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독점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적 차원에서 '지역별 인재 할당제'나 '대학별 고위공직자 제한제' 등을 통해 특정 대학 출신의 고위직 독점을 줄여나가는 노력도 해야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워낙 크고 힘센 지금의 서울대 권력을 해체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정책 차원에서도 서울대라는 권력집단이 더 이상 새로운 권력후계자를 충원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대의 학문과 권력은 엄중히 구별되어야 한다. 현재 서울대는 학문의 중심부가 아니라 오히려 권력의 중심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대 학부 졸업장이 곧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가치 부여되고 있기 때문이다. 엄격히 말해 학문은 학부가 아니라 대학원에서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가 진정 학문의 중심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학부를 버리고 대학원 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현재 서울대에서 학부를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곧 서울대가 학문이 아닌 권력의 중심부임을 반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좋은 학부 없이 좋은 대학원이 불가능하다는 식의 논리는 오늘의 서울대의 모습을 보았을 때 어불성설에 가깝다. 문과는 고시에, 이과는 의대 시험에 매달리고 있는 현실에서 제대로 된 학부교육은 시작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시 일정 때문에 학사 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는 것이 현 서울대의 현실이다. 전국 각지의 우수한 학생을 서울대 대학원에서 교육시킬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을 부여하겠다는 데도 학부를 고집하는 것은, 서울대가 학문보다는 권력의 계승에 더욱 집착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비서울대출신 대학원생은 서울대학벌이라는 신분획득을 일정부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권력의 순정성을 유지시키려는 유치한 발상이 서울대내에서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식은 마치 조선시대에 적자와 서얼을 구별하는 태도와는 매우 흡사한 것으로, 학벌이 현대판 신분제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학생들 내부에서조차 편입한 학생들을 서자 취급을 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학벌문제가 젊은이들의 의식에게까지도 얼마나 깊게 오염되어있고 넓게 폐해를 끼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주장 1. 서울대 학부를 개방하라.
우리는 서울대 학부를 완전히 개방할 것을 요구한다. 서울대는 그 설립에서부터 일반대학과는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 졌다. 또한 그 경영에 있어서 막대한 규모의 국민의 세금을 바탕으로 하여 운영되기에 서울대학교의 교육활동의 결과는 우리 사회 전체에게 환원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서울대학교는 그런 국민의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채, 소수 권력집단의 생산소로 전락했다. 서울대 개혁의 첫 번째 단추는 권력을 재생산하는 자체 학부생을 모집하여 권력의 획득물인 졸업장을 제공하는 역할을 그만두는 데 있다. 서울대학교는 지금까지 축적해 놓은 학문적인 성과를 국민에게 개방하여야 한다. 우선적으로 전국의 국립대의 학생들에게 서울대학교의 학부과정을 개방하고, 그것이 안착되면 점차 모든 대학에로 확대 개방하여야 한다. 전국의 국립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소속학교의 학부과정을 이수하면서, 동시에 본인의 필요에 의해 서울대학교의 학부 과정에 개설된 전공 강좌에 수강신청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이 같은 과정을 통하여 학문적인 성취를 높여 나가야 한다. 우리의 주장은 서울대 ‘학부 폐지’가 아니라 ‘개방화’이다. 아울러, 우리는 서울대 ‘학부 축소안’으로 우리의 논의를 희석시키거나 정책의 지연을 야기하는 술수는 엄정히 거부한다. 축소안은 진정으로 기초학문의 소수정예를 기르는 방안으로 현재정원의 100분의 1(학년별 40명선)로 줄이지 않는 한, 의미가 없다고 생각된다. 이를테면, 흔히 서울대 양성을 위해 거론되는 프랑스의 엘리트 양성소인 고등사범이나 폴리테크닉의 정원은 50명, 그리고 국립행정학교는 200여명에 불과함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의 국립대 평준화안에는 서울대가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평준화가 이루어졌을 때, 서울대 학부 존속의 의미는 현재와는 매우 다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서울대 학부의 존치는 인문학 등 기초학문을 위해 일정 부분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울대가 모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력독점의 정점에 있음을 인지하고, ‘서울대 개혁 없는 다른 개혁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공교육 파행의 중심에 서울대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주장 2. 서울대를 대학원대학으로 개편하라.
