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없는 세상을 향한 힘찬 날개짓을 하기에 비영리민간단체는 아직은 작고 약한 날개입니다. 더 높이 더 멀리 날기 위해서는 날개에 힘을 실어주는 순풍이 필요합니다. 뜻을 함께 하는 당신의 후원이 세상을 바꾸는 바람, 학벌없는사회를 만드는 바람을 일으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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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이하 학벌없는사회)은 특정학교 합격 홍보물 게시관행에 의한 학벌 차별문화 조성을 우려하여, 이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2006년부터 특정학교 합격 홍보 게시 반대운동을 펼친 단체입니다. 이 운동을 위해 학벌없는사회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와 각 시·도교육청을 상대로 현재 200여건이 넘는 학벌차별 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2. 위 진정서에 대해 인권위는 특정학교 합격 홍보물 게시가 우리사회에 학벌 차별문화를 조성내지 강화하지는 여부를 검토하였고, 2012년11월26일 헌법 제11조를 기준으로 차별시정위원회를 거쳐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표명을 했습니다. 이 결정은 특정학교 합격 홍보물 게시가 우리사회에서 발생하는 학력·학벌 차별의 핵심적 원인은 아니지만, 우리사회가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차별적 문화를 조성할 우려가 있다고 보아 그 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3. 그동안 답변이 미진했던 인권위가 늦게나마 의견표명을 낸 것에 대해서는 환영할 일이지만, 의견표명 이후 1년이 지나지 않은 지금. 일부 학교에서는 여전히 특정학교 합격을 알리는 홍보를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일부 초등·중학교에선 특정 (중)고등학교 합격을 홍보하는 현수막과 홈페이지, 전광판을 통해 공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다수 시·도교육청이 인권위 결정문을 각 급 학교에 안내하지 않거나, 형식적인 공문만 내리고 지도·감독을 안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4. 이에 우리단체는 17개 시·도교육청이 각 급 초·중·고등학교, 교육지원청, 사설학원 및 교습소를 대상으로 <인권위 결정문을 안내했는지에 대한 여부>, <지도·감독을 실시했는지 여부>를 파악하고자, 2013년3월21일 17개 시·도교육청을 대상으로 정보공개를 청구했습니다. 처리결과는 아래(붙임1) 도표와 같으며, 처리기한을 연장한 교육청은 없으며 2013년4월2일 모든 곳에서 답변을 받았습니다.
5. 그 결과, 세종특별자치시만 유일하게 인권위 결정문을 이행하지 않았으며, 이 사안에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반면, 전라남도·전라북도·경상남도 교육청은 (동문회를 제외한) 모든 각 급 학교, 사설학원 및 교습소, 교육지원청에게 결정문을 공문으로 안내하였고, 지도·감독까지 실시한 것으로 보아, 가장 열심히 학벌차별 개선을 위해 노력해 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6. 또한, 대다수 시·도교육청은 이 사안이 대학입시와 연계된 것으로 판단하여 교육과정 관련부서에 담당업무가 배정되었는데, 경기도교육청만 유일하게 학생인권 담당업무자(인권 옴브즈만)가 이 사안을 배정받아 업무를 처리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즉, 대다수 시·도교육청이 학생인권의 시각이 부족, 문제인식을 못하고 있거나, 학생인권 담당자(부서)가 없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7. 마지막으로 ‘특정학교 합격 홍보 게시물’의 근원지인 사설학원 및 교습소에 대한 제재가 등한시되고 있습니다. 사설학원 및 교습소는 국가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인권위 결정문을 근거로 각 시·도교육청의 학원운영관련조례 내 법령(특정학교 합격 게시물을 못 설치하는 조항)을 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8. 향후 우리단체는 <특정학교 합격 홍보 관련 국가인권위원회 의견표명 결정문>이 초중고등학교, 사설학원, 교육지원청에 모두 안내될 수 있도록 17개 시·도교육청에 요구할 것이며, 현재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학벌차별 모니터링을 4월까지 마무리하여, 국가인권위원회와 시도교육청을 대상으로 집단 인권침해 진정서를 제출할 예정입니다. 또한, 정부산하 개인정보 보호위원회를 통해 개인정보권 침해의 심각성을 문제제기하고 심의해줄 것을 요청할 예정입니다. 끝.
붙임1. <특정학교 합격 홍보 관련 국가인권위원회 의견표명 결정문> 안내 여부
지도감독 여부에 대한 17개 시·도교육청 정보공개청구 결과
특정학교 합격 홍보 관련 국가인권위원회 의견표명 결정문 이행 여부에 대한17개 시도교육청 정보공개청구 결과발표.hwp
특정학교 합격 게시물에 관한 17개 시도교육청 지침 공문.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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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중앙도서관과 학벌없는사회 광주시민모임이 함께 여는 시민강좌
조기숙 교수 초청 강연회
1. 개요
· 일시 : 2013년 5월7일(화) 저녁7시
· 장소 : 광주중앙도서관 3층 시청각실
· 주제 : 한국대학이 배우지 않는 미국대학의 사회적 책임
· 강사 : 조기숙,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학전공 교수
현) 느림보학교 부모리더십 상담,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비서관
<아이를 살리는 교육> <왜 우리 아이들은 대학에만 가면 바보가 될까> 저자
· 주관 :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광주중앙도서관
2. 기획의도
· 미국대학의 철학을 크게 두 가지로 꼽으면 하나는 형평성이고 또 하나는 학생에 대한 인권 존중이다. 이 두 요소가 결합되어 대학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고 있다.
