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고등학교 앞과 홈페이지에는 어떠한 대학을 누가 갔고, 몇 명을 보냈는지 대문짝만하게 알림공고가 되어 있다. 나 역시도 일반계 고등학생이다. 또한 지금은 걸리지 않았지만 입학 시기에 걸리는 현수막을 선생님들은 많이 의식한다.  

입학 초기에도 지금도 그렇듯이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공부’ 만을 강조한다. 솔직히 말해서 ‘공부’라는 게 뭔지를 모르겠다. 각자 자기가 잘하는 건 다르고, 흥미를 느끼는 것 역시 다른데 우리나라에서는 다원화를 존중한다면서 서로 다른 재능을 인정해주기는커녕 모두 똑같은 틀 안에 똑같은 평가로 등수를 가린다.

게다가 지금의 학교는 ‘대학 입학’을 위해 12년간 달리고 있다. 모두 똑같이. 정작 자신의 특기와 흥미와는 상관 없는, ‘명문대’를 가기 위해서 성적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학교는 아이들의 특기와 흥미를 개발해주기보다, 아이들의 내신 성적을 조금이라도 더 올리고, 수능 성적을 조금이라도 더 올려서 아이들을 자신들 학교의 명예를 높일 수 있는 ‘명문대’에 보내려고 한다.

이 상황에서 현수막을 게재해서 ‘명문대’ 에 보낸 아이들 수와 아이들 이름을 공개한다는 것은, 무슨 저의인가? 선생님들의 말에 의하면, “선배들이 얼마나 잘 갔는지 봐야 투지가 불타올라서 너희도 좋은 대학 가지.” 라는데 좋은 대학 가면 인생이 다 끝나는 것도 아니고 왜 대학에 그렇게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결국 좋은 대학과 좋지 못한 대학으로 갈라서 좋은 대학에 가는 애들은 성공하는 것이고, 좋지 못한 대학으로 가는 애들은 실패하는 것 마냥 비춰지고 있다. 현수막을 보면서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성적이 좋지 못한 아이들은 그걸 보면서 괜히 마음에 찔려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다원주의 사회를 인정한다는 대한민국의 취지와는 달리 더욱 경쟁만 심화시키는 특정대학 합격 현수막을 게재하는 것을 반대한다.


※ 이 글의 작성자는 광주광역시 소재하고 있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참고로 이 글은 지난 1월 14일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서(특정대학교 합격 게시물 인권침해)에 피해사례로 넣었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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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피해사례

학벌사회라는 말이 어디서부터 나왔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얼마 전 수능을 치룬 한 여고생입니다. 저희 학교에서 합격이 발표나기 오래전부터 ‘ㅇㅇ대합격-ㅇㅇㅇ’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습니다. 저희는 학교를 들어가야 할 때마다 그 현수막을 보면서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걸 볼 때마다 저희는 좌절을 느껴야 했지요. 학교의 자랑거리, 명예, 지위 때문에 학생들의 자존심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학교가 저는 정말로 싫습니다. 저희 학교에 대학을 가지 않는 친구는 없습니다. 모두 대학을 간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어째서 특정한 학교에 가는 아이의 이름만 학교 대문에 걸려야 하는 겁니까?

학벌사회. 좀 더 이름 있는 대학에 가야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야하고.. 교육이라는 것을 시장의 개념으로 여기는 어른들의 생각은 정말로 문제가 있습니다. 심화반 편성하는 것을 정당하게 보고, 0교시 수업을 주창하고, 특목고 설립에 애를 쓰고.. 가난한 가정에 대한 배려는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학생들은 상품처럼 취급하는 어른들이 미워집니다. 교육이라는 것에 경쟁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책들을 보다 보면 경쟁에 뒤떨어지는 아이들에 대한 대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경쟁만을 강요하는 어른들의 시선이 이제는 무섭습니다. 경쟁이 최우선시 되면서 한국의 학벌사회는 더욱더 깊숙이 자리 잡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학교 대문에 떡하니 걸려있는 고시합격이라던가, 명문대합격이라던가 학벌사회를 더더욱 심화되게 만드는 현수막을 걸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저희들 가슴에 대못을 박지않게, 사회를 망치지 않게, 아이들이 자신의 대학에 떳떳해 질수 있게 현수막이 걸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피해사례