서울대는 자체 학부생을 선발하여 학벌권력을 구축해 가는 대신에 서울대학교의 교육 기능은 대학원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학부 과정은 공개하는 것과 함께 대학원을 집중육성하여 학문후속세대의 양성이라는 국가의 미래를 감당하는 것이 서울대학교가 지닌 책무이다. 이를 통해 국내의 학문경쟁력을 높여 나가고 우리 학문의 수준을 세계적으로 높임으로써 국제사회 속에서 한국대학의 모범을 보여주는 역할로 전환되어야 한다. 대학원 교육을 우선시하기 위한 많은 금전적 지원정책(BK21 등)이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전개된 것은 서울대에서 ‘학부과정의 축소’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에서 비롯되었다. 연구중심의 대학으로써 활용되어야 할 기금이 오히려 학부생의 재생산만 초래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 개방화와 대학원 중심대학으로의 개편은 현재의 교육정책과도 부합한다. 원칙적으로 학문의 영역은 순수학문과 실용학문으로 분리되어야 한다. 대학은 순수학문의 영역을 맡고, 현재 학부과정으로 되어있는 의대, 법대, 사범대 및 경영대 등 실용학문은 학부를 졸업한 후 대학원 과정에서 탐구되어야 한다. 의사, 판사, 교육자가 되기 위해서 대학을 가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의사, 판사, 교육자가 됨을 뜻한다. 이를 위해, 서울대는 순수학문 위주로 한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체제 개편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실용학문의 분리화 및 사범대학(교육대학 포함) 문제의 해결에도 일조할 것이다.
질문과 답
▶ 개방화하라는 것은 학부 교육을 포기하라는 의미인가?
▷ 서울대의 학부를 개방한다는 의미는 서울대가 소수 권력집단의 양성기관으로부터 국민의 교육기관으로 다시 자리를 잡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대는 자체의 학부생을 더 이상 선발하지 않으며, 분권화된 지방의 국립대학의 학부생들이 일정기간 동안 특정한 학문의 연구를 위해 지원하여 수강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는 의미이다. 서울대 학부 과정에서 추가로 이수한 학점은 소속학교의 학점 취득으로 인정된다. 이는 국내외 다른 대학에서 취득한 학점과 마찬가지로 ‘타교 이수 학점’으로 인정됨을 말한다. 현재 10개 국립대학 및 몇몇 사립대학끼리는 이미 학점교환제도를 취하고 있으므로 현실적으로도 실효성이 높다. 서울대 학부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국의 대학생들에게 열린 배움의 장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결국 서울대 학부를 개방한다는 것은 학부 교육의 포기가 아니라 오히려 학부 교육을 강화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통해 서울대 학부는 졸업장 수여기관이 아닌, 진정한 교육의 장으로 환골탈태되어야 한다.
▶ 그렇다면 엘리트 교육을 더 이상 하지 말자는 것인가?
▷ 지금까지 정부정책은 한 대학에 집중적인 지원을 해서 이 나라를 지배할 소수의 인재를 키우자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의 엘리트라면 우리는 그 말 자체에 반대한다. 나라의 운영을 특정 집단이 좌우해서는 안되며, 모든 개인이 언제라도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자유롭고 동등하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엘리트 교육'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위장된 서울대의 본질은, 국가의 운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서울대 학벌권력집단'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사람을 충원하는 '지배계급 양성소'일 뿐이다. 하지만 사회 각 분야에 탁월성은 필요하다. 탁월한 요리사, 탁월한 청소부, 탁월한 학자와 기술자 그 모두가 한 사회를 위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소질의 탁월성은 지금처럼 획일적인 시험을 통해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현재 진로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사실상 점수이다. 결국 자신의 소질과 적성보다는 점수에 맞추어서 진로를 선택하는 것은 다양한 분야의 탁월성을 매몰시키는 결과를 낳게 한다. 이처럼 우리 나라 교육은 너무도 비효율적이다. 우리 나라 학생들은 가장 많이 공부하지만 탁월하지는 않다. 대학교육도 전문성이 없다. 자기가 선택한 학문이 좋아서 대학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전공학과와 관계없이 대학의 간판을 보고 대학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최근 많은 대학에서 다른 과로 옮기는 것을 허용하면서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어떤 학과든지 무조건 어떤 대학에 들어가고 보자는 풍조가 만연하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바로 대학서열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참된 의미의 엘리트 교육을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의 적성과 소질에 따라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 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취미에 몰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과목에서 일등을 해야 서울대를 비롯한 이른바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으니 어떻게 학생들이 자기 자신의 적성을 마음껏 도야할 수 있겠는가? 이런 환경 속에서는 시험선수만 만들어질 뿐 참된 영재는 길러낼 수 없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엘리트 교육인 영재교육은 대학원 체제(영재과정) 속에서 극소수의 인원을 선발하여 양성할 수 있으므로 굳이 대학부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과정에서의 영재교육도 지역의 해당 국립대학에서 담당하면 되므로 특별한 영재교육과정을 초중등교과과정에서 별도로 존치시킬 필요는 없다.
