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 거부 첫날, 순천 평화학교 열매반 친구들의 환영 연주 "let it be"를 시작으로

만다라그림그리기, 장명루 만들기, 평화학교 친구들과 뛰어놀며~ 순천만으로 go go~~

신나는 하루 였답니다.


농게.JPG농게2.JPG드럼.JPG만다라.JPG목사님과.JPG민주,단비.JPG순천만.JPG순천만2.JPG장명루.JPG전체사진.JPG준영.JPG준제2.JPG준제.JPG짱뚱어].JPG축구.JPG연주.JPG

,

일제고사를 거부한 어느 해직교사 이야기

박수영 (일제고사 거부로 인해 해직된 교사)


1.jpg 

▲ 2008년에 시행한 일제고사 때,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박수영 거원초등학교 교사(오른쪽)가 개학한 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원초 교문 앞에서 닫힌 교문을 사이에 둔 채 제자와 이야기하고 있다. 


항소심에 다녀오다.


오늘 8월31일은 2008년 10월 최초로 전국단위학업성취도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일제고사로 인해 해직되었던 7인의 항소심이 있었던 날이다. 원래는 7월 달에 항소심 결심이 있었고 9월 2일에 일제고사 해임 무효 소송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재판부가 바뀌는 바람에 변론이 재개되었으며, 그 결론은 한 달 더 연기되었고 거리의 교사로 그만큼 더 남아 있어야 한다. 이런 제길... 이명박정권 최후의 발악이 안쓰럽기만 하다.


일제고사 11명의 교사를 길거리 교사로 내몰다.


언론에서 다소 비중 있게 다루었기에 관심 있는 분들은 다 알고 계시겠지만, 그간의 상황을 정리해 보려 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 모두가 일제고사를 본 기억들이 있다. 그러나 그 기억을 조금만 더 집중해 되돌려 보면 전국단위로 이루어지는 일제고사는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보통 고등학교의 모의고사는 사설업체에서 만들어진 시험을 학교별로 선택해서 본 것일 뿐이지, 국가차원에서 이루어진 시험이 아니며, 전국단위 일제고사는 수학능력평가(이전에는 학력고사) 정도가 유일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험조차도 응시 선택권은 철저히 개인에게 보장되어 있고 시험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개인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는 않는다.


2008년 이전 성취도평가

2008년 이후 일제고사

목적

국가 교육과정 운영 평가 및 교육정책 수립을 위한 행정조사

행정조사 및 학습 부진아 판별

대상

6학년, 중3, 고2 대상

표집평가(2007년 까지 3%)

6학년, 중3, 고2(2010년부터 고1)

전수조사

결과 처리

교육과정 평가 및 교육정책 수립 자료로 활용

결과에 대한 개인별 통지 및 정보공시법에 따른 학교별 결과 공개.

부작용

국가교육과정 운영 결과에 대한 판단은 있으나 원인 해소에 대한 대책이 없음.

학생 개인 서열화 및 학교별, 지역별 서열화

사교육비 증가

협력적 교육 실종 및 경쟁 만능 풍토 조장

학생 전인적 발달 불가능


문제가 된 2008년 전국단위학업성취도평가(이하 일제고사)는 그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험방식으로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면서 만들어진 신자유주의 경쟁 교육 정책의 하나였던 것이다. 2008년 이전에도 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는 존재했다. 그러나 그 시행 목적이나 방식은 2008년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며 일제고사 형태는 아니었다.


일제고사의 목적은 분명하다. 학습부진아를 판별해 내고 기초학습능력을 책임지겠다는 말과는 달리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교육적 차별을 정당화 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2008년 이후 벌써 3년째 일제고사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2008년 처음 시행된 일제고사에 대해서는 학생과 학부모의 시험에 대한 자기 결정권 안내와 체험학습으로 일제고사에 대항했고 그 와중에 학생․학부모의 시험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안내한 공립 교사 7인, 사립교사 2인이 학교 밖으로 쫓겨났고, 같은 해 강원도에서 해직자가 4명 울산에서 1명의 해직자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한해가 지난 2009년도에는 많은 교사들이 2008년도와 동일한 방식의 투쟁과 교사선언을 진행 했음에도 해임과 파면 같은 배제징계가 나오지 않고 정직이하의 징계가 나옴으로써 일제고사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2010년에는 진보교육감의 등장으로 일부 학교에서 선택권이 보장되고, 서울은 교육청과 교과부의 혼선으로 인해 파행적으로 일제고사가 운영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도 단위 일제고사는 폐지 직전의 상황으로 내몰렸고, 전국단위 일제고사도 그 한계가 명확해 지며 교육주체들이 조금만 더 강고한 연대투쟁을 진행하면 그 생명이 끝날 것이라는 예측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일제고사가 왜 문제?


