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공직자의 출신대학별 비율을 보면 서울대(약 30.7%), 고려대(7.5%), 육사(7.4%), 연세대(6.5%), 성균관대(5.9%) 등 5개 대학 출신들이 전체 고위공직의 약 58%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관료제 사회에서 가장 권력 있는 자리라고 할 수 있는 공직을 몇 개 대학 출신들이 독점하고 있다. 이러한 특정대학의 공직 독점은 다른 분야까지 영향을 끼친다. 기업에서 서울대 출신을 선호하는 것도 다른 어떤 이유보다 공직이 서울대에 독점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이 시민사회 위에 군림하는 한국에서는 기업 운영을 할 때도 언제나 국가 기관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서울대 권력이 계속 확대 재생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위공직자 임명시 특정대학의 비율이 30%를 넘지 않아야 한다. 공직은 전국민을 위한 봉사직이지 몇몇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공무원 채용시 특정대학이 10%를 넘게 되면 공직이 사유 체제로 변질되기 쉽다. 게다가 우리 나라의 행정을 좌지우지하는 고위공직자 가운데 특정대학 출신자가 30%를 넘는다는 것은, 공직의 공익성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우리가 '대학별 공직 제한제'를 주장하고 이를 위한 법안(가칭: [공직의 균등임용을 위한 법안])을 제정하자는 이유이다. 특히 이는 고위직의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의지로도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질문과 답

▶ 지역별 인재 할당제를 실시할 때, 대졸자에게만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닌가?
▷ 지역별 인재 할당제는 우선 각지역의 인구비례에 따른 공직자의 배분을 뜻한다. 그런데 이 때 우리가 말하는 지역은 '출신 대학이 속한 지역'이 '태생에 따른 출신 지역'에 우선 적용되기 때문에 대졸자에게만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 대졸자가 아니더라도 인재할당에 해당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시제도는 7급 중심의 선발체제로 개편되는 것이 옳다. 고시제도가 갑작스런 개인의 신분상승의 기회처럼 여기지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익성이 담보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회성 시험으로는 인물을 온전히 평가할 수 없으며, 중간 및 최고 관리직이 되기 위한 공직자끼리의 경쟁도 보장하지 못한다.

▶ 지방의 거점국립대학들이 지나치게 중심화되는 것은 아닌가?
초기단계에서 이는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우선 서울소재의 대학과 상대할 다수의 지방의 국립대학을 육성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사립대학은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며, 국립대학은 철저하고 완전하게 집중 육성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지원과 더불어, 국립대학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중복투자와 같은 비효율성을 방지하는 적절한 체재개편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오늘의 시점에서 법학대학원, 의학대학원, 사범대학원 그리고 경영대학원 등도 거점국립대학이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관련 학부의 폐지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국립대학의 무상교육, 장학금 지급, 기숙사 설비 등 특단의 조치가 실시될 것을 요구한다. 서울대에 독점적으로 투자되는 돈이 지방의 국립대학에 분산되어야 한다. 전국의 거점국립대학의 육성은 수도권 집중 억제와 지역간의 균등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 현재에도 국립대학 교수채용시 한 대학 출신이 2/3 이상 되지 못하게 되어있는데도, 지켜지지 않는데?
▷ 현재 국립대학의 경우 교수채용시 특정 대학 출신이 2/3를 넘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그 설정기준이 매우 모호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모집단위별 2/3'가 우선적이며, 게다가 '당해년도'라는 한정적 표현이 따라, 현실적으로 피부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3명의 신임교수를 뽑는다고 가정할 때, 한 과(예: 역사과)의 모든 교수가 A대 출신이더라도 그 과가 속한 같은 모집단위(예: 역사철학군) 내의 다른 과(예: 철학과)에서 1명의 B대 출신을 뽑았으면, 2명의 A대 출신을 더 뽑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행정의 기본원칙은 적법성에 있다. 따라서 그것이 규정으로서 강제성을 띤다면 어떤 공무원이라도 이를 지키지 않은 방법은 없다. 따라서 법령으로 제한된 할당을 지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실적인 실효성은 보장된다. 문제는 규정의 모호성에 있지, 규정의 실효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서울대에서 타교 출신 교수를 뽑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법령의 엄정함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개방성에 기초한 자발적인 사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서울대는 '같은 대학(university)'의 해석을 '같은 단과대학(college)'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아 여전히 서울대 중심주의를 보완, 확대하고 있다.

