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고대인’이 되는가


곰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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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는 하나은행과 업무제휴를 통해 스마트카드 한 장에 학생증 및 각종 전자화폐 기능이 들어간 고려대학교 전자학생증을 발급한다. 자랑스럽게 들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고대인’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특별한 함의는 단순히 고려대학교를 다니는 ‘고대생’과는 조금 다른 어감을 지닌다. ‘고대인’은 고려대학교를 사랑하고, 그 명문 사립대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고대가 사랑받을 구석은 별로 없다는 건 캠퍼스 안의 학생들로선 쉽게 공감하곤 한다.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원하는 교육을 받을 권리와 사회적 담론들이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는 최소한의 민주적 체계마저 박탈당한 채 학점과 취업경쟁으로 대학 생활을 점철하고 있는 우리 스스로를 볼 때, 진리의 상아탑은 이미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가운데 어느새 우리는 붉은 색 옷을 입은 이들끼리 어깨동무를 하고 찬양조의 응원가를 소리 높여 부르고 있다. 합리적인 동기는 없다. 우리는 고대생이기에 고대를 사랑한다. 그 사랑은 아주 체계적으로 강요되고, 재생산되고 있다. ‘고려대학교’만이 가능한, 엘리트의식으로 점철된 패거리문화와 ‘고대인’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할 몇 가지 행동규범에서 그 엄청난 체계성을 짐작할 수 있다.


‘나 없는 자기소개’ FM


‘고대인’으로서의 정체성 강요는 대학친구들과의 첫 인사치레, FM으로부터 시작된다. 처음 만나 아직은 어색한 이들과의 거리를 가장 먼저 좁힐 수 있는 이들은 새터 숙소로 향하는 버스에서 FM을 잘하는 이들이다. 강원도로 향하는 긴 시간동안의 적적함을 달래기 위함인지, 버스에 오르자마자 선배의 인사말과 함께 가장 먼저 진행되는 인사치레는 요란스러운 FM이었다.


새터 자료집에는 FM이 군사문화에서 유래했다고 자랑처럼 써져 있다. 군사문화의 가장 위험한 폭력성 그대로, FM에는 폭력적인 전체주의가 뿌리 깊게 박혀있다. FM을 띄우기 위한 선창과 사람들의 환호는 그 폭력에 대한 거부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는다. 타인들의 눈총을 피해 팔을 거칠게 휘저으며 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민족고대 호안정대 자주정경6반 06학번’과 같이 전체로부터 수렴되는 정체성을 주입받고 거대한 집단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문화’를 물씬 느낄 수 있다.


내면을 토해내고 ‘고대인’으로 변신하다


그리고 여기서 끝나지 않는 정체성 주입은 사발식으로 이어진다. 사발식은 일제 치하의 보성전문학교 시절, 일 제국주의와 조선민족 수탈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고 일 경시청 앞에서 토악질을 하던 문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토사물을 내뱉은 곳은 일본 경시청 앞도, 미 대사관도 아닌 변기통밖에 안 되는 주제에 선배들은 드디어 너도 ‘고대인’이라며 등을 토닥여 준다.


그리고 더 무섭게도, 자유와 인격마저 박탈당한 채 구경거리라도 되는 양 의자위에 올라서서 FM과 막걸리를 대야(사발도 아니다)채 원 샷 하도록 강요받았던 새내기들은 비로소 강요한 선배와 똑같은 모습의 ‘고대인’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이들도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되지 않느냐’는 변명과 함께 다음 해 과실의 달력에 큼직하게 사발식을 그려 넣는다. 대대로 재생산되면서 점점 커져만 가는 그 패거리 동류의식은 놀라움을 넘어서서 무섭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러한 획일적인 정체성과 공통의 가치규범으로 유인하는 ‘고대인이 된다는 것’의 매력이 궁금해진다.


‘학벌’이라는 가면


내적 발로로부터 발산되는 정체성이 차단당할 수밖에 없는 12년의 입시 전쟁을 치른 이들에게 각자의 인격과 개성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몽달귀신마냥 몰개성한 이들의 얼굴은 국가나 민족과 같은 집단의 가면으로 덮어지기가 쉬울 것이다. 월드컵과 고연전의 공통점은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삶을 스스로 이끌어 가는 눈곱만큼의 주체성도 없이 비정규직으로서 하루하루를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기계처럼 노동하고, 미디어에 의해 조작되는 욕망에 의해 강요받은 대로 소비하며, 매 순간 부딪치는 인간관계마저 경제적 계급에 따라, 학벌과 동류집단에 따라 타산적인 관계로 조작당한 이들, 한마디로 ‘주물’된 인격들에게 집단이라는 가면은 ‘그래도 나는 살아있다’고 자위하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고대인’이라는 가면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계산대 앞에서 자랑스럽게 하나은행 학생증 카드를 내미는 쾌감을 또 어디에서 느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쾌감은 혼자 즐기면 치졸한 생색이지만, 모두가 함께 즐기면 아름다운 문화가 된다. 경쟁이 습관처럼 굳어진 이들에게 남을 밟고 일어서는 그 쾌감이 FM과 사발식, 거리 응원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체계적인 정체성 강요의 결과는 절대로 학생증 카드를 내밀고 나서의 단순한 쾌감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명문대생을 연예인쯤으로 바라보는 계산대 너머의 점원과 나 사이의 확고한 위계와 그 관계의 불편함. 그것은 학벌사회가 맺어준 관계망에서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일 것이다. 그리고 엘리트주의의 피해자는 여기에 편승하지 못하는 ‘비(非)엘리트’뿐만이 아니다. ‘고대인’이라는 조작된 정체성을 강요받아 학벌사회의 경쟁논리에 던져지고, 또 그 그릇된 위계를 강화하도록 규정된 고려대학교에 입학한 모두에게서도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역설적 지위가 부여된다.


모두가 자신의 인격과 개성을 잊고, 각각 고대와 연대의 가면으로 스스로를 대신함으로써, 한국사회의 최상위집단으로 한데 뭉쳐진 오늘, 고대의 붉은 가면과 연세의 파란 가면이 내게는 월드컵 때 사방을 도배했던 태극마크로 보인다. 학창 시절 교실에서 학생들을 감시했던 태극기의 권위처럼, 초일류 사립대 간의 각축은 엘리트 의식과 권위주의로 무장한 엄청난 위압감으로 다가온다. 국기에 대한 경례라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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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주술 FM


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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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고전 시즌, 신촌입구에 연세대학교 응원단이 걸어놓은 현수막. 《(문구) 고대! 연대로의 편입의 길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해리포터도 입시에서 주르륵 미끄러지고 만 마법학교가 이 땅에 있다. 거짓말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호그와트도 이래저래 한 수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사립 마법학교 ‘카이(KY)’… 물론 처음 듣는 이름일 수도 있다. 맨 앞의 ‘스(S)’가 스르륵 떨어져 나가 꽤 낯설게 보이니까.


그런데 마법영재 해리는 어떻게 마법학교 ‘카이’ 입학을 거부당하고 재수 없게도 재수(再修)의 길을 걷게 됐을까? 하기야 조실부모(早失父母)하고 계단 밑에 엎드려 사는 천덕꾸러기 해리가, 사교육 마술 없이는 결코 통과할 수 없다는 통합형 마술(논술) 입시의 덫을 어찌 재능만으로 넘어설 수 있었겠는가? 인문 마술학부 대기번호 96번을 가까스로 받았는데 안타깝게도 91번까지만 행운의 여신과 입맞춤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해리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카이’의 9와 3/4 승강장을 두드리고 또 두드릴 것이다. ‘카이’는 다르기 때문이다. “Look KY. It's different." 글로벌 흐름에 맞춰 마법도 영어로 배우고, 커피 한 잔을 마셔도 꼭 별 다방 커피만을 마시니까.


학교에 들어간 새내기는 가장 먼저 선배로부터 공감주술(sympathetic magic) FM을 배운다. 어쩔 수 없이 설명 들어간다. 공감(共感)이란 타인의 사고나 감정을 자기 내부로 옮겨 넣어, 타인의 체험과 비슷한 심리를 만드는 일이다. 공감의 대상과 나 사이에 차별이 존재하는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심리적 동일성을 경험하려 하기 때문에, 일체화나 동일화와는 다르다. 한 마디로 공감하려는 타인과 나 사이에 위계가 있다는 말이다. 주술은 어떤 행위를 바르게 흉내 내면 그에 걸맞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닮은 것은 닮은 것을 낳고, 흉내 내면 어떤 일이 그대로 반드시 실현된다는 사고 형태다.


새내기는 아무 생각 없이 선배가 시키는 대로 고래고래 소리치고 몸짓도 크게×3 주문을 외치는 게 좋다. 대략 난감해도 대략 공감이라도 해야 한다. 이 간단한 주술만 제대로 익히면 그 뒤로는 순탄하게 마법 졸업장을 손에 쥘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헤르미온느와 같은 성별을 지닌 새내기는 에로틱 FM 주문을 외우면 더 큰 편애를 받을 수 있다. 자칫 가장 작은 것을 소홀히 하거나 거부하다가 자신이 앞으로 누릴 모든 달콤한 권리를 잃을지도 모른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하지 않는가. 12년의 고통을 생각해서라도 부디 게임으로 즐기시라.


이것만 통과하고 나면 귀찮기는 하지만 꼼꼼히 챙겨주기만 하면 되는 학점주술 밖에 배울 게 없다. 그러면 늙어 죽을 때까지 무한대의 학벌주술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으니까 걱정 마시라. 호그와트처럼 거추장스러운 마술 지팡이 따위는 필요도 없다.


그런데 솔직히 나 같이 천한 머글이 보기에는 그 마술이란 것들이 이해가 안 되고 오해가 오며, 이상한 게 아니라 요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거 뭐 마술도 아니고….’ 부디 고귀하신 마법사들께서 머글의 헛소리를 너그럽게 들어주시기 바란다.


