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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학의 교육과 연구는 파행적이다. 이른바 '놀고 먹는 대학'의 모습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런 현상도 학벌과 직결되어 있다. 1등 대학은 1등이라서 공부하지 않고, 3등 대학은 3등이라서 공부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에게까지도 연결된다. 교수가 아무리 1류라도 그가 3류에 있으면 3류 교수일 뿐이다. 그가 1류로 옮기면 학문과는 무관하게 갑작스럽게 1류 교수가 된다. 결국 우리의 체계는 교수와 학생을 성실하게 평가하려 하지 않고 오로지 학벌만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대학의 인문사회계열은 모두 고시공부에 매달려 있고, 자연이공계열은 한의대, 수의대를 포함하여 의약계열 편입에 매달려 있다. 러시아를 전공하는 학생이 수업시간에 행정법을 보고,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공대생이 한의학과를 가겠다고 수능시험을 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서울의 사립대학원은 학교재정을 위해 무시험제도 마구잡이로 선발하고 있고, 지방대생은 '학벌세탁'을 위해서 서울의 큰 규모의 대학원으로 몰려든다. 그러니 지방대의 대학원에서 탈락한 사람이 서울의 명문대학원을 합격하는 일도 생기고, 지방대 대학원은 고사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적어도 필요한 조치가 바로 실용학문의 대학원화이다. 실용학문의 선택을 대학을 입학하면서 하지 말고, 대학 4년을 지낸 후에 하자는 것이다. 이럴 때만이 인문자연계의 기초학문이 살아날 수 있다. 문학을 공부한 후 법학을 하고, 물리학을 공부하고 의학을 하자는 말이다. 사회학을 공부하고 변호사를 하고, 생물학을 공부하고 수의사를 하라는 말이다. 적어도 대학 4년 동안 충실하게 인문학과 자연학에 대한 기초를 닦고 난 다음 실용학문으로 나가야 한다. 따라서 대학의 학문체계가 전반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전국 각 대학 내의 실용학문은 대학원으로 올라가야 한다. 현재에도 의대는 점차 학부정원을 줄이고 대학원 체제로 진행되고 있으며, 법대는 법조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법학대학원(law school)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덧붙여 경영학과나 행정학과도 장기적으로 대학원 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이 대학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다. 단순히 점수만 높은 학생들이 대학의 인기학과를 찾아가는 형국에서는 진정한 학문이 자라날 방도가 없다. 순수학문을 전공해본 학생들이 실용학문을 찾아가는 서순을 밟는 것이 학문과 국가의 발전에 유리하다. 이상적으로는 역사학을 해본 사람이 법관이 되고, 문학을 해본 사람이 의학을 하고, 기계공학을 한 사람이 경영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도, 의대, 법대는 진행 중에 있으며, 서울대의 경우, 행정대학원만 있을 뿐 행정학과는 없기에 하나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사범대학이다. 현실적으로 사범대학이 존속할 이유가 없는데도 계속 기득권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현재 중등학교 교원수급은 임용고사라는 제도를 통과하여야 하기 때문에, 굳이 사범대학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다. 교원대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초등교원양성을 제외하고는, 일반대학과 병립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범대학은 막강한 교육학권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흐트러뜨릴 어떤 조치도 거부하고 있다. 현재의 체재에서는 이를테면 국어국문학과와 국어교육과가 동시에 존재할 이유는 없다. 단지 국문과에서 교직과목을 이수하고 교원임용고사를 치르면 될 뿐이다. 때로는 특정교육학과 때문에 그와 동일한 다른 학과에서는 교직과목을 이수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현상도 각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역사교육학과 때문에 사학과에서는 교직과목을 이수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범대학은 하루 속히 대학원체제로 바뀌어야 하다.
