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빈 (서울 이화여고를 사직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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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부조리에 당당히 맞서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일상의 작은 비위는 물론 거대 권력과 자본도 개인 차원에서 거부한다. 불이익과 불편이 따르지만 신념을 버리지 않는다. ‘달걀로 바위치기’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결국 승리한다.

경비행기 조종을 취미로 가진 진중권 선생이 내년에 필리핀으로 비행기 여행을 떠난단다. 그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훌쩍 어디로 향할지 모르지만 아무튼 MB정부가 끝나는 3년 동안은 돌아오지 않겠단다. 나로서야 비행기 여행, 세계 여행 따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그가 부럽다. 그의 용기도 부럽고 그의 자유로운 영혼도 부럽다. 그렇다고 최근 중앙대,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의 자리에서 쫓겨난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인 그가 돈이 엄청 많은 것도 아닐 것 같다. 베스트셀러 작가, 명강사로서 인세와 강연료가 제법 될 것이 분명하지만 시민단체에서 받은 강연료는 진보신당에 기부한단다. 독일 유학 시절에도 한 달에 50만원으로 숙박을 해결하며 전시회나 여행을 다녔단다.

그의 소식이 담긴 신문을 읽다말고 서둘러 수업에 들어간다. 이제 한 달이면 교직 생활 십년을 채운다. 흔히 교직을 천직이라고 한다. 특히 사립학교는 ‘평생직장’으로 불린다. 평생직장이라니, 이 얼마나 끔찍한 말인가. 게다가 평생직장이라는 말에는 “평생 밥벌이할 수 있게 해 줬으니 고맙게 생각하라”, “평생 얼굴 보고 살 사람끼리 얼굴 붉히는 일 없도록 하자”는 식의 지긋지긋한 이데올로기의 울타리 안에 교사의 사고와 행동을 가둬놓기도 한다. 그 속에서 문제제기라도 하려고 든다면 곧장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라는 말이 들리지 “절이 싫으니 주지 스님을 바꾸자”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그 말 속에는 “용기 있게 떠나지도 못하면서 까불지 말라”는 의미까지 담겨있다.

십년을 한 학교에서 보냈다. 애당초 이 학교가 ‘평생직장’일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다만 이 학교가 교육활동을 실천할 소중한 ‘현장’이라는 생각을 버린 적도 없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 격인지는 몰라도 지난 십년간 참으로 많은 땀과 눈물을 이 현장에 뿌렸다.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울며 사랑을 주고받았다. 부당한 학교 현실에 저항하다 험한 꼴을 당하기도 했고 때로는 작은 성과에 축배를 들기도 했다. 교과서와 입시를 뛰어넘는 새로운 수업을 시도하며 웃음과 감동이 넘치는 교실에서 행복을 느꼈다. 하나하나 성장하며 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 곁을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눈물겨운 헌신과 투쟁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정부는 학교가 과연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하고 있고, 학교들은 서로 누가 더 나쁜 짓을 하는지 내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제 학교 안에서는, 학교를 바꿀 동력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교조 운동의 위기도, 전교조가 그 동안 끊임없이 연대 사업을 강조해 온 것과 무관하게, 전교조 운동이 실제적으로는 ‘학교 안’, 혹은 ‘조합원 내부’에 머물렀기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학교 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학교조차 바꿀 수 없는 시기가 분명히 온 것 같다. ‘학교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학교를 바꾸게 되는 것이 아니나 나 자신이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

내년부터 우리 학교는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된다. 한창 신입생 모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 요즈음, 여전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이 버젓이 일상의 풍경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일반인의 상식이나 교육자의 양심으로서는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것들이 ‘생존’이라는 명분 아래 정당화되고 있다. 이른바 명문대 진학에 유리한 코스를 선점한 학생들의 욕망과, 이른바 명문고로 도약하기를 바라는 교사들의 욕망과, 세 배 이상 되는 등록금의 본전을 뽑으려는 학부모들의 욕망이 들끓는 그 곳에서, 내가 학교를 바꾸게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바뀌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과연 내가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도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종의 망명이다. 지금은 자본이 인간을 전면적으로 식민지화해버린 시대이다. 학벌체제는 그것의 하수인이다. 예전 같으면 두만강을 건너서 망명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문익환과 윤동주의 선조들이 그랬듯이 명동촌을 일구고 거기 학교를 세우고 식민지 반도와는 다른 자유로운 교육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국경을 넘어 망명할 곳은 없다.

