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대학 합격을 축하 또는 선전하는 교문 앞 현수막은 결코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도회지에서는 드물지만, 지금도 군․면단위의 거리에는 종종 육군 장성 임명이나, 사법고시 합격, 특정 대학 합격의 축하 현수막들이 눈에 띕니다. 국민에게 봉사하고, 헌신하는 무거운 책무의 직책을 잘 수행하라고 격려하고 혹 염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바람직한 일이지만, 위의 현수막들은 국민위에 군림하고 공공적 직위를 봉사의 자리이기보다는 입신양명의 증표로 내세우는 봉건적 구태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민간의 의식에 그러한 구태가 남아있고, 거기에 동조하는 사회구성원들이 있음에 대해 국가가 이를 강제로 봉쇄하고, 억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바람직하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의 교육이념에 근거하여 민주공화국의 시민을 양성하는 학교 당국이 나서서, 공식적으로 특정 대학 합격생을 축하하고 선전하는 현수막을 내거는 행위는 공교육의 책무를 방기하고, 사설 입시학원의 흉내를 내는 행위로서 심각한 비행임이 분명합니다. 봉건적 구태이든, 학벌사회를 추종하는 교육시장의 논리이든, 말려야 할 공공기관이 말리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앞장서서 특정대학 합격생 배출을 학교의 존재이유로 삼고, 이를 공교육 기관들의 경쟁 성취의 기준으로 삼으려 하는 것은 교육과학기술부 및 시․도 교육청의 장학행정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학교 평가기준입니다.

특정대학 합격생을 고지하는 현수막은 학교당국이 범한 순간의 실수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지속적 관행이며, 오로지 특정 대학 합격만이 스승의 존재이유이고, 제자가 선택할 길이라는 것을 강요하면서 다양한 제자들의 특성과 재능을 소외시키는 인문계 교육의 파행을 보여주는 극단적 증거물입니다. 학교당국의 이런 행태로 말미암아 학교를 다니는 재학생들은 학벌의 서열에 맞추어 서로를 비교하고, 근거 없는 우월감과 열등감을 너무도 당연하게(?) 스스로 낙인찍는 상황에 다다릅니다. 이는 철저히 학교당국의 의도적 조장으로 인하여 형성되는 심리기제이며, 우리 사회의 통합력을 불가능하게 할 만큼 심각한 차별의식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중학교에서 근무하지만 저 또한 최근 몇 년 동안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쳤습니다. 학벌사회의 폐해는 그대로 고등학교사회의 교사-학생의 비틀린 만남으로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좋은 대학’외에는 할 말이 없는 스승의 의식과, 아무리 좋은 선생님도 자신을 대학간판으로 규정하고 무시할 것이라는 학생집단의 콤플렉스가 함께 작동하는 한 결코 학교사회는 건전한 시민의 요람이 될 수 없습니다. 학교당국의 특정대학 합격선전물은 사라져야 합니다. 학교라는 공공조직을 사설학원과 동일시하여 무익하고 해롭기만 한 왜곡된 경쟁구도 속에 고등학교를 위치 지으려는 인문계 학교들의 선정적인 행태는 그야말로 평등보다는 차별, 다양성보다는 획일적 기준의 서열화에 다수 학생을 팔아넘기는 것이며, 인문계 학교에 종사하는 모든 교사를 ‘생선가게를 지키는 고양이’, ‘학벌사회로의 몰이꾼’이 되도록 종용하는 노골적인 협박이기도 합니다.

