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연전이 이틀 동안 내 머리 속에 집어넣은 혹은 넣을 것들

민~족의 영원한 고동이 되리라??

m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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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년 올해로 39회째를 맞는 정기 연고전 또는 고연전에서 파란색(연세대)/붉은색(고려대) 옷을 입은 학생들이 열심히 응원하며, 자신의 집단소속감을 들어내고 있다.


글을 쓰기 전에 응원에 대한 제 생각을 밝히는 것이 먼저라 생각합니다. 저에게 있어 응원은 즐거운 행위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노래하고 몸을 움직이고, 이 과정에서 쌓여 있던 스트레스도 풀고 말이죠. 그래서 저는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하면 야구장에 가 응원을 합니다.


고연전의 응원도 응원 하나만을 놓고 생각하면 꽤 즐거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안티 연고전 자료집에 글을 쓰는 것은 고연전에서의 응원은 콘서트나, 야구장에서의 응원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고연전은 대학의 공식 행사이며 모든 학생의 축제이고, 고대와 연대가 만난다는 점에서 학벌 사회를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이를 알고 있음에도 친구들과 즐길 수 있는 고연전에 가는 것이겠지요. 아무튼 응원에 대한 좋고 싫은 감정이 고연전에 가고 안가는 차이를 낳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잠실로 향하며


해마다 고연전 날이 되면 두 개의 물결이 잠실로 몰려갑니다. 이들이 몰려가는 곳은 바로 고연전 개막식이 있는 잠실 실내체육관입니다. 학생들은 반 단위로 혹은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이동을 시작합니다. 잠실까지 걸어갈 수는 없기에 흔히 지하철, 버스를 타고 가는데 이는 참 장관입니다. 붉은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이 지하철 앞 칸부터 끝 칸까지 가득가득 차게 됩니다. 지하철 안뿐만 아니라 승차장에서부터 지하철입구까지 온통 붉은 색뿐입니다. 고려대 학생들이 전세를 낸 듯한 버스도 있습니다. 붉은 색이란 시각 효과는 참 큽니다. 붉은 색 옷을 입은 학생들은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동질감, 소속감을 서로 간에 느끼고, 모르는 사람이어도 붉은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알지 못할 친근감을 느낍니다.


타 학교 학생이거나 이미 학교를 졸업한 직장인들은 붉은 티셔츠를 입은 고려대 학생들을 보며 오늘이 바로 고연전 날임을 알게 되고(이미 알고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고려대와 고려대 학생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됩니다. 축제를 앞에 둔 고려대 학생들은 단순히 붉은 티만 입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하철 안에서 응원 연습도 하고 가끔은 소리 높여 FM도 하며, 떠들고 장난치기에 사람들의 눈초리는 그다지 곱지 않습니다. 하지만 붉은 옷을 입고 지하철을 메우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고려대 학생이기에 사람들은 못 본 척 조용히 넘어갑니다. 그리고 고려대 학생들의 생각도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못할 행동도 현재 자신은 개인이 아니라 고려대 학생으로 있기에 할 수 있게 됩니다.


운동장에서


운동장에 도착한 학생들이 처음 보게 되는 것은 거대한 운동장을 꽉 채우고 있는 두 색의 대립입니다. 붉은 색으로 대표되는 고려대와 파란 색으로 대표되는 연세대, 선명한 시각 대비는 수능 성적표로만 생각되던 라이벌 의식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동시에 대학에 대한 소속감을 한층 더 강하게 느끼게 합니다. 응원이 시작되면 이러한 의식은 더 강해집니다. 붉은 색과 파란 색이란 시각적 효과 위에 응원은 좋은 멜로디와 가사를 바탕으로 한 청각적 효과 그리고 몸을 움직이며 느끼는 즐거움을 얹어 주게 됩니다.


고려대의 응원은 크게 보아 두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민족의 아리아, 석탑으로 대표되는 소위 무겁고 장중한 응원과 엘리제로 대표되는 연세대를 까고 승리를 기원하는 응원입니다. 이 분류는 응원의 분위기뿐만이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나누어집니다. 요즘 응원단이 만든 응원들을 들어보면 대부분이 가볍고 흥겨운 음악으로 엘리제와 비슷합니다. 물론 최근에는 ‘세계로 나가는 고려대’라는 가사가 보여주듯 민족의 기둥을 넘어 GLOBAL 고대를 꿈꾼다는 고려대의 행보를 대변하고 있기도 합니다만.


두 종류의 응원 모두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후자는 가볍고 흥겨운 멜로디와 연세대를 놀리고 까는 가사로 응원을 위해 만들어진 전형적인 형태이기에 그러한 듯합니다. 그런데 전자가 고연전 등에서 계속 불려오고 있고 많은 학생들에게 응원으로써 사랑받고 있는 사실은 얼핏 보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흥겹게 노는 축제의 응원인데도 이 응원들의 멜로디는 무겁고 장중하며 가사는 ‘민족의 고동이 되리라’와 같이 절대 가볍지 않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마 다른 축제에서 민족 운운하는 가사가 담긴 응원을 한다면 분위기가 금세 냉랭해졌을 겁니다. 그런데도 많은 학생들은 ‘민족의 아리아’를 최고의 응원 곡으로 꼽습니다. 이 이유에는 많은 것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 응원이 고연전에서 불리기 때문이 아닐까요.


고연전과 엘리트 의식


고연전은 연세대와 고려대 간의 끊임없는 상호 비방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끝은 다릅니다. 운동 경기가 끝나고 나면 이들은 다시 안암으로 신촌으로 함께 이동하고 이곳에서 고려대와 연세대는 하나가 됩니다. 경기 중에는 서로를 헐뜯었지만 마치 허물없는 친한 친구 사이에 있는 일과 같이 사실은 서로를 좋아하고 인정하는 라이벌이었다는 것이 그 결말입니다. 그렇게 그 두 학교는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고연전의 해피엔딩을 생각해 보면 엘리제나 민족의 아리아가 인기 있는 이유는 훤히 드러납니다. 엘리제는 친한 친구 사이의 짓궂은 장난이었다면 민족의 아리아는 고려대와 연세대가 이후에 나아가야 할 길을 말하고 있습니다. 민족의 아리아는 우리에게 ‘너는 민족의 고동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민족의 고동, 기둥. 응원을 하는데 있어 이러한 가사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은 고려대와 연세대 학생들이 이 응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학 명문인 고려대와 연세대의 학생들은 이후에 민족의 기둥, 고동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은 고연전이 만들어내는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고 그래서 학생들은 응원을 하며 벅찬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고연전이 연세대와 고려대 간의 라이벌 의식을 만들어 낸다면 응원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고연전이 라이벌 관계를 만들어낸다는 말은 곧 엘리트 의식의 형성을 말합니다. 엘리트 의식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비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연전은 고려대와 연세대 학생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축제이고 라이벌이지만 서로를 아끼는 미묘한 관계를 형성합니다. 이것은 곧 고려대, 연세대 학생의 엘리트 의식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고연전이 벌어지는 이틀 간 학생들은 고연전이 열리는 잠실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붉은 티를 입고 응원 연습을 할 수 있고, 운동장에서 응원을 하며 신촌, 안암에서 민족 고대, 통일 연세를 외치며 기차놀이를 하며 뒤풀이를 즐길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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