87년, 허접한 머글 학교의 새내기였던 나는 영광스럽게도 마법학교 ‘카이’의 ‘퀴디치 경기’인 셈인 ‘카이전(고연전)’의 뒤풀이에 초대받았다. 빗자루 대신 새하얀 고무신을 신고 나타난 친구 녀석을 따라 안암골로 간 나는 그날 요단강 강물 대신 막걸리로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끝도 없이 이어지는 K와 Y 양쪽의 FM 주문에 귀가 멍멍하고 그들의 광기에 타자로서의 두려움이 밀려왔다. 어떤 권위나 동질화의 논리도 의심하고 거부하던 나였지만, 자리를 지킨 건 그냥 공짜 술이 더 좋아서였을까? 결국 누가 그리핀도르인가를 놓고 K와 Y 사이에 패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경찰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가지고 있던 나는 꼼짝없이 친구와 한 패로 몰려 안암경찰서에 끌려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머글 출신의 경찰이 웃음기 띤 몇 마디 잔소리로 훈방 처리! 경찰서에서 나온 그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시 막걸리 집을 찾아 끈적끈적한 우애를 다졌다. 역시 마법의 힘은 위대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FM주문도 짤막해지고 귀엽게 바뀐 것 같다. 특히 주문 앞머리의 ‘자유 민주’가 ‘통일’이 되고, ‘민족’은 여전히 ‘민족’이라는 게 눈에 띈다. 현재는 자유와 민주가 이뤄진 상황이라 통일이라는 구호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일까? 마법사들의 말처럼 이 땅에서 자유와 민주가 이뤄졌을까? 10,000,000 비정규 머글에게, 입시 앞에선 인권도 없는 청소년 머글에게, 가부장제 아래서 살아남기 위해 화장 떡칠하고 살 빼고 성형해야 하는 여성 머글에게 자유와 민주가 오롯이 왔을까? 통일을 사라져버린 구닥다리 ‘통일호’ 열차쯤으로 여기는 젊은 마법사들이, 자기 이름에 앞서는 정체성으로 그것을 내세운다니 믿을 수 없다. 또 'Global KU'에서 쑥스럽게도 변함없이 민족이 들먹여지고 있다. 설마 아직도 단일민족이라는 초글링 개념을 포기하지 못한 것일까? FM이 학생운동의 잔영이라면 이제는 모든 ‘카이’가 이른바 ‘운동권’ 된 것인가?


당신은 선배의 이름으로 후배에게 FM주술로 무엇을 가르치려 하는가?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 모진 순응(수능)시험을 보고, 그 지긋지긋한 12년을 떨쳐내려 하는 새내기에게 당신은 웃으며 ‘야전 수칙’을 들이민다. 누구도 시스템으로부터 탈주할 수 없다. 이곳은 마법 학교다. 위계질서를 체화하고 자유를 꿈꾸지 말 것. 그러면 새장 째로 날아가는 자유로운 새가 될 수 있다. 대학 역시 폭력과 경쟁밖에 없다. FM으로 기를 팍 죽여서 머글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라. 그러니 이왕이면 서로 웃으면서 코미디 클리셰에 충실하면 어떠하리.


사실 진짜 코미디는 하늘 위의 하늘 ‘스(S)’는 FM주술 같은 2류 마법은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들이야말로 순응(수능) 1%의 순수 혈통이고, 대기번호 따위로 들어가는 곳이 아닌 교활하고 뛰어난 슬리데린이니까. 오두방정 떨며 주문을 외우지 않아도 경천동지할 흑마술 정도는 써야 머글을 지배할 진정한 마법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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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없는 사회를 바라보며, 연고전 담장 부수기!

 

학벌없는사회

 

"9월은 내게 있어서 정말 신나는 날이다. 한 해 동안 갈고 닦은 응원실력을 우리들과 비슷한 그들과 함께 겨뤄볼 수 있고, 서울 안암/신촌골 거리를 활보하며 우리들의 단합을 보여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거 생각만 해도 신나는 걸?"

 

올해도 어김없이 9월이 찾아왔습니다. 연세대 고려대 학생들에게 9월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정기 고연전’일 것입니다. ‘필승! 전승! 압승!’의 슬로건으로 벌써부터 그들은 크게 들떠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응원단들의 연습소리가 끊이질 않고 학생들의 입에는 올해 고연전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이렇듯 고연전은 9월의 즐거움으로 자리 매김 되어 있는 듯합니다.

 

고연전에 대한 소고
 

가을은 식욕의 계절, 독서의 계절, 그리고 소위 ‘2만 고대인의 축제’인 고연전의 계절입니다. 고연전이라는 축제는 고대의 문화 중에서 규모로 보나 영향력으로 보나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입니다. 그만큼 많은 학생들이 참여를 하고, 또 즐기는 행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고대의 '최고'의 문화가 과연 지금까지 어떤 모습이었는지 생각을 해봅니다. 기존의 남성중심적인 고대의 문화토양에서, 고연전은 그것을 뒤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아니라 오히려 그를 주도하고 이끌어가는 자리였습니다. 야성과 패기의 이름 아래 진행되는 '격렬한' 문화는 여성들에 대한 동의와 배려 없이 진행되는 문화입니다. 그 틈에 끼어 자신의 주장을 밝히지 못했던 많은 여학우들의 역사가 바로 고연전과 고대의 문화의 역사입니다.

고연전, 연고전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축제는 순수하고 순결한, 단순한 축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대 사학’이 매년 자웅을 가리기 위해서 5개의 운동경기를 벌이고, 그것을 학생들이 응원하는 행사는 말 그대로 고대와 연대 어느 쪽이 잘났는지 밝혀내기 위한 상징적인 싸움입니다. 마치 한일전과도 유사한 모습을 띠는 이 경기는, 하나의 전제하에 이루어집니다. 

 

이 전제는 바로 '학벌 라이벌'이라는 전제입니다. 매년 연대에서 연고전을 하지 말자고 주장이 나오는데, 이 주장 중 하나가 '수준 이하의 고대와 라이벌로 비추어지면 연대의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소위 최고위급 학벌을 가지고 있는 SKY에게만 열을 내고 즐길 수 있는 고답(高踏)적인 농담이겠지요. 고연전은 고대와 연대를 홍보하고, 그들을 다른 대학과 차별하기 위한 학벌주의적인 멋진 기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대안 없는 비판? 대안을 모색하는 안티고연전!

 

하지만 자신은 축제를 너무 좋아하고, 그래서 고연전이 너무 좋다는 학우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학교의 운동경기를 편 갈라서 응원하는 행사인 고연전. 학교의 색을 상징하는 티셔츠를 입고, 자신의 학교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응원. 뜯어보면 획일적이고 몰개성적인 이 문화가 고대의 일 년의 최대의 축제라는 것은 안타까운 면이 있습니다. 축제는 좋습니다. 그런데 축제는 더 다양한 모습으로 다른 형태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존재해 왔던 문화가 아니라 각자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내는 축제. 

 

위와 같은 고연전의 문제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고연전을 다양다각으로 비판하며 그 대안이 될 수 있는 문화를 모색해보자 <교육생각 기획>기사로 실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매번 문제제기 되고 있지만, 강행되고 있는 일제고사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되짚어 봤습니다. 글을 읽고 하시고 싶은 말씀이 생기신 분, 편집일꾼에게 꼭 한 마디 해 주고 싶으신 분, 관심이 생겨서 같이 해보고 싶다는 분, 응원할 테니 열심히 해달라고 해 주실 분. 이 모든 사항들에 해당되시는 분들과 함께 학벌없는사회를 위해 오늘도 힘차게 달려 나갔으면 합니다. 자,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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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자발적 대학교 퇴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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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있자 지나가던 학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글을 읽고 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25년 동안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친구들을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가는 친구들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채찍질 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다시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시작될 것이다. 이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다. 국가는 의무 교육의 이름으로 대학의 하청 업체가 되고,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에 '인간 제품'을 조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하청 업체가 되었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돌입한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우리들 20대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그러나 동시에 이 체제를 떠받쳐 온 내 작은 탓을 묻는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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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고형준 (학벌없는사회 광주모임 상근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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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수능시험날,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수능거부 일인시위를 하는 학생

우리의 삶은 학벌 문제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까? 대학의 경쟁을 넘어 대학원, 석사, 박사과정을 밟는 사람들, 토플시험을 보겠다며 매일 인터넷 앞에서 죽치고 있는 사람들, 자격증 시험으로 가득 찬 약속과 밀린 과제물,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과외들. 우리 모두는 안정적인 삶을 위한 무한경쟁의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학벌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양심적 삶을 회피하고 있는 건 아닌지, 여기서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어린 시절

어렸을 때 아버지는 한 증권사 간부로 일하셨다. 아버지의 수입을 통해 우리 가정은 '평범하게' 살았고, 직장 서열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통해 친척들에게 부끄럼 없이 살아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장기간의 병원 입원과 통원치료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두게 됐고, 집을 팔아서 벌였던 사업은 잘 안 돼 결국 가족이 모두 단칸방에 의지하며 살게 되었다.

내 삶에서 가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왜 우리 가정은 '가난'이라는 불편한 삶을 산 지 10년이 넘었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왜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일 같이 돈 때문에 싸우실까? 부모님은 하루도 안 쉬고 밤늦게까지 일하는데도 왜 우리 가정은 지금까지도 가난한 걸까? 왜 나에게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라고 하는 걸까? 이젠 그 답을 알게 되었지만, 그 시절 내게 던졌던 질문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됐을까 의문이 든다.

