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실에서 청소년 인권선언의 의미

전국청소년학생연합 의장 유선경

현재 대한민국 중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빈번한 일을 보자. 두발규제? 교복규제? 여러 가지 규제가 판치고 있는 학교 내에서 과연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것이 잘못된 거라고는 생각할까? 일반적으로는 ‘아, 내가 잘못했으니까 잡히는 거구나.’ 하고 합리화시킨다. ‘왜 우리가 선생님들이 만든 규칙을 그대로 따라야만 하지?’ 라는 문제점을 제기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다. 단지 ‘원래부터’ 그래 왔으니까, ‘다들’ 그러니까. 라는 말도 안되는 그런 소리들로 자신들을 그저 묶어놓고 있다. 학교의 구성원은 분명히 학생이 제일 많은데, 그러면 우리가 직접 생활하는 우리의 터전인 ‘학교’는 우리도 함께 환경을 만들어가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왜 우린 관리를 받아야하는 대상일까? 머리 길이 25cm, 교복 치마 무릎 밑으로 몇 센치 따위는 대체 누가 정해놓은 걸까?

또한 전문계 고교에 다니는 청소년들도 상황이 심각하다. 마치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전문계 고교에 다니는 것으로 생각하고 ‘전문계 다녀요’ 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본다. 소위 ‘꼴통들’ 이라고 말하고, 못한다고 무시한다. 자기가 그쪽 공부 하고 싶어서 그쪽에 갈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다른 요인이 있을 수도 있는 거지 왜 하나로만 볼까?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인식이 이상하게 굳어져 있어서,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 즉 탈학교 청소년은 굉장히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어머 너는 왜 학교에 나가지 않는 거니?’ 마치 학교에 나가야 하는 게 정상인 것처럼. 학교에 나가지 않는 청소년들 중에는 학교 제도에 부적응한 학생들도 있겠지만 학교에서 자신의 꿈을 이룰 환경이 되지 않는다거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반드시 학교에 나가야만 ‘정상적인’ 사람이 된다는 거지? 그런 법칙은 누가 정한 거지?

대한민국에 있는 많은 청소년들은 아직 ‘인권’ 이라는 것에 대해 감을 못 잡고 있다. 그거야 당연히 우리는 배운 게 아니니까. 그렇지만 느끼고 있지 않는가. 두발을 잡는 것에 기분이 나쁘고, 교복 치마 길이를 잡는 거에 기분이 나쁜 게 그 예다. 정말 잘 된 거라면 아무런 느낌 없어야 하지 않을까. ‘인권’은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권리. 즉 우리가 인간다운 대접을 받기 위해 필요한 당연한 것이다. 근데 왜 우린 이걸 모르는 거지? 그거야 우리가 잘 몰라야 내 권리를 찾기 위해 주장할 수가 없으니까. 그럼 우릴 통제할 수가 없으니까.

우린 관리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청소년’ 이라는 그 말 그 자체로 우리는 한 명의 인간이고 감정이 있는 ‘사람’ 인데, 누가 누굴 관리하고 누가 누굴 통제한다는 말일까. 중요한 건 다들 모른다는 거다. 아주 당연한 것처럼, 원래부터 그래 왔으니까 그냥 아무런 느낌 없이 그러려니 하고 만다. 나보다 먼저 세상에 나온 분들은 내가 세상을 잘 살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면 되는 거고 나는 그들을 보고 난 어떻게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앞으로의 내 인생에 지표가 되면 되는 거지 왜 나보다 먼저 나온 사람이라고 날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상호 협력적인 관계가 되면 되는 거지 왜 우리를 규제하고 우리를 만들어가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차이’와 ‘차별’이 틀리듯이 남과 나는 충분히 다를 수 있고 사람이라는 게 다른 존재인데, 어째서 인정하려 하지 않는 거지. 왜 우리를 그쪽 기준에 맞게 만들려고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인권? 인권에 대해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모르니까 권리가 없다. 라는 걸까. 우리를 규제하기 위한 교칙, 그리고 체벌. 교칙은 학교의 삼주체 중 하나인 우리가 함께 만든 것도 아닌데 무조건 따르라는 것도 이상하고 그 교칙에 따르지 않으면 (혹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육체적인 벌을 가미한다는 것. 대체 어째서 그래야 하는걸까.

우리는 누구에게 규제받아야 할 대상도, 관리받아야 할 대상도 아니다. ‘청소년’으로서, 권리의 한 주체로서 당당하게 서야 할 ‘사람’들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물론 청소년들도 잘못하고 있는 게 많다. 나와 남이 다른 걸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상당하다. 근데 우린 아까 말하다시피 ‘어리지’ 않는가. 어리다고 모든 걸 덮어버릴 수는 없지만 그만큼 더 삶의 경험이 없는 우리는, 우리보다 삶의 경험이 많은 그 사람들에게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 사람들이 우리를 가르쳐줘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 인권선언은,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알고 당당하게 우리의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기본적인 인권을 너무나도 침해받고 있고 심지어는 그 정도도 모른다. 많은 청소년들이 우리가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를 알고, 누리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반드시 된다. 한 명의 목소리도 아니고 많은 청소년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준다면, 그리고 우리가 외치면 된다. 이 세상에 못할 일은 없으니까. 또한 이번 광주에서의 청소년 인권선언을 시발점으로 전 대한민국으로 퍼져나가길 바란다. 광주의 청소년들이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많은 청소년들이 알고 공유하고 모든 것에 대해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 때까지 해나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