그렇다면 교과부가 주장하는 학업성취도를 측정하고 그 결과에 대해 학교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얼마 전 한 일간지에,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수준별이동수업 학습부진아에 역효과”라는 결론이 경희중 교사의 논문을 인용해 보도된 적이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 처음 등장하는 새로운 소식이 아니라 그동안 많은 연구 활동을 통해 입증되었던 주지의 사실인데, 교과부와 수구 보수 세력만 애써 모른 척 하고 있는 사실이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학교나 교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정(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지위이며 학생들의 근본적인 경제적 생활환경을 개선하지 않는 어떠한 노력도 사실은 사기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런데, 교과부는 일제고사를 통해 학생과 학교와 지역을 경쟁 시키면 학업성취도가 올라 간다고 거짓말을 계속 해대며, 공교육의 실패를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들의 책임으로 전가하려고 한다.


사실 공교육의 핵심은 모든 아이들에게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부여하고, 그 결과에 대한 평등까지 책임지는 공적기구라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장경쟁 교육이 만연하면서 특권계층들은 교육을 더 이상 공적 기재로서의 역할을 포기시키고, 계급과 계층의 되물림 기재로 변화시키며 이를 정당화 하려는 음모의 장으로 탈바꿈시키려하고 있다. 그것의 최전선이 바로 일제고사다.


일제고사를 통해 학생과 학교를 서열화 시키고, 그들의 열패감을 이용하여 학교평준화 정책을 포기시키고, 학교선택제, 자사고, 특목고 등을 일부 특권계층들에 의해 점유하고 이를 정당화 시켜 피지배층이 권력에 순응하는 내면화를 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일제고사는 우리 아이들의 학업성취에도 전혀 도움을 줄 수 없다. 아이들의 성취도를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학생 스스로의 ‘자아 존중감’을 높이고 자신이 속한 경제적 배경과 상관없이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경험을 통해 학습에 전이 될 수 있도록 해주며, 미래에 대한 명확한 가능성을 확신시켜 주는 것이다.


하지만 학업성취도를 떨어뜨리는 근본적인 이유를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일제고사는 아이들에게 자아 존중감을 형성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의 열패감을 확인하고 스스로 학습에서 멀어지도록 만들고 있으며, 학습에 대한 욕구가 사라진 상태에서 아무리 부진아 지도를 한다고 해도 그 아이의 성취도는 결코 올라갈 수 없고, 이미 3년의 경험을 통해 이를 증명한 바 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잘하는 대로 문제다. 일제고사는 필연적으로 서열을 확인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1등을 지키기 위해 또는 1등을 빼앗기 위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와 사교육이 증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진정한 자아실현이 목적이 아니고, 공부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그저 경쟁에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모두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일제고사인 것이다.


일제고사는 교사들도 억압한다. 일제고사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사도 평가받는다. 바로 아이들의 성적에 의해서 말이다. 그렇기에 아이들과의 건강하고 행복한 만남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교사들에게 더 이상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아이들은 등수로 매겨진 실적물일 뿐이다. 그 속에는 더 이상 교육적 만남은 상실되고,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는 그냥 버리고 가야 하는 교사의 방해물인 것이다.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된 사소한 실수로 인해 단 한번의 관용도 적용받지 못하고 학교에서 쫓겨난 아이들의 문제가 일상 다반사가 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일제고사가 아니면 어떤 평가


사실 부진아의 판별과 교육적 관심 대상의 파악은 그 아이를 지도하는 교사의 판단이 가장 정확하고 효과적이다. 학습 부진의 원인은 다양하기에 일제고사와 같은 형태의 지필 평가로는 그 판별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더더구나 불가능하다. 또한 평가는 교육활동 전체의 과정일 뿐이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평가는 아이 활동의 기록이며, 성장(발달) 과정을 관찰하고 서술하는 것이며, 이후 교육활동의 참고 자료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 그 아이를 규정짓고 판별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아이의 발달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교육 활동의 하나로 평가를 규정해야 할 것이지 한 번의 시험을 통한 단순 결과로 서열화와 차별의 기재로 이루어지는 그 어떤 평가도 거부해야 한다.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


이번 지방 선거에서 다행스럽게도 6명의 민주진보 교육감이 우리 시민과 도민의 힘으로 당선되었다. 그들의 행보 하나 하나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 만연된 신자유주의 경쟁만능 시장교육에 대한 우리 시민들의 염증이 극에 달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우린 여전히 배가 고프다. 민주진보교육감의 당선이 우리 교육의 정상화와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조금 주저스럽기는 하지만 우리의 힘으로 당선된 교육감이 노무현처럼 우리를 배신하고 우리가 그들을 강제하지 못하는 순간 우리의 역사는 또 한번 퇴보 할 수 밖에 없다.