일탈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초등학교 때 몰랐던 '좋은 학교'란 개념을 알게 되었다. 그 '좋은 학교'는 지금도 강조되는 인문계 고등학교, 그리고 명문대(서울대·연세대·고려대)다. '좋은 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내 친구들은 학교를 마친 후 교복도 벗지 못한 채 운동장이 아닌 학원으로 향했다. 초등학생 시절 뜨겁게 먼지 날리며 공을 찼던 때는 이미 과거가 되었다. 어려운 형편에 다녔던 학원은 고작 한 달. 부모님 고생하는 미안한 마음에 내가 싫어 그만뒀다. 허나 소외되지 않으려, 몸부림치며 교과서로 공부했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처럼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특수목적고 진학도 어렵지 않았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현실적 조건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고민 중 하나는 돈이었고, 두 번째 고민은 진로였다. "우리의 가정 형편으로 대학은 갈 수 있을까?", "좋은 학교 보내려고 내 삶의 일부를 부모님이 책임질 필요가 있나?" 등과 같은 고민 끝에 결국, 전자공고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부모님과 담임선생님은 그냥 평범하게 살라며 나를 달랠 뿐이었다.

결국 끌려가다시피 진학한 인문계 고등학교는 입시 사육장과 같았다. 암기를 강요하고, 공부 잘 하라고 용의복장을 단순화하고, 담장 밖에 나가지 말고 말 잘 들으라며 수시로 체벌을 가했다. 용돈을 벌기 위해 새벽에 하던 신문배달도 잠시, 멋지게 보이고파 머리도 길러보지만 그것도 잠시, 오직 학교는 승자를 기르기 위한 수용소 3년의 시간일 뿐이었다. 학교 밖을 벗어나 일탈도 해보았지만, 잠시 내 마음을 위로할 뿐 지속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다른 청소년들과 함께 중고등학생연합이란 단체를 만들어 학생인권과 교육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당연히 학교와 사회는 사회적 약자의 외침을 들어주기는커녕 단체 탈퇴를 강요했고, 수업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징계위원회까지 생겼다. 학생들의 양심적 목소리에 교사들의 권력과 폭력은 더 심해졌다. 교사들은 학벌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뤄 결국 교사가 되었지만, 그들에게 학벌은 그저 또 다른 권위와 강자가 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그래서 난 스스로 강자가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학벌주의에 대한 문제제기, 대학 진학 거부

실업계 학생이든 인문계 학생이든 고3 수험생이 되면, 대학 진학을 한 번쯤 고민하게 된다. 나 역시 사회 경험을 통해 사회단체의 활동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고, 'NGO대학'이라 불리는 성공회대 진학을 고민했다. 하지만 수능 시험이 치러지던 날, 어머니께서 싸주신 도시락을 들고 걸어간 곳은 고사장이 아닌 시교육청. '대학 평준화'를 주장하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며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를 거부하는 나의 양심에 따라 대학 진학 거부를 표현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말했다. "1인 시위 한다고 세상이 바뀔까? 세상은 학벌사회야.", "나중에 결혼해서 애 낳고 후회하지 마라." 그러면 난 이렇게 대답한다. "난 떳떳하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남들과 마찬가지로 행복하게 살 거야!"

단순히 나 혼자 행복하게 살겠다며 시작한 대학 진학 거부였다면 시작도 안했을 것이다. 나 혼자만의 삶으로 치부하기엔 우리 주변엔 치유하지 못한 아픈 과제들이 너무 많다. 매일같이 시험에 쫓겨 사는 학생들, 그 시험제도의 낙오자가 되거나 성적을 비관하며 자살하는 학생들…. 우리는 일상에 쫓겨 아픔을 느끼지 못할 뿐, 너무나도 아픈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해 왔던 청소년 인권운동과 교육운동들이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이 행복해지기를 바랐기 때문에 학벌주의를 거부하며 시작한 나의 대학 진학 거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청소년인권운동, 학벌없는사회운동과의 끈도 놓치지 않고 지속하고 있다.

주위 사람들과 학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면 항상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지"라는 말로 정리가 된다. 현실에서 자신의 몫을 챙기면서 학벌 문제에 대해 반대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자기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변화가 없을 경우, 세상은 아무 것도 진정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난 학벌주의의 문제에 대해 지적하며 대학 진학을 거부한 나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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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빈 (서울 이화여고를 사직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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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부조리에 당당히 맞서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일상의 작은 비위는 물론 거대 권력과 자본도 개인 차원에서 거부한다. 불이익과 불편이 따르지만 신념을 버리지 않는다. ‘달걀로 바위치기’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결국 승리한다.

경비행기 조종을 취미로 가진 진중권 선생이 내년에 필리핀으로 비행기 여행을 떠난단다. 그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훌쩍 어디로 향할지 모르지만 아무튼 MB정부가 끝나는 3년 동안은 돌아오지 않겠단다. 나로서야 비행기 여행, 세계 여행 따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그가 부럽다. 그의 용기도 부럽고 그의 자유로운 영혼도 부럽다. 그렇다고 최근 중앙대,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의 자리에서 쫓겨난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인 그가 돈이 엄청 많은 것도 아닐 것 같다. 베스트셀러 작가, 명강사로서 인세와 강연료가 제법 될 것이 분명하지만 시민단체에서 받은 강연료는 진보신당에 기부한단다. 독일 유학 시절에도 한 달에 50만원으로 숙박을 해결하며 전시회나 여행을 다녔단다.

그의 소식이 담긴 신문을 읽다말고 서둘러 수업에 들어간다. 이제 한 달이면 교직 생활 십년을 채운다. 흔히 교직을 천직이라고 한다. 특히 사립학교는 ‘평생직장’으로 불린다. 평생직장이라니, 이 얼마나 끔찍한 말인가. 게다가 평생직장이라는 말에는 “평생 밥벌이할 수 있게 해 줬으니 고맙게 생각하라”, “평생 얼굴 보고 살 사람끼리 얼굴 붉히는 일 없도록 하자”는 식의 지긋지긋한 이데올로기의 울타리 안에 교사의 사고와 행동을 가둬놓기도 한다. 그 속에서 문제제기라도 하려고 든다면 곧장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라는 말이 들리지 “절이 싫으니 주지 스님을 바꾸자”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그 말 속에는 “용기 있게 떠나지도 못하면서 까불지 말라”는 의미까지 담겨있다.

십년을 한 학교에서 보냈다. 애당초 이 학교가 ‘평생직장’일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다만 이 학교가 교육활동을 실천할 소중한 ‘현장’이라는 생각을 버린 적도 없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 격인지는 몰라도 지난 십년간 참으로 많은 땀과 눈물을 이 현장에 뿌렸다.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울며 사랑을 주고받았다. 부당한 학교 현실에 저항하다 험한 꼴을 당하기도 했고 때로는 작은 성과에 축배를 들기도 했다. 교과서와 입시를 뛰어넘는 새로운 수업을 시도하며 웃음과 감동이 넘치는 교실에서 행복을 느꼈다. 하나하나 성장하며 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 곁을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눈물겨운 헌신과 투쟁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정부는 학교가 과연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하고 있고, 학교들은 서로 누가 더 나쁜 짓을 하는지 내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제 학교 안에서는, 학교를 바꿀 동력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교조 운동의 위기도, 전교조가 그 동안 끊임없이 연대 사업을 강조해 온 것과 무관하게, 전교조 운동이 실제적으로는 ‘학교 안’, 혹은 ‘조합원 내부’에 머물렀기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학교 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학교조차 바꿀 수 없는 시기가 분명히 온 것 같다. ‘학교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학교를 바꾸게 되는 것이 아니나 나 자신이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

내년부터 우리 학교는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된다. 한창 신입생 모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 요즈음, 여전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이 버젓이 일상의 풍경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일반인의 상식이나 교육자의 양심으로서는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것들이 ‘생존’이라는 명분 아래 정당화되고 있다. 이른바 명문대 진학에 유리한 코스를 선점한 학생들의 욕망과, 이른바 명문고로 도약하기를 바라는 교사들의 욕망과, 세 배 이상 되는 등록금의 본전을 뽑으려는 학부모들의 욕망이 들끓는 그 곳에서, 내가 학교를 바꾸게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바뀌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과연 내가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도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종의 망명이다. 지금은 자본이 인간을 전면적으로 식민지화해버린 시대이다. 학벌체제는 그것의 하수인이다. 예전 같으면 두만강을 건너서 망명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문익환과 윤동주의 선조들이 그랬듯이 명동촌을 일구고 거기 학교를 세우고 식민지 반도와는 다른 자유로운 교육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국경을 넘어 망명할 곳은 없다.

그렇다면 오직 내부로의 망명이 있을 뿐이다. 내부로 망명한다는 것은 체제 내에서 체제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안병무의 선친은 창씨개명하지 않는다고 시비를 거는 일본형사에게 일본 헌법에 창씨개명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지 물어 형사의 말문을 막았다. 어느 시대에나 내부에서 망명할 통로는 있다. 자기에게 정직하고 외부의 억압에 저항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것,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 이것이 내부에서 망명하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망명은 스스로 낙오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낙오자가 아니라 ‘스스로’라는 자발성이다. 낙오한다는 것은 무능력의 표현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선택을 가리킨다. 게다가 모두가 현존하는 질서에 순응하고 있을 때 먼저 낙오하는 사람은 그 행위를 통해 낙오하면서 선구자가 되는 것이다. 생각하면 올바른 사회에서 낙오한다는 것은 불행하고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물구나무 선 사회에서는 거꾸로 성공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 것이다.

- 김상봉, <내부로의 망명 또는 낙오자 되기> 중에서

 

‘망명하기’ 또는 ‘낙오자 되기’를 상상해 본다. 그리고 망명지로 떠나는 출발점은 학교가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임을 확인해 본다. 학교에 붙어 있으려고만 한다면, 학교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러다 무슨 일이든 하게 된다면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다. 그래서였을까. 김상봉 선생님은 어느 강연에서 “교사는 늘 안주머니에 사표를 넣어놓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내 나이 마흔, 학교를 그만두면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상상해 본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여행이다. 그렇다고 진중권 선생처럼 삼 년씩이나 비행기 여행 같은 것을 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은 봄이 시작되는 섬진강이다. 그 시기는 학교에서 일 년 중에 가장 바쁘다는 삼월이다. 학교 안에 있다면 결코 가볼 수 없는 곳이다. 나는 산수유와 매화 꽃망울이 터지는 섬진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이 김용택의 시를 가르쳐 왔고,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 본 적도 없이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가르쳐 왔다.