축하한다고 말한다. 몇 안되는 대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을 말이다. 부끄럽다고도 말하더라. 서울대에 들어간 학생이 없어서 말이다. 어떤 학교는 서울대 연,고대에 들어갈 학생들을 학교 앞 현수막에 내거는데 우리학교는 그러지 못하니 동네 창피하다는 것이다. 무엇이 창피하다는 것인가? 매년 수능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이 너무 적어서 말인가? 아마 이른바 명문대에 갈 학생을 배출한다는 것 곧 자본주의 사회의 철저한 인적 자원을 키워낸다는 것은 학교가 철저한 통제 시스템이라는 것을 증명 하는 것이기 때문인가? 더 이상 그것은 학교가 아니며 소세지 만들어내는 공장 일 뿐이다. 학교는 다양한 생각, 다양한 태도를 지닌 청소년 들을 수용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학교 탓 뿐만이 아니라 편협한 사고를 가진 학부모나 학생들도 문제겠지만은 결국 원인제공자는 교육관련 기관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학벌, 입시엘리트 따위를 좇는 교육을 실시했던건 결국 이땅의 교육자들이니까. 수많은 학생들이 그런 현수막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학생도 있겠지만, 충분히 무의식적으로 사회적 열등감을 내면화 할수도, 자존감을 상해할수도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학생들을 열등감에 빠지게 할수 있게 하는 것이 이땅의 교육과정이니까. 수많은 시험, 차별, 경쟁, 통제 따위도 그에 한 몫 할 수 있다고 본다.

현수막은 입시경쟁 사회, 학벌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용인 하는 사회의 태도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현수막에 반대한다.

겉으로는 다원화 사회를 가르치며 아직까지 학벌주의에서 허우적대는 학교를 보노라면 이제 곧 졸업할 학교이지만 뒤에 남겨진 학생들이 안쓰럽다. 다른 대학에 지원한 학생, 아예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들의 또다른 사회로의 진출은 축하해줄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진정 교육을 하고싶다면, 당신들 학교 앞에 내걸려있는 현수막부터 걷어내길 바란다.

※ 이 글의 작성자는 광주광역시 소재하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입니다. 참고로 이 글은 지난 1월 14일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서(특정대학교 합격 게시물 인권침해)에 피해사례로 넣었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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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을 축하합니다. 서울대 OOO, 이화여대 OOO, 연세대 OOO, (○○여고)’
‘서울대 3년 연속 수시합격, 2009년도 O명 합격 (□□고)’
‘서울대 1차 합격 OOO, OOO, 포항공대 합격 OOO (△△고)’  


한국사회에선 이런 문구들이 전혀 낯설지 않다. 매년 대학합격자 발표가 나면, 해당학교에서는 학교를 선전하기 위해, 시골 군·면 단위에는 부모들이 자녀들을 축하하기 위해, 도심 학원가에서는 입시경쟁으로 방황하는 학생들을 잡기 위해, 특정대학교 합격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거는 것이 관행이 되었기 때문. 소위 이런 대학교들이 사회적으로 명문대라는 칭호로 축하받아야 할 일인가보다. 뭐~ 12년간 입시경쟁의 노예에서 해방되고 대학생이란 새로운 신분을 얻었다는 것은 축하해야 될 일이지만... 글쎄... 굳이 특정대학교 합격자만 축하하는 이유는 뭘까? 이에 광주지역 시민단체들은 특정대학교 합격 게시물이 인권침해가 있다고 판단하여 2009년 1월 14일 국가인원위원회 광주지역사무소에 인권침해 진정을 넣었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교육의 이념을 버린 학교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2조의 교육이념을 살펴보면 교육은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의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이바지해야 한다는 보기 좋은 목적으로 두고 있다. 뭐~ 입시학원에서야 교육이념과 상관없이 영리만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서 현수막과 전광판 등을 내세워 자랑을 한다지만, 공교육의 현장인 학교에서마저 이러한 행위를 한다는 것은 학교가 스스로 교육이념을 포기하고 입시학원이 되겠다는 선전용인가?