주장 1. 응용학문을 전문대학원에서 교육하라
사범대학 학부는 의대, 법대와 마찬가지로 원론적으로 폐지되어야 하며, 대학원체제로 탈바꿈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었을 경우, 교사양성은 4+3 제도가 된다. 이는 법학대학원, 의학대학원, 경영대학원의 체제와 마찬가지로 교사의 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기본적인 목적이 있다. 오늘날 교사가 학부형보다 높은 학력을 지닐 시대적 필요성은 요청되고 있다. 게다가 학부에서 전공해온 교과목을 바탕으로 교육대학원과정을 이수하면 교사의 수준은 한 층 더 전문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교육학 위주의 사범대학 과정은 일반교과목을 심층적으로 이수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사범대학 폐지는 아래의 과정을 겪으면서 재편성된다. 사범대학 소속의 교수는 이른바 '내용학'에 따라 자율적으로 기존 단과대학의 특정학과나 학부를 선택해서 가고, 해당학과는 의무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를테면, 수학교육학과 교수의 경우는 대체로 수학과를 선택하여 갈 것이나, 윤리교육학과 교수의 경우는 사회학과, 정치학과, 철학과를 선택해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반교육학이나 교과교육학 교수들은 기존학과나 사범대학원으로 선택하여 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교원대학의 학부도 폐지되어야 한다. 현재 교원대학 학부는 일반사범대학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존속할 이유가 없다. 다만, 현행의 제도에서 교사의 재교육을 위해 2년 동안 파견(연구휴직)될 수 있는 석박사 과정은 일반학위가 아닌 전문학위, 다시 말해, 대학교수가 될 수 없는 과정으로 신중히 운영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국내외의 일반박사학위자에게도 소정의 일정기간의 교육을 거쳐 교사자격증을 부여하고, 국가가 의무적으로 채용할 것을 권고한다. 일반박사라 해서 반드시 중등교육을 잘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6개월 정도의 교육과정은 필수적이라 하겠다. 그러나 일반박사가 중등교육에 적합하지 않다는 논법은 우리 나라 교육의 100년 대계와 상치하는 주장이다. 만일 박사가 중등학교에서조차 필요하지 않다면 우리 나라 교육에는 정말로 희망이 없다. 교육의 연계성을 위해서라도, 수박 겉 핥기 식의 교육이 아닌 진정한 내용교육을 위해서라도, 교육전문학위자가 아닌 일반박사학위자가 중등학교 교사를 하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요청되는 일이다.
주장 2. 대학의 학문체제를 조정하라
대학의 학문체제는 대학선발체제의 개편과 더불어 조정되어야 한다. 현재의 이공계 중심의 대학체제는 기업의 인력수급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그것이 대학의 중심교육목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립대학은 기초학문을 중심으로 발전시켜나갈 필요가 있다. 인문계의 문학, 사학, 철학이나 자연계의 수학, 물리학, 화학은 돈이 되지 않지만 국가의 건강성을 유지시켜나가는데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학문이다. 응용학문이 대학원 체제로 전환되면 이런 현상은 일정부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학부에서는 기초를 위해 이런 과목을 성실히 이수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자질이나 재능이 바로 기초학문에 있는 것을 깨닫고 이를 전공할 학생도 생길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테면 근래 자연계열의 적지 않은 학과들이 중국, 베트남의 학생으로 운영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인문대학도 이와 비슷한 처지로 점차 바뀌고 있다. 기초학문의 실력이 곧 응용학문의 밑바탕이 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따라서 전문대학원의 선발에서도 이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문학과 과학이 되지 않고 대학원을 공부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같은 학문의 통폐합도 신중히 고려되어야 한다. 중소도시에 독문과가 서너 개씩 있을 필요도 없으며, 물리학과가 네다섯 개씩 있을 필요도 없다. 모든 국립대에 같은 학과가 모두 있을 필요도 장차 사라질 것이다. 교양과목을 위한 교수는 확보되어야 하겠지만,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교수를 한 곳에 모아놓을 필요도 있다. 교수가 선택적으로 교양역사를 담당하거나(강의교수) 전공역사에만 매달 릴 수도 있고(연구교수), 특정 대학에 모여 같은 분야를 연구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서양고대사는 A대학에, 과학사는 B대학에, 중국사는 C대학에 집중되어 있는 식이다. 학점관리도 당장 실명제가 되어야 한다. 어떤 과목에 A를 얻었다가 아니라 '누구의 어떤 과목'에 A를 얻었다고 표기되어야 한다. '법학개론(홍길동)'이라는 식의 성적표로 교수의 이름이 드러나게 만듬으로써 교수에게 책임감을 주어야 한다. 학문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의 바로 그 성적을 사회적으로도 인정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그 과목을 들었다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 배웠다는 문화가 되어야 학문적 진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석박사 논문심사도 강화하여, 박사의 경우, 독일처럼 출판을 의무화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학위의 양산을 막아야 한다. 특히 교육대학원 학위의 경우, 때로는 학문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논문이 교사의 평가와 승진을 위해 남발되고 있어 학문적 평가절하를 야기하고 있다.
