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날 수 없는 `야자’…“환청에 극단적 생각까지”


“저녁에 (학교에) 남아 공부를 계속하는 게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작년에는 강제로 잡혀서 (야자를) 했어요. 그런데 올해는 스트레스 때문에 환청까지 들릴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의 강제학습 피해 사례를 발표하던 중 고등학생 A군은 결국, 용기 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부모님과 상의한 뒤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겠다고 학교 측에 말했지만 담임교사는 수용하지 않았고, A군은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꼈다. 


 “제가 겪은 상황(강제학습)을 종이에 적어서 옥상으로 갔어요. 일종의 유서였습니다.”


 정규 수업이 끝났는데도 저녁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책상 위를 벗어날 수 없었던 A군은 그렇게 절벽으로 내몰렸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학교 측은 A군에게 자살예방교육을 받게 한 뒤 A군이 그토록 원했던 자유 시간을 돌려줬다. 


“학력 높이기 위해 학생 인권 무시”


 광주지역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꾸려진 강제학습 대책위는 18일 오후 7시 광주청소년문화의집에서 ‘강제학습 근절을 위한 원탁토론회’를 개최했다. 대책위원회는 광주지역 고교를 중심으로 여름방학 동안 강제학습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의 근절을 촉구하며 광주시교육청 앞에서 5주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번 토론회는 광주지역 학교 강제학습 논란이 본보 기고(8월3, 5일 등)를 통해 쟁점화하면서 이에 대한 공개 토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토론에 앞서 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학생·학부모·교사가 마이크를 쥐고 ‘강제학습의 실태’를 낱낱이 고백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같은 학교의 B군이 소개한 강제야간자율학습 피해 사례도 A군의 경우 못지않게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었다. 


 “선생님께선 야간자율학습 신청서를 나눠줄 때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작성을 강요하세요. 학생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없어요. 부모님 편지를 써와도 쉽지 않고요. 성적이 높은 학생들에겐 아예 직접적으로 ‘실망이다’며 면박을 주는 선생님도 있어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교사들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광주지역 고등학교 교사 C씨는 “학교는 입시 결과를 더 잘 만들어 내기 위한 곳일 뿐”이라며 “학력을 높이기 위해 학생 인권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고 고백했다. 


 “학생들에겐 생리결석이라는 권한이 있어요. 학기 초에 학생들에게 이러한 기본권을 알려줄 의무가 교사들에겐 있죠. 그런데 교사들은 이를 알고도 묵인하거나 아예 인권의식조차 없는 경우가 많아요.”


“문제의식 있어도 학교에 반기 못들어”


 C씨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할 의식자체가 부족하다며 이것은 곧 자율학습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도 연결된다고 꼬집었다. 


 “정규수업 이외에 학습은 학생들에게 강제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학생들을 붙잡아 공부시키는 것이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는 착각”이 그것이다. 


 야간자율학습 등 학교가 정규수업 외에 학생들에게 학습을 강요하는 행태는 학부모들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강제학습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학부모들조차 학교의 입장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을 둔 학부모 D씨도 마찬가지 경우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오후 6시가 넘어도 집에 안 오는 거예요. 학교에 전화를 했더니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이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야자를) 빼 줄 수 없냐고 했어요. 그런데 담임선생님은 ‘진짜냐’며 되묻고 하루 빠지면 앞으로 1학기 동안 야자를 할 수 없게 된다고 엄포를 놨어요.”


 자율학습이라는 말만 믿고 학생이 학습을 선택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D씨는 처음엔 학교에 전화하고 반발도 해봤다. 하지만 D씨는 점차 자신도 자율학습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쪽으로 교사에게 설득되기 시작했다. 


 “우리 애가 (야자를) 빠지면 반 분위기가 흐트러진다고 담임선생님이 말했어요. 또 야자를 안 하는 학생들은 성적이 떨어진다고도 했고요. 어느 순간 저도 우리애가 야자에 꼭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말하고 있더라고요. 분명히 자율학습을 강제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건데도 이젠 잘 모르겠어요.”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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