▶ 능력 있는 사람이 대우받는 것은 당연한데, 이 제도 때문에 탈락된다면.
▷ 특정 대학에 특별의 기회를 주는 것은 상당한 불평등을 야기한다. 이를테면, 모 대학에만 취업의 기회를 주는 것 등이다. 그러나 전 대학에 일반의 기회를 주는 것은 평등을 확대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전 국민에게 공무원 임용시험의 합격 가능성을 넓혀주길 희망한다. 이른바 능력주의란 공정한 경쟁에서 타당한 개념이지, 우리의 현실에서처럼 경쟁조차 차단되는 경우에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도 능력 있는 사람이 대우받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일류대에 간 능력을 무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일류대에 가서 일류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타파하자는 것이다. 일류대만 입학하면 일류가 아니라, 지방대에서도 일류의 인재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 학벌도 장애자, 여성, 외국인, 비정규직 노동자 등과 같이 분명한 차별의 기준이 있는가?
▷ 학벌은 여성, 외국인 노동자와 같이 천성 또는 신체적 조건에 따른 차별과는 다르다. 학벌은 오히려 이런 모든 차별 속에 또다시 내재한 차별이기 때문에 가장 '포괄적인 차별'에 속한다. 장애자, 여성, 외국인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로 차별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학벌로 다시 차별되는 것이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차별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공고화시키는 기제인 것이다. 이를테면, 여자로서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자들은 더욱 학벌을 차별화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장애자와 외국인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운데 벌어지는 학벌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차별 받는 속에 더욱 차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학벌은 어떤 차별보다도 우선시되어야 할 문제이다. 우리가 여성인재할당제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할당제에 적극 찬성하고, 학벌의 문제와 많은 교집합이 있을 것이라고 인지하면서도, 그것이 대치되었을 때는 학벌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학벌은 공공의 이익(이를테면, 여성은 국민의 50%에 해당된다면 학벌차별은 국민의 대다수에 해당)과 관련되어 불평등이 너무도 크다는 점에서 학벌문제를 최우선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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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과 상급 학교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학생의 흐름을 양적, 질적으로 통제하고 조절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시험 제도가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입시는 국가가 관리하는 선발 시험 제도의 사회적 영향력으로 인하여, 평가가 교육 과정에 발전적인 영향을 주기보다는, 평가에 의해 교육 과정이 역으로 왜곡 당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평가가 교육을 지배할 때 교수 학습 활동은 시험에 대비한 능력을 키우는 활동으로 전락하고 만다. 문제 해결력 등 시험에서 요구되는 기능만이 의미를 가지게 되고, 단기간에 많은 지식을 주입시키는 주입식 수업으로 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서열화된 대학 구조를 가진 우리 나라에서는 이 평가로 인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는 인생의 경험이 배제되어 있는 '입시선수'가 사회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를 통해 시험을 위주로 하는 입시경쟁이 사라지면, 초중등학교 교육도 더 이상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에 종속되지 않고 본래의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윤리시간에는 철학을, 국어시간에는 시와 소설을 온전하게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의 타파를 위해, 우리는 수능의 난이도를 지속적으로 낮추어 자격고사화하며 궁극적으로는 학교나 학생이 시험을 선택할 수 있길 요구한다. 아울러, 대학입학전형을 대학에 완전히 맡겨 스스로 책임지고 학생을 선발할 수 있길 희망한다. 수능점수에 따른 '인간 서열'이라는 거짓이념은 더 이상 재생산되어서는 안 된다.

주장 1. 대학서열화 기제인 수능을 자격고사화하라.

수능시험의 본질이 권력집단에 들어갈 사람을 뽑고, 그 불평등을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려는 '속임수 장치'인데도, 많은 사람들은 수능시험이 마치 한 개인의 능력을 정확히 평가하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래서 수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학벌로 권력을 독차지'하는 대학에 들어간 사람들은, 정말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 그러한 권력을 누린다고 착각한다. 한편 시험 점수 따기 경쟁에서 진 사람은 수능시험의 능력을 들먹이는 '거짓이념'에 속아 학벌차별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자기 능력을 탓한다. 그래서 차별에 맞서 싸우는 대신 다시 시험에 매달려 그러한 권력집단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 나라의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은 교육 목표의 성취 수준을 측정하는 시험이 아니라 상대적인 서열을 매기는 획일적 시험이다. 또한, 이 시험의 운영과 문제 출제 과정은 중등교육 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을 전적으로 배제한 채 진행되기 때문에, 중등교육 기관을 하나의 독립된 교육 과정을 책임지는 기관이 아닌, 대학 입학 이전의 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의 하부 교육 기관처럼 전락시키고 있다. 따라서 점수에만 관심이 있는 현재의 수능은 교육과정의 극심한 왜곡을 가져온다.
국가가 주도하는 자격고사는 일회성 시험이 아닌, 교육과정의 평가를 담고 있어야 한다. 시험은 선발과정의 통제 장치로서의 기능보다는,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이행했는지 여부를 평가한다. 이는 중등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이수했는지 여부를 평가하는 것이며, 대학 입학전형의 자료로 선택적으로 활용된다. 수능의 졸업자격고사화는 본질적으로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대안이며, 수능성적만으로 형성되고 있는 수직적인 대학서열화를 타파하기 위한 방안이다.
아쉬운 것은 많은 교육계의 의식있는 인사들조차 학벌과 수능의 필연적인 관계에 대해 그다지 인식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학벌이 허상이라면, 그것의 설계도가 바로 수능이다. 따라서 한국사회는 '학벌과 수능으로서의 세계'로 정의된다. 오늘날 수능은 학벌이라는 요괴를 지키고자하는 매트릭스로서 작동하고 있다.