질문과 답
▶ 사범대학을 없애라는 것은 교육학을 완전히 없애자는 말인가? ▷ 아니다. 교육학은 학문 중의 학문으로 최상위에 놓여야 한다. 그러나 교육학이 대학의 과정으로 있으면서 단지 교육학 전공 교수를 위해 학과를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교육학은 대학원 과정에 있으면 되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교양과 과목과 같이 학생은 없고 교수만 있는 체제(교육학 교수부)로 존속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주장이 대학에서 교육학 과목을 없애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교육학 전공자는 공급과잉상태에 있다. 그것은 교육학 전공 교수를 위한 교육학과 개설이라는 앞뒤가 바뀐 대학운영에 그 원인이 있다. 교육학 전공자는 중등학교에서 교육학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거꾸로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게 제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현 제도이다. 교육학과 학생들은 국어, 영어, 수학, 그리고 윤리조차 부전공이라는 이름으로 아무 것이나 할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 최초 교육학이 학교에 자리잡았던 까닭은 사범학교 시절 중등교사양성과정을 위해 교육학 과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63년 사범학교의 해체와 더불어 갈 때가 없어진 교육학 전공자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위해 대학 내에 교육학과를 설치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된 것이다. 교육학은 교사가 되려는 학생이 반드시 들어야 할 과목 가운데 하나이지, 그것만으로 학부전공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를테면, 중등학교에는 분명히 '교육학'이라는 과목이 없기 때문에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할 이유가 없다. 또한 윤리교사를 하려면 윤리나 철학을 공부해야 함에도, 교육학과는 그러한 기본전공조차 없이 운영된다는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여기에서부터 우리 교육의 왜곡이 시작된다. 아울러 학부과정에서는 교과교육학이라는 것도 기본적으로 불필요하다. 각 과목마다의 교과교육학은 학문을 지나치게 기술화시킴으로써 창의성을 훼손시키기 때문이다. 교육학이란 그 역사가 100년도 되지 않는 그야말로 실용의 학문이다. 실용학문을 목적화시켜서는 안 된다. 따라서 우리의 사범대학 폐지론은 한마디로 교육학 제자리 찾기 운동이다.
▶ 사범대학원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것이 아닌가? ▷ 비록 대학원체제는 신설이라 할지라도, 기존의 대학의 시설과 교수를 이용하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사범대학원의 설치는 상당히 현실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력의 수급을 조정하기 위한 정원의 감축은 필수불가결하다. 현재 교사자격증의 남발은 지나친 기대심리를 부여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제대로 된 교사양성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범대학원이 곧 현재의 교육대학원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국의 사립대학 등에서 영리의 목적으로 운영되는 교육대학원의 석사 과정은 단순한 승진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른바 학벌 상승 효과만 있을 뿐, 실질적인 학습과 연구는 안중에도 없는 현재의 교육대학원은 실제적으로도 이미 효용성이 없어지기도 했지만 당장 폐지되어야 한다.
▶ 교원대학이 불필요하게 되지 않겠는가? ▷ 장기적으로는 그렇다. 특히 교원대학에서 남발하는 학위는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 교원대학의 학위는 전문학위이어야지 일반학위여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교수가 되기 위한 학위가 아닌 교사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한 학위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교원대학의 기능조차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의 교원 재교육기관으로서의 위상은 필요할 것이다. 이른바 교원연수원으로서의 기능이다.
