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식칼 그리고 이별


김영대 (광주전남녹색연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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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는 버스 안에서 어느 여중학생들이 버스유리창에 낙서를 하기 시작한다. ‘우리’, ‘하트’, ‘식칼’… 대체 이것들이 무얼 의미할까?


"달리는 버스 안에서 거꾸로 뛴다고 무슨 의미가 있냐? 그 버스에서 내려야 한다."


우연히 알게 된 귀농한 부부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너무나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시에서의 삶이 싫어 농촌의 여유로운 삶을 찾아왔다는 부부다. 나도 이런 숨 가쁜 삶은 싫다. 이런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는 이 사회도 싫다. 그래서 매일 아침 나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거꾸로 뛰고 있다. 버스에서 내리는 것은 두려워, 그 안에서 거꾸로 뛰고 있다.


이른 아침 버스를 탄다. 버스를 놓칠세라, 숨 가쁘게 뛰듯 올라 탄 버스 안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 사람들 또한 이런 숨을 내쉬고 있다. 거친 숨을 가득 담고 출발한 버스 창문은 흐 뿌옇다. 창밖을 본다. 옆에서 달리는 차량의 불빛만이 번지고 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이렇게 지쳐가고 있다.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이 하나 둘 내리면서 버스 안은 여유로워졌다. 사람들의 숨결이 맺혀진 버스 창문은 차갑다. 그곳에 두 여중생이 그림을 그리며 깔깔대고 있다.


한 친구가 사람을 그리며, "이거 너야!" 또 한 친구는 문어 같은 사람을 그리며 "너야!" 한다. 이젠 하트를 그린다. "사랑" 이란다. "사랑? 이게 무슨 사랑이야? 사랑 아니야, 이건 사랑이 아니야!" 느닷없이 식칼이 그려진다. "슝~ 얘도 죽고, 얘도 죽고, 얘도 죽… 아니 얘는 산다." 그리고 서로 깔깔대며 웃는다.


버스 엔진 소리, 그리고 적막. 그 적막에 깔깔대며 나누는 이야기가 버스 엔진소리에 묻힐 듯 내 귀에 들려온다. 정답다. 무서운 이야기인데… 멍하니 그들이 창가에 그려놓은 그림을 바라본다. 온기 있는 손가락 끝. 차가운 숨결을 녹였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의 선을 따라 버스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간다. 큰 길 가에 즐비하게 들어선 상가의 푯말, 버스에서 내려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들.


버스가 섰다. 그들이 내렸다. 그들이 내리고 난 자리에 '우리'란 단어가, 사랑과 식칼 그리고 죽음의 어느 공간에 적혀있다. 달리는 버스 안에는 '우리들'이 함께 타고 있다. 또 그 버스 안에서 거꾸로 뛰는 '우리들'도 함께 타고 있다. 사랑도 있고, 미움도 있고, 이별도 있는 버스 안, 여중생이 그려놓은 식칼. 과거보다 더 좋아졌다는 삶이 칼로 베어 이별을 만들어내는 사회인가? '우리들'이 아닌 '너희들'이 존재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아픔을 느낀다.


고민이다. 난 언제쯤에 내려야 할까? 버스에서 내린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이럴수록 거꾸로 가는 삶을 살게 된다. 누군가 말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이 바뀌겠냐?" 또 누군가는 말했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자신의 삶을 바꾸지 않는 변명으로 삼지 말라고.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삶을 바꾸는 것이다." 버스 안에서 차가운 숨결을 녹였던 손가락 끝의 온기를 느끼고 싶다. 그렇게 온기를 전달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이들 속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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