· 상대평가를 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위 그룹에 속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학생들에게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제시하는 것을 인권침해로 보기 때문에 상대평가를 하지 않고, 더구나 그것을 기준으로 등록금을 차등 부가하는 것과 같은 발상은 미국대학의 철학에서는 허용할 수가 없다.
· 미국대학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이다. 그러나 현실은 교육에 관한한 사회주의적이라 할 정도로 상아탑 정신에 투철하다. 학부에서는 기초인문학 및 순수학문과 응용학문을 서로 경쟁시키지 않는다.
· 이번 강의를 통해 경쟁·신자유주의적 미국교육만을 상상했던 통념을 여지없이 깨트리며 대학교육에 대한 정부의 책무성, 대학이 지닌 사회적 책임이 철저한 미국대학의 모습을 새롭게 살펴보고, 한국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3. 참가방법
· 신청 : 인터넷접속 http://goo.gl/WVvPr → 작성하기
당일 현장접수도 가능하지만, 사전준비를 위해 되도록 인터넷으로 신청 해주시기 바랍니다.
· 문의 : 전화 070.8234.1319 이메일 antihakbul@gmail.com
시민 누구나 참석이 가능하며 별도의 참가비는 없습니다.
4. 오시는 길
· 버스 : 동구청(남) 전남여고, 살레시오여고, 동구노인복지회관 하차 → 도보 5~10분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동 143-14번지 (서석초등학교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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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이 아닌 삶에게 (2010.6.24 김규항 강연회 후기)
|
김규항은 누구? ○ 경력 ․ 출판사 야간비행 운영 ․ 출판사 고래가 그랬어 운영 ․ 사회문화비평지 아웃사이더 편집주간 ․ 칼럼니스트 (1998, 씨네21,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 저서 ․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예수전, 나는 왜 불온한가, B급좌파 |
후기랍시고 강연회의 내용을 되풀이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강의가 궁금한 사람은 학벌없는 사회 광주모임 홈페이지에 들러 강연회 동영상을 차분히 보면 될 것이고, 꽤 긴 강연이기 때문에 좀 지루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김규항의 홈페이지에 들러 시간 나는대로 짬짬히 글을 읽어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말보다는 글이 더 좋은 사람이다.) 여기서 나는 김규항에게서 우리가 들어야할 것이 무엇인가에 관해 짧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후기를 대신하고자 한다.
강연이 끝난 뒤 내가 만난 몇몇 사람들의 반응에 오랫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물론 그의 강연에서 많은 사람들이 각자 중요한 것들을 가지고 갔을 테지만, 유독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강의의 내용이 부실했다거나 별 내용이 없었다는 말들을 했기 때문이다. 왜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의 말들이 새로울 것이 없는 뻔한 이야기처럼 들렸을까. 또 왜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의 말들이 그가 계속 써온 글들에 대한 반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왔을까.
그의 말은 새롭지 않다. 그의 말이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인 까닭은 그는 사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나 이론을 내놓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말과 글은 우리의 인식의 즐거움을 향해있지 않다. 오히려 그는 우리가 잃어버린 정서와 생활태도, 가치관을 향해 말한다. 제주 해녀 할머니가 굳이 해녀복을 입지 않고 잠수를 하는 까닭이 해녀복을 입으면 나 혼자서 더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음에도 다른 사람들의 수확을 위해 생물들을 남겨두기 위함이었다는 예를 들면서 그는 그것이 가까운 과거의 우리들의 심성이었다고 말한다. 제 삶의 풍요를 생각하느라 남의 삶을 생각하지 않게 된 우리의 마음이 현재의 이명박 정권의 출현과 자녀교육에서 드러났으며, 이 두 산을 넘어 새로운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그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그가 지금 서있는 자리이다. 그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까?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정말 다른 사회를, 인간적인 세상을 원합니까?”라고 그들의 마음에 되묻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는 것과 사는 것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있는 거리 때문에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는 대안이 없다. 그는 ‘그래도 현실이…’라는 변명으로 계속 이대로 살아가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일은 불가능하며, ‘그래서 현실이 이렇다’는 반성을 통해 지금 새롭게 살아가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학원을 끊으면 당장 우리 아이는 같이 놀 친구가 없는데 어떡하나, 대학을 안가면 취직은 어떻게 하고 어떻게 먹고 사느냐고 묻는 질문들에 그는 독일 사회에서 살아가며 교육문제에 관해 글을 쓰는 무터킨더 박성숙의 책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사는 곳은 독일이 아닌데 그런 이야기가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우리가 그 책에서 배워야 할 것은 우리가 얼마나 뿌리깊게 경쟁의식에 길들여져 있었는지를 체감하고 그것을 버리려는 노력에서부터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는 사실이면 충분하다. 그러므로 그의 적, 우리의 적은 외부에 있는 타자가 아니라 나 자신 속에 내면화된 그러나 우리가 비판하는 사회의 가치들,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런데 나만 달라진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오히려 나만 혹은 내 아이만 사회에서 도태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는 어린이 잡지를 만들고 또 고래커뮤니티를 만들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대안이라고 말하기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누군가 길을 내기 시작하면 길이 다져지고 넓어지는 것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새롭지도 그럴 듯한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그의 말은 아름답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또 언제나 새롭다. 이 아름다움을 설명하기 위해서 최근의 독서에서 김선우의 소설을 예로 들고 싶은데, 김선우의 <<캔들 플라워>>를 읽으며 느껴지는 감동과 아름다움은 문장의 미려함에서 오는 것이기보다는(물론 문장 자체도 좋지만) 세계관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되었듯이 김규항의 말과 글에서의 감동 역시 비슷한 근원을 가지고 있다. 그의 말과 글에서 외화된 것들보다 그 속에 자리한 세계관과, 고민들, 삶의 긴장에 대한 노고를 생각하다보면, 이 시대에도 이런 이들이 살고 있어서 아직 살만하고 다른 세계를 꿈꿔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어진다. 또한 그의 말이 새롭지 않음에도 언제나 새로운 까닭은 점점 나이가 들수록 실천의 어려움 때문에 생각의 급진성도 거기에 맞추어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과 달리, 그는 실천의 보폭을 생각의 급진성에 맞추어 가려고 노력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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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가 학벌타파를 주장한다고?