▶ 교원양성기간이 너무 길어지는 것은 아닌가? ▷ 길어져야 한다. 현재 학부모의 학력이나 교사의 학력이 비슷하거나 떨어진다는 것은 존경과 권위의 유지가 그만큼 어려워졌음을 뜻한다. 교사는 만인의 스승으로 일정정도의 자격이 당연히 요청되어야 한다. 과거의 교사자격이 미래에도 충족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학제개편(4+3)과 더불어 완성될 일이다. 다른 의학이나 법학전문대학원제도(4+3)와도 같을 수 있다. 여기에는 최소 6개월 이상의 실습과정이 포함된다. 다만, 국가교육전반에 걸친 학제개편(예: 5+5+4+2)은 별도로 논의되어야 한다. 현실에서도 교사가 되기 위해 재수, 삼수는 물론이고 편입조차 만연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2년의 대학원 체제는 그다지 시절과 위배되는 것도 아니다. 실질적으로도 보건대학원, 환경대학원, 행정대학원 등은 학부가 설치되어있지 않은 대학도 있다. 이와 같이 사범대학원은 학부 상위의 체제로 정립되어야 한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사범대학원이 졸업 후 자동적으로 교사가 되는 목적형 기관으로 비교적 규모가 작게 설정될 필요가 있다. 이런 사범대학원 제도는 대학의 기초학문을 살리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 판단되며, 장기적으로는 교사의 신분상승과 전문성이 유도될 것이다. 운전면허 다음으로 많은 교사자격증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 교육부의 전문학위제와는 어떻게 다른가? ▷ 교육부에서 계획하고 있는 전문대학원제도는 현재의 교육대학원이 실질적으로 그 효용가치가 없어지자 그 대안으로 제시된 미봉책에 불과하다. 전문대학원안은 전문학위(교육학전문박사, 예: Doctor of Education 또는 Doctor of Public Administration)와 학술학위(일반박사, 예: Ph.D. in Education 또는 Ph.D. in Public)를 구별하여 전문학위과정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많은 문제점을 담고 있다. 이른바 교육대학원이 더 이상 석사과정생을 공급받지 못하자 박사과정생으로 단계만을 올려 학벌상승만을 부추기고 있으며, 전문대학원을 신설하여 그 교수요원으로 교육학권력이 다시금 자리잡으려는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박사의 남용은 우리 교육계의 위상을 하락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 일반박사학위자가 교사가 된다면 기존의 교사와 갈등이 발생하지 않을까? ▷ 일반박사학위자라도 교사자격을 위해서 소정의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이라고 할지라도 똑같은 교사의 훈련을 면제받는 것은 아니다. 설령 그들이 입시위주의 교육을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 교육현장이 왜곡된 것이 문제이지 그들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미래의 이상적인 중등교육에서는 학문의 깊이는 필요 없고 정제된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 일반박사학위자가 중등교육을 담당할 수 없다면, 우리 나라 교육의 미래는 없다. 장기적으로 교사요원은 교수요원과 마찬가지로 계급적 차별이나 학력의 차이가 줄어들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이질적 집단이 공존해야 서로를 비판하고 평가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학술박사와 교사의 일정부분의 마찰은 오히려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아울러 여러 악기를 다루어야 하는 음악(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이나 다양한 기법의 미술(뎃생, 사군자, 서예)과 같은 예능과목은 교원자격증이 없는 전문가가 강사로서 가르치는 것이 훨씬 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이상 공직자의 출신대학별 비율을 보면 서울대(약 30.7%), 고려대(7.5%), 육사(7.4%), 연세대(6.5%), 성균관대(5.9%) 등 5개 대학 출신들이 전체 고위공직의 약 58%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관료제 사회에서 가장 권력 있는 자리라고 할 수 있는 공직을 몇 개 대학 출신들이 독점하고 있다. 이러한 특정대학의 공직 독점은 다른 분야까지 영향을 끼친다. 기업에서 서울대 출신을 선호하는 것도 다른 어떤 이유보다 공직이 서울대에 독점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이 시민사회 위에 군림하는 한국에서는 기업 운영을 할 때도 언제나 국가 기관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서울대 권력이 계속 확대 재생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위공직자 임명시 특정대학의 비율이 30%를 넘지 않아야 한다. 공직은 전국민을 위한 봉사직이지 몇몇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공무원 채용시 특정대학이 10%를 넘게 되면 공직이 사유 체제로 변질되기 쉽다. 게다가 우리 나라의 행정을 좌지우지하는 고위공직자 가운데 특정대학 출신자가 30%를 넘는다는 것은, 공직의 공익성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우리가 '대학별 공직 제한제'를 주장하고 이를 위한 법안(가칭: [공직의 균등임용을 위한 법안])을 제정하자는 이유이다. 특히 이는 고위직의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의지로도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질문과 답
▶ 지역별 인재 할당제를 실시할 때, 대졸자에게만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닌가? ▷ 지역별 인재 할당제는 우선 각지역의 인구비례에 따른 공직자의 배분을 뜻한다. 그런데 이 때 우리가 말하는 지역은 '출신 대학이 속한 지역'이 '태생에 따른 출신 지역'에 우선 적용되기 때문에 대졸자에게만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 대졸자가 아니더라도 인재할당에 해당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시제도는 7급 중심의 선발체제로 개편되는 것이 옳다. 고시제도가 갑작스런 개인의 신분상승의 기회처럼 여기지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익성이 담보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회성 시험으로는 인물을 온전히 평가할 수 없으며, 중간 및 최고 관리직이 되기 위한 공직자끼리의 경쟁도 보장하지 못한다.
