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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 독립성 보장과 지역사무소폐쇄저지를 위한 광주대책위(대책위)가 장애인 인권문제 등 현장 곳곳에서 빚어지는 인권 차별을 바로 잡아 달라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 진정을 냈습니다. 10일 오전 광주 동구 대인동 국가인권위 광주인권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이용 차별’ 등 12가지 인권침해 사례를 발표했는데요. '휴면게시판 > 2009~10년 활동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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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말하기가 참담한 시절이다. 광장은 막혀있고, 국민의 기본권은 사장되고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는 헌법 10조가 공허한 시절이다. 이명박 정권은 헌법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인권의 가치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치고 있다. 이는 국가의 직무유기다. 지난 3월 30일 국가인권위에 대한 21% 조직축소 방침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되고 직제개편이 단행되었다. 폐쇄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었던 3개 지역사무소는 1년간 존치, 이후 존폐여부를 판단하기로 하였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다. 이후 인권위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청구와 직제 개정령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해논 상태다. 헌법재판소는 혹여라도 정치적인 저울질을 하지말고 ‘인권의 원칙과 헌법에 있는 기본권’ 보장 정신을 살려서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우리는 오늘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소외받고 억압받는 이들의 절박한 심정을 모아 이 자리에 섰다. 우리는 지난 1년간 이명박 정권 하에서 수많은 인권말살 행위들을 목도해왔다. ‘인권’의 가치들은 계속 축소되고 있고, 인권위 축소는 그것의 연장선일 뿐이다. ‘인권’은 하늘이 내려준 권리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인권은 처절하기만 하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통과된지 1년, 가장 기본적인 이동의 권리는 제한되어 있고, 장애아동의 학습권은 배제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현실은 박종태 열사의 죽음이 말해주듯이 ‘효율’이라는 이름아래 거리로 내쳐지고 있으며, 입시경쟁에 내몰리는 청소년들은 오늘도 소리소문없이 스러지고 있다. 오늘 접수하는 인권침해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한국사회엔 드러나지 않는 무수한 인권침해 사례들이 잠자고 있다. 인권위는 억압받고 소외받는 이들의 문턱없는 의지처가 되어 이 사회의 인권현실을 개선하는데 복무해야 한다. 인권위는 이명박 정부의 인권위 흔들기에 주눅들지 말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차별과 불평등, 절망이 심화되고 있다. ‘차별’을 조장하는 정권은 과거 역사가 증명하듯이 언제고 민의 심판을 받아왔다. 이명박 정부는 ‘인권의 가치’에 귀 기울이고 진심어린 소통을 해야 할 것이다. 2009. 6.10 국가인권위독립성보장과 지역사무소폐쇄저지를 위한 광주대책위 '휴면게시판 > 2009~10년 활동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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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와 권력독점을 보고 글을 쓰고 싶었지만, 2009년 429재보선 관련 성명서 내용이 너무 좋아 이에 대처합니다. by 고복수 한국정치 선거에 출마했던 사람들 만면을 보면, 한국사회에서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특정대학교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첫 번째, 지표를 보자. 2007년 대통령 후보자들의 출신학교를 보면 절대 다수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흔히 말하는 명문대(이하 특정대) 출신이었다. 한나라당 이명박 - 고려대, 대통합신당 정동영 - 서울대, 민주노동당 권영길 - 서울대, 민주당 이인제 - 서울대, 한국창조당 문국현 - 서울대, 무소속 이회창 - 서울대 등 대선후보 10명 가운데 60%가 특정대 출신이었던 것이다. 국회의원, 지방선거, 교육감 선거에도 별 반 차이가 없다. 한 예로 이번 4.29 재․보궐선거를 보자.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후보자 학력은 66명 중 12명(약20%)이 SKY(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출신들이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지표는 단편적인 현상이 아닌, 그동안 정치후보자의 통계를 봐도 이와 유사하거나 더 높다. 위 지표를 통해 우리는 서울대라는 학벌이 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정치선거는 나라의 최고 권력자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좌우와 보수진보를 가릴 것 없이 주요 정당에서 후보로 나온 사람들의 다수가 서울대 출신이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서울대학벌이 권력의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지배계급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한마디로 말해 서울대는 이 나라의 성골인 것이다. 고졸출신 김대중 씨, 노무현 씨의 고졸신드롬을 보며, 학벌이 아니라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착각이다. 어떠한 권력은 개인이 소유할 수 없으며 집단적으로 행사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정치운동을 하는 것과 같이. 그 까닭은 어떤 개인도 혼자서 모든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는 만큼 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배와 주체는 언제나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 계급이다. 그리고 그 계급은 지배이데올로기와 계급의식에 의해 생긴다. 그러니 노무현 씨, 김대중 씨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 이 땅의 민중에게 무슨 대단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겠는가? 그도 역시 자기의 권력을 공고히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정한 계급과 손잡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선택한 계급이 무엇인가? 그것은 다시 이 땅의 영원한 지배계급인 서울대 학벌이었다. 현 이명박 정권을 고소영이란 연애인 이름을 빗대고 있다. 고소영의 고-고려대 앞 자를 따서 부르고 있는데, 이명박 정부의 다수 고려대 인사들이 정권바닥에 있는 것처럼. 전 노무현 정권 역시 첫인사라 할 수 있는 청와대 수석비서관 14명 가운데 민정서석을 빼고는 모두가 서울대 출신이었다. 이것은 역대 어떤 정부에서도 보기 힘든 극단적인 편중인사였다. 그러니까 이명박 정권도 노무현 씨도 차별없는사회를 추구하겠다는 자기의 약속을 뒤집고 자신의 지지자를 학벌토대 세력을 양성한 셈이다 한국정치의 경쟁 시스템은 개인의 능력에 대한 공정한 평가이기보다는 학벌과 정당에 의해 배타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학벌을 통한 승자 독식체제는 그 되물림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음을 자랑하고 있기에, 국민들의 드넓은 의식과 무의식까지 깊은 영향을 주며 정치적 판단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하지만, 정치적 선택의 기준은 후보자의 정책, 양심, 소신 등 가치가 중심여야지, 학벌을 통해 판단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신정아 씨 가짜학력 파문이 번져가면서 많은 수의 대중은 허위학력 기재 당사자의 이완된 윤리의식을 문제삼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과 함께 우리는 더 큰 구조적 모순인 이 학벌사회의 문제점을 성찰하고 이를 대체할 한국정치의 공정한 경쟁원리가 과연 무엇일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는 많지 않다.
