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 추모제를 제안하며-

2009년 산 자의 고통과 죽은 자의 슬픔이 교차하는 나날입니다. 특히 노무현 전직 대통령 자살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며 다시 한 번 인권과 민주주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박종태 열사들의 죽음을 통해서도 앞으로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 중요한 화두를 던져 주었습니다. 지금도 인간답게 살기위해 투쟁과 희생이 직면한 현실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하나의 인권이 있습니다. 바로 ‘학생인권’입니다.

한국사회의 과도한 입시경쟁교육 시스템 속에서 많은 학생들이 죽어가며 고통받고 있지만, 이제는 언론이나 사회를 막론하고 그 누구도 학생의 죽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늘 그렇듯이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그저 학생 개인의 나약함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고만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5~6월 광주에서만 5명의 학생들이 자살을 택하는 현실에서 이것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태도이지요.

자살은 단지 개인의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죽어간 학생들의 수는 단지 표면적인 수치에 불과하며 그 이면에는 공부와 입시경쟁으로 병들어가는 학생들의 암울한 삶이 깊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통계적으로도 많은 학생들이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으나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하며 그들 중 일부는 실제 자살을 결심하거나 기도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해소되거나 일부 해결될 기미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왜 학생은 이토록 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할까요? 왜 자살하는 학생의 비율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가는 걸까요? 그것은 한국의 교육이 그 근본부터 왜곡되어 있음을 반증합니다. 오로지 대학만을 위한 교육, 입시교육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교육현실이 이 땅의 학생들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기 때문입니다. 한창 꿈을 키워가야 할 나이부터 과도한 입시경쟁에 휘말려 십대 후반에 극심한 전쟁을 치러야 하고 설령 그 가운데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상처는 지워지지 않은 채 평생을 열등감과 무기력, 체념과 절망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땅 학생들의 삶입니다.

그럼에도 모두가 살인적인 입시 경쟁에 달려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소위 일류대학 출신들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과 부가 따르는 자리들은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몇몇 대학 출신들이 독점하여 자기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며 패거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영향력의 정도에 따라 모든 대학은 제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수직적으로 서열화 되어있습니다. 좀 더 상위의 패거리 집단에 들어가야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으니 입시경쟁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특정 대학 출신의 권력 독점과 대학서열이 깨지지 않는 한, 사람 죽이는 입시경쟁은 계속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처절한 경쟁 속에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죽어야 하는 걸까요? 아직도 소위 관료,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들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지금 우리라도 학생들의 죽음에 대해 진실 된 애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번 학생인권 추모제를 통해 그들의 삶에 관찰하고 학생인권이 소외받지 않는 권리로 만들어나가길 바랍니다. 더 이상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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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지역 학부모, 교육, 시민사회 등 각계 단체는 27일 오후 5시 광주 동구 금남로 삼복서점 앞에서 입시경쟁에 내몰려 자살을 선택한 학생들을 애도하는 추모제를 가졌습니다.

추모제는 각계 발언, 추모 굿, 편지글 낭독, 서약서 낭독 등의 순서로 진행했습니다.


특히 참가자들은 이날 학생들이 죽어서는 안 되는 이유 100가지를 찾아보는 시간을 진행하며 학생들의 자살 방지를 위한 실천을 다짐하며, 108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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