안정혁 (만화가)

편집인주1) 8월 13일 이명박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학력이 낮더라도 능력에 따라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어느 의견에 대해서 "적극 찬성한다. 학벌타파해야 한다."며 잠깐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헌데 실상은 특목고․외국어고 설립, 일제고사 시행 등 또 다른 학벌의 통로를 끊임없이 만들고 있지 않은가.
2. 트위터는 주로 스마트폰을 통해 이용되는데, 트위터 뿐만 아니라 이메일, 인터넷 등 각종 컨텐츠를 쉽게 얻을 수 있어 인기가 좋다. 근데 걱정은 사교육자본들이 입시정보 (스마트폰 프로그램)어플이 유행이 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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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킥 오프- ‘희망’이란 신기루 or 이런게 전쟁이야.
광주인권운동센터 활동가 느루
▲ 영화 <킥오프> 중에서
종종 영화와 현실을 착각하곤 한다. 더러 ‘영화같은 현실’을 목도하지만, 영화에서 담아내지 못한 현실의 속살들은 얼마나 많은가.
포스터만 보고 속을 뻔 했다. 잿빛 포스터 안에 ‘희망적인’ 스멜이 살짝 풍겨나오고 있었다. 월드컵 과열의 부작용으로 축구를 멀리하는 편인데, <킥오프>는 외려 관심이 갔다. 직업병(?) 일수도 있겠고, 쉬 접할 수 없는 이라크 영화라는 것도 마음을 움직였을 게다. 사실 축구보다야 이라크 현실을 어떻게 담아냈을까가 주요 관심사였다. 6월에 개봉했던 <맨발의 꿈>을 챙겨봤던 것도 순전히 동티모르가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화라니! 영화는 기대에 못 미쳤지만 축구에 빠진 아이들의 역동적인 몸짓을 보는 건 즐거웠다. 고단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축구의 마력이라니. <맨발의 꿈>은 실화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나름 맛깔스럽게 버무려냈지만 대부분의 스포츠 영화가 그렇듯이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들이 너무 전형적이다.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보는 내내 아이들의 미소에 빠져 허우적 댔더랬다. 실제로 현지에 사는 유소년축구단 맴버들 이라고 하니 그 생동감을 누가 따라왔을까 싶다. 연기경험도 전무한 아이들이 보여주는 환상적인 연기는 일상에서 길어올린 삶의 빛깔이 뚝뚝 묻어난다.
나는 말랑말랑한 영화도 즐겨보지만, 현실의 생채기를 보여주는 쓰디쓴 질감의 영화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킥 오프>는 <맨발의 꿈>과 같은 소재를 차용하고 있지만, 완전히 다른 질감의 영화다. 일반적인 스포츠 영화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스포츠와 아이들을 다룬 영화의 결말이 이리도 처연할 수 있다니, 제대로 킥을 당한 느낌이다.
<킥 오프>는 폭탄 테러가 일상이 돼버린 도시 키르쿠크의 파손된 스타디움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쿠르드족, 아랍인, 터키인, 아시리아인등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이야기다. 전쟁과 가난에 얼룩진 일상의 무게가 버겁지만, 그곳에도 사랑의 설레임이 있고, 희망이 꿈틀거린다. 가난과 폭격의 두려움을 안고 힘겹게 살아가는 그들의 유일한 즐거움은 삼삼오오 축구를 하거나, 모여서 축구중계를 보는 것이다. 그들이 모여서 축구중계를 보는 장면은 폐허가 되어버린 그곳에선 나름 호사스러운 일이다. 너덜너덜한 스크린에, 화면도 지지직 거리지만 오순도순 모여 화면에 집중하는 장면은 아릿한 감동을 준다. 영화는 부족간 축구경기를 성사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수’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스타디움 곳곳을 스케치하듯 담아낸다. 늘 스타디움 한켠에 염소를 대동하고 하릴없이 앉아있는 묘령의 청년, 황량한 운동장 여기저기 묶여있는 가축들, 그리고 스타디움을 터삼아 오고가는 사람들. <킥 오프>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하다. 변변한 배우나 화려한 특수효과, 시선을 끌 만한 에피소드 하나 없는 모호한 색감의 흑백화면이 이라크의 현실인 듯 서늘하게 다가온다.
