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위험한 그 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

밀양 송전탑에 삶터 빼앗길 어르신들 “보상도 싫다 그저 옛날처럼 살고 싶을뿐”


  만약 국가 간 전쟁이 일어나면 누가 가장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하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총을 발사하고 폭탄을 날리고 각종 무기로 서로를 죽이려드는 군대가 가장 피해를 받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군인보다 민간인이 많이 죽고 군대시설보다 민간인 거주지역이 더 많이 파괴된다고 한다. 2000년대 크게 일어난 이라크 전쟁만 보더라도 군인 사망자와 경찰 사망자를 합해도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 10만 명을 뛰어넘지 못했다. 이처럼 전쟁은 민간인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끼쳤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를 좌지우지 하는데 그 전쟁의 잔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하다.


 민간인 피해자 중에서 특히 피해를 보는 계층이 있는데, 바로 거동이 힘들거나 물리적으로 힘이 약한 아동, 청소년, 여성, 장애인, 노인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소수자 혹은 사회적 약자라 부르기도 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는 속담처럼 누구도 원하지 않는 타자들의 싸움에 소수자들이 피해를 받는 전쟁은 지금도 국내 곳곳에서 크고 작게 일어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보전지역인 제주도 강정마을 내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문제가 있다. 자연환경과 지역공동체를 파괴한다는 마을주민들의 반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무자비하게 건설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이 해군기지는 미국과 아시아 국가 간의 전쟁 거점지로 여겨져, 건설이 완공된다면 언제 전쟁 피해지역이 될지 모를 위기에 처해있다. 물론 이 피해는 마을주민 더 나아가 제주도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최근 정부산하 한국전력공사에서 추진하고 있는 밀양지역 송전탑건설 문제도 마찬가지 사안이다. 76만5000볼트라는 국내 최대 전력이 흐르는 이 송전탑은 인근 마을주민과 농작물, 가축, 야생동물들을 위협하고 있는데, 한국전력은 ‘전 국민에게 공급할 전력의 수급문제’를 근거로 건설을 원하지 않는 주민들에게 암묵적인 협박을 넣고 있다. 강정마을과 마찬가지로 주민 계층의 대부분은 힘없는 노인들이다. 시골 노인들은 통상적으로 밤 10시가 되면 불을 끄고 새벽같이 해가 뜨면 농지로 일을 나가며 필요한 최소한의 전기만 사용하는 분들이다. 왜 그런데 이 분들이 송전탑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정작 이 에너지 전쟁의 원인인 개개인들과 산업용전기를 야간에 마음 놓고 사용하는 공장, 기업들에게 아무런 피해가 없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처럼 일찌감치 보이지 않는 전쟁은 예고되었고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를 위기에 숨 졸이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이웃나라 일본 후쿠시마에서 벌어진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가 에너지 전쟁의 결과를 보여주었고, 한국도 마찬가지로 신고리나 영광지역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가동중단 사태를 통해 전쟁예고 신호탄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이 또한 지역주민들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대체 에너지 개발을 통한 원자력 발전소 개수를 줄여나갈 의지를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대다수 국민들 또한 정부가 추진하는 원자력 의존성을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처럼 한국도 그리 터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 피해는 역시 죄 없는 발전소 마을주민들과 반경에 있는 지역민들에게 고스란히 갈 것이다. 


 위에서 제시한 강정마을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문제를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 해당 마을주민들은 피해보상을 원하지 않는다. 둘, 그저 살던 동네에서 아무 것도 훼손되지 않은 채 평화롭게 농사짓고 살고 싶어 한다. 셋, 그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 제공자는 마을주민들이 아니다. 누구도 위험한 그 곳에서 살고 싶지 않은데 왜 그들에게 피해를 몰아가려고 하는 것인가? 나만 아니면 된다는 개인 이기주의와 주변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정부가 부추기는 이 전쟁을 하루 빨리 접기 위해서 개개인의 양심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자신의 주거지에서 떠날 위기에 놓인 시골 주민들과 도시 안의 상황은 전혀 다르지 않다. 이미 도시 안의 수많은 공동체, 문화, 생태계는 파괴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킬 수 있는 시골 마을이라도 파괴되지 않게끔 노력하는 게 양심의 우선순위다.