특정대학 합격생을 선전하는 현수막은 ‘학벌사회’를 다수가 공감하고 지향하는 가치이며, 사회적 합의인 것처럼 학교가 스스로 나서서 선전하는 꼴입니다. 다수 학생들에게 ‘공부 잘하라’는 선의의 안내라기보다는 ‘특정대학에 진입하는 것’만이 성공의 척도인양 학교당국이 나서서 외쳐댐으로써 다수 학생에게 다양한 진로교육을 방기하는 인문계 고교의 모습을 정당화시키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인문계 고교의 현실은 학교를 살리기 위해 대다수 학생들보다는 소수 학생에게 집중 투자하여 학교의 이름을 높이는 것에 도박을 거는 방식입니다. 즉 학벌사회의 소위 일류라 칭해지는 곳에 갈 수 있는 학생들을 집중관리하면서, 다수 학생들의 학습력 향상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하고, 그저 보충자율학습으로 오랜 시간 학교에 잡아두는 것을 학교경영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문계고등학교들의 풍토입니다.
위의 현수막이 혹시는 학원에서, 혹은 일부 학부모의 이름으로 거리에 게시될지언정, 절대로 학교당국의 이름을 내걸고 학교의 교문에 게시되는 것, 또는 학교홈페이지 초기화면에 내걸리는 것은 중지되어야 합니다. 인권과 평등을 위해 기획된 근대 공교육의 보편적 이념이 학교운영의 최소한의 기초상식임을 확인하고, 소수의 입신양명과 출세를 위해 존재하는 공교육이 아님을 확인시키기 위해서도 학교당국의 특정대학 합격생을 알리는 현수막은 인권침해이며, 공교육의 할 바가 아님을 국가인권위원회 차원에서 권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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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고등학교 앞과 홈페이지에는 어떠한 대학을 누가 갔고, 몇 명을 보냈는지 대문짝만하게 알림공고가 되어 있다. 나 역시도 일반계 고등학생이다. 또한 지금은 걸리지 않았지만 입학 시기에 걸리는 현수막을 선생님들은 많이 의식한다.  

입학 초기에도 지금도 그렇듯이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공부’ 만을 강조한다. 솔직히 말해서 ‘공부’라는 게 뭔지를 모르겠다. 각자 자기가 잘하는 건 다르고, 흥미를 느끼는 것 역시 다른데 우리나라에서는 다원화를 존중한다면서 서로 다른 재능을 인정해주기는커녕 모두 똑같은 틀 안에 똑같은 평가로 등수를 가린다.

게다가 지금의 학교는 ‘대학 입학’을 위해 12년간 달리고 있다. 모두 똑같이. 정작 자신의 특기와 흥미와는 상관 없는, ‘명문대’를 가기 위해서 성적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학교는 아이들의 특기와 흥미를 개발해주기보다, 아이들의 내신 성적을 조금이라도 더 올리고, 수능 성적을 조금이라도 더 올려서 아이들을 자신들 학교의 명예를 높일 수 있는 ‘명문대’에 보내려고 한다.

이 상황에서 현수막을 게재해서 ‘명문대’ 에 보낸 아이들 수와 아이들 이름을 공개한다는 것은, 무슨 저의인가? 선생님들의 말에 의하면, “선배들이 얼마나 잘 갔는지 봐야 투지가 불타올라서 너희도 좋은 대학 가지.” 라는데 좋은 대학 가면 인생이 다 끝나는 것도 아니고 왜 대학에 그렇게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결국 좋은 대학과 좋지 못한 대학으로 갈라서 좋은 대학에 가는 애들은 성공하는 것이고, 좋지 못한 대학으로 가는 애들은 실패하는 것 마냥 비춰지고 있다. 현수막을 보면서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성적이 좋지 못한 아이들은 그걸 보면서 괜히 마음에 찔려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다원주의 사회를 인정한다는 대한민국의 취지와는 달리 더욱 경쟁만 심화시키는 특정대학 합격 현수막을 게재하는 것을 반대한다.


