시민사회단체가 교육청에게 자율학습 폐지가 아닌, 다소 낮은 수위의 강제학습 근절을 주장으로 내세운 것도 지금 당장 잘못된 입시제도 자체를 없앨 수 없다는 한계의 지점을 명확히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고통을 잘 아는 교육청이라면, 그 틈새를 찾아 조금씩 숨통을 트이는 일을 해나가야 할 것인데, (강제학습 대책과 별개로) 여전히 야간자율학습 현장을 순회하며 학생들을 격려하는 교육감의 이중적인 행보를 보면 새로운 변화에 발맞추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움이 크다.


 광주시교육청 교육감실 입구에 걸린 액자에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삶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만 발전한다.” 그저 보기 좋은 장식용 글귀가 되지 않기 바랄 뿐이다.


박고형준<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상임활동가>


http://gjdream.com/v2/column/view.html?code_M=5&news_type=502&uid=468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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