주장 2. 국립대 통합전형을 실시하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는 통합되어야 한다. 선발에서 졸업까지 국립대는 동일한 자격을 가져야 한다. 국립대가 통합전형된다는 것은 모든 국립대를 하나로 묶는 것과도 같다.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서울대 학부가 사라짐을 뜻한다.
먼저 지나치게 비대화된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장기적으로는 지역별 국립대의 정원이 인구비례성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우선 신입생 선발은 소재지역 출신의 대학진학 희망자에게 우선권을 부여해야 한다. 이를테면 국립대 신입생의 50%는 동일지역 소재의 고등학교 졸업자에게 할당한다(이는 지역인재할당제와도 관련된다). 나머지 50%는 지역의 구분 없이 개방하여 충원하는 식이다.
그리고 전형시에 대학은 무시험을 원칙으로 하되, 여러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현행 제도도 학생 선발을 대학에 원칙적으로 맡긴다고는 하나, 수능이 전국의 학생들을 점수로 서열화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국가가 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대학이나 학과의 성격이나 특성을 무시한 현재의 선발방법은 중등교육의 황폐화에도 일조하고 있다. 대학이 입학의 진정한 자율성을 확보할 때 학생도 비로소 나름대로의 선택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재능과 취미 그리고 개성에 따른 선발방식이 다양하게 등장할 수 있다. 이런 제도에는 소수자와 약자가 적극적으로 배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입시제도의 다양화는 장차 대학을 일률적으로 비교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서열의 획일화의 둔화에도 크게 기여한다. 아울러 국립대학은 현재 시행하고 있는 소년소녀가장 및 농어촌자녀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정원의 일부를 좀더 개방함으로써 공익성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실적으로 경상대 사회과학원에서 제시한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 구축안'(사회과학원장 정진상 사회학과 교수, 2003.11.19.)에 적극 동의한다. 그 안은 내용에서도 밝혔듯이 처음부터 우리의 이념과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작성된 것이며, 앞으로도 같은 방향의 목적을 위하여 동조할 것이다. 우리와 가장 다른 점이 있다면, 법학과 의학 및 교육학 등 전문대학원 입학을 우리는 대학4년 졸업 후로 비교적 늦게 잡고 있는 반면, 그 안은 대학2기 과정(현행의 3학년 과정)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잡고 있다. 간략하게 정리해보자면, 경상대 사회과학원 안은 국립대학정원의 70%는 내신으로, 30%는 자격고사로 뽑은 후, 대학1기 과정 이수자(현행 2학년 이수자)에게 전문대학원 과정을, 대학2기(4학년 이수자)에게 일반대학원 과정을 입학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구체적으로 전문대학원은 학부 1기 과정 성적 50%와 별도의 시험 50%로 선발하며, 서울대 일반대학원 정원의 80%를 국립대학 학부 출신에게 배정한다는 안이다.

질문과 답

▶ 수능시험과 대학서열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가?
▷ 대학서열은 입시경쟁 때문에 생긴다. 그러나 이 입시 경쟁이 곧 수능시험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수능시험이 점수에 따라 1등부터 줄을 세운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입시경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입시경쟁은 많은 학생들이 학벌로 권력을 독점하는 몇 개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수능시험이 국가적 차원에서 엄격히 평가하는 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변별력'이라는 구실로 난이도를 높이고 이른바 일류대학 입학가능자를 최우선적으로 골라내는 현실은, 학업의 성취도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성적 상위자에게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역할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수능이라는 국가적, 객관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권력세습자를 선발하기 때문에, 대학의 서열구조가 자꾸만 공고히 되는 것이다. 나아가 대학서열은 학벌 권력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국가적 차원의 모순으로 드러나게 된다.
만일 특정 대학에 독점된 권력이 해체된 상황이라면, 수능시험이 현행대로 있다고 해도 오늘과 같은 극심한 입시경쟁은 완화될 것이며, 입시경쟁에 따른 대학서열도 고정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의 입시경쟁은 대학 문이 좁아서가 아니라, 학벌 기득권을 누리는 이른바 일류대학의 문이 좁아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현재처럼 수능시험이 대학 서열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이용되는 한, 수능 서열과 대학 서열은 나란히 갈 수밖에 없다.

