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 강연회 대관 불허를 보고

서부원 (살레시오중학교 교사)

 1.jpg

▲ 지난 5월 24일 조선대학교 본부측의 대관취소로 인해 조선대학교 서석홀 앞에서 김용철 강연을 진행한 가운데, 200여명의 학생, 시민들이 함께 하였다.

분노가 일기보다 솔직히 가엾은 마음이 앞선다. 대부분의 학과가 정원조차 채우지 못하는 현실에다 비리 혐의로 내쫓긴 옛 재단이사들의 복귀를 앞둔 어수선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그럴밖에. 조선대학교가 지난 5월 24일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강연회를 갑작스럽게 대관 불허한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대외 이미지가 나빠지고, 학생들의 취업에 지장을 줄까봐 그렇단다. 조선대학교에서 한 해 삼성에 취업하는 학생이 몇이고, 삼성으로부터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이 대체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대놓고 삼성에 잘 보이려 애쓴다고 과연 취업률 높아질까. 지방대 졸업생들의 극심한 취업난을 모르지 않지만, 대학 측의 이런 대응은 나가도 너무 나간 '찌질한' 짓이다.  

지방대생이 대기업 취업하면 현수막 내거는 시대

주지하다시피 대학이 대체로 자본에 포섭된 지는 이미 오래다. 대학생은 물론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들까지도 언제부턴가 성균관대를 '삼성대'로, 중앙대를 '두산대'로 부르고 있고, 고등학교 교실마다 내걸려있는 입시지원사정표에 성균관대와 중앙대가 과거에 비해 사뭇 서열이 올라가 있는 것도 삼성과 두산 때문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어처구니없게도 '팔이 안으로 굽듯 성균관대나 중앙대에 진학하면 삼성과 두산에 취업할 기회가 아무래도 더 늘지 않겠냐'며 내심 기대하는 아이들 또한 의외로 많다. 기실 지방 사립대학에서는 졸업생이 웬만한 대기업에 취업이라도 할라치면 고시 합격의 경우처럼 학교 구석구석에 경축 현수막을 내거는 건 이젠 더 이상 낯선 광경이 아니다.

자본이 대학을 통째로 '구매하는' 시대를 넘어 대학이 자본에 자발적으로 알아서 기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가 명문대 합격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곳곳에 내걸어 광고해주듯, 이젠 전국의 대학이 앞 다퉈 대기업을 띄워주고 있는 셈이다. 대학은 대기업의 홍보를 위한 자회사이자, 자본이 요구하는 인력을 공급하는 양성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세상이 시나브로 돼 버렸다.

현대사 이끌어온 대학생들, 이젠 기억조차 아스라한 전설

'대학'이라는 이름이 어색한 그곳에 대학생이라고 멀쩡할 리 없다. 한때 굴곡진 우리 현대사를 맨 앞에서 이끌어온 선구적 지식인이었지만, 이젠 기억조차 아스라한 '전설'이 돼 버렸다. 조선대학교의 경우, 대학 측이 삼성에 사과하듯 무릎을 꿇은 모양새가 됐지만 이를 문제 삼을 총학생회조차 꾸려지지 않는 상황이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삼성의 탈법적 지배구조를 누구보다 잘 아는 대학생들이 삼성에 취업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삼성의 독점적 시장 지배가 경제 구조를 왜곡시킨다며 핏대 세워 욕하는 그들이 의기투합한다며 에버랜드로 엠티(MT)가는 현실이다. 공교육을 붕괴시키는 주범이 학벌구조라면서도 자녀를, 제자를 기어이 서울대를 보내야 한다는 인식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대학 교수의 '광대짓'도 가엾긴 마찬가지이다. 신입생을 유치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영업을 해야만 하는 처절한 상황이라지만, 명색이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이 아무런 부끄럼 없이 자본에 휘둘려서야 되겠는가. 힘들고 고통스러울수록 대학 본연의 모습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의 지성의 상징인 그들도 살고, 그들의 제자이자 미래의 지식인인 대학생도 산다.

대학들의 못난 행태, 비루하기 짝이 없다

이번 사태를 접하면서 적어도 내 아이를 조선대학교에 보낼 일은 없어야 겠다고 다짐한다. 아이가 실력이 되고, 경제적인 여력이 있다고 해도 보내지 않을 것이다. 성균관대, 중앙대도 그렇고, 고려대를 비롯해 재벌의 오너라는 이유로 명예박사 학위를 남발하는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이번 일과 같은 황당한 사례를 꼭 기억해 두었다가 아이가 철들 때 납득할 때까지 설명하고 이해시킬 것이다.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또 주변의 지인들에게도 비루하기 짝이 없는 대학들의 못난 행태에 대해서 설명하고 공감을 이끌어 낼 것이다. 대학 측이 그토록 강조하는 대외 이미지가 어떻게 허물어지는지 또렷이 보여줄 것이다. 삼성을 비롯한 자본을 향해 눈치 보는 일이 대학에 얼마나 보탬이 될지 모르지만, 대학 입학을 앞둔 학생들과 우리 사회 장삼이사들의 분노가 대학에 얼마나 큰 고통을 안기는지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이다.

하자면 해당 대학에 대한 입학 거부 운동이자 불매 운동의 일환이기도 하다.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이라면, 그 대학에 입학원서 쓰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도록 만들겠다는 의미다. 듣자니까 조선대학교 재학생들의 분위기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무덤덤하다고 하니 놀랍기 그지없지만, 졸업생이라면 이번 대학 측의 '찌질한' 행태를 두고 동문이라는 사실이 적잖이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대학이라고 불매 운동 하지 말라는 법 없다. 학생과 학부모가 없으면 교수도, 대학도 존재할 수 없다. 대학 측, 그들이 말하는 대외 이미지란 것이 얼마나 낯 뜨거운 것인지 부디 깨닫기를 바란다. 자본 앞에 알아서 설설 기는 대학의 작태를 보고 대학생들이 무얼 배우게 될까. 젊은 세대의 '개념 없음'을 탓하기 전에 기성세대 스스로의 비굴함과 탐욕을 반성하길 바란다.

대학 측의 불허 방침에 따라 건물 안에서는 쫓겨났지만, 예정대로 서석홀 앞 광장에서 강연회를 진행하였다. 정치적 시위나 집회가 아닌 단순한 강연회를 두고 대학 측이 공권력을 동원해 해산시키지는 못하겠지만, 이번 일을 통해 이 땅의 권력화한 자본이 지성의 전당 대학을 얼마나 천박하게 만들고, 단숨에 숨통을 틀어막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