<킥 오프>는 열악한 촬영조건에서 힘들게 완성된 영화다. 테러의 위험에 노출된 현장 여건 때문에 참여하려는 스탭은 거의 없고, 출연을 결심한 배우가 촬영 전에 포기하고 달아나기도 했단다. 게다가 촬영 도중 테러리스트들의 협박 전화까지 감내해야 했다니.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제작진이 겪은 비화야말로 영화를 뛰어넘는 이라크의 현실일게다.
감독은 축구를 통해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하지만 영화의 결말은 절망의 기운을 드리운다. 잠시 망각했던 현실을 지독하게 상기시킨다. 이게 이라크의 생생한 현실이라고. 애초에 축구공 하나가 감동을 선사한다는 꿈같은 결론을 기대한건 아니었지만 뭐랄까 뒤통수 제대로 맞은 느낌이다. 섣부른 희망으로 장식되지 않은 날것의 현실, 덕분에 영화의 울림은 생각보다 깊다. <킥 오프>는 전투씬 하나 없는 소박한(?) 영화지만 그 어느 전쟁영화보다 전쟁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다. 이렇게 폐허의 땅에서 근근히 살아가며 부지불식간에 ‘죽음’과 대면하게 되는 것, 이것이 전쟁이라고 나직이 읊조리는 듯 하다.
전쟁영화들은 다양한 변주를 꾀하며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화려한 스펙터클을 보여주며 잠시도 숨돌릴 틈을 주지않는 블록버스터부터, 전쟁의 추악한 이면을 차갑게 응시하는 작가주의 영화까지. 전쟁영화는 대자본의 수혈을 받고 계속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총질이 난무하는 영화를 보기 힘들어하면서도 전쟁영화를 ‘꼭’ 챙겨보는 이유는, 전쟁의 실상을, 다시는 전쟁이란 ‘괴물’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다.
영화라는 매체는 양면적이다. 극단적이고 왜곡된 생각을 이식시키기도 하지만, 비극적인 현실을 주목하게 하는 힘도 가지고 있다. 몇년 전 개봉했던 <관타나모로 가는 길>의 사례를 보자. 이 영화가 영국 TV에서 방송되고 난 이후 영국 시민들이 들끓기 시작했고, 결국 블레어 총리는 관타나모 기지 폐쇄를 부시 행정부에 촉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진실을 보여주고 증명하는 영상의 힘은 이토록 놀랍다. 물론 영화 한편이 당장에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순 없겠지만, 날것의 영상을 통해 이 세상의 모순에 직면하게 되고, 무감한 마음밭에 조그만 ‘파문’이라도 일으킬 수 있다면, 그런 변화들이 모여 세상에 파열음을 낼 수 있다면 세상은 좀 더 달라지지 않을까.
이라크에 주둔 중이었던 미군의 마지막 전투여단이 철수했다고 한다. 2003년 침공이후 7년 5개월 만이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미군이 물러가더라도 개입을 안하는 것은 아니란다. 비군사 개입은 지속될 전망이다. 사실상의 ‘간접통치’에 들어가기 위한 수순이다. 오바마의 공약이었으니 모양새를 유지하기 위해 당장은 철수해야겠지만, 아마 이라크에 대한 간섭은 영원히 지속될게다. 지구촌 곳곳이 여전히 미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듯이. <킥 오프>를 보고난 후 맘이 착잡해졌다. 포연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이들은 무얼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조각난 삶을 재건하기 위해 힘을 쏟겠지만, 걸프전부터 지금까지 전쟁의 상흔이 깊게 베인 이라크에서 ‘희망’을 꿈꾼다는 건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게 아닐까.
<킥 오프>의 결말을 보며 잠시의 행복도 앗아가 버린 전쟁의 참혹함에 정신이 번쩍 든다. 삶과 죽음의 운명이 공기처럼 한데 뒤섞여 있는 이들에게 무슨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폭력은 결코 우리와 무관하지 않을 터. 겹겹이 드리워진 폭력의 세계를 올곧게 응시하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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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연애전선 안녕하신가?
조이소현 (전, 학벌없는사회 학생모임)
▲ 멋진 스펙과 학벌있는 졸업장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한국사회
연애. 생각만 해도 달콤한 그 이름. 아무도 자신과 그남/그녀 밖에 모를 것 같은 그 은밀한 이름. 그러나 그것은 마치 '선팅지'의 경계선일지도 모른다. 선팅지를 칠한 유리벽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밖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러나 선팅지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냥 '검은 유리창'으로만 보인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연애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팅지 밖에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안에 있다. 이 말은, 연애라는 '사적'인 행위들이 실제로는 엄청나게 '사회적, 정치적'인 것들의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너와 나의 달콤한 키스 혹은 섹스 포지션은 알고 보면 사회화된 것이고, 그 사회화된 것 속에는 무척이나 '잘못'인식되어 행해지는 것들이 많다.
예로부터 페미니즘에서의 고전적 문장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으니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일터. 그런데 이 문장은 한국 권벌사회를 바라보는 한 시선으로도 중요하게 자리매김 한다. 그리고 이 명제를 공유하고 있는 '학벌'과 '여성주의'는 '연애'라는 장 속에서 마주친다.