다음으로 가 보고 싶은 곳은 대학 도서관이다. 40대의 나이에 영국의 대학 도서관에 처박혀 자본론 원고를 집필했던 마르크스와 같은 삶은 감히 흉내조차 내기 어렵다. 그저 오래된 책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서가에 처박혀 하염없이 빈둥대고 싶다. 이제는 한갓 대학 입시를 위한 스펙 쌓기로 전락한 독서가 아닌, 독서 그 자체가 주는 무상성의 즐거움을 나부터 누리고 싶다. 책읽기가 지루해지면 햇볕 따뜻한 대학 교정을 거닐며 싱그러운 젊음들을 마냥 부러워하고 싶다.

공부도 하고 싶다. 요즘 각종 단체마다, 지역마다 인문학 공부가 유행이다. 철학아카데미, 풀로엮은집, 한겨레문화센터, 민예총, 참여연대, 마들연구소 등에서 진행하는 좋은 강좌가 널려 있다. 그 동안 여기저기서 만나봤던 강사들은 홍세화, 하종강, 노회찬, 심상정, 강수돌, 김어준, 한비야, 강풀, 한홍구, 강정구, 김상봉, 진중권, 김규항, 김진혁, 신영복, 조세희, 권인숙, 정태인, 고미숙, 송순재, 고병헌 선생님 등이다. 아직 만나보지 못했던 박노자, 박원순, 정재승, 우석훈 선생님 등의 강연도 꼭 듣고 싶다. 시간을 내서 인내심 있게 공부해야 할 현대 철학, 나에게 너무나 취약한 분야인 경제학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

취미 생활도 하고 운동도 해야겠다. 요즘 한창 재미를 붙이고 있는 플루트 연주 실력을 수준급으로 높이고 싶다. 어쩌면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가입하게 될지도 모른다. 클래식 기타쯤은 곁들여 배워도 좋다. 자전거 타기 외에는 운동에 별 관심이 없으니 춤을 추면서 뱃살을 빼야겠다. 학교 축제 때마다 아이들을 비명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어설픈 춤 실력을 제대로 갈고 닦아야겠다. “내가 춤추지 않으면 혁명이 아니다”는 슬로건도 있던데, 춤이라는 몸의 언어를 마음껏 구사해 보고 싶다.

그런데 사람들이 내가 이렇게만 살도록 놔두지 않을 것만 같다. 나 혼자 행복하게 사는 꼴을 못 보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당장 내년에는 지자체 선거, 교육감 선거가 있다. 그들은 얼씨구나 하면서 나를 선거운동 판으로 끌어들일 것이 분명하다. 그래, 작년 교육감 선거의 분풀이를 해야겠다. 저들은 전교조 조합원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주경복 후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논의했다는 이유만으로 8명의 교사에게 해직에 해당하는 벌금형을 선고했다. 좋다. 이제 교육공무원이라는 거추장스런 옷을 벗었으니 선거운동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 내친 김에 진보신당에도 가입을 해야겠다.

그 동안 인연을 맺었던 시민사회단체, 지역운동단체에서도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당장 ‘은평 학부모 네트워크’에서 학부모 교육을 진행할 텐데, 학부모와 현장 교사들의 시간이 서로 맞지 않아서 어려움이 많다. 교육운동을 경험했던 현장 교사가 놀고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조건이 어디 있겠는가? ‘마포 민중의 집’에서도 늘 전교조에 지역 청소년 사업을 같이 하자고 제안을 해 왔으나 그 사업에 함께 하지 못했다. 밀양에서 전교조 사업에 지역 운동까지 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이계삼 선생은 아예 나더러 밀양으로 내려오라고 꼬드긴다. 전국국어교사모임은 한 수 더 뜰 것이다. 지역을 돌아다니며 소모임 관리도 하고 연수도 진행하라고 시킬지도 모른다. 학교 그만두면 더 바빠질 것이 분명하다.

‘학교 밖’에서 무슨 일이든 해 보고 싶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 ‘행복한 낙오자’가 되어 ‘학교 안’과 ‘학교 밖’을 연결하고 ‘내부 망명지’를 확장하는 길을 발견하게 된다면 결코 나의 선택이 후회스럽지는 않게 될 것이다.

“그럼 앞으로 뭐 먹고 살 거냐?”는 질문이 당장 나올 것이다. 교직생활 십 년 퇴직금이면 삼 년 정도는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 싱글이라는 조건이 얼마나 감사한지. 설마 삼 년 후면 (그 때면 적어도 MB 얼굴은 안 보게 된다) 무슨 방법이 생기지 않겠는가? 교회를 다니지 않는 나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는 성경 구절을 참 좋아한다.

만약 충분히 놀고 충분히 공부하고 충분히 온갖 일을 벌이다가 다시 학교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 때 다시 들어가면 된다. 임용고사 나이 제한도 없어졌다. 섬진강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나는 김용택의 시를 실감 나게 가르칠 수 있게 될 것이고, 지리산 둘레 길에서 하염없이 빈둥거리던 나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대학 도서관에 처박혀 독서의 무상성을 맛본 나는 아이들에게 진정한 독서의 즐거움을 일러줄 수 있게 될 것이고, 온갖 인문사회학의 세례를 받은 나는 아이들에게 이 시대의 진정한 교양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게 될 것이다. 음악과 춤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진 나는 아이들에게 지금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대안교육의 상상력으로 공교육에 충격을 줄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르고, 지역운동과 풀뿌리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운동론으로 현장주의, 대중추수주의의 함정에 빠진 전교조 운동에 새로운 활력소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상상’만으로도 나는 이미 ‘내부로의 망명길’에 오른 셈이다. 설사 학교 현장에서 매일 같이 어처구니없는 일에 부딪히며 너저분한 일상을 반복하더라도 유쾌한 상상의 힘은 다시금 나를 추스르게 될 것이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실제로 망명길을 떠날지 아니면 여전히 현장을 지키며 고군분투 할 것인지, 나의 선택은 끝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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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원 (조선대학교 강사,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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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 광주시당 위원장 윤난실 씨가 지난 1월19일 광주광역시의회 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광주 시립대학 전환을 제시하고 있다. 학벌없는사회 광주모임(준)도 5월초 조선대학교 구성원과 시민사회단체에 조선대 공립화를 위한 시민모임을 제안했지만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호남의 대표 사학인 조선대가 교육과학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정이사(正理事) 선임 강행으로 내홍을 앓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다시 장기적인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조선대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도 커다란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조선대는 단순한 하나의 사립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대는 해방직후, 각계각층에서 72,000여 명의 인사들이 국가를 건설한 새로운 인재를 지역에서 양성하자는 대의에 동의해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성의를 모아 설립한 민립대학이다. 그러나 설립자 중의 일인이었던 구 재단의 고(故) 박철웅씨가 재단을 사유화하고 전횡을 휘두르면서 학교운영이 파행을 거듭했으며 결국 1988년 1월 8일 학생들의 100여일이 넘는 투쟁과 뜻있는 교직원들의 노력으로 고(故) 박철웅씨가 재단에서 물러나면서 정상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구 재단 측은 이후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학교를 다시 탈취하려고 했지만 법에 의해 그리고 학교의 정상화 및 민주화를 추진하던 모든 이들에 의해 거절당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선대가 20여 년의 관선이사 체제를 끝내고 정이사 체제로 전환하려던 시점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으며, 새로 집권한 정부의 친자본적 경향에 편승해 구 재단은 학교 본부, 교수평의회, 교직원노조, 학생회 및 민주동우회를 포함한 동문 등 거의 모든 관련단체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단이사의 선임에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교과부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동의하에 새로운 이사진에 구 재단 관계자들을 포함시키는데 성공했다.

결국 조선대의 대다수 구성원들이 교과부의 결정에 반대하고 새로 구성된 정이사 퇴진 투쟁을 전개하면서 조선대학교는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이미 학내 곳곳에는 재단이사진의 총사퇴와 구 재단 관계자의 학내 진입을 성토하는 표어로 가득 찼으며, 이로 인해 캠퍼스는 40여 년 만에 찾아온 이상기온처럼 스산하기만 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조선대가 단순한 하나의 사립대가 아니라 해방 후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수많은 민초들이 각자의 성의를 모아 설립한 민립대학이라는 점에서 동시에 거의 대부분의 졸업생과 재학생이 이 지역의 아들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조선대 문제는 단지 조선대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 지역의 문제이기도 하며, 따라서 조선대 구성원을 중심으로 모든 지역 구성원들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이미 조선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해법이 제시되어 있다. 일부 구성원들은 정상화를 위한 4대 원칙(설립정신계승, 구 재단 배제, 1.8학원민주화정신계승, 조선대의 미래지향적 가치충족)에 의한 정이사 재구성, 또 다른 일부 구성원들은 민립대학으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으며. 6월에 있을 지방선거에 출마한 한 시장후보는 조선대를 공립(시립)대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조선대 정상화를 위해 제시된 방안들이 모두 조선대 구성원들이 제시하는 ‘정상화 4대 원칙’을 수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는 문제는 학교를 운영할 자금과 발전을 위한 학교 운영을 위한 이사진의 구성이다. 조선대가 지금까지 내실 있는 운영으로 학생들의 등록금만으로 학교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일정 규모의 기금을 조성했지만, 학교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지금 조성된 기금의 규모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중앙대학교의 파행적인 운영에서 보듯이 거대 자본을 재단으로 영입하는 것도 옳지 않다. 동시에 현재의 사립대 재단이사 구성에서 교과부가 승인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구성원들이 주장하는 4대 원칙에 부합하는 이사진을 구성하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바로 이런 이유들로 인해 조선대의 공립화가 적절한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대를 공립화하면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확신한다. 첫째, 모든 구성원들이 염원하는 민주적 이사진을 구성할 수 있다. 사립학교법이 존재하고 있는 현재 구조 아래에서는 조선대의 모든 구성원을 만족시키며 설립이념을 구현할 수 있는 민주적 개혁적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히 조선대 문제에 대해 피상적 이해만 갖고 있는 교과부가 이사 구성의 전권을 행사하는 한 조선대 구성원들이 주장하는 4대 원칙을 견지할 수 있는 이사진을 구성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다음 정부에서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학교운영 전반에 대한 막강한 권한을 가진 이사가 되기 위해 이런 저런 적절치 못한 사람들이 교과부 또는 정치권을 통해 이사로 임명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조선대를 시립대로 전환한 뒤 광주시 산하에 ‘시립대학 운영위원회’를 설치하고 대학에 대학 깊은 이해를 갖추고 있는 지역 출신의 구성원과 동문, 전문가, 시민단체 인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이사진을 구성하여 상호 비판과 견제가 가능한 이사진을 구성하고 독립적인 운영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지자체가 조례로 이를 보장한다면, 지원과 운영이 확실하게 분리되어 대학의 독자적이고 자율적 운영을 보장할 수 있다.