사실 민주진보 교육감의 당선은 많은 기대와 동시에 많은 우려도 함께 하게 만든다. 결론은 하나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이 최소한 공공재로써의 역할을 하고 모든 사람이 교육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며 행복해 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아니 이제야 숨막히는 목졸림에서 겨우 숨을 쉴 수 있는 정도의 여지가 생겼을 뿐이다. 민주진보교육감에게는 같은 지향에 대해서는 협력을, 반동적 행보에 대해서는 단호한 투쟁을 하는 것이 성공하는 교육감으로 만드는 방법이며 우리 시민 사회의 역할이다. 시민 사회의 열정어린 투쟁과 헌신만이 우리 교육의 희망을 조금씩 틔워 나가는 소중한 밑거름이라는 것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이명박의 레임덕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공정한 사회’를 주창하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음을 알고 있다. 민주진보교육감의 당선과 이명박의 레임덕 속에서 우리 교육운동의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 사회의 모든 특권교육과 특권세력의 뻔뻔스러움을 통제하고, 우리의 희망을 일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더 이상 교사를 길거리로, 아이들을 패배자로 만들 수 없다.


오는 10월 14일에 일제고사 해임 무효 판결이 이루어 질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이는 교육을 특권계층에게 내 맡기지 않고 만인의 교육으로 되돌리기 위한 우리 모두의 투쟁의 산물이다. 해임이라는 경험은 개인적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교육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해준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혼자만의 결기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열이 되는 순간 세상은 움직인다. 지금까지 수구반동의 반격에 밀려 끝이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고 희망을 찾기가 어려운 듯 했으나, 올바름을 위해 투쟁하는 동지들이 있는 한 분명 살만한 세상으로 조금씩 운동한다는 것은 역사의 진실이다.


2010년 일제고사 싸움은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12월 21일 중1,2학년을 대상으로 도 연합 일제고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서술했던 것처럼 강원, 전남, 경남 등 일부 도에서는 일제고사를 시행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을 비롯한 광주나 전남 교육청은 일제고사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최소한 도 단위 일제고사를 막아내는 것을 올 한해의 목표로 하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성지이자 나의 고향 광주와 전남에서 꼭 승리하는 투쟁을 일궈낼 것이라고 믿는다.


그 승리를 기반으로 2011년 전국단위 일제고사를 막아내고, 일제고사에 의해 피폐된 학교를 복원하고 모든 아이들이 패배자가 아니라 부모의 경제력과 상관없이 진정한 교육의 주체로 행복한 삶을 일궈나가는 귀한 존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교사들도 길거리로 내몰리는 걱정 없이 교육에 대한 참된 실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투쟁에 함께 하는 모든 분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연대의 말을 전하며 글을 맺는다.

,

일제고사 폐지를 위한 앞으로의 숙제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광주지부장 최은순


1.jpg 

▲ 매년 전국적으로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치러지는 가운데‘일제고사를 반대하는 광주시민모임’에서는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청소년, 학부모들과 함께 체험학습을 진행해왔다. 위 사진은 09년 일제고사 당일, 체험학습 출발 기자회견 모습.


며칠 전 일요일 백주대낮에 내가 사는 동네의 초등학교에서 성폭행사건이 일어났다. CCTV도 설치되어 있었고, 경비아저씨도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 본 결과 CCTV에 용의자가 배회하는 장면이 오랜 시간 찍혔다고 한다. 경비아저씨는 아이의 비명을 듣고 나가보니 용의자는 도망가고 아이만 피해를 당한 채 덩그러니 있었다고 한다. 경비아저씨는 아이를 얼른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 때문에 피해자 신변이 3~4일 후에 확인되었고 피해자 치료시간도 늦어졌다. 이 소식을 들은 많은 학부모․시민들은 더 이상 학교도 안전한 곳이 아니니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절망을 하며,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난리들이다.


“아! 정말 한 학교당 CCTV의 수를 엄청 늘려야 할까?”

“경비를 곳곳에 세워야 할까? 호루라기 목걸이를 통해 안심알리미 서비스를 확대하면 더 나을까?”