글을 쓰며 광주광역시 교육청의 홈페이지를 둘러봤다. ‘학생중심 으뜸교육’, ‘아름다운 품성과 창의성을 갖춘 글로벌 인재육성’ 말 그대로라면 학생들의 개성을 살리고, 다원화와 민주화적인 학교를 생각하겠지만, 한국 교육의 실태는 그렇지 못하다. 특정대학교 합격자수를 두고 학교를 평가하는 이중적인 모습들, 이를 중재해야 할 교육당국마저 말리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암묵적으로 특정대학 합격생 배출을 학교의 존재이유로 경쟁의 기준으로 삼고 있으니 교육의 목표는 홍보 게시용인가?

이젠 고등학교도 모자라, 광주 어느 사립중학교는 ‘상산고(자립형사립고) 합격’을 축하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국제중 설립, 마이스터고 설립, 자립형사립고 확대 등... 정부의 정책대로 흘러가다간, 특정 중고등학교로 입학시키기 위한 입시경쟁이 심각해질 것이고, 학벌의 뿌리는 초등교육까지 깊숙이 파고들 것이다. 조만간 초등학교 현장에서도 ‘국제중’ 합격 현수막을 내걸진 않을까 내심 걱정이다.

죽음으로 내모는 학벌주의

한국사회가 학벌사회이라 자칭한지 오래되었고, 결국 중·고등 교육과정이 대학교 진학을 위한 필연인 ‘대학졸업사회’가 되었다. 올해 통계청에서 발표한 ‘향후 10년간 사회변화 요인분석’자료에서 앞으로 대학진학률이 84%에 육박한다니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한 이들 모두가 대학교를 진학하는 것은 아니다. 취업, 재수, 유학 등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도 있다. 그럼에도 학교는 똑같은 졸업장을 받는 학생들 중 특정대학교 합격자에겐 축하를 하는 행위를 일삼고 있다. 이는 명백한 성적차별, 학력차별, 학벌차별(다함께 차차차)이다.

이런 학벌사회의 폐해는 고3학생에 그치지 않아, 교사-학생의 잘못된 만남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정대학 외에는 할 말이 없는 교사와 그걸 억지로 받아드리는 학생들 간의 관계는 결국 지식을 주고 파는 경제적 관계가 되었고, 결국 교사는 학생들에게 학습을 강요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생선가게를 지키는 고양이가 된 셈이다.

‘대학수능 성적 비관으로 인한 재수생 자살...’

매년 대학합격자 발표가 나면 특정대학교 합격 축하받는 현수막 뿐만 아니라, 성적비관으로 자살하는 학생들(수험생)의 뉴스도 낯설지 않다. 이처럼 특정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는 패배감은 성적에 대한 좌절감 그리고 자살로 되풀이 되고 있다. 어느 대학을 가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의 결정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을 거다. 더 이상 헛된 억울한 희생양이 생겨서는 안 되고, 매게가 되는 특정대학교 합격 현수막, 홈페이지 팝업창 등은 당장 사라져야 할 대상1호다.

마무리하며

사회적양극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교육으로 인한 양극화는 사회 양극화의 핵심요인이 되고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옛말이 되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열심히 공부하면 가난에서 벗어나고, 집안도 살려 계층 상승의 수단으로 인식되었지만 이제는 교육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심화로 인해 오히려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때에 학교에서조차 민주시민으로서의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기 보다는 오직 경쟁에서 승리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승자독식의 법칙을 가르친다면 대다수의 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자긍심이나 자신감보다는 어두운 미래에 대한 심리적 위축감을 먼저 가질 수밖에 없다.

교육은 교육주체들 간의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꿈꾸지 않으면 이란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거” 이제 교육은 단순히 몇 명 어느 대학 보내기 위한, 승자독식 학습이 아닌 꿈을 이야기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 이 글의 작성자는 학벌없는사회 광주모임(준) 활동가 박고형준 님이며, 국가인권위원회 잡지 '월간 사람'에 기고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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