둘째, 등록금을 인하해 지역 인재의 역외 유출을 방지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 현재 광주/전남 지역의 중·고 수준은 전국 상위권에 속하지만 우수학생 상당수가 수도권으로 진학하고 있다. 우수한 인재들이 대부분 지역 밖으로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조선대를 시립대로 전환해 국립대 수준으로 등록금을 낮춘다면 우수한 인재들이 지역에 남도록 할 수 있다. 특히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자체의 공무원 임용규정을 활용해 시립대 출신의 훌륭한 인재들을 채용하고 이들에게 고향의 발전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효과는 더울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인재 확보와 지역사회 발전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 지자체의 재정능력에 우려를 표명하는 견해가 있지만, 지역교육에 한해 380억 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이 정도의 예산은 연말마다 반복되는 멀쩡한 보도블록 갈아치우기나 불필요한 토건사업 한 두건을 줄이는 것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정이사 선임 문제로 다시 점화된 조선대 정상화 문제가 다시 장기화 된다면 가장 직접적으로는 학생들에게 그리고 학교 구성원들과 이 지역에도 적지 않은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방식으로는 이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어려워 보인다. 공립화라는 단어가 조금은 낯설고 쉽지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합의만 이룰 수 있다면 일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모든 구성원들과 지역민들의 적극적이고 대담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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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고형준 (학벌없는사회 광주모임 상근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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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광역시학생인권조례제정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지난 5월 20일 광주 YMCA 백제실에서 ‘학생인권조례제정 등 학생인권복지신장 정책협약식’(이하 정책협약)을 가졌다.

요즘 한국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금도 인간답게 살기위해 희생해야 하는 어려운 현실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하나의 주체들이 있다. 바로 ‘청소년’이다. 한국사회 청소년은 과도한 입시경쟁교육 시스템과 열악한 사회 환경 속에서 고통 받고 있지만, 누구도 그들의 삶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늘 그렇듯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그저 청소년 개인의 나약함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고만 있다. 이 처절한 경쟁과 열악한 사회조건 속에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힘들어 해야만 세상은 알아줄까.

특히 광주는 수능성적 1위의 허울아래 감춰진 교육청 청렴도 2년 연속 전국 최하위, 청소년 자살률 1위, 사교육 시설 증가율 전국최고, 지자체 교육복지 투자 예산 전무(교육복지투자우선지원사업 중 해당 부문 최하위 평가) 등 청소년의 삶이 매우 심각한 지경에 처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경쟁교육에만 치중하고 있고, 지자체는 청소년의 행복한 삶의 공간으로서 지역사회가 가지는 의미를 간과하고 있는 실정이다. 삶의 주요 의제들이 대두되는 선거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투표권이 없는 청소년들은 여전히 소외되기 일쑤고, 그러한 냉정한 정치적 이해득실의 판단으로 인해 교육․청소년 정책은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 학생인권은 물론 노동, 빈곤, 장애, 성차별, 가정형태, 국적 등 사회지원이 절실한 청소년들을 위한 정책까지 외면 받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 같은 시대적 급박함과 요구의 절박성에 출발하여, 뜻있는 청소년활동 단체와 개인들이 광주지역 청소년들이 보다 평등하고 행복한 삶을 만들기 위해 서로 긴밀히 연대가 필요하다. 경쟁과 보호의 논리로 청소년 권리증진과 지원 축소를 당연시하는 시각을 바로잡고, 올바른 교육․청소년정책이 실현될 수 있도록 건전한 비판과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145만 시민들과 함께 학생․청소년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청소년인권조례’. ‘학생인권조례’, ‘교육복지조례’ 등을 지방자치의 주된 의제로 다시 회복시켜 광주가 ‘청소년이 행복한 도시’로 재탄생하도록 시민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단위가 필요하다. 아울러 지역의 청소년정책을 연구하고 광주지역 다양한 인적․물적 자원을 연계하여 삶의 공간인 지역에서 복지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최근 광주학생인권조례 추진위에서는 광주지역 청소년의 다양한 권리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를 구하고 참여와 협력을 통해 대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청소년정책회의를 구성하였고 아래와 같은 의도로 시작하였다.

첫째, 청소년들의 실질적인 인권을 실현한다.

둘째, 지역사회 청소년들이 청소년 운동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권리의식과 참여의식을 확대한다.

셋째, 지역사회의 교육․청소년정책과 현안에 대해 연구 조사하여 정책 대안을 마련한다.

넷째, 지역사회 교육․청소년정책과 행정에 대한 감시 참여활동을 전개한다.

다섯째, 지역사회 청소년 관련 기관 및 단체, 학교와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정책운동의 역할

경기도 교육감이 진보세력의 상징이 되어 고군분투한 끝에 2010년 지방선거의 주요 의제로 ‘교육복지’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지자체 및 교육청의 수장을 준비하고 있는 대부분의 예비 후보자들은 ‘무상급식’을 공약화하며, ‘한정적 복지’를 기조로 하고 있던 MB 정부를 당황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이미 ‘보편적 복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은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제는 ‘복지권’을 통해 총체적인 청소년의 권리를 환기시키고, 그것을 보장하고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지방선거 공간에서의 수동적이고 개별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극복하고 청소년 관련 공약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청소년 단체와 교육운동 단체, 사회복지사, 교육복지가 등의 적극적인 개입이 요구된다. 위장된 중립적 개입이 아닌, 보다 공세적인 실천을 말이다.

이를 위해 광주의 교육․청소년정책을 만들 때 우선시 되어야할 점은

첫째, 청소년을 위한 정책을 발굴하고 홍보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둘째, 청소년 활동 및 인권증진과 교육복지 발전을 위하여 교육감 및 지자체장들에게 정책을 제안하고, 관철시키도록 해야 한다.

셋째, 시민들에게 청소년 활동 및 인권증진과 교육복지 발전을 위한 정책을 제시하고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장을 제공해야 한다.

넷째, 향후 제시한 정책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는 등 감시와 비판 및 견제의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

특히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각 정치세력의 향후 사회․정치적 기획을 가늠해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선거 공약에 대한 정확한 분석은 다음 선거를 대비하기 위해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선거 이후의 청소년 활동 및 인권증진과 다양한 청소년 조례운동의 기획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물론 정책운동은 전문가 지식, 자료조사, 충분한 검토, 경험 등 이 필요한 일이라 활동가 개인들이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광주지역 청소년을 책임지는 주체로서 청소년정책을 함께 발굴하고, 후보자와 시민들에게 제안함으로써 청소년이 행복한 삶을 형성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뜻 깊은 일이라면 사소한 질의이라도 지금 고민해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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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진태 (법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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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헌법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헌법이 죽어간다' 퍼포먼스를 진행하려 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KT 앞으로 이동해 진행하고 있다.

2010년의 한국사회는, ① 수능시험 잘 못 보고 자살할 수도 있는 사회, ② 각종 공무원시험이나 취직의 실패로 자살할 수도 있는 사회, ③ 육아의 사회경제적 여건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낙태할 수도 있는 사회, ④ 살인적인 노동 강도 때문에 목숨 걸고 ‘투쟁’ 끝에 자살할 수도 있는 사회, ⑤ ‘투쟁’ 안 해도 때로는 작업환경 자체가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는 사회, ⑥ 먹고사는 터전을 국가가 ‘개발’의 명목으로 매우 쉽게 제거할 수도 있고 농민들이 농약먹고 자살할 수도 있는 사회, ⑦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가 자살할 수도 있는 사회, ⑧ 속칭 ‘남들이 보기에 꽤 괜찮은’ 직장과 가정을 가진 사람들도 주식실패, 스트레스 등의 이유로 자살할 수도 있는 사회, ⑨ 돈도 있고 ‘먹고 살 능력은 있는’ 노인들도 자살할 수도 있는 사회, ⑩ 이동권을 보장하라면서 장애인들이 자살할 수도 있는 사회, ⑪ 그러면서도 ‘유색인종’을 무시하는 사회, 인 것 같습니다. (저는 종종 한국인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백인’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거북선은 누가 만들었나요?”

정답은 ‘이순신’입니다. 백 중 99는 이것을 ‘정답’이라고 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 이 잣대를 들이대면 달라집니다. 이를테면, 얼마 전에 저의 본적 성당인 안산 성마리아 성당 봉헌식이 있었습니다. 지은 지 1년도 되지 않은 성당이지요. 이 성당을, 누가 지었을까요?