▶ 지방의 거점국립대학들이 지나치게 중심화되는 것은 아닌가? 초기단계에서 이는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우선 서울소재의 대학과 상대할 다수의 지방의 국립대학을 육성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사립대학은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며, 국립대학은 철저하고 완전하게 집중 육성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지원과 더불어, 국립대학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중복투자와 같은 비효율성을 방지하는 적절한 체재개편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오늘의 시점에서 법학대학원, 의학대학원, 사범대학원 그리고 경영대학원 등도 거점국립대학이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관련 학부의 폐지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국립대학의 무상교육, 장학금 지급, 기숙사 설비 등 특단의 조치가 실시될 것을 요구한다. 서울대에 독점적으로 투자되는 돈이 지방의 국립대학에 분산되어야 한다. 전국의 거점국립대학의 육성은 수도권 집중 억제와 지역간의 균등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 현재에도 국립대학 교수채용시 한 대학 출신이 2/3 이상 되지 못하게 되어있는데도, 지켜지지 않는데? ▷ 현재 국립대학의 경우 교수채용시 특정 대학 출신이 2/3를 넘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그 설정기준이 매우 모호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모집단위별 2/3'가 우선적이며, 게다가 '당해년도'라는 한정적 표현이 따라, 현실적으로 피부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3명의 신임교수를 뽑는다고 가정할 때, 한 과(예: 역사과)의 모든 교수가 A대 출신이더라도 그 과가 속한 같은 모집단위(예: 역사철학군) 내의 다른 과(예: 철학과)에서 1명의 B대 출신을 뽑았으면, 2명의 A대 출신을 더 뽑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행정의 기본원칙은 적법성에 있다. 따라서 그것이 규정으로서 강제성을 띤다면 어떤 공무원이라도 이를 지키지 않은 방법은 없다. 따라서 법령으로 제한된 할당을 지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실적인 실효성은 보장된다. 문제는 규정의 모호성에 있지, 규정의 실효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서울대에서 타교 출신 교수를 뽑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법령의 엄정함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개방성에 기초한 자발적인 사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서울대는 '같은 대학(university)'의 해석을 '같은 단과대학(college)'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아 여전히 서울대 중심주의를 보완, 확대하고 있다.