박고형준<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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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인권이 만났을 때


 광주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3주가 넘게 광주광역시교육청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단순하게 교육청 앞에서 진행하는 천막농성이 아닌, 교육감실 점거농성이라는 높은 수위의 직접행동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청에서 일하는 장학사들은 매일 같이 돌아가며 당번을 서며 이례적으로 비상근무체제에 들어간 상황이다. 그동안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이 교육청을 상대로 각종 문제제기와 요구했던 사례를 비교하면, 이번 노조에서의 행동은 장휘국 교육감 취임이후 최고 수위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농성을 강행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영어전문강사 제도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한 때 유행어인 ‘오~렌지’를 기억하는가? 이명박 정권의 영어교육 프렌들리 정책에 의해, 전국 약 6200여 명의 영어전문강사가 학교 비정규직으로 채용된 바 있다. 현재 4기까지 운영 중인 영어전문강사 제도는 1년마다 강사들이 재계약으로 갱신해왔다. 문제는 이 중 2009년 채용된 1기 영어강사가 한 학교에서 근무가 가능한 4년을 채워 당장 오는 8월부터 계약이 만료된다. 1기 영어전문강사들의 재고용을 보장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법으로 4년 이상 재고용이 불가능하다는 단서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영어전문강사는 쓰고 재생 불가능한 휴지조각 인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제도로 인해 강사들만 노동권의 피해를 받는 것은 아니다. 바로 학생·교사들의 학습권 문제도 있다. 전교조 입장 중 일부 강사의 전문성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가 영어교육을 강화,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행 당시, 진보적인 교원단체나 시민, 학부모단체에서는 영어전문강사 제도는 말만 바뀐영어몰입교육이고 비판한 적이 있다. 학생들에게 영어라는 또 하나의 학습고통을 주며, 입시경쟁을 부추기는 비교육적인 교과학습구조를 만들기 때문이다. 비단 이 비판은 지금까지도 학교 안 밖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영어전문강사의 노동권과 학생·교사들의 학습권이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건 불가피한 상황일까? 물론 교육부가 영어전문강사 제도를 지속하거나 무기계약 등 고용안정 대책을 내놓았을 경우 상황은 좀 더 여유로워질 수 있다. 그러나 여유를 보는 건 영어전문강사들 뿐이다.


 한편으로 학생·교사들의 학습권에 대해서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이미 영어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도입취지가 무색하게 오히려 영어 사교육이 더욱 번창해 영어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영어중도탈락자 발생 등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게 돌이킬 수 없는 영어교육의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영어가 수능에 한 몫 하면서, 다른 과목은 ‘기타’과목으로 취급받고 있는 것 또한 또 다른 현실이다.


 이 제도에 문제제기하는 교사, 학생, 강사는 모두 학교구성원이다. 영어전문강사 제도 도입 초기부터 강사해고 문제와 영어몰입교육 문제가 맞물릴 것이라고 학교구성원들이 예상했다면, 갑작스럽게 일어난 지금의 상황을 대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점쳐본다. 서로 과거를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머리를 맞대어 보자는 얘기다. 물론 두 개의 인권이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때, 생각처럼 그 프레임을 뛰어넘어 사고하거나 권리를 옹호할 수 있는 논리들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모든 인권의 역사에서 보듯이 우리를 멈추게 했던 현실론을 뚫고, 권력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을 뛰어넘었을 때, 비로소 가려져 있던 권리에 다가설 수 있었다. 


 이것은 소통하는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고 힘이다. 지금이라도 영어전문강사와 학생, 교사 모든 학교구성원들의 소통을 통해 두려움 없이 함께 의견을 나누고 찾아가는 시도들이 필요하다.


박고형준<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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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비공개인가?