어떤 신부님은 ‘내가 지었다’고 하실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신자들은 ‘신자들과 신부님이 합심해서 지었다’고 할 것입니다. 물론 어떤 신자들은 ‘내 돈 내서 내가 지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직접 그 건물을 건축한 ‘xx건설’도 ‘내가 지었다’고 하겠지요. 아마도 정확하게는 그 회사 사장이 ‘내가 지었다’고 할 것입니다. 반면에 직접 망치질하고 시멘트를 바른 노동자들 또한 ‘우리가 지었다’고 할 것입니다. 물론 ‘신심이 깊은’ 어떤 사람들은 ‘주님께서 지으셨다’고 할 테지요.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거북선은 누가 만들었나요?”

대답하기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철갑선의 구상은 이순신 장군이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뛰어난 기술을 자랑하는 이 땅의 조선(造船) 노동자들이 작업을 했습니다. 그 작업에 비용을 댄 이들이 있을 것이고, 음식 등을 제공한 여성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철갑선의 구상 중에서도 세부적인 부분에 개입하거나 작업에 참여한 이순신 장군의 동료 장수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요즘도 큰 배가 한 척 나가려면 5명 정도는 죽어나가고, 아파트 한 동 짓는데 평균 2명은 죽는다는데, 그 시절에 ‘산업재해’가 없었을 리 없습니다. 철갑선을 만들다가 죽은 사람들도 있겠지요.

저는 거북선을 ‘누가 만들었다’고 정답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순신이 만든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만들었다고 하면 정답이 되나요? 그 작업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같이 만들었다고 하면 정답이 되나요? 그런 것을 잘 모르겠습니다. ‘정답’이란 애초에, ‘합의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들어서 거북선을 이순신이 만든 게 되는 게 아니라, 거북선을 만든 데 참여한 무수한 사람들 중에 거북선을 만든 사람을 이순신으로 하자고 정했기 때문에 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든 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만은 분명합니다. ‘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들었다’ 라는 말은 ‘팩트’라기 보다는 ‘합의’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 질문에는 오히려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거북선을 누가 만들었는지를 묻지요? 거기에 정답이 있을 수 있나요? 라구요. 혹은, (그 작업에 참여한 많은 사람 중에 굳이)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들었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지요? 라구요.

그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①에서 ⑪까지 나열한 한국사회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그 만큼 우리 주위에서 죽음을 목격하기가 쉬운 것이 오늘날의 모습입니다. 저에게는 이러한 의문이 듭니다.

“한국사회는 누가 만들었나요?”

많은 사람들이 거북선의 위용을 찬양합니다.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라고들 하지요. 저는 이런 의문이 듭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런 생각을 해냈을까, 하는. 철갑선은 쉽게 생각해보면, 당시의 ‘바다 위의 살인 병기’였을 것입니다. 만일,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조선에서 철갑선이 세계 최초로 등장했을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의 위용을 찬양합니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고들 하지요. 저는 이런 의문이 듭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하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란 생각해보면, ‘무역을 통해 다른 국가들의 약한 고리를 공격하거나 자국 스스로 내부 식민 사회를 만들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경제 성장’이라는 것은 온갖 좋은 말로 포장을 해 봤자, 누군가(또는 다른 국가)가 받아야 할 몫을 조금씩 떼어 와서 ‘몰아주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거치지 않았더라도, 한국사회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되었을까요? 비슷한 논리는 북한에도 적용됩니다. ‘경제대국’을 ‘군사강국’ 또는 ‘강성대국’이라는 용어로 바꿔주기만 하면 그렇습니다.

한국 사회의 경제 성장을 찬양하는 경우에 사람들은 그것이 박정희가 해낸 일이라고들 합니다. 좋게 봐주자면, 박정희의 ‘지도’ 아래 ‘산업역군’ 한국 국민 전체가 해낸 일이라는 말이겠지요.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찬양하는 경우에도 김대중과 김영삼과 민주화운동을 한 전 국민이 했다고들 합니다. 자, 그러면 이번에도 물어보겠습니다. 한국 사회는 자살율과 낙태율이 높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회입니다. 이러한 모습의 한국 사회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조금 구체화시켜 보겠습니다. 2009년 봄, 용산에서 한 건물 철거에 투쟁하던 세입자 일부와 진압하던 경찰이 죽었습니다. 세입자는 누가 죽였습니까? 강경 진압한 경찰이 죽였습니까? 경찰은 누가 죽였습니까? 투쟁하던 세입자들이 죽였습니까?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은 강경진압을 지시한 당시 경찰청장에게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더 근본 원인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더욱 더 근본 원인은 재개발이익에 개입하는 용산구청과 삼성물산 같은 대자본에 있는 것입니까? 더욱 더욱 더 근본 원인은 ‘집 값 올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의 ‘눈빛’에 있는 것입니까? 더욱 더욱 더욱 더 근본 원인은, 그런 방식으로 계속해서 ‘패배자’를 만들고 ‘내부 식민지화’하여 하층으로부터 수탈하는 방식으로 상층부의 기득권을 보호하고 경제 ‘성장’하는 한국 사회의 ‘경제성장 패러다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북한 때문입니까? 신자유주의 때문입니까?

해마다 수능시험이 끝나면 불길한 소식들이 전해집니다. 이제 수능 망친 누구가 어디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다더라, 와 같은 이야기들은 뉴스거리도 되지 못하는 듯합니다. 너무 자주 일어나는 일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왜 자살하는 것입니까? 수능 시험을 못 보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너무 컸는데 망쳤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입니까? 주위 친구들보다 못 봐서 부끄러워서, 부모님 뵙기 죄송해서 자살하는 것입니까? 근본 원인은, 한국 사회가, 사실상 신분이 되어버린 학벌 사회가 되었기 때문입니까? 더욱 근본 원인은, 소수 엘리트 교육에 집중하는 한국 중등 교육이 그 목적에 따라 ‘선발 체제’를 근간으로 하여 그에 따른 ‘지식 몰입식 교육 방식’을 행하기 때문입니까? 더욱 더욱 더 근본 원인은, 그런 방식으로 계속해서 ‘패배자’를 만들고 ‘내부 식민지화’하여 하층으로부터 수탈하는 방식으로 상층부의 기득권을 보호하고 경제 ‘성장’하는 한국 사회의 ‘경제성장 패러다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북한 때문입니까? 신자유주의 때문입니까?

제가 궁금한 것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사람들이 자꾸 죽습니다. 누가 지금의 한국 사회를 만들었습니까?

이것이 ‘존댓말로 읽는 헌법’을 구상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저는 누가 지금의 한국 사회를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훌륭하신 한국의 교수님들과 철학자님들과 선생님들과 정치인님들과 판사님들과 검사님들과 변호사님들과 의사님들과 뭣님들과 뭣님들도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들 가운데에도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분들이 만일 잘 안다면, 위와 같은 일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거나 적어도 줄어들어야 할 텐데, 상황은 반대로 더욱 악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4대강 사업’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명박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 ‘4대강 사업’을 ‘이명박’이 합니까? 그렇지요. 거북선도 ‘이순신’이 만들었다고 하는 판에. 생명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저는 요즘에야 느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구나. 솔직히 제가 제일 두려운 것은 확실시되는 수질 악화로 인한 전염병 창궐인데, 사람들은 ‘강’을 참 좋아하는구나.

뭐, 이유야 어쨌든, ‘4대강 사업’하는 게 토목 건설사들 배만 불리는 일이라면서 많은 사람들이 반대합니다. 그 사업 자체를 중단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어떤 교수는 4대강 사업을 하면 수질이 개선된다는 것은 아이큐가 100정도만 되면 알 수 있는 거짓말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아, 그런 거구나. 이게 그렇게 신랄한 비판을 받을 만한 일이로구나.

재개발을 해서 사람이 죽었습니다. 별로 재개발을 그만 하자고 하지 않습니다. 수능시험을 보고 사람이 죽었습니다. 별로 수능시험을 없애자고 하지 않습니다. 비정규직 투쟁을 하다가 사람이 죽었습니다. 별로 비정규직을 없애자고 하지 않습니다. 주식투자를 하다가 사람이 죽었습니다. 별로 주식투자를 없애자고 하지 않습니다. 군 복무 중 사람이 죽었습니다. 별로 군대를 없애자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없애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는 않지만.

생각해보면, 제 생각 자체가 참 어리석습니다. 성매매와 도박은 엄연한 불법이지만, 세상에 판칩니다. 없애자고 법 규정까지 만들어도 없어지지가 않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 죽이자고 재개발하는 것 아니겠지만 앞으로도 재개발 과정에서 죽는 사람들은 생길 것입니다. 사람 죽이자고 수능시험제도 만들어 둔 것이 아니겠지만 앞으로도 대학입시 과정에서 자살하는 수험생들은 생길 것입니다. 사람 죽이자고 비정규직 만들어 둔 것도 아니겠지만 앞으로도 비정규직 중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입니다. 아군 죽이자고 군대 만든 것은 아니겠지만 앞으로도 자살하는 군인들은 생길 것입니다. 투자자 죽이자고 주식시장 만든 것은 아니겠지만 앞으로도 주식투자 실패해서 자살하는 사람들은 생길 것입니다. ‘4대강 사업’도 별반 다를 게 있겠습니까? 그게 거짓말이든 말든 강 살린답시고 강 좀 파면 어떻습니까? 그래서 수질 좀 악화되고 농민들 쫓겨나고 사람들 좀 죽으면 어떻습니까? 돈이 되는데. 언제는 진리와 가깝기 때문에 공부했고 노동의 가치를 깨닫기 위해 산업역군이 되었고 국방의 의무가 신성해서 군인이 되었습니까?

