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우리가 제정하고자 하는 조례의 통용되는 명칭은 ‘광주학생인권조례’이다. 지난 1차 시기에는 ‘광주학생권리조례’라는 이름을 표방하였으나, 이번에는 ‘권리’라는 개념을 ‘인권’으로 치환하고 있다. ‘인권’은 인간이 지니는 권리라는 총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점에서 ‘학생의 인권’과 ‘학생의 권리’는 동의어이다. 하지만 인권이라는 말의 뉘앙스는 기존의 교육제도와 교사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된다. ‘인권’은 기존의 제도와 질서에 의해 권리가 침해당한 상황을 전제하고 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저항적인 의미가 포함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제도와 질서가 학생을 보편적 인간 존재로서 바라보지 않는 상황을 극복하고 저항한다는 의미에서 ‘인권’이라는 용어는 강조될 필요가 있다.

미세한 일이긴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권리’와 함께 ‘책임과 의무’를 동전의 양면처럼 연상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연상체계는 인권 탄압 이데올로기의 부산물로서 일상의 공간에서 상습적으로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권리 보장 경험이 전무한 학생들에게 ‘책임과 의무’에 대한 강조의 여지를 주는 것은 다시 학생들을 ‘공부만 해야 하는 존재’로서 규정하는 인식의 기초를 제공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학생인권 보장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학교와 교사, 그리고 지역사회가 담당하겠다는 적극적 의지의 발로인 이번 조례에서 ‘학생인권’의 강조는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 이 글은 현재 광주학생인권조례 추진위원인 김재황 선생님(하남중)의 글입니다.

,


학생은 아동과 청소년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지만 아동과 청소년 모두가 학생은 아니다. 따라서 학생인권과 아동권․청소년권이 혼용되는 것은 단순 등식화에 따른 오류의 결과이다. 자칫 학생을 아동과 청소년에 포함시킬 때 당위적․도덕적 권리만을 강조하고 오히려 학생에게 특별히 보장해야 할 권리(사회적 지위권)를 간과할 위험성을 갖게 된다.

또한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권이 총체적이면서 일상적으로 침해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보장해주어야 할 규범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상황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청소년들의 인권은 철저하게 점검되고, 개선되어야 한다. 따라서 탈학교 청소년이나 학교 밖 인권에 대해서는 이번 조례의 내용에서 제외시키는 유보 조치를 취하고, ‘선택과 집중의 원리’를 적용하여 ‘학교 및 그에 준하는 기관에서의 학생인권’만을 취급하는 효율성을 추구한다.

학생인권이란 한마디로 학생이라는 특정한 신분을 갖는 사람들의 권리를 말한다. 학생은 본질적으로 한 인간이며 동시에 한 사회의 구성원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누려야 하는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권리와 함께 학생이라는 제한된 사회적 지위나 자격 내에서 갖게 되는 특정적 권리를 동시에 갖는다. 따라서 학생인권의 내용과 범주를 설정함에 있어서는, 인간으로서의 학생과 제도적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학생이 동시에 고려될 필요가 있다.

※ 이 글은 광주학생인권조례 추진위원인 김재황 선생님(하남중학교)의 글입니다.

,


현 정부 들어 우리 사회의 인권 보장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건강권, 집회 결사의 자유, 표현 및 언론의 자유 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으며, 정보 통신 관련 반인권적 검열 체제 도입의 필요성이 주저 없이 주장되고 있다. 현 정부는 오만하게도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 어떤 정권보다도 개입 의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남한 사회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방관하거나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는 단지 선언적인 문구가 아닌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절박한 삶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교문 앞에서 인권은 멈춘다는 말이 있다. 학생들에 대한 일상화된 인권 침해의 실상을 어떤 말보다 명쾌하게 드러내는 표현이다. 하지만 교문에 가로 막힌 인권은 학생들의 것만이 아니다. 교사와 학부모 모두, 학교를 통해 보장 받아야 할 권리에 있어서는 정도의 상대적 차이만 존재할 뿐,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교장의 절대 권력에 의해 통치되는 학교는 학부모와 교사의 학교 운영 참여를 제한하고, 입시 등 반교육적 제도는 수업권 및 평가권 등의 교사들의 본질적인 교육권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으며, 교직에 경쟁체제를 도입하여 교사들은 생존권마저 위협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는 누구나 인권을 주장하면서도 누구도 인권을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다.

이러한 교육 주체들에 대한 인권 보장 수준의 하향 평준화는 학교에서 ‘인권’을 화두로 삼는데 장애로 작용하고, 인권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전파한다. 그래서 학교 사회 최대의 약자인 학생은 제도와 교사, 학부모들로부터 입체적인 인권 침해와 더불어 상대적인 박탈감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며, 일상적인 학생 인권 침해의 가해자인 교사들은 스스로를 피해자로 인식하는 경우까지 생기게 된다. 특히 권리 주장 및 실현의 경험이 일천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있어서 ‘권리 보장’은 권력의 시혜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말해서 제도가 보장한 권력은 지극히 정당한 것으로 권력에의 순응이 기본적인 삶의 자세이어야 하고, 저항과 투쟁을 통한 권리 획득은 불경한 행동이며, 너그러운 권력의 혜택은 뜻하지 않은 선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대개의 교사들의 권리 의식은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교사들은 자신들의 순응하는 삶을 근거로 권력의 시혜를 애처롭게 기다리다가, 순간 근엄한 표정이 되어 학생들의 복종을 강요한다. 투쟁의 기록인 인권의 역사는 학교에서 발을 붙이지 못한 채, 불공평한 동병상련만이 아롱거린다.

인권의 작동방식은 재화나 상품과 달리 나누다 보면 부족한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함께 보장하여 상향 평준화될 수 있는 본질이 있다. 실제 교사들의 인권 침해는 학생이 아니라, 잘못된 교육정책 기조에서 온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버릇 없이 날뛰는 학생들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는 ‘상호존중’의 사고방식을 통해 신장될 수 있다는 권리의 기본 속성을 간과한 판단이다. 권리를 배우고 사용하는 것은 자신과 타인의 존엄성을 파악해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학생 인권에 대한 이해는 교사들이 인간의 권리, 특히 자신들의 권리를 정확히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다시말해서 학생 인권에 대한 부각은 학교 인권 실현을 위한 도미노의 시작으로, 결국 교사 인권 보장까지 확장되어 연결된다는 것이다.


※ 이 글은 광주학생인권조례 추진위원인 김재황 선생님(하남중학교)의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