그렇다면 오직 내부로의 망명이 있을 뿐이다. 내부로 망명한다는 것은 체제 내에서 체제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안병무의 선친은 창씨개명하지 않는다고 시비를 거는 일본형사에게 일본 헌법에 창씨개명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지 물어 형사의 말문을 막았다. 어느 시대에나 내부에서 망명할 통로는 있다. 자기에게 정직하고 외부의 억압에 저항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것,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 이것이 내부에서 망명하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망명은 스스로 낙오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낙오자가 아니라 ‘스스로’라는 자발성이다. 낙오한다는 것은 무능력의 표현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선택을 가리킨다. 게다가 모두가 현존하는 질서에 순응하고 있을 때 먼저 낙오하는 사람은 그 행위를 통해 낙오하면서 선구자가 되는 것이다. 생각하면 올바른 사회에서 낙오한다는 것은 불행하고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물구나무 선 사회에서는 거꾸로 성공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 것이다.

- 김상봉, <내부로의 망명 또는 낙오자 되기> 중에서

 

‘망명하기’ 또는 ‘낙오자 되기’를 상상해 본다. 그리고 망명지로 떠나는 출발점은 학교가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임을 확인해 본다. 학교에 붙어 있으려고만 한다면, 학교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러다 무슨 일이든 하게 된다면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다. 그래서였을까. 김상봉 선생님은 어느 강연에서 “교사는 늘 안주머니에 사표를 넣어놓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내 나이 마흔, 학교를 그만두면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상상해 본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여행이다. 그렇다고 진중권 선생처럼 삼 년씩이나 비행기 여행 같은 것을 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은 봄이 시작되는 섬진강이다. 그 시기는 학교에서 일 년 중에 가장 바쁘다는 삼월이다. 학교 안에 있다면 결코 가볼 수 없는 곳이다. 나는 산수유와 매화 꽃망울이 터지는 섬진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이 김용택의 시를 가르쳐 왔고,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 본 적도 없이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가르쳐 왔다.

다음으로 가 보고 싶은 곳은 대학 도서관이다. 40대의 나이에 영국의 대학 도서관에 처박혀 자본론 원고를 집필했던 마르크스와 같은 삶은 감히 흉내조차 내기 어렵다. 그저 오래된 책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서가에 처박혀 하염없이 빈둥대고 싶다. 이제는 한갓 대학 입시를 위한 스펙 쌓기로 전락한 독서가 아닌, 독서 그 자체가 주는 무상성의 즐거움을 나부터 누리고 싶다. 책읽기가 지루해지면 햇볕 따뜻한 대학 교정을 거닐며 싱그러운 젊음들을 마냥 부러워하고 싶다.

공부도 하고 싶다. 요즘 각종 단체마다, 지역마다 인문학 공부가 유행이다. 철학아카데미, 풀로엮은집, 한겨레문화센터, 민예총, 참여연대, 마들연구소 등에서 진행하는 좋은 강좌가 널려 있다. 그 동안 여기저기서 만나봤던 강사들은 홍세화, 하종강, 노회찬, 심상정, 강수돌, 김어준, 한비야, 강풀, 한홍구, 강정구, 김상봉, 진중권, 김규항, 김진혁, 신영복, 조세희, 권인숙, 정태인, 고미숙, 송순재, 고병헌 선생님 등이다. 아직 만나보지 못했던 박노자, 박원순, 정재승, 우석훈 선생님 등의 강연도 꼭 듣고 싶다. 시간을 내서 인내심 있게 공부해야 할 현대 철학, 나에게 너무나 취약한 분야인 경제학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