▶ 능력 있는 사람이 대우받는 것은 당연한데, 이 제도 때문에 탈락된다면. ▷ 특정 대학에 특별의 기회를 주는 것은 상당한 불평등을 야기한다. 이를테면, 모 대학에만 취업의 기회를 주는 것 등이다. 그러나 전 대학에 일반의 기회를 주는 것은 평등을 확대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전 국민에게 공무원 임용시험의 합격 가능성을 넓혀주길 희망한다. 이른바 능력주의란 공정한 경쟁에서 타당한 개념이지, 우리의 현실에서처럼 경쟁조차 차단되는 경우에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도 능력 있는 사람이 대우받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일류대에 간 능력을 무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일류대에 가서 일류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타파하자는 것이다. 일류대만 입학하면 일류가 아니라, 지방대에서도 일류의 인재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 학벌도 장애자, 여성, 외국인, 비정규직 노동자 등과 같이 분명한 차별의 기준이 있는가? ▷ 학벌은 여성, 외국인 노동자와 같이 천성 또는 신체적 조건에 따른 차별과는 다르다. 학벌은 오히려 이런 모든 차별 속에 또다시 내재한 차별이기 때문에 가장 '포괄적인 차별'에 속한다. 장애자, 여성, 외국인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로 차별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학벌로 다시 차별되는 것이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차별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공고화시키는 기제인 것이다. 이를테면, 여자로서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자들은 더욱 학벌을 차별화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장애자와 외국인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운데 벌어지는 학벌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차별 받는 속에 더욱 차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학벌은 어떤 차별보다도 우선시되어야 할 문제이다. 우리가 여성인재할당제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할당제에 적극 찬성하고, 학벌의 문제와 많은 교집합이 있을 것이라고 인지하면서도, 그것이 대치되었을 때는 학벌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학벌은 공공의 이익(이를테면, 여성은 국민의 50%에 해당된다면 학벌차별은 국민의 대다수에 해당)과 관련되어 불평등이 너무도 크다는 점에서 학벌문제를 최우선시하는 것이다
학년과 상급 학교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학생의 흐름을 양적, 질적으로 통제하고 조절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시험 제도가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입시는 국가가 관리하는 선발 시험 제도의 사회적 영향력으로 인하여, 평가가 교육 과정에 발전적인 영향을 주기보다는, 평가에 의해 교육 과정이 역으로 왜곡 당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평가가 교육을 지배할 때 교수 학습 활동은 시험에 대비한 능력을 키우는 활동으로 전락하고 만다. 문제 해결력 등 시험에서 요구되는 기능만이 의미를 가지게 되고, 단기간에 많은 지식을 주입시키는 주입식 수업으로 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서열화된 대학 구조를 가진 우리 나라에서는 이 평가로 인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는 인생의 경험이 배제되어 있는 '입시선수'가 사회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를 통해 시험을 위주로 하는 입시경쟁이 사라지면, 초중등학교 교육도 더 이상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에 종속되지 않고 본래의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윤리시간에는 철학을, 국어시간에는 시와 소설을 온전하게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의 타파를 위해, 우리는 수능의 난이도를 지속적으로 낮추어 자격고사화하며 궁극적으로는 학교나 학생이 시험을 선택할 수 있길 요구한다. 아울러, 대학입학전형을 대학에 완전히 맡겨 스스로 책임지고 학생을 선발할 수 있길 희망한다. 수능점수에 따른 '인간 서열'이라는 거짓이념은 더 이상 재생산되어서는 안 된다.
주장 1. 대학서열화 기제인 수능을 자격고사화하라.
수능시험의 본질이 권력집단에 들어갈 사람을 뽑고, 그 불평등을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려는 '속임수 장치'인데도, 많은 사람들은 수능시험이 마치 한 개인의 능력을 정확히 평가하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래서 수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학벌로 권력을 독차지'하는 대학에 들어간 사람들은, 정말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 그러한 권력을 누린다고 착각한다. 한편 시험 점수 따기 경쟁에서 진 사람은 수능시험의 능력을 들먹이는 '거짓이념'에 속아 학벌차별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자기 능력을 탓한다. 그래서 차별에 맞서 싸우는 대신 다시 시험에 매달려 그러한 권력집단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 나라의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은 교육 목표의 성취 수준을 측정하는 시험이 아니라 상대적인 서열을 매기는 획일적 시험이다. 또한, 이 시험의 운영과 문제 출제 과정은 중등교육 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을 전적으로 배제한 채 진행되기 때문에, 중등교육 기관을 하나의 독립된 교육 과정을 책임지는 기관이 아닌, 대학 입학 이전의 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의 하부 교육 기관처럼 전락시키고 있다. 따라서 점수에만 관심이 있는 현재의 수능은 교육과정의 극심한 왜곡을 가져온다. 국가가 주도하는 자격고사는 일회성 시험이 아닌, 교육과정의 평가를 담고 있어야 한다. 시험은 선발과정의 통제 장치로서의 기능보다는,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이행했는지 여부를 평가한다. 이는 중등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이수했는지 여부를 평가하는 것이며, 대학 입학전형의 자료로 선택적으로 활용된다. 수능의 졸업자격고사화는 본질적으로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대안이며, 수능성적만으로 형성되고 있는 수직적인 대학서열화를 타파하기 위한 방안이다. 아쉬운 것은 많은 교육계의 의식있는 인사들조차 학벌과 수능의 필연적인 관계에 대해 그다지 인식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학벌이 허상이라면, 그것의 설계도가 바로 수능이다. 따라서 한국사회는 '학벌과 수능으로서의 세계'로 정의된다. 오늘날 수능은 학벌이라는 요괴를 지키고자하는 매트릭스로서 작동하고 있다.