▶ 서울대를 개방하면, 그 자리에 연고대가 들어서는 것은 아닌가?
▷ 이는 문제의 본질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반론이다. 우리의 주장은 대학서열화를 타파하여 학문의 본질을 되살리자는 것이지 특정 권력을 타파한 자리에 새로운 권력을 대체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서울대를 포함한 연고대 등의 특정 학벌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함께 분산해야 한다. 가능한 한 모든 대학에게 균질의 교육여건이 제공되어야 한다. 따라서 장차 연고대와 같은 사학권력집중도 분산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입장은 원칙적으로 ‘권력의 독점에서 분산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1개 대학이 아닌 3, 4개의 대학이 경쟁하는 체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서울대 학부를 개방하더라도 서울대 권력은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므로, 그 자리에 연고대가 들어선다는 것은 그다지 가능하지 않다. 더욱이 우리의 대안은 ‘전국의 국립대학을 서울대와 같은 수준으로 올리자’는 것이니, 그 때쯤이면 지방국립대학이 연고대 등과 같은 유수의 사립대학과 함께 경쟁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의 초대형 일류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상화를 포함하여 지방국립대에 대한 특단의 지원을 요청한다. 서울대만을 위한 지원이 전국으로 분산될 때, 각 대학은 특성화의 과정을 거쳐, 참다운 학문의 경쟁체제가 이루어질 것이다. 연고대와 경쟁하기 위한 전국의 국립대학의 특성화 및 통폐합은 이와 같은 서울대 개방화안과 더불어 이루어질 때만이 그 의미를 지닌다. 서울대 개혁이 전제되지 않는 한, 다른 국립대학이 이를 받아들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공직독점금지의 원칙 아래, 한시적인 ‘지역인재 할당제’와 ‘대학별 공직 제한제’를 통해 연고대 등 특정대학의 득세를 방지해야 한다. 우리의 서울대 학부 개방화안은 이와 같은 공직독점금지에 대한 현실적인 조치와 더불어 실제적인 의미를 지닌다. 다만, 연고대가 완전 미국식 사학체제로 운영되는 것을 막을 방도는 없다. 이 때 연고대는 등록금을 자율적으로 책정하면서 귀족학교화할 것인데, 지방 국립대학이 무상으로 운영되는데 반드시 사학을 갈 필요는 없어지리라고 판단된다. 연고대가 인기 있는 까닭은 의대와 법대라는 신분상승의 기제와 관련이 깊다. 그런데 응용학문을 학부가 아닌 전문대학원에서 공부하게 하고, 그 대학원은 국가의 주도하에 설립되고 운영된다면 연고대는 결국 철저하게 여타의 학문적 경쟁으로만 살아남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연고대가 의미 있는 것은 의사, 관료, 변호사, 경영인, 교육자로서의 자격 때문일 터이나, 그것을 국가차원에서 흡수하여 전문대학원 체제로 엄격하게 관리한다면 연고대는 존립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아울러 그러한 전문대학원은, 파리의 국립고등행정학교가 국경지역인 스트라스부르로 옮겨갔듯이, 지방으로 분산되어 지방분권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여야 한다.
▶ 학부 기준의 서열이 대학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가?