취미 생활도 하고 운동도 해야겠다. 요즘 한창 재미를 붙이고 있는 플루트 연주 실력을 수준급으로 높이고 싶다. 어쩌면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가입하게 될지도 모른다. 클래식 기타쯤은 곁들여 배워도 좋다. 자전거 타기 외에는 운동에 별 관심이 없으니 춤을 추면서 뱃살을 빼야겠다. 학교 축제 때마다 아이들을 비명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어설픈 춤 실력을 제대로 갈고 닦아야겠다. “내가 춤추지 않으면 혁명이 아니다”는 슬로건도 있던데, 춤이라는 몸의 언어를 마음껏 구사해 보고 싶다.

그런데 사람들이 내가 이렇게만 살도록 놔두지 않을 것만 같다. 나 혼자 행복하게 사는 꼴을 못 보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당장 내년에는 지자체 선거, 교육감 선거가 있다. 그들은 얼씨구나 하면서 나를 선거운동 판으로 끌어들일 것이 분명하다. 그래, 작년 교육감 선거의 분풀이를 해야겠다. 저들은 전교조 조합원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주경복 후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논의했다는 이유만으로 8명의 교사에게 해직에 해당하는 벌금형을 선고했다. 좋다. 이제 교육공무원이라는 거추장스런 옷을 벗었으니 선거운동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 내친 김에 진보신당에도 가입을 해야겠다.

그 동안 인연을 맺었던 시민사회단체, 지역운동단체에서도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당장 ‘은평 학부모 네트워크’에서 학부모 교육을 진행할 텐데, 학부모와 현장 교사들의 시간이 서로 맞지 않아서 어려움이 많다. 교육운동을 경험했던 현장 교사가 놀고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조건이 어디 있겠는가? ‘마포 민중의 집’에서도 늘 전교조에 지역 청소년 사업을 같이 하자고 제안을 해 왔으나 그 사업에 함께 하지 못했다. 밀양에서 전교조 사업에 지역 운동까지 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이계삼 선생은 아예 나더러 밀양으로 내려오라고 꼬드긴다. 전국국어교사모임은 한 수 더 뜰 것이다. 지역을 돌아다니며 소모임 관리도 하고 연수도 진행하라고 시킬지도 모른다. 학교 그만두면 더 바빠질 것이 분명하다.

‘학교 밖’에서 무슨 일이든 해 보고 싶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 ‘행복한 낙오자’가 되어 ‘학교 안’과 ‘학교 밖’을 연결하고 ‘내부 망명지’를 확장하는 길을 발견하게 된다면 결코 나의 선택이 후회스럽지는 않게 될 것이다.

“그럼 앞으로 뭐 먹고 살 거냐?”는 질문이 당장 나올 것이다. 교직생활 십 년 퇴직금이면 삼 년 정도는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 싱글이라는 조건이 얼마나 감사한지. 설마 삼 년 후면 (그 때면 적어도 MB 얼굴은 안 보게 된다) 무슨 방법이 생기지 않겠는가? 교회를 다니지 않는 나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는 성경 구절을 참 좋아한다.