주장 2. 국립대 통합전형을 실시하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는 통합되어야 한다. 선발에서 졸업까지 국립대는 동일한 자격을 가져야 한다. 국립대가 통합전형된다는 것은 모든 국립대를 하나로 묶는 것과도 같다.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서울대 학부가 사라짐을 뜻한다. 먼저 지나치게 비대화된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장기적으로는 지역별 국립대의 정원이 인구비례성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우선 신입생 선발은 소재지역 출신의 대학진학 희망자에게 우선권을 부여해야 한다. 이를테면 국립대 신입생의 50%는 동일지역 소재의 고등학교 졸업자에게 할당한다(이는 지역인재할당제와도 관련된다). 나머지 50%는 지역의 구분 없이 개방하여 충원하는 식이다. 그리고 전형시에 대학은 무시험을 원칙으로 하되, 여러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현행 제도도 학생 선발을 대학에 원칙적으로 맡긴다고는 하나, 수능이 전국의 학생들을 점수로 서열화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국가가 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대학이나 학과의 성격이나 특성을 무시한 현재의 선발방법은 중등교육의 황폐화에도 일조하고 있다. 대학이 입학의 진정한 자율성을 확보할 때 학생도 비로소 나름대로의 선택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재능과 취미 그리고 개성에 따른 선발방식이 다양하게 등장할 수 있다. 이런 제도에는 소수자와 약자가 적극적으로 배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입시제도의 다양화는 장차 대학을 일률적으로 비교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서열의 획일화의 둔화에도 크게 기여한다. 아울러 국립대학은 현재 시행하고 있는 소년소녀가장 및 농어촌자녀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정원의 일부를 좀더 개방함으로써 공익성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실적으로 경상대 사회과학원에서 제시한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 구축안'(사회과학원장 정진상 사회학과 교수, 2003.11.19.)에 적극 동의한다. 그 안은 내용에서도 밝혔듯이 처음부터 우리의 이념과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작성된 것이며, 앞으로도 같은 방향의 목적을 위하여 동조할 것이다. 우리와 가장 다른 점이 있다면, 법학과 의학 및 교육학 등 전문대학원 입학을 우리는 대학4년 졸업 후로 비교적 늦게 잡고 있는 반면, 그 안은 대학2기 과정(현행의 3학년 과정)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잡고 있다. 간략하게 정리해보자면, 경상대 사회과학원 안은 국립대학정원의 70%는 내신으로, 30%는 자격고사로 뽑은 후, 대학1기 과정 이수자(현행 2학년 이수자)에게 전문대학원 과정을, 대학2기(4학년 이수자)에게 일반대학원 과정을 입학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구체적으로 전문대학원은 학부 1기 과정 성적 50%와 별도의 시험 50%로 선발하며, 서울대 일반대학원 정원의 80%를 국립대학 학부 출신에게 배정한다는 안이다.
질문과 답
▶ 수능시험과 대학서열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가? ▷ 대학서열은 입시경쟁 때문에 생긴다. 그러나 이 입시 경쟁이 곧 수능시험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수능시험이 점수에 따라 1등부터 줄을 세운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입시경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입시경쟁은 많은 학생들이 학벌로 권력을 독점하는 몇 개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수능시험이 국가적 차원에서 엄격히 평가하는 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변별력'이라는 구실로 난이도를 높이고 이른바 일류대학 입학가능자를 최우선적으로 골라내는 현실은, 학업의 성취도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성적 상위자에게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역할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수능이라는 국가적, 객관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권력세습자를 선발하기 때문에, 대학의 서열구조가 자꾸만 공고히 되는 것이다. 나아가 대학서열은 학벌 권력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국가적 차원의 모순으로 드러나게 된다. 만일 특정 대학에 독점된 권력이 해체된 상황이라면, 수능시험이 현행대로 있다고 해도 오늘과 같은 극심한 입시경쟁은 완화될 것이며, 입시경쟁에 따른 대학서열도 고정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의 입시경쟁은 대학 문이 좁아서가 아니라, 학벌 기득권을 누리는 이른바 일류대학의 문이 좁아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현재처럼 수능시험이 대학 서열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이용되는 한, 수능 서열과 대학 서열은 나란히 갈 수밖에 없다.