예전만해도 서울대 법대 남학생과 이화여대 가정교육학과 여학생의 미팅은 아마도 대학생들의 만남 중에서도 최고의 만남이라고 불리워질 만큼 동경의 대상, 완벽한 모델로서 자리매김 해 왔다. 서울대 법대 여학생과 서강대 가정교육학과 남학생과의 만남은 왠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힘의 균형'을 잘 맞추려면 남성이 좀더 좋은 학벌/권벌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둘의 만남은 '선남선녀'의 만남으로 미화되고, 결국엔 결혼으로 골인하여, 이 사회의 지배계급으로 군림하려 든다.
이와 비슷한 예가 티비 프로그램 '장미의 전쟁'이다. 이것은 ‘남성 연예인+일반인 여성, 여성 연예인+일반인 남성’의 커플을 만들어 짝지어 주는 미팅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시작하는 순간부터 굉장한 일이 생길 듯이 엄숙한 목소리로 MC가 오늘의 로맨스를 대충 읊는다. 그리고선 죽 늘어선 양쪽의 청춘 남녀들이 나온다. 이 프로그램만의 신선함 혹은 독창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 ‘멋진 연예인들과 일반인의 로맨스‘
소위 스타라 불리우는 연예인들의 굉장한 외모에 기대어 여성들에게는 백마 탄 ‘왕자’를, 남성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던 ‘공주’ 같은 그녀들을 현실로 끌어내어 준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일반인 남성이 연예인 여성과 미팅을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나는 일반인이란 기준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특히 여성과 남성의 일반인 기준은 더 모호해졌다. 그 방송에서 일반인이란 ‘비연예인’ 즉 방송에 나오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일반인 여성이라고 나온 사람들의 프로필에는 화려한 방송 경력을 가지고 있고 아니면 앞으로 방송계에서 일 할 사람이거나 관련과의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반면 일반인 남성이라고 나온 사람들의 프로필에는 수도권 대학과 상위권 대학 출신이 반이 넘게 있었다. 일반인이라는 기준이 여남에 따라 차등 적용되는 것이다. 상대방 남성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일반인인 여성이라고 해도 학력이나 개인이 가진 능력보다는 보통 여성 연예인만큼의 외모가 중요하고 전부인 듯했다. 그렇지만 일반인 남성이 상대방 여성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물론 상대방의 눈길을 이끌만한 외모도 필요해보였지만 학벌이 빠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학벌 있는 남성과 미모 출중한 여성의 만남은 어색해하지 않지만 반대로 학벌 있는 여성과 미모만 있는 남성의 조합에서는 상당히 어색함을 느끼게 된다. 이 프로그램에서 이러한 일반적인 믿음이 많이 묻어난다.
어디 이것이 텔레비젼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겠는가? 대학에 가면 학기 초 3월에 가장 많이 나붙는 홍보 자보가 '**고 / @@여고 조이트 동문회'이다. 대부분의 이 '조인트' 동문회는 지역에 있는 '유명'고등학교 와 함께 하루 만나서 놀자는 것이다. 하루 만나서 놀자고 말하는 '조인트 동문회'는 학벌을 조장하고, 이와 더불어 이성애적인 만남을 통해 학벌을 공고히 하자는 데에 있다.
연애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위하는 이 장 속에서도 학벌은 보이게/보이지 않게 공고히 작용하고 있다. 학벌=능력으로 인식되는 이 사회 속에서, 주변 남자친구가 애인이 생겼다고 하면 우리는 당연히 그 애인이 ‘여자’임을 의심치 않아하고,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예쁘냐?’이다. 반면 주변 여자친구가 애인이 생겼다고 하면, 마찬가지로 그 애인이 ‘남자’임을 의심치 않아하고 물어보는 질문은 ‘어디 학교 다니는데?’이다. 이 속에서 대학교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애인으로 뒀을 경우, 대답을 쭈뼛쭈뼛하게 되고, 애인의 性이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성이 아닐 경우, 대답을 하지 못한다. 아니, ‘나 애인생겼어요~’라는 말조차가 그녀/그남들에게는 봉쇄되어있다. 물론 이 대답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대답’은 ‘서울대 생이야’일 것이다. ‘응 그냥 대학다녀’라고 말하겠지. 왜 당신들은 이러한 질문들이 상대방에게 폭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무렇지 않은 것같이 자연스러운 것은 알고 보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을 억압‘하는 기반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학벌도, 이성애중심주의도, 모두 그 속에 있다. 그래서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의 연애는 얼마만큼 이 속에서 자유로운가? 얼마나 건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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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식칼 그리고 이별
김영대 (광주전남녹색연합 활동가)
▲ 달리는 버스 안에서 어느 여중학생들이 버스유리창에 낙서를 하기 시작한다. ‘우리’, ‘하트’, ‘식칼’… 대체 이것들이 무얼 의미할까?
"달리는 버스 안에서 거꾸로 뛴다고 무슨 의미가 있냐? 그 버스에서 내려야 한다."
우연히 알게 된 귀농한 부부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너무나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시에서의 삶이 싫어 농촌의 여유로운 삶을 찾아왔다는 부부다. 나도 이런 숨 가쁜 삶은 싫다. 이런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는 이 사회도 싫다. 그래서 매일 아침 나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거꾸로 뛰고 있다. 버스에서 내리는 것은 두려워, 그 안에서 거꾸로 뛰고 있다.