만약 충분히 놀고 충분히 공부하고 충분히 온갖 일을 벌이다가 다시 학교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 때 다시 들어가면 된다. 임용고사 나이 제한도 없어졌다. 섬진강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나는 김용택의 시를 실감 나게 가르칠 수 있게 될 것이고, 지리산 둘레 길에서 하염없이 빈둥거리던 나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대학 도서관에 처박혀 독서의 무상성을 맛본 나는 아이들에게 진정한 독서의 즐거움을 일러줄 수 있게 될 것이고, 온갖 인문사회학의 세례를 받은 나는 아이들에게 이 시대의 진정한 교양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게 될 것이다. 음악과 춤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진 나는 아이들에게 지금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대안교육의 상상력으로 공교육에 충격을 줄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르고, 지역운동과 풀뿌리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운동론으로 현장주의, 대중추수주의의 함정에 빠진 전교조 운동에 새로운 활력소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상상’만으로도 나는 이미 ‘내부로의 망명길’에 오른 셈이다. 설사 학교 현장에서 매일 같이 어처구니없는 일에 부딪히며 너저분한 일상을 반복하더라도 유쾌한 상상의 힘은 다시금 나를 추스르게 될 것이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실제로 망명길을 떠날지 아니면 여전히 현장을 지키며 고군분투 할 것인지, 나의 선택은 끝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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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원 (조선대학교 강사,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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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 광주시당 위원장 윤난실 씨가 지난 1월19일 광주광역시의회 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광주 시립대학 전환을 제시하고 있다. 학벌없는사회 광주모임(준)도 5월초 조선대학교 구성원과 시민사회단체에 조선대 공립화를 위한 시민모임을 제안했지만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호남의 대표 사학인 조선대가 교육과학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정이사(正理事) 선임 강행으로 내홍을 앓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다시 장기적인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조선대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도 커다란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조선대는 단순한 하나의 사립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대는 해방직후, 각계각층에서 72,000여 명의 인사들이 국가를 건설한 새로운 인재를 지역에서 양성하자는 대의에 동의해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성의를 모아 설립한 민립대학이다. 그러나 설립자 중의 일인이었던 구 재단의 고(故) 박철웅씨가 재단을 사유화하고 전횡을 휘두르면서 학교운영이 파행을 거듭했으며 결국 1988년 1월 8일 학생들의 100여일이 넘는 투쟁과 뜻있는 교직원들의 노력으로 고(故) 박철웅씨가 재단에서 물러나면서 정상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구 재단 측은 이후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학교를 다시 탈취하려고 했지만 법에 의해 그리고 학교의 정상화 및 민주화를 추진하던 모든 이들에 의해 거절당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선대가 20여 년의 관선이사 체제를 끝내고 정이사 체제로 전환하려던 시점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으며, 새로 집권한 정부의 친자본적 경향에 편승해 구 재단은 학교 본부, 교수평의회, 교직원노조, 학생회 및 민주동우회를 포함한 동문 등 거의 모든 관련단체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단이사의 선임에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교과부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동의하에 새로운 이사진에 구 재단 관계자들을 포함시키는데 성공했다.

결국 조선대의 대다수 구성원들이 교과부의 결정에 반대하고 새로 구성된 정이사 퇴진 투쟁을 전개하면서 조선대학교는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이미 학내 곳곳에는 재단이사진의 총사퇴와 구 재단 관계자의 학내 진입을 성토하는 표어로 가득 찼으며, 이로 인해 캠퍼스는 40여 년 만에 찾아온 이상기온처럼 스산하기만 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조선대가 단순한 하나의 사립대가 아니라 해방 후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수많은 민초들이 각자의 성의를 모아 설립한 민립대학이라는 점에서 동시에 거의 대부분의 졸업생과 재학생이 이 지역의 아들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조선대 문제는 단지 조선대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 지역의 문제이기도 하며, 따라서 조선대 구성원을 중심으로 모든 지역 구성원들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이미 조선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해법이 제시되어 있다. 일부 구성원들은 정상화를 위한 4대 원칙(설립정신계승, 구 재단 배제, 1.8학원민주화정신계승, 조선대의 미래지향적 가치충족)에 의한 정이사 재구성, 또 다른 일부 구성원들은 민립대학으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으며. 6월에 있을 지방선거에 출마한 한 시장후보는 조선대를 공립(시립)대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조선대 정상화를 위해 제시된 방안들이 모두 조선대 구성원들이 제시하는 ‘정상화 4대 원칙’을 수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는 문제는 학교를 운영할 자금과 발전을 위한 학교 운영을 위한 이사진의 구성이다. 조선대가 지금까지 내실 있는 운영으로 학생들의 등록금만으로 학교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일정 규모의 기금을 조성했지만, 학교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지금 조성된 기금의 규모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중앙대학교의 파행적인 운영에서 보듯이 거대 자본을 재단으로 영입하는 것도 옳지 않다. 동시에 현재의 사립대 재단이사 구성에서 교과부가 승인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구성원들이 주장하는 4대 원칙에 부합하는 이사진을 구성하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바로 이런 이유들로 인해 조선대의 공립화가 적절한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대를 공립화하면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확신한다. 첫째, 모든 구성원들이 염원하는 민주적 이사진을 구성할 수 있다. 사립학교법이 존재하고 있는 현재 구조 아래에서는 조선대의 모든 구성원을 만족시키며 설립이념을 구현할 수 있는 민주적 개혁적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히 조선대 문제에 대해 피상적 이해만 갖고 있는 교과부가 이사 구성의 전권을 행사하는 한 조선대 구성원들이 주장하는 4대 원칙을 견지할 수 있는 이사진을 구성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다음 정부에서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학교운영 전반에 대한 막강한 권한을 가진 이사가 되기 위해 이런 저런 적절치 못한 사람들이 교과부 또는 정치권을 통해 이사로 임명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조선대를 시립대로 전환한 뒤 광주시 산하에 ‘시립대학 운영위원회’를 설치하고 대학에 대학 깊은 이해를 갖추고 있는 지역 출신의 구성원과 동문, 전문가, 시민단체 인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이사진을 구성하여 상호 비판과 견제가 가능한 이사진을 구성하고 독립적인 운영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지자체가 조례로 이를 보장한다면, 지원과 운영이 확실하게 분리되어 대학의 독자적이고 자율적 운영을 보장할 수 있다.