※ 이 글의 작성자는 광주광역시 소재하고 있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참고로 이 글은 지난 1월 14일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서(특정대학교 합격 게시물 인권침해)에 피해사례로 넣었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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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피해사례

학벌사회라는 말이 어디서부터 나왔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얼마 전 수능을 치룬 한 여고생입니다. 저희 학교에서 합격이 발표나기 오래전부터 ‘ㅇㅇ대합격-ㅇㅇㅇ’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습니다. 저희는 학교를 들어가야 할 때마다 그 현수막을 보면서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걸 볼 때마다 저희는 좌절을 느껴야 했지요. 학교의 자랑거리, 명예, 지위 때문에 학생들의 자존심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학교가 저는 정말로 싫습니다. 저희 학교에 대학을 가지 않는 친구는 없습니다. 모두 대학을 간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어째서 특정한 학교에 가는 아이의 이름만 학교 대문에 걸려야 하는 겁니까?

학벌사회. 좀 더 이름 있는 대학에 가야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야하고.. 교육이라는 것을 시장의 개념으로 여기는 어른들의 생각은 정말로 문제가 있습니다. 심화반 편성하는 것을 정당하게 보고, 0교시 수업을 주창하고, 특목고 설립에 애를 쓰고.. 가난한 가정에 대한 배려는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학생들은 상품처럼 취급하는 어른들이 미워집니다. 교육이라는 것에 경쟁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책들을 보다 보면 경쟁에 뒤떨어지는 아이들에 대한 대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경쟁만을 강요하는 어른들의 시선이 이제는 무섭습니다. 경쟁이 최우선시 되면서 한국의 학벌사회는 더욱더 깊숙이 자리 잡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학교 대문에 떡하니 걸려있는 고시합격이라던가, 명문대합격이라던가 학벌사회를 더더욱 심화되게 만드는 현수막을 걸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저희들 가슴에 대못을 박지않게, 사회를 망치지 않게, 아이들이 자신의 대학에 떳떳해 질수 있게 현수막이 걸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피해사례

축하한다고 말한다. 몇 안되는 대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을 말이다. 부끄럽다고도 말하더라. 서울대에 들어간 학생이 없어서 말이다. 어떤 학교는 서울대 연,고대에 들어갈 학생들을 학교 앞 현수막에 내거는데 우리학교는 그러지 못하니 동네 창피하다는 것이다. 무엇이 창피하다는 것인가? 매년 수능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이 너무 적어서 말인가? 아마 이른바 명문대에 갈 학생을 배출한다는 것 곧 자본주의 사회의 철저한 인적 자원을 키워낸다는 것은 학교가 철저한 통제 시스템이라는 것을 증명 하는 것이기 때문인가? 더 이상 그것은 학교가 아니며 소세지 만들어내는 공장 일 뿐이다. 학교는 다양한 생각, 다양한 태도를 지닌 청소년 들을 수용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학교 탓 뿐만이 아니라 편협한 사고를 가진 학부모나 학생들도 문제겠지만은 결국 원인제공자는 교육관련 기관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학벌, 입시엘리트 따위를 좇는 교육을 실시했던건 결국 이땅의 교육자들이니까. 수많은 학생들이 그런 현수막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학생도 있겠지만, 충분히 무의식적으로 사회적 열등감을 내면화 할수도, 자존감을 상해할수도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학생들을 열등감에 빠지게 할수 있게 하는 것이 이땅의 교육과정이니까. 수많은 시험, 차별, 경쟁, 통제 따위도 그에 한 몫 할 수 있다고 본다.

현수막은 입시경쟁 사회, 학벌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용인 하는 사회의 태도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현수막에 반대한다.

겉으로는 다원화 사회를 가르치며 아직까지 학벌주의에서 허우적대는 학교를 보노라면 이제 곧 졸업할 학교이지만 뒤에 남겨진 학생들이 안쓰럽다. 다른 대학에 지원한 학생, 아예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들의 또다른 사회로의 진출은 축하해줄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진정 교육을 하고싶다면, 당신들 학교 앞에 내걸려있는 현수막부터 걷어내길 바란다.

※ 이 글의 작성자는 광주광역시 소재하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입니다. 참고로 이 글은 지난 1월 14일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서(특정대학교 합격 게시물 인권침해)에 피해사례로 넣었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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