▶ 특정대학의 권력 독차지가 사라진다면, 대학이 평준화되는 게 아닌가?
▷ 평준화는 학업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이 여러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평준화라는 의미가 우리 사회에서 상당히 부정적으로 쓰이는 것은 바로 서열화를 공고히 하려는 집단에 의한 고의적인 왜곡 때문이다.
사실상 평준화는 모든 교육의 이념이다. 교육을 균등하게 받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대학평준화가 좋은 예이며, 미국의 주립대학이 또한 그러하다. 그런데도 우리의 학벌권력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평준화에 대한 악의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다.
우리는 평준화라는 말을 쓰면서 상당히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통합전형이나 졸업장 단일화 등과 같은 개념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평준화는 하향식 조정이 아닌 상향식 조정이라는 점이다. 서울대 학부의 개방과 더불어 등장하는 연고대에 비견될만한 대학으로 우선 전국의 국립대학을 육성하자는 것이다. 국립대학은 유수의 사립대학과 경쟁해야 한다.
엇비슷한 대학이 전국에 골고루 산재할 때만이 우리의 학문적 경쟁은 활발해 질 수 있다. 집중된 권력이 전국의 대학을 통해 분산되는 과정을 통해, 다양한 전통이 양산되길 희망하는 것이다.
물론,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몇 개 대학의 권력독차지가 순식간에 사라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여러 제도(독점을 금지하는 법안 등)로 이를 방지하면서 입시제도를 개선한다면, 소수의 대학에 맞설만한 다수의 대학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 졸업자격고사 또한 수능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 현재의 수능은 상위고득점자를 변별해내기 위한 시험이지만, 우리가 말하는 졸업자격고사는 고등학교 졸업학력자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실력을 검증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수능을 더욱 쉽게 낸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된다. 수능 만점자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운전면허 시험에서 어떤 기준을 넘으면 거기서 점수차이란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졸업자격고사는 먼저 학교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평가이다. 현행 수학능력시험은 시험의 출제나 채점, 그리고 관리에 있어 중등학교와 연관성이 적다. 이에 반해 졸업자격고사는 원하는 교육목표에 성공적으로 도달했는지를 검사하는 것이 그 기본 성격이다.
이를 통해, 초중등 교육이 대학입학에 종속되지 않고, 학교와 급별로 아동과 청소년의 신체적 성장과 정서적 발달 단계에 걸맞는 교육목표를 실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울러, 가르치는 자가 평가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 졸업자격고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시험인가?
▷ 현재의 수능보다 좀더 완만한 격차를 둔 자격고사를 뜻한다. 정확한 점수보다는 대학에서 시행되는 성적판별기준인 A, B, C, D, F 정도의 변별성을 가리킨다. 점수로 환산할 경우라고 하더라도 현재처럼 세밀한 점수로 기록되어서는 안 된다. 정확한 점수는 다시금 대학 서열을 조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졸업자격고사는 한마디로 '뭉뚱거려진 수학능력시험'이라고 보아도 좋다.
중등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장기적으로는 내신성적만으로도 대학에 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때 졸업자격고사는 입학전형의 참고용 자료로 이용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센타시험'이 대학입학희망자 모두에게 강요되지 않는 것과 비교될 수 있다.

▶ 본고사 부활의 가능성은 없나?
▷ 통합선발의 체제는 국가가 시험을 전형하는 것이다. 내신을 원칙으로 하되, 그것을 적용할 수 없을 때는 졸업자격고사로 대체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이 과정에서 대학 나름대로의 입시제도가 마련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창의력과 개성을 강조하는 것이어야지 과거의 본고사 형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형자료는 자기소개서를 중심으로 한 학업계획서를 위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일종의 무시험 전형이다.
본고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유수한 대학에서 자신들의 독점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체제이다. 서울대 학부가 개방되어있고 공직독점금지가 실행되고 있는 마당에, 인재가 특정대학에 집중될 까닭은 없다. 학생들은 서울로 집중되지 않고 지역 내에서 수급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며, 점차 서울에 집중된 관심이 전국으로 확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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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문제가 몇 개 대학이 우리사회 모든 분야의 권력을 독점해서 생긴 것이라면 학벌문제의 해결은 여러 방향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첫째는 권력 편중현상을 해체하는 것이며, 둘째는 낮은 서열의 대학을 육성하는 것이며, 셋째는 대학입시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 권력독점의 주범역할을 하고 있는 '권력집단으로서의 서울대'는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 '서울대 학벌문중'은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대의 권력 독점 현상을 2002년 1월 기준, 중앙 인사위원회 발표 자료를 참고하여 보면 다음과 같이 심각하다. 이 같은 편중현상은 오늘이라고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부처

장,차관

검사장 급

부장판사

재경부

외교통상부

서울대 비율

61%

69%

83%

74%

75%



이 독점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적 차원에서 '지역별 인재 할당제'나 '대학별 고위공직자 제한제' 등을 통해 특정 대학 출신의 고위직 독점을 줄여나가는 노력도 해야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워낙 크고 힘센 지금의 서울대 권력을 해체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정책 차원에서도 서울대라는 권력집단이 더 이상 새로운 권력후계자를 충원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대의 학문과 권력은 엄중히 구별되어야 한다. 현재 서울대는 학문의 중심부가 아니라 오히려 권력의 중심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대 학부 졸업장이 곧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가치 부여되고 있기 때문이다. 엄격히 말해 학문은 학부가 아니라 대학원에서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가 진정 학문의 중심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학부를 버리고 대학원 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현재 서울대에서 학부를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곧 서울대가 학문이 아닌 권력의 중심부임을 반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좋은 학부 없이 좋은 대학원이 불가능하다는 식의 논리는 오늘의 서울대의 모습을 보았을 때 어불성설에 가깝다. 문과는 고시에, 이과는 의대 시험에 매달리고 있는 현실에서 제대로 된 학부교육은 시작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시 일정 때문에 학사 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는 것이 현 서울대의 현실이다.
전국 각지의 우수한 학생을 서울대 대학원에서 교육시킬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을 부여하겠다는 데도 학부를 고집하는 것은, 서울대가 학문보다는 권력의 계승에 더욱 집착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비서울대출신 대학원생은 서울대학벌이라는 신분획득을 일정부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권력의 순정성을 유지시키려는 유치한 발상이 서울대내에서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식은 마치 조선시대에 적자와 서얼을 구별하는 태도와는 매우 흡사한 것으로, 학벌이 현대판 신분제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학생들 내부에서조차 편입한 학생들을 서자 취급을 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학벌문제가 젊은이들의 의식에게까지도 얼마나 깊게 오염되어있고 넓게 폐해를 끼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주장 1. 서울대 학부를 개방하라.

