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현수막이 학벌 차별을 조장하는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11일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한 고등학교 정문에는 ‘서울대 합격 ○○○’이라는 큰 글씨가 인쇄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현수막에는 합격자 이름과 학과 등이 적혀 있었다. 


이 학교 홈페이지에는 ‘2014학년도 대학진학현황’이라는 제목의 팝업창이 올라와 있다. ‘축 서울대 합격’이라는 문구를 시작으로 합격자 이름 등이 나열됐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순으로 20여개 대학을 나열하고 각각 합격자 수를 표시했다. 나머지 대학은 ‘그 외 대학 다수 합격’으로 표시하고 합격자 수는 누락했다. 학교 관계자는 “지난해와 달리 올해 진학성적이 좋아 홍보 차원에서 현수막을 걸었다”며 “학벌 차별 등의 다른 의도는 없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의 한 고등학교에 ‘서울대 합격’을 홍보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14학년도 대입 정시모집 합격자가 발표되면서 각 학교에서 현수막을 이용해 합격자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학교뿐만 아니라 건물 벽면에 특정 대학 합격 등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린 입시학원도 수두룩 하다. 하지만 특정학교 합격을 홍보하는 현수막을 걸거나 홈페이지에 공지하는 행위는 학력·학벌 차별문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인권위에 학벌 및 학력 차별로 접수된 상담과 진정 건수는 160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80여건은 특정학교 합격 홍보물 등에 대한 내용이다. 

인권위는 2012년 “각급 학교나 동문회 등에서 특정학교 합격 홍보물을 게시하는 행위가 특정학교 외의 학교에 입학하거나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소외감을 줄 수 있고 학벌주의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며 각 시·도교육감 등에게 특정학교 합격 홍보물 게시 등을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학교가 현수막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등이 지난해 17개 시·도 교육청 관내 2334개 고등학교 홈페이지를 조사한 결과 16.3%에 이르는 381개교가 홈페이지 메인 화면과 진학 게시판 등을 통해 특정학교 합격을 홍보한 것으로 조사됐다. 침해 건수는 경기도가 91개교로 가장 많았고, 경북 43개교, 서울 40개교로 그 뒤를 이었다.


최근에는 특수목적고와 국제중 진학은 물론 유명 사립초등학교 진학을 홍보하는 현수막까지 내걸리는 실정이다. 지난해 서울 마포구의 한 영어학원이 ‘축 영훈초등학교 합격, 국제영어유치부 졸업생 ○○○’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특정학교 홍보 등 학벌 차별 조성과 관련해 구체적인 규정 등은 따로 마련된 것이 없다”면서 “학벌 차별 등과 관련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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