이른 아침 버스를 탄다. 버스를 놓칠세라, 숨 가쁘게 뛰듯 올라 탄 버스 안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 사람들 또한 이런 숨을 내쉬고 있다. 거친 숨을 가득 담고 출발한 버스 창문은 흐 뿌옇다. 창밖을 본다. 옆에서 달리는 차량의 불빛만이 번지고 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이렇게 지쳐가고 있다.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이 하나 둘 내리면서 버스 안은 여유로워졌다. 사람들의 숨결이 맺혀진 버스 창문은 차갑다. 그곳에 두 여중생이 그림을 그리며 깔깔대고 있다.
한 친구가 사람을 그리며, "이거 너야!" 또 한 친구는 문어 같은 사람을 그리며 "너야!" 한다. 이젠 하트를 그린다. "사랑" 이란다. "사랑? 이게 무슨 사랑이야? 사랑 아니야, 이건 사랑이 아니야!" 느닷없이 식칼이 그려진다. "슝~ 얘도 죽고, 얘도 죽고, 얘도 죽… 아니 얘는 산다." 그리고 서로 깔깔대며 웃는다.
버스 엔진 소리, 그리고 적막. 그 적막에 깔깔대며 나누는 이야기가 버스 엔진소리에 묻힐 듯 내 귀에 들려온다. 정답다. 무서운 이야기인데… 멍하니 그들이 창가에 그려놓은 그림을 바라본다. 온기 있는 손가락 끝. 차가운 숨결을 녹였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의 선을 따라 버스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간다. 큰 길 가에 즐비하게 들어선 상가의 푯말, 버스에서 내려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들.
버스가 섰다. 그들이 내렸다. 그들이 내리고 난 자리에 '우리'란 단어가, 사랑과 식칼 그리고 죽음의 어느 공간에 적혀있다. 달리는 버스 안에는 '우리들'이 함께 타고 있다. 또 그 버스 안에서 거꾸로 뛰는 '우리들'도 함께 타고 있다. 사랑도 있고, 미움도 있고, 이별도 있는 버스 안, 여중생이 그려놓은 식칼. 과거보다 더 좋아졌다는 삶이 칼로 베어 이별을 만들어내는 사회인가? '우리들'이 아닌 '너희들'이 존재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아픔을 느낀다.
고민이다. 난 언제쯤에 내려야 할까? 버스에서 내린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이럴수록 거꾸로 가는 삶을 살게 된다. 누군가 말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이 바뀌겠냐?" 또 누군가는 말했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자신의 삶을 바꾸지 않는 변명으로 삼지 말라고.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삶을 바꾸는 것이다." 버스 안에서 차가운 숨결을 녹였던 손가락 끝의 온기를 느끼고 싶다. 그렇게 온기를 전달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이들 속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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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가난에 대한 두려움
학벌없는사회 광주모임 상근활동가 박고형준
▲ 법정스님 세상을 떠나신 후, 그의 저서를 읽으려는 독자들이 크게 늘고 있는 가운데, 광화문 교보문고에 대표산문집 '무소유'의 품절을 알리는 안내문구가 붙어 있다
무소유에 대한 소유욕을 보며
지난 3월, 법정 스님이 이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도 길상사에는 그를 위한 추모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유의 욕망이 넘실대는 시대였기에 그만큼 무소유의 메시지가 힘을 얻었을까? 극과 극은 통하는 법. 스님이 떠나신 후 무소유를 절판한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앞다퉈 책을 소유하려는 진풍경을 벌였고, ‘무소유’는 전자책으로도, 가장 읽고 싶은 책 1위를 차지했다. 이 땅의 인간을 좀 더 이해하셨더라면 법정스님도 책을 절판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 법하다. 소유의 욕망은 존재의 욕망만큼이나 뿌리가 깊어, 무소유의 정신조차도 소유하게 만든다.
바로 소유가 문제
이처럼 대개 사람들은 돈을 소비해 물건을 소유하거나, 돈을 축적해 불로소득으로 부를 늘리려 노력한다. 상위 2%에 속하는 자들이 막강한 땅과 자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면서도, 여전히 경쟁과 착취의 틀 안에서 소유하려 한다. 이것을 나는 인간의 ‘욕망’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거부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이는 가능한가? 얼마 전 김석순 이모(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부회장)가 잠비아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며, ‘열대지방 현지인들은 아무리 가진 것이 적어도 일정 정도 돈과 음식이 생기면 일을 중단하고 가족, 이웃들과 그것을 나눈다.’는 자급자족의 현실상을 그려주었다. 소유를 통해 행복할 수 있지만, 소유하지 않음을 통해서도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고 열대지방은 미성숙한 비자본주의 사회다. 한 때 한국도 자급자족 했던 사회다.’라며 일축할 수 있지만, 나는 소유의 문제를 꼭 자본주의나 그 나라의 정치, 경제적 토대와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는다.
자립생활의 공동체가 대안
현재 한국의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국가의 많은 제도는 기회의 평등보다 부의 세습화를 위한 수단으로서 작용하고 있다. 교육이나 지식조차 상품으로 변했고, 우리는 끊임없이 소비를 강요당한다. 소비를 위한 소비가 팽배한 사회에서 우리는 돈을 계속 벌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안고 산다. 그야말로 과잉경쟁과 과잉소비의 사회다. 이러한 모순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나는 다른 세상을 상상해 본다. 자급자립의 공동체, 자본 없이도 나름의 재능과 관심을 꽃 피우며 살아갈 수 있는 곳, 장인 정신과 인간됨으로 충분히 존경받을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소박하고 자유로운 농부, 자격증이 필요 없는 목수, 요리사, 시인 등 각자 제 재능을 살려가며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를 꿈꾼다.