둘째, 등록금을 인하해 지역 인재의 역외 유출을 방지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 현재 광주/전남 지역의 중·고 수준은 전국 상위권에 속하지만 우수학생 상당수가 수도권으로 진학하고 있다. 우수한 인재들이 대부분 지역 밖으로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조선대를 시립대로 전환해 국립대 수준으로 등록금을 낮춘다면 우수한 인재들이 지역에 남도록 할 수 있다. 특히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자체의 공무원 임용규정을 활용해 시립대 출신의 훌륭한 인재들을 채용하고 이들에게 고향의 발전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효과는 더울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인재 확보와 지역사회 발전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 지자체의 재정능력에 우려를 표명하는 견해가 있지만, 지역교육에 한해 380억 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이 정도의 예산은 연말마다 반복되는 멀쩡한 보도블록 갈아치우기나 불필요한 토건사업 한 두건을 줄이는 것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정이사 선임 문제로 다시 점화된 조선대 정상화 문제가 다시 장기화 된다면 가장 직접적으로는 학생들에게 그리고 학교 구성원들과 이 지역에도 적지 않은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방식으로는 이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어려워 보인다. 공립화라는 단어가 조금은 낯설고 쉽지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합의만 이룰 수 있다면 일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모든 구성원들과 지역민들의 적극적이고 대담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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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고형준 (학벌없는사회 광주모임 상근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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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광역시학생인권조례제정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지난 5월 20일 광주 YMCA 백제실에서 ‘학생인권조례제정 등 학생인권복지신장 정책협약식’(이하 정책협약)을 가졌다.

요즘 한국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금도 인간답게 살기위해 희생해야 하는 어려운 현실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하나의 주체들이 있다. 바로 ‘청소년’이다. 한국사회 청소년은 과도한 입시경쟁교육 시스템과 열악한 사회 환경 속에서 고통 받고 있지만, 누구도 그들의 삶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늘 그렇듯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그저 청소년 개인의 나약함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고만 있다. 이 처절한 경쟁과 열악한 사회조건 속에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힘들어 해야만 세상은 알아줄까.