박근혜 정부에서는 ‘정부 3.0’ 정책을 밝히고 모든 공공기관이 유리병처럼 투명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 내용을 면면히 살펴보니 정부는 모든 공공기관의 공공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도 선언했다. 그리고 정보공개법을 개정해 정보공개청구가 없이도 정부 기록을 원본 그대로 공개하고,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모든 위·수탁 기관에 정보공개 대상기관을 만드는 작업도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정부와 발맞춰 서울시도 예산낭비신고센터를 개설해 서울시가 추진하는 사업 예산과 관련해 자체적으로 보유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며, 서울시가 서울시민들에게 자발적인 감시를 요구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정보공개를 보편화하려는 발가벗은 정부의 움직임은 칭찬해줘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제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진보교육을 앞세워 정책을 추진하는 광주광역시교육청 마저 공공기관의 정보를 감추려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시민단체인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은 시교육청에 ‘국외출장 및 연수에 관한 내역’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이에 대해 시교육청은 구체적인 설명 없이 ‘특정인의 이익 또는 불이익’이라는 이유로 해당정보를 비공개했다. 하지만 해당근거는 부동산투기, 매점매석 등의 경우만 해당되기 때문에 비공개 처분근거에 해당되지 않다는 건 너무 쉽게 밝혀졌다.


 정보공개청구 답변 중 가장 최악의 답변은 무작정 비공개나 부분 공개하는 사례다. 특히 국외연수에 대한 내역은 법적으로 공개해야 할 대상항목이지만, 온갖 편법을 사용해서 비공개를 하고 있는 기관들이 많다. 광주시도 마찬가지로 해외연수 내역 정보공개와 관련해 매 년마다 행·의정 감시단체인 ‘밝은 세상’에게 행정심판 및 소송을 맞아 끝끝내 공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처럼 충분히 기록되어 있을 만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은 업무상 핑계에 불과하다. 이는 정보공개법의 취지를 명백히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공공기관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다.


 해외연수란 무엇인가? 선진국 사례를 습득함으로써 지방자치의 발전을 이루려는 것이 본래의 취지며, 이에 사용된 비용은 공무원여비규정에 맞게 연수 당사자가 예산집행을 하고 다녀오면 얼마 사용했는지 보고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단지 공무원이 아닌 사인(私人)이 해외 연수를 다녀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국민의 세금으로 행해진 것이라면, 당해 사인의 성명은 익명으로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마땅히 일반 국민이 그 세부 내용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시교육청의 예산으로 공무원이 아닌 사인이 해외 연수를 다녀왔다면, 그 사인이 어떠한 이유로 해외 연수 혜택을 받게 되었는지, 수혜 대상을 선정하는 방법과 절차는 공정했는지, 그에 따른 경비 지출이 공익에 부합하는지 등에 대하여 일반 국민은 이를 마땅히 알 권리가 있다. 


 알 권리는 헌법에서 보장한 국민의 권리이며 인권의 항목이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주권자로서 국가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알 수 있어야 하며, 정보공개법에서도 국민에게 공공기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정보공개청구라는 행위를 통해 사람들은 국가에 주권자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이는 자연스럽게 국가가 독단적이고 폐쇄적으로 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견제장치가 된다. 또한 공공기록의 철저한 관리를 통해 국가 업무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담보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하지만 ‘광주광역시교육청 국외연수 내역 비공개 사례’처럼 우리는 알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알 권리를 터부시 하는 경향 탓도 있지만, 기록자체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니 알려줄 거리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록의 의무가 지켜지지 않으면 알 권리가 충족될 수 없다. 기록이 없이는 기록의 공개도 없고, 공개가 되지 않는데 알 권리가 지켜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번 광주광역시교육청의 정보공개 비공개처리에 대해 정보공개청구 단체에서 행정심판청구를 제기했다. 어떤 면에서는 진보교육감과 진보단체의 갈등으로 안 좋게 비춰질 수도 있지만, 꼭 승소해 시교육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만약 밝혀내지 못한다면, 오늘도 어디선가 누군가의 배를 불리기 위해 온갖 편법을 사용해 해외연수를 추진해 쥐도 새도 모르게 은폐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해외연수는 사실 관행적인 행사다. 해외연수를 관광으로 가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헌데, 이와 같은 현실을 알고 있지만 스스로 자백하지 못하는 것이 조금 씁쓸하다. 누가 정보를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 떳떳하게 정보를 밝힐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 이게 바로 정보공개의 선행과제이다.


박고형준<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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