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 폐지를 위한 앞으로의 숙제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광주지부장 최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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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전국적으로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치러지는 가운데‘일제고사를 반대하는 광주시민모임’에서는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청소년, 학부모들과 함께 체험학습을 진행해왔다. 위 사진은 09년 일제고사 당일, 체험학습 출발 기자회견 모습.


며칠 전 일요일 백주대낮에 내가 사는 동네의 초등학교에서 성폭행사건이 일어났다. CCTV도 설치되어 있었고, 경비아저씨도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 본 결과 CCTV에 용의자가 배회하는 장면이 오랜 시간 찍혔다고 한다. 경비아저씨는 아이의 비명을 듣고 나가보니 용의자는 도망가고 아이만 피해를 당한 채 덩그러니 있었다고 한다. 경비아저씨는 아이를 얼른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 때문에 피해자 신변이 3~4일 후에 확인되었고 피해자 치료시간도 늦어졌다. 이 소식을 들은 많은 학부모․시민들은 더 이상 학교도 안전한 곳이 아니니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절망을 하며,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난리들이다.


“아! 정말 한 학교당 CCTV의 수를 엄청 늘려야 할까?”

“경비를 곳곳에 세워야 할까? 호루라기 목걸이를 통해 안심알리미 서비스를 확대하면 더 나을까?”


참 이상하다! 왜 이리 호들갑이지? 아니 이런 일을 예견하지 못했단 말인가? 학교도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라고 떠들어대는데 언제는 안전한 곳이었던가? 입시위주 경쟁교육으로 치닫는 학교교육 때문에 매년 200여명 이상이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데 성폭력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학교가 안전했단 말인가? 이렇게 한번 씩 성폭력사건들이 일어나면 여기저기서 호들갑을 떠는데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쳐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임시방편으로 현 상황을 빠져 나가려만 들 뿐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원인은 뭘까? 바로 성적중심의 경쟁교육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입시경쟁교육현장에서 우리 아이들은 친구와 우정도 나눌 기회도 없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동체사회를 만들어 가는 시민의식을 배울 수도 없다. 더군다나 올바른 인성교육이나 성교육 등을 받아볼 기회가 없었다. 오직 국․영․수 중심의 주입식․획일화된 입시교육만을 받았을 뿐이다. 이러한 경쟁교육에서 긴장되고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이용한 게임이나 인터넷 등 각종 미디어에서 왜곡된 성의식과 폭력성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제고사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데 서론이 너무 길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번 성폭력사건도 일제고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제고사가 뭔가? 정부에서는 학업성취도평가라는 말로 학습부진아를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교사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부진아들이라고 판단되는 학생들에게만 평가를 실시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모든 아이들, 각자의 소질에 따라 다재다능한 아이들에게 왜 똑같은 내용, 똑같은 진도, 똑같은 지식을 강요하는 시험을 봐야 하는가?


이런 식의 평가는 결국 세계적으로 지향하는 사고력이나 창의력, 문제해결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문제풀이 수업만을 함으로써 학생들의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고 , 학교는 학원으로 변질되고, 성적으로 인해 학교도 줄 세우고, 교사도 줄 세우고, 학생도 줄 세우고, 학부모의 경제력도 줄 세우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한줄 세우기로 된다면 교육주체들의 현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학생들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의식의 혼란,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교과서에서는 남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배우는데 일상에서는 남을 누르고 이기는 것을 익히고, 교과서에서는 인권의식에 대해 배우는데 일상에서는 인권침해를 몸에 익힌다. 교과서에서는 자유, 평등의 가치를 배우는데 일상에서는 억압과 차별을 몸에 익힌다.


교사들 또한 평가권을 빼앗기는 순간 교육내용마저도 빼앗기게 된다. 왜냐면 아무리 능력 있는 교사가 있어 아이들에게 창의적 수업을 진행하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주도적으로 시험을 내서 그 시험의 결과로 평가를 한다면 그 교사는 교육내용을 국가시험이 요구하는 대로 바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사가 일제고사에 충실히 대처하는 순간 아이들에 대해 차별성을 갖게 될 것이며(시험을 못 본 아이들을 미워한다.), 불법(시험컨닝 등)을 자행할 유혹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제고사를 치루 게 되면 가장 힘든 사람들이 바로 부모일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학부모들은 일제고사를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더 경쟁적으로 문제풀이를 강요하는 걸까? 사회는 점점 양극화 되어 가는데 자식들에게 아무것도 물려줄 것이 없는 부모입장에서는 자식의 행복이 오직 부모의 역할에 달린 현실에서 내 자식이 상위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오직 공부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학원을 보낼 수밖에 없고, 학교에서 보는 모든 시험을 성실하게 치러야만 손해 보지 않는다는 피해의식이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이라는 것이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인간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행위인데 이렇게 학교 교육이 파행으로 치닫고 그 파행의 주범이 일제고사인데 생각 있는 부모로써 어떻게 자식들에게 일제고사를 치르게 나둘 수 있단 말인가?


3년 전부터 실시된 일제고사! 첫해엔 지금 막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연한 사명감으로 많은 교사와 학부모들이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 등을 통해 일제고사의 폐해를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 결과 체험학생들은 무단결석 처리되었고, 부모는 학교에 불려 다니고, 체험학습을 허가해준 학교는 징계를 받았다. 이렇게 3년 동안의 일제고사거부투쟁은 일제고사거부시민모임에서 주동은 했지만 아무런 힘이 되어 주지 못한 체 교육적 소신을 실천으로 옮긴 개인과 그 자녀들에게 희생과 패배감을 안긴 체 지지부진 끝나고 말았다.


다행히 올해 6월2일 지방교육자치 선거에서 치러진 교육감 직선에서 진보교육감 5명이 당선을 하였다. 그들은 성적위주경쟁교육에 제동을 걸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 중 전북교육감과 강원교육감은 교과부에서 실시하는 일제고사에 대해서는 표집실시와 도단위시험은 폐지하겠다고 한다. 서울교육감과 전남교육감도 일제고사에 대한 입장을 하루빨리 내놓아야 할 것이다.(광주교육감은 11월 취임이어서 지켜봐야 할 일) 일제고사를 그대로 두고 교육개혁 운운하는 진보교육감이 있다면 이들은 진정한 교육운동자들이라고 볼 수 없다. 그 지역 교육단체에서 이제는 더 이상 개인의 희생과 어쩔 수 없는 강요에 의해 일제고사 거부운동을 하지 말고 교육감의 확실한 입장을 듣고 그에 따라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성적위주 줄 세우기 교육, 승자독식의 경쟁교육시스템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행복할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지 못하고 불안과 긴장의 날들을 학교 다니는 내내 보내게 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또한 밝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이 행복해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 그 시작은 바로 일제고사의 폐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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