▶ 특정대학의 권력 독차지가 사라진다면, 대학이 평준화되는 게 아닌가? ▷ 평준화는 학업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이 여러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평준화라는 의미가 우리 사회에서 상당히 부정적으로 쓰이는 것은 바로 서열화를 공고히 하려는 집단에 의한 고의적인 왜곡 때문이다. 사실상 평준화는 모든 교육의 이념이다. 교육을 균등하게 받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대학평준화가 좋은 예이며, 미국의 주립대학이 또한 그러하다. 그런데도 우리의 학벌권력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평준화에 대한 악의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다. 우리는 평준화라는 말을 쓰면서 상당히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통합전형이나 졸업장 단일화 등과 같은 개념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평준화는 하향식 조정이 아닌 상향식 조정이라는 점이다. 서울대 학부의 개방과 더불어 등장하는 연고대에 비견될만한 대학으로 우선 전국의 국립대학을 육성하자는 것이다. 국립대학은 유수의 사립대학과 경쟁해야 한다. 엇비슷한 대학이 전국에 골고루 산재할 때만이 우리의 학문적 경쟁은 활발해 질 수 있다. 집중된 권력이 전국의 대학을 통해 분산되는 과정을 통해, 다양한 전통이 양산되길 희망하는 것이다. 물론,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몇 개 대학의 권력독차지가 순식간에 사라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여러 제도(독점을 금지하는 법안 등)로 이를 방지하면서 입시제도를 개선한다면, 소수의 대학에 맞설만한 다수의 대학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 졸업자격고사 또한 수능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 현재의 수능은 상위고득점자를 변별해내기 위한 시험이지만, 우리가 말하는 졸업자격고사는 고등학교 졸업학력자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실력을 검증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수능을 더욱 쉽게 낸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된다. 수능 만점자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운전면허 시험에서 어떤 기준을 넘으면 거기서 점수차이란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졸업자격고사는 먼저 학교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평가이다. 현행 수학능력시험은 시험의 출제나 채점, 그리고 관리에 있어 중등학교와 연관성이 적다. 이에 반해 졸업자격고사는 원하는 교육목표에 성공적으로 도달했는지를 검사하는 것이 그 기본 성격이다. 이를 통해, 초중등 교육이 대학입학에 종속되지 않고, 학교와 급별로 아동과 청소년의 신체적 성장과 정서적 발달 단계에 걸맞는 교육목표를 실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울러, 가르치는 자가 평가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 졸업자격고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시험인가? ▷ 현재의 수능보다 좀더 완만한 격차를 둔 자격고사를 뜻한다. 정확한 점수보다는 대학에서 시행되는 성적판별기준인 A, B, C, D, F 정도의 변별성을 가리킨다. 점수로 환산할 경우라고 하더라도 현재처럼 세밀한 점수로 기록되어서는 안 된다. 정확한 점수는 다시금 대학 서열을 조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졸업자격고사는 한마디로 '뭉뚱거려진 수학능력시험'이라고 보아도 좋다. 중등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장기적으로는 내신성적만으로도 대학에 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때 졸업자격고사는 입학전형의 참고용 자료로 이용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센타시험'이 대학입학희망자 모두에게 강요되지 않는 것과 비교될 수 있다.
▶ 본고사 부활의 가능성은 없나? ▷ 통합선발의 체제는 국가가 시험을 전형하는 것이다. 내신을 원칙으로 하되, 그것을 적용할 수 없을 때는 졸업자격고사로 대체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이 과정에서 대학 나름대로의 입시제도가 마련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창의력과 개성을 강조하는 것이어야지 과거의 본고사 형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형자료는 자기소개서를 중심으로 한 학업계획서를 위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일종의 무시험 전형이다. 본고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유수한 대학에서 자신들의 독점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체제이다. 서울대 학부가 개방되어있고 공직독점금지가 실행되고 있는 마당에, 인재가 특정대학에 집중될 까닭은 없다. 학생들은 서울로 집중되지 않고 지역 내에서 수급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며, 점차 서울에 집중된 관심이 전국으로 확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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