사람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속세를 넘어서려다 보면, ‘성경’을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 안에서도 적나라한 속세를 마주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반말’을 합니다. 다른 것을 다 접어두고, ‘무엇이 더 복음적인가’를 항상 고민하시는 신부님, 목사님, 여러 한국의 성직자분들은 공생애 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반말을 툭툭 던지는’ 것으로 성경을 번역해 둔 것이 ‘얼마나 복음적인지’ 한 번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원래는 반말 존댓말 구별이 없는 히브리어이지요. 라틴어나 그리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복음을 존댓말로 번역한 성경도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부처님은 이런 면에서 조금 자유로우신 듯합니다. 말씀이 한자로 되어 있는 바람에.;

‘그러니까’,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는 것입니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집니다. (헌법 10조)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가 아닙니다. 그렇게 ‘반말 찍찍 싸면서’ 잘난 체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법리’라는 것을, 혹자는 ‘논리의 결정체’라면서 추앙합니다. 하지만 논리와 진리는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진리는 하나이지만 논리는 여러 가지입니다. 정확히 같은 사실관계에 대해서도 정확히 반대의 결론을 내리는 법리구성이 가능합니다. 조금 조야하게 표현하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논리’의 핵심고리란, 실은 ‘우기기’다”라구요.

헌법재판소는 헌법 10조의 적용에 관하여 “기본권제한에 있어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다거나 기본권형성에 있어서 최소한의 필요한 보장조차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한다면, 헌법 제 10조에서 규정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위반된다”고 판시(98헌마 216)한 바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기본권형성에 있어서 최소한 필요한 보장만 규정’하면 적어도 헌법재판소에서 ‘헌법 10조 위반’으로 위헌이라는 판결은 안 나온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 10조 위반으로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아주 적은 판결들을 보면 대개 10조에서 파생되는 ‘(국가로부터 간섭을 받음이 없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이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했다는 것들입니다. 유명한 동성동본금혼 헌법불합치 판결(95헌가6등)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고, 18세 미만 당구장 출입금지 위헌 판결(92헌마80)은 당구를 통해 소질과 취미를 살리고자 하는 소년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의 침해를 이유로 위헌 판결을 받았습니다.

18세 미만자에게 당구장 못 들어가게 하는 게 헌법 10조 위반으로 위헌 판결이 이미 18년 전에 내려졌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다른 조문도 아니고 헌법 10조 위배를 이유로 말이지요. 그러나 4대강 사업 한다고, 재개발 한다고, 쫓겨나는 사람들에게는 ‘헌법 10조 위헌’이 적용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최소한 필요한 보장’, 곧, 보상금이 지급되니까요. 이러한 구조에서는 본질적인 부분은 가려지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마음대로 18세 미만자는 당구장 출입 금지 시켜도 돼?” “국가가 마음대로 건물 철거해도 돼?” “국가가 마음대로 농토에서 쫓아내도 돼?” 이런 질문들이지요. 그런데 보상금 싫으니까 농토에서 쫓아내지 말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적어도 2010년 한국사회는 ‘별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냥 돈 받고 나가라는 거지요. ‘4대강 법’들도 헌법재판에 가면 위헌은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게 오늘날 ‘만들어진’ 한국 사회의 모습입니다.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처럼 본다면, 법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다니는 하나의 ‘길’일 것이고, 그것은 마치 혈관과 같은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꾸 죽어나간다는 것은, 그 사회의 어떤 지점들에는 생명의 붉은 피보다는 죽음의 검은 피가 돌고 있다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심장부에 있는 것이 ‘헌법’일 터, 그래서 저는 반말로 된 헌법전을 존댓말로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누가 한국 사회를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앞으로도 누가 만들지 잘 모르겠지만, 죽음보다는 삶과 가까운 사회를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삶을 대우’받아야만 합니다. 네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더 존엄했으면 좋겠다. 정말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진심이 담긴 채로 말이지요.

사람의 몸 안의 수많은 세포들 가운데 유일하게 끝까지 번식하고 사라지지 않는 세포가 바로 암세포라고 하더군요. 결코 죽지 않는 암세포들이 신체를 장악하면 생명은 멈춥니다. 사회라고 얼마나 다를까요? 한국전쟁 60년, 한국사회에서 암세포들이 너무 많이 자라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암세포들이 너무 많이 재생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할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암세포들은 단칼에 쳐내야만 하고, 그것이 서양의학의 ‘수술’일 테지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몸을 건강하게 하기는 힘듭니다. 암도 재발할 수 있구요. 따라서 몸 전체에 활기를 띠게 하여 건강을 되찾는 한의학의 방식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를 놓고 본다면, 아마도 그것은 ‘사랑’이 아닐까요?

암세포의 특징이, 일단 살아 있는 세포를 죽이고 본다는 것인 듯합니다. 살아 있는 세포는 죽이고 암세포를 번식시키자. 이것이 유일한 목표인 듯합니다. 법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아는 것도 부족한 저이지만, 법 공부를 하다보면 사회의 저명하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헌법 지식 자체에 대해 무지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무지한 건지 무지한 척을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솔직하게, ‘헌법 기본서 한 번만 읽어 봤어도 저런 말과 저런 행동과 저런 식의 의사결정을 하지는 않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잘 먹고 잘 살 권리가 있듯이, 남도 잘 먹고 잘 살 권리가 있다’는 게 현대 자본주의 헌법의 핵심정신(재산권 보장+공공복리)이고 여기서 모든 기본권이론과 기본권 조항들이 생겨나는데, 이걸 부정하는 암세포들이 사회의 곳곳에서 활약하면서 자기들이 한국사회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건 아닌지 하는 의문도 많이 듭니다. 저는 조금 간단한 지표로, 그들이 한국사회를 ‘만들었는지’, ‘죽여가고 있는지’는 한국 사회의 자살율이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씩 알아갈수록, 또는 알아간다고 생각할수록, 너무나 무지하다는 사실만이 자명해집니다. 그래서 글을 쓰고 말을 한다는 것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닿으면 ‘존댓말로 읽는 헌법’을 주제로 종종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헌법 조문과, 기존의 판례 검토와 해석, 그리고 사견을 덧붙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한데, 무엇보다도, 1) 즐겁게 쉬는 다른 방법을 잊어버렸고-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없어요!-, 2) 각종 현안에 대해 몸으로 부딪히지 못하고 앞으로도 한동안 그럴 듯한 저 자신의 ‘연대 방식’에 대한 고민의 산물입니다.

한국 사회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저는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헌법을 존댓말로 읽어보자고 생각한 저는 혹시빨갱이가 아닐까요? 저도 저를 잘 모르겠는데, 저를 뭐라고 부른다면야... 저를 누가 뭐라고 부르든지 그것은 별로 신경쓰지 않으나, 저는 빨갱이라는 용어의 반대용어로 ‘검죽이’라는 용어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거무죽죽하다’+‘죽어간다’는 말인데, 시도 때도 없이 남들보고 ‘빨갱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검죽이’라고 불러주면 괜찮을 듯합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 말은 해두어야겠네요. 저는 김정일을 정말 싫어합니다. 저는 거짓말을 잘 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집단을 싫어합니다.

글을 쓰는 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① 대학입시 없는 사회, ② 취업으로 등급 매기지 않는 사회, ③ 낙태 없는 사회, ④ 사람이 할 만한 노동 강도를 요구하는 사회, ⑤ 노동환경이 보장되고 농민이 우대받는 사회, ⑥ 국가권력이 일반국민을 두려워하는 사회, ⑦ 군대 없는 사회, ⑧ 재화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미덕인 사회, ⑨ 노인을 공경하는 사회, ⑩ 거리에서 자주 장애인을 만날 수 있는 사회, ⑪ 겸손이 미덕인 사회, 이런 사회가 ‘완벽에 가까운’ 사회라고 한다면, 지금 이 순간, 그런 방식으로 살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입시가 존재하는 오늘날에도 수능거부를 하는 친구들이 있고, 비정규직 넘쳐나도 비정규직 철폐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고, 의무복무제도임에도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고, 장애인 이동이 현실적으로 제한되어 있음에도 거리로 나오는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무엇보다, 겸손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고,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랑 없이 이루어지는 어떤 일들도 결과적으로 악취만을 풍기고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만 줄 뿐입니다.

법 공부를 할수록 드는 의문은, 국가에 무엇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일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반대의 이유로 법을 공부할 의미가 생깁니다. 국가와 권력과 자본이 마음대로 하려고 할 때 고삐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자 무기로 반드시 법을 알아야 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입니다. 법은 글자인데, 그 글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욱 법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또한 법 그 자체도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앞으로의 한국 사회는 ‘겸손한 사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저의 자기확장욕은 깨어지고 부서져서 0에 가까워지기도 기도합니다.

MBC와 PD수첩을 지지하면서 다음달을 맞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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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 젊은이에게 삼성은 무엇인가" 

지훈 (대학원생)

삼성 반도체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한참을 울었다. 20대인 그녀는, 내가 대학생이랍시고 게으르게 뒹굴대며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볼 때, 반도체를 검사하기 위해 끝없이 제품을 납에 넣었다 빼며 제 자신을 죽여야 했다. 처음 직장에 발을 내디뎠을 때 그녀가 가졌을 꿈을 생각하면, 한없이 부끄러워져 나도 모르게 흐느끼게 된다. 고된 노동에도 때로는 친구들을 만나 담소를 나누기도 했을 테지만,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될 때, 지나가버린 그 시간을 얼마나 안타깝게 그리워했을지.

대학을 아직 떠나지 못한 나는 다시 등교를 한다. 도서관 전산실에 들렀는데 내 앞에는 삼성 컴퓨터가 놓여 있다. 책을 들고 강의실에 들어서자 삼성 에어콘이 눈에 띈다. 어떤 학생은 삼성 MP3 플레이어를 귀에 꽃은 채 강의실로 들어오고, 어떤 학생은 삼성 애니콜에 전화가 와서 강의실을 나가며, 어떤 학생은 삼성 노트북 센스에 강의노트를 작성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삼성이 없는 곳이 없다. 새삼 느낀 것이지만, 나는 삼성에 둘러싸여 있었다. 거기에는 나와 같은 20대의 어느 노동자의 손에서 나온 반도체가 들어있을 테지만, 학교에서는 공공물품을 거의 삼성 제품으로 구매하고, 학생들은 서비스 좋다는 삼성을 아무 생각 없이 손에 들고 있었다.

