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권적 구조조정 철회하고 노동기본권 보장하라.

작년 12월 30일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이 결정되었다. 사측은 금호타이어 노동자 1,199명의 정리해고 명단을 문자로 통보하고 임금을 삭감하려는 등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지금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와 천막농성을 시작했고, 4월 1일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이라는 이름으로 땀 흘려 일한 노동자를 구조조정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동조합이 강성이어서도 아니고, 회사에 타격을 줄 만큼 많은 임금을 받아서도 아니다. 그 근본적 원인은 부실한 경영에 있다. 그러나 사측은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있다.

이윤보다 앞서는 것은 사람이다. 지금 우리는 허울뿐인 경제 살리기, 누군가를 짓밟고 살겠다는 이기적인 욕망에 앞서, 분배의 몫이 적어지더라도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함께 사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사회가 작동하는 기본원리이며, 단 한사람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복무하는 일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생존권을 기본으로 하고 자유권과 사회권 여타 모든 권리들이 함께 갈 때 보장받을 수 있다. 생존권을 누리기 위해서 노동권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권리가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단체들은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인권의 기본 원칙을 위해 금타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할 것을 결의 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우리의 요구

첫째. 국가는 인권보호와 존중, 실현의 의무가 있다.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짓밟고 있는 지금의 대응방식을 성찰하고 노동자들의 대안과 제안을 적극 검토, 수용해야 한다.

둘째. 금호타이어 사측의 정리해고로 인해 하청업체, 부품업체 등 비정규직을 비롯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삶도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광주시와 노동청은 지역공동체파괴에 대한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셋째. 금호그룹 사태의 원인은 부실경영의 책임자인 경영진에게 있다.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정리해고를 당장 철회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2의 쌍용차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는 공권력투입에 대한 어떠한 계획과 시도도 중단해야 한다.

2010년 3월 11일

금호타이어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광주지역 인권단체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광주장애인부모연대,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광주인권운동센터, (사)실로암 사람들, 학벌없는사회광주모임, (사)합수윤한봉기념사업회, (사)들불열사기념사업회, 참교육학부모회광주지부, 평화행동한걸음더, 광주전남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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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예수전」

-행동과 가난을 요구하는 인간 예수의 초상

정다영(대학원생)

나는 교회에 다니는 젊은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일종의 선입견 탓인데, 내가 만나보았던 교회 또는 선교회의 청년들은 사회변혁에 관심을 가지지도 가난한 삶을 지향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이들은 선하고 부드러운 심성을 지녔고, 이 세계의 가난과 부조리함에 대해서 신께 기도했지만, 대학에서 데모하는 학생들을 곱게 보는 이들도 진보정당에 관심을 가진 이들도 없었다. 앞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이들은 있어도 자신이 가난하게 살겠다고 하는 이들은 없었다. 아니, 나는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이들이 나와는 다른 예수를 마음에 품고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웬 예수? 전도하려고? 그건 물론 아니다. 느닷없이 종교인들을 비난하려는 것도 아니다. 올해에 출간된 책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꼽고 싶은 책이 있어 소개하려는 것 뿐. 그것은 김규항의 「예수전」이라는 책이다. 김규항에 관해 아는 사람들은 이 책이 일반적인 종교서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테다. 사회의 진보와 사람들의 변화에 관심이 많은 그는 자신의 삶과 사유를 지탱하고 추동해가는 한 축으로 교회의 예수가 아닌 성서에 나타난 예수를 공부한다. 저자는 예수를 신의 아들보다는 역사적인 인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고 축복을 내려주는 이가 아니라, 우리가 따라 배워야 할 한 인간의 표본으로 바라본다. 그렇기에 이 책은 「마르코 복음서」를 강독하는 형식을 취해 인간 예수의 삶과 정신을 따라가며 그 함의를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에서 사회변혁과 가난에 대한 태도를 문제 삼은 까닭은, 이 책에서 김규항이 바라보는 예수가 그 두 가지를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혁명가로서의 예수를 부각시키지는 않지만, 예수가 당시 ‘지배계급과 로마의 이중적 착취에 시달리’던 갈릴래아 사람이며, 때문에 ‘소요와 봉기가’ 끊이지 않던 저항의 환경에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예수는 단지 현실에서의 삶이 어떠하든지 천국에서의 안락한 삶이 있으니 이 고통과 부조리를 참고 견디라고 하는 사람이 아니며, 그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지금 이곳에서의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 것임을 말한다. 또한 저자는 예수가 이 세상에서의 풍요를 약속하는 이가 아니라 가난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임을 분명히 한다. 예수가 권하는 가난은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의 궁핍함이 아니며, 도리어 인간적인 삶을 왜곡시키는 ‘필요를 넘어선 부’를 향한 경계를 의미한다. 그 욕심 또는 욕망이 자신의 자유를 해치고, 그것을 넘어 내 이웃이 혹은 얼굴을 알지 못하는 이가 누려야 할 재화를 빼앗고 있는 것임을 상기시키려 한다. 저자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는 성경구절은 그저 비유가 아니며, 절대로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선언’이라고 말한다.

뭔가 이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권을, 어떤 정책들을 비판하고 보다 나은 체제를 모색하면서 동시에 늘 이 물음을 자신에게 향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충분히 가난한가, 가난한 내 이웃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가난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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