학벌문제가 다른 무엇보다 권력독점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면, 그것은 곧 서울대의 권력독점 문제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상의 관찰을 통해 명확하게 인식해야만 한다. 특히, 진보정당 내에서도 민주주의, 평등정치라는 선정적 구호에 그치지 않고 내부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주위 깊은 사고가 필요하다. '휴면게시판 > 2009~10년 활동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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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정부의 막장교육 정책 때문에 척박한 청소년인권 및 교육운동 진형 내에서는 좌충우돌 하고 있지만, 그 동안의 활동경험이나 작은 연대가 단단한 힘이 되기도 합니다. 포럼주제 :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이 인권을 넘보다 내용 : 체벌문화의 극복방안(6월) 청소년 성적자기결정권(7월) 청소년언론주권(8월) 주최 : 학벌없는사회 광주모임(준) (청소년인권연구모임) 일시 : 2009년 6월 - 11월 (총 6개월간, 월 1~2회) 장소 : 광주광역시청소년문화의집 혹은 학벌없는사회 광주모임 강당 대상 : 회원 및 교육주체(교사, 학부모, 학생) 20명 내외 참가신청 : 070-8234-1319, antihakbul@gmail.com 참가비 : 없음 '휴면게시판 > 2009~10년 활동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녕하세요. 학벌없는사회 광주모임(준)에서는 2007, 2008년에 이어 2009년 입시폐지대학평준화 대행진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자전거가 아닌 도보를 통해 전국방방곡에 널리 알리고 많은 분들과 만나고 함께 할 예정입니다. 이번 순례를 통해 교육혁명을 열망하는 목소리를 함께 지르고 전국의 열망을 만나고 싶으신 종주자를 모집합니다. 입시폐지대학평준화 열망이 크시고 자전거를 페달을 힘차게 밟으실 체력이 있는 분이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한반도 남단을 대학평준화의 깃발로 수놓으실 분은 냉큼 연락주시길 바랄께요.^^ 0 주최 : 입시폐지대학평준화국민운동본부 광주-순천지역 실천단 0 지점 : 전라남도 지역순례 0 주유 슬로건 - 0교시, 우열반 미친교육 갈아엎자!! - 이제는 교육혁명 입시폐지․대학평준화!! - 입시폐지․대학평준화로 교육을 살리자!! - 초중등은 입시폐지 대학은 평준화, 무상화!! - 교육과정개혁, 과감한 교육투자로 한국교육 업!! - 사교육, 시험지옥 안녕 교육혁명 고고싱!! 등. 0 신청 및 문의 : 070-8234-1319, antihakbul@gmail.com 0 신청 기간 : 7월 말 '휴면게시판 > 2009~10년 활동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by 신가반점 설레임 『학벌 없는 사회』란 이름을 들었을 때 설레였다. 사실은, 강준만의 『서울대 죽이기』에서 느낀 분노와 깨달음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참으로 이성적이고 쿨하다. 학교나 학력 따위는 상관없이 사람과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난다고 모두들 스스로 주문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우리들은 그렇게 쿨한 자신을 배반하고, 나도 모르게-그게 바로 무의식이지!- 괴물이 튀어나온다. 결정적인 순간? 예를 들어 그대가 학생인권운동에 매진했던 학생투사였고, 세상의 모든 차별에 맞서는 용감한 자였음에도 대학입학원서를 쓸 때! 중하류층 부모의 “대학 나와야 사람된다”는 말에서부터 상징자본이 풍부한 중류층 부모의 유도형 언설들, “대학이 전부는 아니지. 하지만, 스스로 너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가보는게 어떨까?” 라는 등의 이야기와는 상관없다. 문제는 다름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 입학배치표 앞에 서서 한없이 작아져 그 줄서기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어떤 변명들로 위안하고 자책하기도 하고. 생활은 늘 ‘학벌 없는 사회’속에서 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 ‘학벌없는 사회’속에서 어느덧 계산(혹은 짱구 굴리기)을 하는 우리의 모습. 자, 그렇다면, 다시 우리는 첫마음으로 돌아가자는 결의를 하여야 할까?