우리는 서울대 학부를 완전히 개방할 것을 요구한다. 서울대는 그 설립에서부터 일반대학과는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 졌다. 또한 그 경영에 있어서 막대한 규모의 국민의 세금을 바탕으로 하여 운영되기에 서울대학교의 교육활동의 결과는 우리 사회 전체에게 환원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서울대학교는 그런 국민의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채, 소수 권력집단의 생산소로 전락했다.
서울대 개혁의 첫 번째 단추는 권력을 재생산하는 자체 학부생을 모집하여 권력의 획득물인 졸업장을 제공하는 역할을 그만두는 데 있다. 서울대학교는 지금까지 축적해 놓은 학문적인 성과를 국민에게 개방하여야 한다.
우선적으로 전국의 국립대의 학생들에게 서울대학교의 학부과정을 개방하고, 그것이 안착되면 점차 모든 대학에로 확대 개방하여야 한다. 전국의 국립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소속학교의 학부과정을 이수하면서, 동시에 본인의 필요에 의해 서울대학교의 학부 과정에 개설된 전공 강좌에 수강신청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이 같은 과정을 통하여 학문적인 성취를 높여 나가야 한다.
우리의 주장은 서울대 ‘학부 폐지’가 아니라 ‘개방화’이다. 아울러, 우리는 서울대 ‘학부 축소안’으로 우리의 논의를 희석시키거나 정책의 지연을 야기하는 술수는 엄정히 거부한다. 축소안은 진정으로 기초학문의 소수정예를 기르는 방안으로 현재정원의 100분의 1(학년별 40명선)로 줄이지 않는 한, 의미가 없다고 생각된다. 이를테면, 흔히 서울대 양성을 위해 거론되는 프랑스의 엘리트 양성소인 고등사범이나 폴리테크닉의 정원은 50명, 그리고 국립행정학교는 200여명에 불과함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의 국립대 평준화안에는 서울대가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평준화가 이루어졌을 때, 서울대 학부 존속의 의미는 현재와는 매우 다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서울대 학부의 존치는 인문학 등 기초학문을 위해 일정 부분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울대가 모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력독점의 정점에 있음을 인지하고, ‘서울대 개혁 없는 다른 개혁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공교육 파행의 중심에 서울대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주장 2. 서울대를 대학원대학으로 개편하라.

서울대는 자체 학부생을 선발하여 학벌권력을 구축해 가는 대신에 서울대학교의 교육 기능은 대학원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학부 과정은 공개하는 것과 함께 대학원을 집중육성하여 학문후속세대의 양성이라는 국가의 미래를 감당하는 것이 서울대학교가 지닌 책무이다. 이를 통해 국내의 학문경쟁력을 높여 나가고 우리 학문의 수준을 세계적으로 높임으로써 국제사회 속에서 한국대학의 모범을 보여주는 역할로 전환되어야 한다.
대학원 교육을 우선시하기 위한 많은 금전적 지원정책(BK21 등)이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전개된 것은 서울대에서 ‘학부과정의 축소’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에서 비롯되었다. 연구중심의 대학으로써 활용되어야 할 기금이 오히려 학부생의 재생산만 초래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 개방화와 대학원 중심대학으로의 개편은 현재의 교육정책과도 부합한다.
원칙적으로 학문의 영역은 순수학문과 실용학문으로 분리되어야 한다. 대학은 순수학문의 영역을 맡고, 현재 학부과정으로 되어있는 의대, 법대, 사범대 및 경영대 등 실용학문은 학부를 졸업한 후 대학원 과정에서 탐구되어야 한다. 의사, 판사, 교육자가 되기 위해서 대학을 가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의사, 판사, 교육자가 됨을 뜻한다. 이를 위해, 서울대는 순수학문 위주로 한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체제 개편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실용학문의 분리화 및 사범대학(교육대학 포함) 문제의 해결에도 일조할 것이다.

 

질문과 답

▶ 개방화하라는 것은 학부 교육을 포기하라는 의미인가?

▷ 서울대의 학부를 개방한다는 의미는 서울대가 소수 권력집단의 양성기관으로부터 국민의 교육기관으로 다시 자리를 잡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대는 자체의 학부생을 더 이상 선발하지 않으며, 분권화된 지방의 국립대학의 학부생들이 일정기간 동안 특정한 학문의 연구를 위해 지원하여 수강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는 의미이다.
서울대 학부 과정에서 추가로 이수한 학점은 소속학교의 학점 취득으로 인정된다. 이는 국내외 다른 대학에서 취득한 학점과 마찬가지로 ‘타교 이수 학점’으로 인정됨을 말한다. 현재 10개 국립대학 및 몇몇 사립대학끼리는 이미 학점교환제도를 취하고 있으므로 현실적으로도 실효성이 높다.
서울대 학부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국의 대학생들에게 열린 배움의 장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결국 서울대 학부를 개방한다는 것은 학부 교육의 포기가 아니라 오히려 학부 교육을 강화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통해 서울대 학부는 졸업장 수여기관이 아닌, 진정한 교육의 장으로 환골탈태되어야 한다.