참 이상하다! 왜 이리 호들갑이지? 아니 이런 일을 예견하지 못했단 말인가? 학교도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라고 떠들어대는데 언제는 안전한 곳이었던가? 입시위주 경쟁교육으로 치닫는 학교교육 때문에 매년 200여명 이상이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데 성폭력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학교가 안전했단 말인가? 이렇게 한번 씩 성폭력사건들이 일어나면 여기저기서 호들갑을 떠는데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쳐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임시방편으로 현 상황을 빠져 나가려만 들 뿐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원인은 뭘까? 바로 성적중심의 경쟁교육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입시경쟁교육현장에서 우리 아이들은 친구와 우정도 나눌 기회도 없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동체사회를 만들어 가는 시민의식을 배울 수도 없다. 더군다나 올바른 인성교육이나 성교육 등을 받아볼 기회가 없었다. 오직 국․영․수 중심의 주입식․획일화된 입시교육만을 받았을 뿐이다. 이러한 경쟁교육에서 긴장되고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이용한 게임이나 인터넷 등 각종 미디어에서 왜곡된 성의식과 폭력성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제고사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데 서론이 너무 길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번 성폭력사건도 일제고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제고사가 뭔가? 정부에서는 학업성취도평가라는 말로 학습부진아를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교사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부진아들이라고 판단되는 학생들에게만 평가를 실시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모든 아이들, 각자의 소질에 따라 다재다능한 아이들에게 왜 똑같은 내용, 똑같은 진도, 똑같은 지식을 강요하는 시험을 봐야 하는가?


이런 식의 평가는 결국 세계적으로 지향하는 사고력이나 창의력, 문제해결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문제풀이 수업만을 함으로써 학생들의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고 , 학교는 학원으로 변질되고, 성적으로 인해 학교도 줄 세우고, 교사도 줄 세우고, 학생도 줄 세우고, 학부모의 경제력도 줄 세우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한줄 세우기로 된다면 교육주체들의 현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학생들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의식의 혼란,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교과서에서는 남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배우는데 일상에서는 남을 누르고 이기는 것을 익히고, 교과서에서는 인권의식에 대해 배우는데 일상에서는 인권침해를 몸에 익힌다. 교과서에서는 자유, 평등의 가치를 배우는데 일상에서는 억압과 차별을 몸에 익힌다.


교사들 또한 평가권을 빼앗기는 순간 교육내용마저도 빼앗기게 된다. 왜냐면 아무리 능력 있는 교사가 있어 아이들에게 창의적 수업을 진행하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주도적으로 시험을 내서 그 시험의 결과로 평가를 한다면 그 교사는 교육내용을 국가시험이 요구하는 대로 바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사가 일제고사에 충실히 대처하는 순간 아이들에 대해 차별성을 갖게 될 것이며(시험을 못 본 아이들을 미워한다.), 불법(시험컨닝 등)을 자행할 유혹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제고사를 치루 게 되면 가장 힘든 사람들이 바로 부모일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학부모들은 일제고사를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더 경쟁적으로 문제풀이를 강요하는 걸까? 사회는 점점 양극화 되어 가는데 자식들에게 아무것도 물려줄 것이 없는 부모입장에서는 자식의 행복이 오직 부모의 역할에 달린 현실에서 내 자식이 상위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오직 공부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학원을 보낼 수밖에 없고, 학교에서 보는 모든 시험을 성실하게 치러야만 손해 보지 않는다는 피해의식이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이라는 것이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인간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행위인데 이렇게 학교 교육이 파행으로 치닫고 그 파행의 주범이 일제고사인데 생각 있는 부모로써 어떻게 자식들에게 일제고사를 치르게 나둘 수 있단 말인가?


3년 전부터 실시된 일제고사! 첫해엔 지금 막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연한 사명감으로 많은 교사와 학부모들이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 등을 통해 일제고사의 폐해를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 결과 체험학생들은 무단결석 처리되었고, 부모는 학교에 불려 다니고, 체험학습을 허가해준 학교는 징계를 받았다. 이렇게 3년 동안의 일제고사거부투쟁은 일제고사거부시민모임에서 주동은 했지만 아무런 힘이 되어 주지 못한 체 교육적 소신을 실천으로 옮긴 개인과 그 자녀들에게 희생과 패배감을 안긴 체 지지부진 끝나고 말았다.


다행히 올해 6월2일 지방교육자치 선거에서 치러진 교육감 직선에서 진보교육감 5명이 당선을 하였다. 그들은 성적위주경쟁교육에 제동을 걸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 중 전북교육감과 강원교육감은 교과부에서 실시하는 일제고사에 대해서는 표집실시와 도단위시험은 폐지하겠다고 한다. 서울교육감과 전남교육감도 일제고사에 대한 입장을 하루빨리 내놓아야 할 것이다.(광주교육감은 11월 취임이어서 지켜봐야 할 일) 일제고사를 그대로 두고 교육개혁 운운하는 진보교육감이 있다면 이들은 진정한 교육운동자들이라고 볼 수 없다. 그 지역 교육단체에서 이제는 더 이상 개인의 희생과 어쩔 수 없는 강요에 의해 일제고사 거부운동을 하지 말고 교육감의 확실한 입장을 듣고 그에 따라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성적위주 줄 세우기 교육, 승자독식의 경쟁교육시스템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행복할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지 못하고 불안과 긴장의 날들을 학교 다니는 내내 보내게 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또한 밝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이 행복해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 그 시작은 바로 일제고사의 폐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