나의 삶은 이제…
내가 받는 학벌없는사회 활동비는 한 달, 1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한데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이 20만원, 통신비가 5만원. 그러니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동안 저축한 돈으로 삶을 충당했지만, 현재 내 자산은 카드빚으로 쌓여있다. 요즘같이 힘들 때가 없다. 하지만 주변 환경이 욕망을 없애 준다. 내 처지를 아는지, 사람들은 함께 끼니를 나누고 음악을 가르쳐주고, 이런저런 조언을 건넨다. 배고픈 내게 항상 무언가 던져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발적 가난의 문제는 결국 돈과 맺는 어떤 관계이기에 불편함이 있고, 늘 긴장과 스트레스를 반복해야만 한다. 결국 자발적 가난이든 자급자족이든 이러한 생활을 지속하긴 힘들 듯 하다. 때로, 너무 마르고 기운이 없어 다른 사람의 짐조차 들어줄 수 없는 삶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져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삶이 더 가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발적 가난이, 주류의 길을 가지 못하는 이들의 자기합리화가 되지 않도록 꾸준히 실천하는 일이다. 이제 내 자신을 경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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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입시교육 때문이라고!
-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조항, 그리고 정치적 권리의 행방불명 -
공현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회원,<오답승리의희망> 편집진
▲ 서울 보신각에서 '쥐를 잡는 쥐덫을 놓는 1인들'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서있다.
정치의 실종
요즘에 청소년인권에 관한 따끈따끈한 신간,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를 읽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교육과 연구 등을 해오던 김민아 씨가 지은 책인데, 이 책의 서문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인권교육을 다니다보면) “문제의 답을 고르듯 ‘이런 인권침해가 일어났을 때 답이 뭐예요?’라고 묻는 청소년도 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다보면 이와 비슷한 상황을 쉽게 맞닥뜨릴 수 있다. 많은 청소년들이 온라인을 통해서 자신들이 처한 인권 문제에 대해 적고서 이렇게 묻는다. “이거 인권침해 맞죠?” 그리고 마치 시험 답 맞춰보듯이 헌법 몇 조, 유엔아동권리협약 몇 조를 인용한다. 그 다음은? 인권침해 맞으니까 논리를 잘 갖춰서 얘기하겠다고 하거나 신고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청소년들이 ‘청소년인권운동’에서 보는 것은 청소년인권 문제라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적 운동이나 저항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이 겪은 경험에 대해서 ‘인권’이라는 규범이 ‘정답’을 내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잘못 채점된 시험 답안지에 대해 항의하러 가는 듯이 행동한다. 그러고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신고’를 하거나 하소연을 올리곤 하는 정도?
이때, 인권은 지금 여기에는 없는 권리를 사회적인 투쟁을 통해 쟁취하고 실현시키는 역사적인 과정과 그 결과로 이해되지 않는다. 인권은 이미 존재하는 교과서적 정답이자 도덕률 정도로만 이해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가 실종되어 있다는 것을 이 질문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인권침해가 일어났을 때 답이 뭐예요?” 그러니까, 이게 다 입시교육 때문이라고.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2009년부터 만들어져온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안’이 2010년 경기도 교육위원회에 발의되었다. 그러나 발의된 안은 처음에 공개되었던 초안과 달리 집회의 자유에 관련된 조항이 삭제되고 사상의 자유에 관한 조항이 “세계관․인생관 또는 가치적․윤리적 판단 등 양심의 자유”라는 표현으로 대체된 안이었다. 결국 경기도 교육위원회에서 학생인권조례 통과는 무산되었지만, 9-10월 즈음에 경기도의회에 재상정될 안 또한 그 내용은 같을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청으로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한 최초의 사례인 경기도교육청이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에 관한 부분에서 한 발 후퇴한 안을 내놓음에 따라, 다른 지역에서의 학생인권조례 역시 이 두 부분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이슈가 될 듯싶다.
물론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안에서 집회의 자유에 관한 조항과 사상의 자유에 관한 조항이 빠졌다고 해서 청소년들에게는 집회의 자유나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 초안에는 한 번 들어갔던 조항이 최종 발의안에서는 빠진 것을 학생인권에는 집회의 자유나 사상의 자유가 없다는 식으로 해석할 사람들은 널려 있다. 최소한 교육청이 학생들에게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할 의지가 없다고 해석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실제로 몇몇 언론들에서는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안 발표를 “학생들 교내에서 집회 못한다”라는 식으로 표제를 뽑아서 보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는 욕을 먹는 것일까? 그리고 왜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조례와 혁신학교로 일각에서 추앙받으시는 김상곤 교육감 님하도 집회의 자유 조항과 사상의 자유 조항을 부담스러워 하며 뺀 것일까? 따져보면 저 장대한 비극의 한국사 100여년을 거슬러 가볼 수도 있을 것이고 한국 사회에서 ‘정치’나 ‘사상’이라는 말에 관련된 프레임을 분석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본격적인 분석은 역사학자들이나 사회학자들이 하라고 하고, 나는 “이게 다 입시교육 때문이라고”라고 말하겠다. (이 글의 컨셉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인권 중에서도 정치적 권리의 대표 주자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 양심․사상의 자유이다. 단순화시켜서 얘기하면,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학생들의 정치적 권리 전반을 부정하는 셈이기도 하다. 사실 교사들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민주노동당에 후원금 좀 냈다고 교사들을 다 짜르겠다고 하는 꼴을 보면 분명 한국의 학교는 정치를 싫어한다. 요컨대, 입시교육은 정치와 정치적 권리, 특히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싫어한다는 얘기다.