 

▶ 그렇다면 엘리트 교육을 더 이상 하지 말자는 것인가?

▷ 지금까지 정부정책은 한 대학에 집중적인 지원을 해서 이 나라를 지배할 소수의 인재를 키우자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의 엘리트라면 우리는 그 말 자체에 반대한다. 나라의 운영을 특정 집단이 좌우해서는 안되며, 모든 개인이 언제라도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자유롭고 동등하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엘리트 교육'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위장된 서울대의 본질은, 국가의 운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서울대 학벌권력집단'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사람을 충원하는 '지배계급 양성소'일 뿐이다.
하지만 사회 각 분야에 탁월성은 필요하다. 탁월한 요리사, 탁월한 청소부, 탁월한 학자와 기술자 그 모두가 한 사회를 위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소질의 탁월성은 지금처럼 획일적인 시험을 통해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현재 진로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사실상 점수이다. 결국 자신의 소질과 적성보다는 점수에 맞추어서 진로를 선택하는 것은 다양한 분야의 탁월성을 매몰시키는 결과를 낳게 한다.
이처럼 우리 나라 교육은 너무도 비효율적이다. 우리 나라 학생들은 가장 많이 공부하지만 탁월하지는 않다. 대학교육도 전문성이 없다. 자기가 선택한 학문이 좋아서 대학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전공학과와 관계없이 대학의 간판을 보고 대학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최근 많은 대학에서 다른 과로 옮기는 것을 허용하면서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어떤 학과든지 무조건 어떤 대학에 들어가고 보자는 풍조가 만연하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바로 대학서열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참된 의미의 엘리트 교육을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의 적성과 소질에 따라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 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취미에 몰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과목에서 일등을 해야 서울대를 비롯한 이른바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으니 어떻게 학생들이 자기 자신의 적성을 마음껏 도야할 수 있겠는가? 이런 환경 속에서는 시험선수만 만들어질 뿐 참된 영재는 길러낼 수 없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엘리트 교육인 영재교육은 대학원 체제(영재과정) 속에서 극소수의 인원을 선발하여 양성할 수 있으므로 굳이 대학부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과정에서의 영재교육도 지역의 해당 국립대학에서 담당하면 되므로 특별한 영재교육과정을 초중등교과과정에서 별도로 존치시킬 필요는 없다.

 

▶ 서울대를 개방하면, 그 자리에 연고대가 들어서는 것은 아닌가?

▷ 이는 문제의 본질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반론이다. 우리의 주장은 대학서열화를 타파하여 학문의 본질을 되살리자는 것이지 특정 권력을 타파한 자리에 새로운 권력을 대체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서울대를 포함한 연고대 등의 특정 학벌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함께 분산해야 한다. 가능한 한 모든 대학에게 균질의 교육여건이 제공되어야 한다. 따라서 장차 연고대와 같은 사학권력집중도 분산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입장은 원칙적으로 ‘권력의 독점에서 분산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1개 대학이 아닌 3, 4개의 대학이 경쟁하는 체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서울대 학부를 개방하더라도 서울대 권력은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므로, 그 자리에 연고대가 들어선다는 것은 그다지 가능하지 않다. 더욱이 우리의 대안은 ‘전국의 국립대학을 서울대와 같은 수준으로 올리자’는 것이니, 그 때쯤이면 지방국립대학이 연고대 등과 같은 유수의 사립대학과 함께 경쟁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의 초대형 일류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상화를 포함하여 지방국립대에 대한 특단의 지원을 요청한다. 서울대만을 위한 지원이 전국으로 분산될 때, 각 대학은 특성화의 과정을 거쳐, 참다운 학문의 경쟁체제가 이루어질 것이다.
연고대와 경쟁하기 위한 전국의 국립대학의 특성화 및 통폐합은 이와 같은 서울대 개방화안과 더불어 이루어질 때만이 그 의미를 지닌다. 서울대 개혁이 전제되지 않는 한, 다른 국립대학이 이를 받아들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공직독점금지의 원칙 아래, 한시적인 ‘지역인재 할당제’와 ‘대학별 공직 제한제’를 통해 연고대 등 특정대학의 득세를 방지해야 한다. 우리의 서울대 학부 개방화안은 이와 같은 공직독점금지에 대한 현실적인 조치와 더불어 실제적인 의미를 지닌다.
다만, 연고대가 완전 미국식 사학체제로 운영되는 것을 막을 방도는 없다. 이 때 연고대는 등록금을 자율적으로 책정하면서 귀족학교화할 것인데, 지방 국립대학이 무상으로 운영되는데 반드시 사학을 갈 필요는 없어지리라고 판단된다.
연고대가 인기 있는 까닭은 의대와 법대라는 신분상승의 기제와 관련이 깊다. 그런데 응용학문을 학부가 아닌 전문대학원에서 공부하게 하고, 그 대학원은 국가의 주도하에 설립되고 운영된다면 연고대는 결국 철저하게 여타의 학문적 경쟁으로만 살아남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연고대가 의미 있는 것은 의사, 관료, 변호사, 경영인, 교육자로서의 자격 때문일 터이나, 그것을 국가차원에서 흡수하여 전문대학원 체제로 엄격하게 관리한다면 연고대는 존립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아울러 그러한 전문대학원은, 파리의 국립고등행정학교가 국경지역인 스트라스부르로 옮겨갔듯이, 지방으로 분산되어 지방분권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여야 한다.

