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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수 열사 19주기 추모제에 놓여진 제사상.

1991년 5월 18일 고등학생 한 명이 전남 보성고 운동장에서 불길로 나타납니다. 이 날, 학생회 주최로 열린 518광주민중항쟁 기념식을 위해 모여 있던 학생들은 눈물만 흘릴 뿐 생각이 멈춘 듯 아무런 요동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학생은 불길이 온 몸을 휘감아 도는 상황에서도 ‘노태우정권 퇴진’ ‘참교육 실현’을 외치며 수십 발자국을 남기며 쓰러지고 맙니다. 질긴 목숨은 그를 저 세상으로 바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구급차에 실린 검게 그을린 온몸 그 고통 속에서도 "잘못된 교육을 계속 받을래?"라고 외치며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에도 친구들에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러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렇게 생사를 넘나들며 물 한 모금만 달라고 애원하던 그는 “무엇이 진실한 삶인지 하나에서 열까지 생각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2주일 동안 밥 한술도 못먹고 하루에 물 한 컵만 먹고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지금까지 힘차게 살아왔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확실히 믿습니다.”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긴 채 운명을 달리해야만 했습니다.

바로 그가 올해로 19주기 추모제를 맞는 김철수 열사입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김철수 열사여!

그가 운명하는 당시 우리는 어른들이 보기에 코 찍찍 흘리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준 환경에 순응하면 살아만 가는 그런 존재였지요. 하지만 그의 죽음은 우리를 세상의 중심으로 점점 다가가게 만드는 알 수 없는 힘으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그의 죽음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이들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제도교육에 저항하며 사회모순을 향해 앞 뒤 가리지 않고 달려야 했습니다. 그러한 삶이 열사와 직통하는 삶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당시 천 여명의 고등학생들이 광주 전대병원 영안실 앞에서 비를 맞으며 철수 형을 지켜야 한다고 우리 손으로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학교도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는 청소년단체에 근무하는 선배는 그로 인한 죄책감 때문에 학교를 자퇴까지 했었습니다. 그렇게 열사는 벌써 19년이 지나 버렸습니다.

김철수 열사의 무덤은 19년 동안 그 자리를 말없이 지키고 있지만 그 시대를 함께 했던 고등학생들의 삶은 많이 변해 있습니다. 아이들의 아빠 엄마로 공장의 노동자로 사무직 노동자로 어떤 이들은 열사가 가고 싶었던 길을 가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이들은 열사가 남긴 정신을 위해 투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의 제사 날은 소박하기가 그지없습니다. 언제나 열사들의 제사 밥을 챙기며 자식을 먼저 보낸 많은 부모님들은 아픈 몸으로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그 자리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또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찾아온 일부의 옛 친구들을 보며 남 몰래 눈물을 흘리며 먼저 간 자식을 가슴에 묻습니다.

열사의 죽음은 현재 진행형

자신의 몸에 시너를 끼얹고 불을 붙이기 전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요?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스스로 거둔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그 소중한 목숨을 내 던지며 열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끝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의 죽음은 사회적 죽임이며 현재 진행형입니다.

아직도 세상은 여전히 많이 가진 사람들과 권력자들에 의해 고통이 심화되고,‘학벌사회’처럼 권력이 세상의 근본이자 주인인 국민들을 목조여 오는데 주저함이 없는 이성이 마비되는 시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땅의 교육은 여전히 청소년들을 죽음의 벼랑 끝에 매몰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김철수 열사 20주기가 되는 해입니다. 하지만 그의 추모제는 부모님, 유가족회만 자리를 지키고 있어 보기 안타까웠습니다. 이제 참교육 실현을 염원하던 김철수 열사의 바램이 흩어지는 바람이 되지 않도록 살아남은 우리가 망월 묘역에 모여 힘을 모으고 의지를 모아 시대의 등불을 지켜내고 우리를 힘들게 하려는 사람들에 맞서 싸워 나가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살다가 힘들어 걸음을 멈추고 싶을 때 어둠 속에 잠들어 있는 열사들의 숨결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가끔 소주 한 병들고 열사들 곁으로 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가끔이라도 자식 먼저 보낸 후 속병 앓고 살아가는 부모님들 한번 씩 찾아뵈었으면 합니다. 열사들과 함께하는 것 어렵지 않은 행동들입니다. 자신의 조건과 상황에 맞게 열사정신을 실천하는 마음만 있다면요. 

․ 1973년 3월 전남 보성 출생

․ 1989년 3월 보성고등학교 입학

1991년 5월 18일 보성고 운동장에서 '노태우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

․ 1991년 6월 1일 전남대학교 병원에서 운명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묘역에 안장

1991년, 5월 항쟁 11주년 기념일이자 강경대 열사의 장례 행렬이 망월동으로 향할 때 보성고 학생회 주최로 열린 5·18 기념행사를 치루던 도중 김철수 동지는 운동장에서 온몸에 불을 붙인 채 '노태우정권 퇴진'을 외치며 행사장으로 달려가면서 친구들에게 "잘못된 교육을 계속 받을래?"라고 외치며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에 '우리의 소원'을 친구들에게 불러 달라고 했다. 동지는 유서로 보이는 타고 남은 종이에 노태우 정권의 퇴진과 참교육 실천을 위해 기성세대의 깨달음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동지는 결국 분신 2주만 인 6월 1일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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