입시교육은 어떻게 정치를 억압하는가
입시교육의 특징은 철저한 정답주의이다. 교육의 목적이 입시가 되어있는 이상, (그딴 걸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둘째치고) 문제에 대한 자유로운 생각이 아니라 입시전형과 평가기준에 맞춘 답을 찾는 것이 주가 된다. 또한 입시교육은 개인주의적이다. 입시는 결국 개인의 능력주의와 출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입시교육의 이러한 특성들은 정치의 특성과는 여러모로 배치된다. 우선 정치는 상대적이다. 정치를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다양한 집단들 사이의 가치의 재분배/조정이라고 정치를 정의하든, 배제된 사람들의 주체화라고 주장하든, 정치에서 정답을 찾기란 힘들다.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다양한 이해관계들/이념들, 방법론들, 권력들이 있을 뿐이다. 정치적인 사고방식 속에서는 무엇이 옳다 무엇이 그르다를 단언하기 어렵다. 서로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각 정치 주체들의 정치적 능력과 정세 등에 따라 결과가 나타난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교과서에 비추어볼 때 누구의 말이 옳으냐가 아니라, 누구의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이다. 교과서나 해답지에 명확한 답이 있고 그 답을 찾아내야만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인 것이다.
또한 정치는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정치는 집단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개인이 부각되는 때에도 사실은 그 개인에 얽힌 집단의 문제일 때가 많다. 이명박 정권의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김상곤 교육감의 정책도 김상곤 교육감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조직화된 집단과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소통, 공론장이 없이 정치는 이루어질 수 없다. 문제와 문제의 해결을 개인의 차원으로 한정시키는 입시교육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타입의 ‘문제’들이 정치에서는 다루어져야 한다. 입시교육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정치는 낯선 언어와 사고방식일 수밖에 없고, 정치적 언어와 사고방식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순순히 입시교육에 순응하지 않기 십상이다.
학생들에게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이 ‘반교육적’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그 말이 사람들에게도 왠지 큰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교육’의 그림이 ‘입시교육’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이 어떤 올바른 것(정답)을 가르치고 주입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학생들의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말은 정답을 가르치는 것을 포기한다는 말이 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을 장려한다니, 입시교육이 교육이라고 믿던 사람들에게는 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반교육적으로 보이겠는가. 교육이 개인이 자신의 지적 능력이나 문제풀이 능력 등을 개발해서 입시나 취업에서 성공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서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 집회의 자유는 반교육적인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집회의 자유를 놓고서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감정적 선동’에 휩쓸릴 것이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 또한 이런 경향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좀 더 적극적으로
학생인권조례에 집회의 자유나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항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입시교육적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눈에 띈다. 예컨대 학내 집회의 자유에 관해서 “학내 집회는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 때 택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보장되는 것뿐이고 학교 운영에 학생들의 목소리가 잘 반영된다면 학내집회를 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학교가 정치의 장이 될 거라는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같은 말로 옹호하는 사람들은 결국 집회를 또 하나의 정답 정도로 만드는 것 아닐까?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잘 반영되지 않을 때 학생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집회를 택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정당화되는 집회의 목적과 수단을 한정짓고, 집회를 온건하고 이성적이고 다소 비정치적인 무언가로 만드는 것 자체가 말이다.
사상의 자유를 단지 반성문을 강요하는 등 사상․양심의 자유를 노골적으로 침해하는 것들을 막는 것 정도로만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뭐 물론 반성문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건 중요한 인권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으로만 사상의 자유를 얘기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사상의 자유의 의미를, 학생들도 사람이니까, 학생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내면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고 학교가 정치화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도 좀 불만이다. 입시교육의 틀 안에서 소극적으로 어떻게 사상의 자유를 보호할까 하는 선에서가 아니라, 사상의 자유에 대해 입시교육의 틀을 깨는 좀 더 적극적인 의미 부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전교조 조합원들 중 몇 명이 정당을 후원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을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내가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인권단체 안에서는 이 사건을 학생들과 교사들 모두의 정치적 자유에 대한 탄압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행동으로 “청소년들이 집단 정당 가입을 발표해버릴까?” 하는 논의를 했었다. (전교조 자체가 별로 이 사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지 않고 징계 절차나 양형이나 기준의 문제 정도로만 다투려는 것 같아서 접기는 했지만…) 이렇게 지금은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교육을 정치의 장으로 만들어야 할 때가 아닐까?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가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교육이 정치의 장이고 사회적인 공론의 장이어야 하며 정답만 강요하고 개인주의를 강화시키는 입시교육을 부수고 넘어서야 한다는 의미라고 얘기하고 싶다. 이미 그 자체가 정치적인 ‘입시교육’이, 자신은 비정치적인 양 탈을 쓰고 정치를 압살하는 이 시대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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