 

▶ 학부 기준의 서열이 대학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가?

▷ 서울대의 권력 문제는 학부 권력의 문제이다. 그것도 대학에서의 교육과 학문의 수행 정도에 따른 문제가 아니라 입학 당시에 획득한 점수에 의한 성적으로 전혀 학문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서울대를 나왔기 때문에’ 대접받는다. 거꾸로 말해, ‘서울대를 졸업했기 때문’이 아니라 ‘서울대를 입학했기 때문에’ 인정받는다. 우리나라에서 서울대 졸업장은 학업이수증이 아니라, 입학허가증이라는 유치한 단계를 아직도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이러한 유치한 단계를 벗어난 대학원 과정이라면 일정하게 대우받아야 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른바 엘리트 교육의 참다운 의미도 대학원에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서울대 학부졸업생이 없는 상황에서 다양한 대학출신이 경쟁하여 입학한다면, 대학원 과정이 학벌로 변질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서울대 대학원 과정은 반드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선발되어야 한다. 우리의 주장은 권력보다는 실력이 대접받는 풍토를 마련하고자 하는 데 있다. 충실한 교육을 받은 대학원 졸업생을 무시할 까닭은 없는 것이다.
현재 지방의 대학과 대학원이 위기인 까닭은, 첫째, 학부 교육 이후에 미래가 없다는 것이고, 둘째, 상업적인 이유가 가미되어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마구잡이로 모집하는 데 있다. 서울대 학부가 없어지면 서울대 대학원이 비교적 공정한 경쟁체재로 유지될 것이며, 4년 넘게 충실히 학업을 이수한 지방대학 졸업생도 객관적인 태도로 서울대를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학부생보다 많은 대학원생을 모집하여 영업하고 있는 서울소재의 몇몇 사학은 단순히 ‘학벌세탁소’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의 실질적인 운영을 위해 적당한 방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 서민의 희망조차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 교육이 계층이동의 수단이라는 것은 교육의 본질을 왜곡하는 진술이자 한국사회에서는 이미 사라져버린 전설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 빈곤과 차별이 세습되고 있다. 부자가 되지 못한 이 땅의 빈곤층의 부모들은 삶의 의욕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심지어 자식에 대한 기대조차도 상실한 채 나락에 빠져가고 있다. 학교에서는 더 이상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장학생이 존재하지 않는다. ?학업중단 청소년 실태 분석?(2002. 4. 윤여각.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학업중단 청소년의 부모나 보호자 중 86.2%가 고졸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열화된 대학체제로 인한 학벌독점사회인 한국에서 최고의 가치는 학벌을 얻는 것에 있다. 이 학벌을 얻는 통로로서의 학교 교육이 사회 구성원들간의 계층간 불평등을 구조화하고 있다. 교육 활동의 유일한 평가 절차인 대학입시의 선발 과정에서만이 아니라, 이제는 초중등학교 과정 자체에서 차별이 일상화되고 있다.
평준화가 문제라면서 학부모의 선택권과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자립형사립학교, 특수목적고등학교 등 그 이름만 가지고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많은 종류들의 학교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모두다 우리 학교 교육이 획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요자의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본질은 분명하다. 자신의 아이만을 위한 부자들의 학교일뿐이다.
이제까지 현실로 드러난 이들 학교의 교육과정이나 교육내용은 그 목적에 맞게 운영되지 못하고, 대학입시를 위해 획일적으로 운영되어 왔다. 이것은 다양성이 곧 서열을 만들기 위한 다양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선택 역시 마찬가지이다. 선택의 과정에서 경쟁은 불가피하다. 시장에서 공급자를 선택하거나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누군가를 누르고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경쟁에서의 승리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는 서열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그 서열을 구분하는 최초의 출발은 학생의 능력이나 가능성이 아니라 부모의 경제적인 능력이다. 학벌독점사회인 우리나라에서 학벌을 획득하기 위한 전쟁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돈인 것이다.
그러기에 등록금이 저렴한 서울대학교가 영세서민의 가정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철저한 거짓말이다. ‘공정성의 신화’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울대 학부를 개방하는 것이야말로 기회의 확대이다. 설사 가난한 가정 출신으로 단독으로 서울대를 입학하여 신분의 상승을 이룬다 하더라도 그것은 철저히 개인이 좋아지는 것이지 사회가 좋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같이 꿀 수 있는 꿈이 진정한 꿈이다.