특히 광주는 수능성적 1위의 허울아래 감춰진 교육청 청렴도 2년 연속 전국 최하위, 청소년 자살률 1위, 사교육 시설 증가율 전국최고, 지자체 교육복지 투자 예산 전무(교육복지투자우선지원사업 중 해당 부문 최하위 평가) 등 청소년의 삶이 매우 심각한 지경에 처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경쟁교육에만 치중하고 있고, 지자체는 청소년의 행복한 삶의 공간으로서 지역사회가 가지는 의미를 간과하고 있는 실정이다. 삶의 주요 의제들이 대두되는 선거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투표권이 없는 청소년들은 여전히 소외되기 일쑤고, 그러한 냉정한 정치적 이해득실의 판단으로 인해 교육․청소년 정책은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 학생인권은 물론 노동, 빈곤, 장애, 성차별, 가정형태, 국적 등 사회지원이 절실한 청소년들을 위한 정책까지 외면 받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 같은 시대적 급박함과 요구의 절박성에 출발하여, 뜻있는 청소년활동 단체와 개인들이 광주지역 청소년들이 보다 평등하고 행복한 삶을 만들기 위해 서로 긴밀히 연대가 필요하다. 경쟁과 보호의 논리로 청소년 권리증진과 지원 축소를 당연시하는 시각을 바로잡고, 올바른 교육․청소년정책이 실현될 수 있도록 건전한 비판과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145만 시민들과 함께 학생․청소년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청소년인권조례’. ‘학생인권조례’, ‘교육복지조례’ 등을 지방자치의 주된 의제로 다시 회복시켜 광주가 ‘청소년이 행복한 도시’로 재탄생하도록 시민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단위가 필요하다. 아울러 지역의 청소년정책을 연구하고 광주지역 다양한 인적․물적 자원을 연계하여 삶의 공간인 지역에서 복지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최근 광주학생인권조례 추진위에서는 광주지역 청소년의 다양한 권리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를 구하고 참여와 협력을 통해 대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청소년정책회의를 구성하였고 아래와 같은 의도로 시작하였다.

첫째, 청소년들의 실질적인 인권을 실현한다.

둘째, 지역사회 청소년들이 청소년 운동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권리의식과 참여의식을 확대한다.

셋째, 지역사회의 교육․청소년정책과 현안에 대해 연구 조사하여 정책 대안을 마련한다.

넷째, 지역사회 교육․청소년정책과 행정에 대한 감시 참여활동을 전개한다.

다섯째, 지역사회 청소년 관련 기관 및 단체, 학교와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정책운동의 역할

경기도 교육감이 진보세력의 상징이 되어 고군분투한 끝에 2010년 지방선거의 주요 의제로 ‘교육복지’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지자체 및 교육청의 수장을 준비하고 있는 대부분의 예비 후보자들은 ‘무상급식’을 공약화하며, ‘한정적 복지’를 기조로 하고 있던 MB 정부를 당황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이미 ‘보편적 복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은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제는 ‘복지권’을 통해 총체적인 청소년의 권리를 환기시키고, 그것을 보장하고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지방선거 공간에서의 수동적이고 개별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극복하고 청소년 관련 공약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청소년 단체와 교육운동 단체, 사회복지사, 교육복지가 등의 적극적인 개입이 요구된다. 위장된 중립적 개입이 아닌, 보다 공세적인 실천을 말이다.

이를 위해 광주의 교육․청소년정책을 만들 때 우선시 되어야할 점은

첫째, 청소년을 위한 정책을 발굴하고 홍보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둘째, 청소년 활동 및 인권증진과 교육복지 발전을 위하여 교육감 및 지자체장들에게 정책을 제안하고, 관철시키도록 해야 한다.

셋째, 시민들에게 청소년 활동 및 인권증진과 교육복지 발전을 위한 정책을 제시하고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장을 제공해야 한다.

넷째, 향후 제시한 정책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는 등 감시와 비판 및 견제의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

특히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각 정치세력의 향후 사회․정치적 기획을 가늠해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선거 공약에 대한 정확한 분석은 다음 선거를 대비하기 위해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선거 이후의 청소년 활동 및 인권증진과 다양한 청소년 조례운동의 기획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물론 정책운동은 전문가 지식, 자료조사, 충분한 검토, 경험 등 이 필요한 일이라 활동가 개인들이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광주지역 청소년을 책임지는 주체로서 청소년정책을 함께 발굴하고, 후보자와 시민들에게 제안함으로써 청소년이 행복한 삶을 형성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뜻 깊은 일이라면 사소한 질의이라도 지금 고민해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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