▷ 서울대의 권력 문제는 학부 권력의 문제이다. 그것도 대학에서의 교육과 학문의 수행 정도에 따른 문제가 아니라 입학 당시에 획득한 점수에 의한 성적으로 전혀 학문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서울대를 나왔기 때문에’ 대접받는다. 거꾸로 말해, ‘서울대를 졸업했기 때문’이 아니라 ‘서울대를 입학했기 때문에’ 인정받는다. 우리나라에서 서울대 졸업장은 학업이수증이 아니라, 입학허가증이라는 유치한 단계를 아직도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이러한 유치한 단계를 벗어난 대학원 과정이라면 일정하게 대우받아야 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른바 엘리트 교육의 참다운 의미도 대학원에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서울대 학부졸업생이 없는 상황에서 다양한 대학출신이 경쟁하여 입학한다면, 대학원 과정이 학벌로 변질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서울대 대학원 과정은 반드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선발되어야 한다. 우리의 주장은 권력보다는 실력이 대접받는 풍토를 마련하고자 하는 데 있다. 충실한 교육을 받은 대학원 졸업생을 무시할 까닭은 없는 것이다. 현재 지방의 대학과 대학원이 위기인 까닭은, 첫째, 학부 교육 이후에 미래가 없다는 것이고, 둘째, 상업적인 이유가 가미되어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마구잡이로 모집하는 데 있다. 서울대 학부가 없어지면 서울대 대학원이 비교적 공정한 경쟁체재로 유지될 것이며, 4년 넘게 충실히 학업을 이수한 지방대학 졸업생도 객관적인 태도로 서울대를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학부생보다 많은 대학원생을 모집하여 영업하고 있는 서울소재의 몇몇 사학은 단순히 ‘학벌세탁소’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의 실질적인 운영을 위해 적당한 방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 서민의 희망조차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 교육이 계층이동의 수단이라는 것은 교육의 본질을 왜곡하는 진술이자 한국사회에서는 이미 사라져버린 전설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 빈곤과 차별이 세습되고 있다. 부자가 되지 못한 이 땅의 빈곤층의 부모들은 삶의 의욕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심지어 자식에 대한 기대조차도 상실한 채 나락에 빠져가고 있다. 학교에서는 더 이상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장학생이 존재하지 않는다. ?학업중단 청소년 실태 분석?(2002. 4. 윤여각.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학업중단 청소년의 부모나 보호자 중 86.2%가 고졸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열화된 대학체제로 인한 학벌독점사회인 한국에서 최고의 가치는 학벌을 얻는 것에 있다. 이 학벌을 얻는 통로로서의 학교 교육이 사회 구성원들간의 계층간 불평등을 구조화하고 있다. 교육 활동의 유일한 평가 절차인 대학입시의 선발 과정에서만이 아니라, 이제는 초중등학교 과정 자체에서 차별이 일상화되고 있다. 평준화가 문제라면서 학부모의 선택권과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자립형사립학교, 특수목적고등학교 등 그 이름만 가지고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많은 종류들의 학교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모두다 우리 학교 교육이 획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요자의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본질은 분명하다. 자신의 아이만을 위한 부자들의 학교일뿐이다. 이제까지 현실로 드러난 이들 학교의 교육과정이나 교육내용은 그 목적에 맞게 운영되지 못하고, 대학입시를 위해 획일적으로 운영되어 왔다. 이것은 다양성이 곧 서열을 만들기 위한 다양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선택 역시 마찬가지이다. 선택의 과정에서 경쟁은 불가피하다. 시장에서 공급자를 선택하거나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누군가를 누르고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경쟁에서의 승리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는 서열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그 서열을 구분하는 최초의 출발은 학생의 능력이나 가능성이 아니라 부모의 경제적인 능력이다. 학벌독점사회인 우리나라에서 학벌을 획득하기 위한 전쟁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돈인 것이다. 그러기에 등록금이 저렴한 서울대학교가 영세서민의 가정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철저한 거짓말이다. ‘공정성의 신화’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울대 학부를 개방하는 것이야말로 기회의 확대이다. 설사 가난한 가정 출신으로 단독으로 서울대를 입학하여 신분의 상승을 이룬다 하더라도 그것은 철저히 개인이 좋아지는 것이지 사회가 좋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같이 꿀 수 있는 꿈이 진정한 꿈이다.