 

▶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

▷ 서울대에 이해관계를 둔 당사자들(교수, 직원, 서울대 출신 사회인 전반)의 강력한 저항과 입시 관계 당사자들(서울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 학부모, 각종 사교육기관 등)의 반대 여론이 예상된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권력집단들의 저항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더는 늦출 수가 없다. 공교육이 황폐화되고, 학생과 학부모들은 과외로 몸살을 앓는다. ‘고3’은 삶의 한 과정이 아니라, 왜곡과 환멸을 경험하는 한국병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금도 채 피어보지도 못한 꽃봉오리들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있으며, 가족 파괴조차 진행되어 가고 있다. 또한, 현재 낮은 서열의 대학의 학생들이나 졸업생들이 상실감과 절망을 치유하고 당당한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국가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도 절실하다.
우리는 이러한 학벌문제의 치유를 위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있음을 확신한다. 어느 학부모가 자녀들을 입시지옥에 넣고자 하며 사교육비 마련을 위해 자신이 부정을 저지르고자 하겠는가? 어느 교사가 자신의 임무를 학원에 떠맡기며 전인교육이라는 이념을 저버리고 싶어하겠는가? 어느 학생이 인격형성과 학문탐구를 위한 진정한 학교수업을 마다하겠는가?
실현 방안으로는, 먼저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여론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울대 이해관계자들의 저항과 일부의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의 대다수(95%이상)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여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프랑스의 경우 1968년 당시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모든 대학의 평준화를 시행한 바가 있음을 참고하면 우리 사회도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다. 이미 서울대 내부에서도 자체 개혁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어 우리 모임의 고문인 장회익 교수를 중심으로 서울대 학부 개방을 촉구하는 선언이 있었으며, 이번 2005년부터 시행될 서울대의 지역균형선발제(지역할당)도 결국 개혁의 요구에 대한 수세적인 서울대의 반응이다(우리는 서울대 지역균형제의 이념적 단초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 서울대 학부권력의 또 다른 형태의 확대재생산이라는 점에서 이를 원론적으로 반대한다.)
이를 위해 노무현 정부기간 동안 ‘학벌주의극복을 위한 특별위원회로부터 제안 → 범국민적 논의와 여론수렴(관련 시민단체와의 연계)을 거쳐 → 서울대 학부 개방화를 위한 백만인 서명 운동 추진(*노무현 정부와 관련하여 행정수도이전 건이 수도권의 반대에 의해 국민투표에 부쳐진다면 이때 함께 하는 것도 가능하다.) → 서울대학교설치령[대통령령 제17144호] 개정 절차 마련 → 서울대 개방 및 대학원중심대학으로의 전환’을 단행해야 한다.

 

▶ 서울대 개혁을 위해 서울대를 민영화하자는 주장도 있던데.

▷ 서울대 민영화는 학벌 문제 및 대학서열화, 그리고 대학의 경쟁력에 있어서도 전혀 실효성이 없을 것이며, 오히려 이전의 문제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다.
대학서열화와 학벌주의의 문제는 현실적인 권력독점의 문제이다. 서울대는 바로 그 정점에 위치함으로써 대입 이전의 모든 교육을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한 입시 경쟁의 장으로 몰아가고 있다. 서울대를 필두로 한 대학서열 체제는 입시 서열화를 통해 능력 서열로 인정되어 학벌주의 사회 구조를 공고하게 유지하는 가운데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특히 한번 정해지면 평생 바뀌지 않는 출신대학의 명함은 성공을 좌우하는 증표로서 결국 인생의 향방을 가름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관문이기 때문에 사활을 걸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서울대에 입학하려는 근본적 이유는 단지 서울대가 국립대여서가 아니라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거점이 되기 때문인 것이다. 이 점에서 서울대가 민영화된다 하더라도 대학서열화와 학벌주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더구나 대학간의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은 결국 대학의 학문 경쟁력을 통해서 가능할 수 있는 것인데, 현재 상황에서 온전한 의미의 학문적 경쟁력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이미 대학서열화에 따라 경쟁력의 의미가 왜곡되어 있는 상황에서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은 단지 문제상황을 희석시킬 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서울대의 막강한 위상이 자본 시장의 화폐로 전환될 때의 문제이다. 이는 곧 기존 대학서열화의 시장화를 의미한다. 즉 연고주의에 기반하고 있는 학벌주의와 시장적 자본과의 본격적 만남인 것이다. 결국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기초학문 분야의 도태와 더불어, 대학의 본래적 의무인 학문의 경쟁력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아울러 학벌주의와 시장적 자본과의 만남으로 인해 기존의 입시 경쟁은 이제 본격적으로 자본을 소유한 계층에게 유리해질 것이다.
특히 서울대 등 국립대학이 민영화되었을 때, 대학이 교육보다는 경쟁의 단위로 규정되어 교육의 공익성이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능력있고 실력있는 사람이 아닌, 돈 있는 사람만이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극심한 불평등을 국민이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지도 모른다. 원론적으로 개별 대학은 경쟁의 단위라기보다는 기회의 단위이어야 한다. 교육이란 숨겨진 재능을 계발하는 것이고, 대학은 그를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학교교육의 황폐화, 과다한 사교육비, 입시 과열 경쟁 등 교육 전반의 문제들은 결국 대학서열 체제를 축으로 하는 학벌사회의 불평등 구조에서 비롯된다. 서울대는 이 구조의 핵심적 학벌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며, 설사 서울대가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학벌 문중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경우 동일한 문제 상황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점에서 좀 더 본질적인 문제는 특정 학벌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는 우리 사회의 권력 구조 자체를 개혁하는 데에 있다.
서울대는 그러한 권력 독점의 정점에 있다. 학벌주의를 타파하여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와 교육 전반의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서울대 민영화라는 변형된 문제가 아닌, 개방화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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