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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조금 비위를 마주한 시민단체의 딜레마
"절차에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그냥 넘어가도 되는 것 아닐까."시민단체 활동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특히 국가보조금이 투입되는 공익사업에서 절차적 문제를 발견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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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고형준,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상임활동가
"절차에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그냥 넘어가도 되는 것 아닐까."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특히 국가보조금이 투입되는 공익사업에서 절차적 문제를 발견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사업이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고민이 깊어진다. 문제를 제기했다가 사업 자체에 차질이 생기거나, 향후 유사 사업에서 페널티를 받아, 교육의 질을 떨어트리지 않을지 걱정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몇 해 전 광주에 있었던 '매입형 유치원 사업 비위'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우리나라는 국·공립 유치원 비율이 낮아 유아교육의 공공성이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문재인 정부는 국정과제로 국·공립 유치원 확대 정책을 추진했고, 그 일환으로 사립유치원을 교육청이 매입해 공립으로 전환하는 매입형 유치원 사업을 시행했다.
시민단체 입장에서 이 정책의 취지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사립유치원을 공립으로 전환하면 국·공립 취원율을 높이고 공교육 기반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려도 있었다. 과거 각종 비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일부 사립유치원에 특혜를 제공하는 통로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2021년 광주시교육청은 매입형 유치원 선정 제외 기준을 완화했다. 이 조치는 일부 유치원이 매입 대상에 포함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A유치원은 당시 교육감 주변 비리 의혹과 맞물리며 사회적 파장이 컸다.
시민단체가 문제를 제기하자 A유치원은 결국 사업 참여를 스스로 철회했다. 하지만 논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른 매입형 유치원으로 선정된 B유치원에서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B유치원은 사업 신청 과정에서 학부모 동의를 제대로 받지 않았고, 운영위원회 회의록을 위조한 정황까지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광주시교육청은 사업을 계속 추진하려 했다.
그때부터 고민이 깊어졌다. 이미 교육부의 국가보조금이 투입된 사업이었고, A유치원 철회로 정책 추진에도 일정한 차질이 생긴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B유치원의 절차 문제까지 문제 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스스로에게 여러 번 되묻게 되었다.
또 다른 고민도 있었다. 회의록 위조 문제를 제기한 학부모들 가운데 상당수는 교육열이 높은 계층이었다. 시민단체가 그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적절한지, 혹은 자칫 사업 자체를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뒤따랐다.
그러나 교육청의 묵인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시민단체는 결국 선택을 해야 했다. 매입형 유치원 사업 관련 운영위원회 서명부를 위조한 유치원 관계자들을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발했다.
결과적으로 B유치원 역시 자진해 선정을 철회했고, 국·공립 유치원 확대 계획은 상당 부분 차질을 빚었다.
하지만 이후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들은 단순한 절차 문제가 아니었다. 금품수수와 뇌물공여 등 중대한 비위가 확인되었고, 교육청 압수수색으로까지 이어졌다. 결국 유치원 관계자와 공무원, 기자 등 여러 인물이 형사처벌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시민단체를 향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단순한 절차 문제를 키워 광주교육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성실하게 근무해온 공직자의 인생을 한순간 무너뜨렸다."
관련 판결이 나온 지도 2년 가까이 지났지만, 그때의 힘들었던 마음은 여전히 마음 한켠에 남아 있다. 그리고 비슷한 상황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최근 광주의 C고등학교가 다른 공공기관 사업에 제출했던 교직원 서명을 고용노동부 공모사업 신청에 재활용해 약 4억 원 규모의 국가보조금 사업에 선정된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시민단체가 감사를 청구했는데, 그 결과 학교와 관계 교원들이 성실의무 위반으로 경고 처분을 받았다.
해당 사업은 직업계고 학생들의 교육을 지원하고 산업 현장이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국가보조금 사업이었다. 그러나 사업 운영 과정에서 특정 학생에게만 교육 혜택이 집중되는 문제가 확인되었고, 사업 신청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가 드러나 감사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도 쓴 소리를 들었다.
"어차피 학생들에게 쓰일 예산인데 굳이 감사청구까지 가야 하는가."
"시민단체가 너무 원칙만 따진다."
이처럼 시민단체는 '별것 아닌 일을 트집 잡는 존재'로 인식되곤 한다. 더 나아가 학생들에게 돌아갈 예산을 막는 악성 민원단체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에 기대 조용히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민운동은 바로 그런 순간에 멈춰서 다시 질문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단체의 역할은 잘못된 관행 앞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데 있다. 행정이 원칙과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이 시민사회가 맡은 몫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융통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말이다.
다만 한 가지는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국가보조금이 학생들을 위해 정당한 절차와 기준 속에서 사용되기를 바랐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사업이 특정 기관이나 개인의 편의가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기를 바랐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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