▶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
▷ 서울대에 이해관계를 둔 당사자들(교수, 직원, 서울대 출신 사회인 전반)의 강력한 저항과 입시 관계 당사자들(서울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 학부모, 각종 사교육기관 등)의 반대 여론이 예상된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권력집단들의 저항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더는 늦출 수가 없다. 공교육이 황폐화되고, 학생과 학부모들은 과외로 몸살을 앓는다. ‘고3’은 삶의 한 과정이 아니라, 왜곡과 환멸을 경험하는 한국병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금도 채 피어보지도 못한 꽃봉오리들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있으며, 가족 파괴조차 진행되어 가고 있다. 또한, 현재 낮은 서열의 대학의 학생들이나 졸업생들이 상실감과 절망을 치유하고 당당한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국가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도 절실하다. 우리는 이러한 학벌문제의 치유를 위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있음을 확신한다. 어느 학부모가 자녀들을 입시지옥에 넣고자 하며 사교육비 마련을 위해 자신이 부정을 저지르고자 하겠는가? 어느 교사가 자신의 임무를 학원에 떠맡기며 전인교육이라는 이념을 저버리고 싶어하겠는가? 어느 학생이 인격형성과 학문탐구를 위한 진정한 학교수업을 마다하겠는가? 실현 방안으로는, 먼저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여론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울대 이해관계자들의 저항과 일부의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의 대다수(95%이상)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여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프랑스의 경우 1968년 당시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모든 대학의 평준화를 시행한 바가 있음을 참고하면 우리 사회도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다. 이미 서울대 내부에서도 자체 개혁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어 우리 모임의 고문인 장회익 교수를 중심으로 서울대 학부 개방을 촉구하는 선언이 있었으며, 이번 2005년부터 시행될 서울대의 지역균형선발제(지역할당)도 결국 개혁의 요구에 대한 수세적인 서울대의 반응이다(우리는 서울대 지역균형제의 이념적 단초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 서울대 학부권력의 또 다른 형태의 확대재생산이라는 점에서 이를 원론적으로 반대한다.) 이를 위해 노무현 정부기간 동안 ‘학벌주의극복을 위한 특별위원회로부터 제안 → 범국민적 논의와 여론수렴(관련 시민단체와의 연계)을 거쳐 → 서울대 학부 개방화를 위한 백만인 서명 운동 추진(*노무현 정부와 관련하여 행정수도이전 건이 수도권의 반대에 의해 국민투표에 부쳐진다면 이때 함께 하는 것도 가능하다.) → 서울대학교설치령[대통령령 제17144호] 개정 절차 마련 → 서울대 개방 및 대학원중심대학으로의 전환’을 단행해야 한다.
▶ 서울대 개혁을 위해 서울대를 민영화하자는 주장도 있던데.
▷ 서울대 민영화는 학벌 문제 및 대학서열화, 그리고 대학의 경쟁력에 있어서도 전혀 실효성이 없을 것이며, 오히려 이전의 문제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다. 대학서열화와 학벌주의의 문제는 현실적인 권력독점의 문제이다. 서울대는 바로 그 정점에 위치함으로써 대입 이전의 모든 교육을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한 입시 경쟁의 장으로 몰아가고 있다. 서울대를 필두로 한 대학서열 체제는 입시 서열화를 통해 능력 서열로 인정되어 학벌주의 사회 구조를 공고하게 유지하는 가운데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특히 한번 정해지면 평생 바뀌지 않는 출신대학의 명함은 성공을 좌우하는 증표로서 결국 인생의 향방을 가름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관문이기 때문에 사활을 걸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서울대에 입학하려는 근본적 이유는 단지 서울대가 국립대여서가 아니라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거점이 되기 때문인 것이다. 이 점에서 서울대가 민영화된다 하더라도 대학서열화와 학벌주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더구나 대학간의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은 결국 대학의 학문 경쟁력을 통해서 가능할 수 있는 것인데, 현재 상황에서 온전한 의미의 학문적 경쟁력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이미 대학서열화에 따라 경쟁력의 의미가 왜곡되어 있는 상황에서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은 단지 문제상황을 희석시킬 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서울대의 막강한 위상이 자본 시장의 화폐로 전환될 때의 문제이다. 이는 곧 기존 대학서열화의 시장화를 의미한다. 즉 연고주의에 기반하고 있는 학벌주의와 시장적 자본과의 본격적 만남인 것이다. 결국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기초학문 분야의 도태와 더불어, 대학의 본래적 의무인 학문의 경쟁력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아울러 학벌주의와 시장적 자본과의 만남으로 인해 기존의 입시 경쟁은 이제 본격적으로 자본을 소유한 계층에게 유리해질 것이다. 특히 서울대 등 국립대학이 민영화되었을 때, 대학이 교육보다는 경쟁의 단위로 규정되어 교육의 공익성이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능력있고 실력있는 사람이 아닌, 돈 있는 사람만이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극심한 불평등을 국민이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지도 모른다. 원론적으로 개별 대학은 경쟁의 단위라기보다는 기회의 단위이어야 한다. 교육이란 숨겨진 재능을 계발하는 것이고, 대학은 그를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학교교육의 황폐화, 과다한 사교육비, 입시 과열 경쟁 등 교육 전반의 문제들은 결국 대학서열 체제를 축으로 하는 학벌사회의 불평등 구조에서 비롯된다. 서울대는 이 구조의 핵심적 학벌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며, 설사 서울대가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학벌 문중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경우 동일한 문제 상황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점에서 좀 더 본질적인 문제는 특정 학벌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는 우리 사회의 권력 구조 자체를 개혁하는 데에 있다. 서울대는 그러한 권력 독점의 정점에 있다. 학벌주의를 타파하여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와 교육 전반의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서울대 민영화라는 변형된 문제가 아닌, 개방화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