지겨운 첫마음 타령들 “..전화를 걸면, 의무감으로 약속을 하고/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곤 하지/ 당신을 사랑한단 말로 서로에게 위로하겠지만/예전에는 없는 두근거림은 아니야..” 오래된 노래, 015B의 “오래된 여인들”가수 중에 일부다. 학벌없는 사회에 관한 담론, 오래된 연인들처럼 시들시들 하다. 노래는 그런데 허무하게 “처음에 만난 그 느낌, 그 설레임을 찾는다면, 우리가 느낀 싫증은 이젠 없을 거야..”라고 정리(?)한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연애 오래하고 시들하면, 처음 만난 그느낌 따위는 다른 놈(년)에게서나 찾을 수 있는것이 자연 이치가 아닌가? 자연 이치에 거슬리며 “처음 느낌”을 기대는 그 마음보는 안쓰럽다. 안습이다. 자연이치에 거슬리면서 저렇게 매달리는 이유? 단 하나다. 지금, 바로 여기가 허무하고 슬퍼서. 한마디로 지금 무능해서! 첫사랑 타령을 잘 뜯어보면 무능한 자들의 한숨이요 죽은 노동의 흔적일 뿐이다. 학벌없는 사회는 어떤가? 학벌없는 사회 혹은 차별없는 사회를 지향하면서 혹시 열폭(열등감 폭발)한다면, 그 사람의 노래들은 무능한 자들의 슬픈 웅얼댐이다. 경쾌한 노래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 팔뚝질을 너머서 대체적으로 한국 사회의 진보진영, 시민운동진영이 어떤 운동의 쟁점을 차지했던 영광을 잃어버린 듯하다.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운동이란 것이 대중들의 욕망이 어느 계기에 화끈하게 분출되는 물리현상이라고 할 때, 진보진영과 시민운동진영이 뒤로 쳐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늘, 이 운동단체들은 그대로 머문다는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이 극한 상황들을 이용(?)하여 아스팔트로 향하게 하거나, 미디어 뚜쟁이들에게 퍼포먼스를 하거나, 팔뚝질을 하는 등의 일 뿐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대게 투쟁위에서 ‘수습’위로 변한다. 투쟁위에서 수습위로 변신하기. 팔뚝질하기. 그런데 그러면서 놓치는 것은 무엇일까? 현장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스팔트에 서 있으며, 가장 차별 받는 당사자를 위해 싸워주고 있는데 ‘현장’에 서 있지 않다니 무슨 모략이냐고? 그러나 이제 현장은 아스팔트에 있지 않다. 자본이 전일적으로 노동의 살아있는 피를 마셔가는 이 지구화된 제국 속에서 현장은 도처에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살인은 결코 극적인 방식이 아니라, 아주 미시적인 형식으로 침투, 전염병으로 이동시킨다. 우리자신이 이미 스스로 차별에 물들어 있었다는 담론(김상봉의 학벌사회의 이론들)이 그 증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팔뚝질을 너머 설 것인가? 현장을 살아야 한다. 매일 매일 만나서 그 나물에 그 밥으로 좁은 ‘광주’를 탓하지 말고, 전혀 새로운 것에 우리 자신을 흐름 속에 내 던져야 한다. 불편했던 것, 깜짝 놀라 이맛살이 찌푸려 졌던 것, 꼬물꼬물 징그러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곤충 같은 현상들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도둑질로 공동체를 이뤄가는 청소녀(전남대 사회학과 추주희논문에서 파헤친)들. 그들과 접속할 수 있어야겠지. 우리들의 ‘구호’들에 동감하는 사람과 모여 팔뚝질 하는 것 보다 더 흥미롭고 즐거운 것을 찾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전혀 다른 ‘괴물’로 변신할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사실 팔뚝질로 학벌없는 사회는 너무 정체되지 않았나? 늘 같은 책들로, 같은 신세한탄(?)으로 같은 커리큘럼으로. 다시 한 번 돌아보자. 학교와 학벌로 이루어진 지식의 그 답답하고 저열함을 거부한 자들이 학벌없는 사회 속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의 그 불쾌함은, 실은 학교를 벗어나 새로운 지식, 즐거운 지식에 대한 벌떡임으로 너무나 넘쳐나기에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더 중요한 것은 저들에 대한 혐오감이 아니라 불온하며 즐겁고 쾌활한 욕망들이 터져나오는 것이 아닌가? 넘쳐 흐르는 그 지식들과 기쁨을 공유하기. 어떻게 사랑을 잘 할 수 있을까? 어떤 삶이 더 행복한가를 더 충분히 나눠야 하지 않을까? '휴면게시판 > 2009~10년 활동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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