삼성의 제품만이 우리 곁에 와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기업들이 학생들의 동아리나 모임 활동을 지원하곤 하는데, 너무나 프랜들리한 삼성은 그 지원에서 가장 앞서가며, 나아가 지원을 넘어 동아리를 대체하는 경지로 나아간다. 누추하게 잔디밭에 둘러 모여 기타치고 노래 부르기보다는 폼나게 해외 배낭여행을 떠나길 원하는 대학생들은 기업이 지원하는 모임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데, 삼성은 영삼성(youngsamsung)을 운영하여 대학 내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자본은 언제나 욕망과 친구한다. 삼성은 대학생들의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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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정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대학생들. 이들은 극심한 취업 경쟁으로 지쳐 있다. 대기업 취업에 성공하면, 행복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삼성 문제를 푸는 것은 삶의 대부분을 보내는 일터를 보다 낫게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친구는 누구라도 가리지 않고 친하게 지내는 모양이다. 자세한 뒷사정은 알지 못하나, 작년엔 학생회와 삼성이 손을 잡으려한 일이 있었는데, 서울 지역 '한대련'과 삼성의 합작사업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광고지면을 내주고 지원을 받는 정도의 일이 아니라, 삼성 올앳카드 회원을 학생회가 대신 모집해주고 카드 가맹점에서 할인을 받는 형태의 사업으로, 의결이 끝나고 집행을 기다리다가 몇몇 대학의 반대로 뒤집어졌다고 하는데, 그 후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아직 듣지는 못했다. 욕망을 가진 누구라도 친하게 지내는 삼성은 이정도로 대학생들의 친구이다.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듣고 자라온 우리는 그래서 삼성을 멀리하지 못한다. 얼마나 좋은 친구인가. 세상과 이어주고 더위도 식혀주며 음악도 들려주고 여행도 시켜준다. 얼마나 고마운가. 삼성이 이렇게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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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삼성 홈페이지.

그래서 그런지 대학생들에게 삼성은 선망의 대상이라고 한다. 나는 줄곧 '삼성맨'이라는 이름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은 것인 줄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나보다. 그러나 조금 서글퍼지지만 거기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조심해야 될 것이 있는데, 바로 삼성은 학벌을 중시한다는 것. 얼마 전에 언론에서 삼성 사장단의 학벌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고 호들갑을 떨며 삼성 임원의 꿈을 심어주기도 했는데, 대개의 기업들이 서울대 인맥을 이용하려 하기 때문에 이는 특이해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다른 곳에 있다.

김용철 변호사에 따르면, 삼성에서 임원이 되는 것은 로비/섭외 실력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로비/섭외는 서울대 인맥이 더 수월하지 않겠는가하면 그게 아니다. 뻔히 알고 있는 자기 동창에게 큰 돈을 쥐어주며 로비하는 것은 민망하기도 하고 불편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일이 어긋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리어 아예 관계가 없는 사람이 큰 돈을 챙겨주는 것이 로비에서는 훨씬 더 편할 수 있는데, 그런 까닭에 계열사 임원 중에는 비서울대출신이 많을 수 있지만, 권력의 정점인 구조본은 모두 소위 명문대 출신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아무튼 높은 경쟁률을 뚫고 직원이 된다면 다행한 일일 수도 있겠으나, 역시 또한 주의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누군가는 자랑스럽게 올렸을지도 모르나 그저 황당함과 경악만을 안겨주었던 동영상에서 본 매스게임을 실제로 하러 동료들과 집결해야 한다. 물론 멋진 콘도에서 삼성은 돈의 힘을 보여줄 것이고, 임원이 방문해서 삼성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임원이 되고자 하는 욕망도 심어줄 것이다. 멋진 일 아닌가. 내가 삼성맨이라니. 그러나 거기에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재미가 계속되리라는 희망은 지속되기 힘들다. 이직률이 가장 높은 기업이라는 삼성에서의 재직 기간은 보통 7~8년이라고 하는데, 3~4년차 사원들이 이직률은 30%대나 된다고 한다.

삼성을 발판으로 더 나은 곳으로 가려는 것일 텐데, 삼성에 계속 충성하다간 너무 일찍 묘비를 세워야 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들었을지 모른다. 물론 잘 견뎌낼 수도 있다. 경쟁과 성과주의는 한국에서 익숙한 것이니까. 삼성 안에서 <한겨레>나 <경향신문>을 못 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최근 삼성에 취직한 친구의 말로는 인터넷 포털 DAUM도 눈치가 보여 접속을 못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견딜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노예가 아닌 한, 무작정 견디는 것은 인간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인간은 의미를 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막연히 긍정하며, 그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보지 않으려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멈춰서있어서는 안 된다. 함석헌은 사람의 사람된 점은 생각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즉 "사람은 할 뿐만 아니라 하는 줄을 아는 것이요, 알 뿐만 아니라 아는 줄을 아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알 수 있어야만 하며, 그러할 때 우리의 삶은 질적으로 도약한다.

사람들은 삼성의 세련된 사무실에서 잘나가는 현대인이 되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당신은 이미 인천 송도만 하수처리 시설 사업권을 차지한 '삼성 베올리아 인천환경주식회사'에 취직해서 물 사유화 사업에 앞장설 수도 있다. 또는 삼성생명에 취직해서 삼성이 추진하고 있는 "정부 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민간 의료)보험", 즉 지금의 건강보험을 통째로 사적 의료보험으로 대체하려는 계획에 뛰어들 수도 있다.

또는 삼성캐피탈에 취직해서 부실 규모를 줄이기 위해 고객 도장을 몰래 만들어 불법 대환 대출을 할 수도 있다.(걱정 마시라. 금융감독원은 알고서도 처벌 하는 둥 마는 둥 했으니.)

혹은 운이 좋은 사람은, 분식 회계 장부가 법원에 넘어가면 서류를 빼돌린 다음 어두운 밤 해운대 백사장에서 불태워버리는 낭만을 즐길 수도 있고, 2005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 토탈(주)에 대한 가격 담합 조사를 했을 때처럼 공정위 조사관이 확보한 자료를 가로채 도망가면서 찢어버리는 액션을 즐겨볼 수도 있으며, 더 운이 좋아 압수수색과 같은 긴급상황이 벌어지면 검찰이 주는 충분한 시간동안 내부자료와 파일을 파기하는 스릴을 맛보는 기회도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너무 걱정 마시라. 저런 일들은 가벼운 과태료만 내면 끝날 테니.)

더 화끈한 일을 할 수도 있는데, 만일 사무직 노동자와는 다른 대우를 받는 생산직 노동자들이, 컨베이어 벨트의 조립라인 노동자나 반도체 노동자가 처해 있는 그런 열악한 환경과 고된 노동을 개선하려 노조라도 만들라치면, "너 하나 쥐도 새도 모르게 끌어 묻을 수 있다"는 영화 같은 대사를 내뱉고 집단 폭행을 가하는 활극을 연출할 수도 있다. 이런 일로 삼성 이미지가 나빠질까봐 걱정이 되면, 지뢰 제거 활동 홍보처럼 '글로벌 사회 공헌' 광고를 제작할 수도 있다.

물론 뒤에서는 삼성이 F15-K 전투기를 수출하고 공격형 아파치 헬기를 만들고 있겠지만, 어차피 이미지는 이미지니까. 아쉽게 이런 일을 몸소 하지는 못하더라도, 옆에서 구경할 기회는 얻을 수도 있으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한국사회, 삼성을 묻는다>에 나오는 일들이다. 더 많은 일들을 알기 원하시는 분은 이 책을 보시기를.)

이런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하는 것은 각자의 몫으로 두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더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삼성이 보여주는 기술의 눈부심이다. 영화 아바타에 세계가 열광한 것은 그것이 구현하고 있는 테크놀로지 때문이겠거니와, 삼성이 생산해내는 최첨단의 반도체와 LED TV, 휴대폰 등은 우리를 매혹시키고 거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도록 한다.

그러나 잠시 시선을 거두어보자. 빛에 빼앗겨버린 시선을 조금만 돌려본다면, 그것이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림자를 더 크게 만드는 일에 우리가 알게 모르게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쓰는 애니콜, 컴퓨터나 노트북 센스에는 백혈병으로 숨져간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눈물이 스며있고, 손 닦는 수건도 없는 화장실에 그나마 맘대로 가지도 못하고 두 시간에 10분씩 쉬는 시간 외에는 꼼짝 없이 컨베이어 벨트에 묶여 있어야 하는(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122쪽) 생산직 노동자의 한숨이 녹아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으로 삼성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유일무이한 권력이 지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청년들이여, 만일 새로운 시대가 요청하는 교양을 원한다면, 제품의 월등함 때문도 노동자들 임금 때문도 아닌, 임원들 보너스 때문에 비싼 애니콜이나 센스는 더 이상 아니라고 말하자. 한국 사회의 문제가 집약된 그 곳은, 정의를 위한 발걸음에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발판이기도 하고, 알게 모르게 우리를 옥죄어 노예로 만드는 권력에 저항하는 장소이기도 하며, 이 시대에 새롭게 노동자와 연대할 수 있는 창구이기도 하다.

얼마 전 한 친구가 삼성 센스 노트북을 샀다. 자본과 노동에 대한 거대담론을 자주 말하는 그는 이러한 불매와 같은 사소한 문제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사소한 문제인가? 아니다. 여기 사회의 모순이 있다. 여기 눈물이 있다. 여기 피맺힌 울음이 있고, 여기 한숨과 아우성이 있다. 자, 그러니 이제 여기를 떠나라. 그것이 교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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