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준호 (청년유니온 광주지역모임)

1.jpg 

▲ 지난 3월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대자보를 붙이고 고려대를 자퇴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김예슬 씨가 대자보에 다 담아 내지 못했던 말과 자신에게 쏟아졌던 질문들을 정리해 책으로 출간했다.

지난 3월, 한 대학생의 선언을 언론을 통해 접했다. 대학을 거부한다는 선언... 국가와 자본에 포섭된 대학 그리고 시장이 요구하는 대로 제조되어 자격증이라는 가격표가 붙어 양산되는 대학인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는 선언이었다. 그 선언과 함께 그 학생은 학교를 그만두었다. 한편으로는 무모해 보였지만 진정한 大學人이 되기 위해 대학교를 거부하는 모습은 파문이 일듯 각종 매체를 통해 세상에 전해졌다.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지성인의 요람으로서의 대학, 대학인의 몰락은 물론 이번에 새롭게 제기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의 선언에 주목했던 것은 비판의 칼날이 무뎌질 때로 무뎌진 이 시대 지식인(대학인), 청년들에게 더 날카로워져야 한다며 숫돌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말로서만이 아닌 직접적인 저항을 통해 세상의 모순을 드러내보였다. 그 일이 있은 뒤에 많은 지식인들이 자기 성찰적 글을 각종 매체에 실은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얼마 전에는 김예슬씨의 글을 모은 작은 책이 발간되었고 그의 생각을 좀 더 자세히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의 이야기

비인간적인 경쟁과 미친 학습노동 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후 들어간 소위 명문대에 대한 기대가 깨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유나 정의, 진리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고 또 다른 트랙이 펼쳐져 학생들을 경주마처럼 양육하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대학의 지위는 이미 자본의 시녀와 같은 존재로 전락해 있었다. 기업이 돈만 준다면 진리나 정의는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 삼성과 글로벌, 이명박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그 명문대는 순수한 영혼이나 진리, 자유, 정의, 저항이 사라진 곳, 더 이상 대학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눈과 귀를 막아 옳고 그름의 대한 판단을 유보 하고 대학에서 양육하는 경주마가 되어 취업이라는 끝나지 않을 트랙을 돌아야 하는 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을 집어 삼키고 있는 근원에 대한 물음을 던지기 시작한다.

적들의 이야기

대학생의 현실은 무엇일까? 실제 삶을 위한 배움과는 괴리된 자격증과 학점, 어학과 같은 스펙에 매달려 무직(無職), 무지(無知), 무능(無能)으로 대표되는 3무(無)의 졸업장이 그토록 모두가 가고자하는 대학의 결과다. 대학은 학위 자격증을 발급하는 학원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진정한 의미의 배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청년들이 매달리는 졸업장과 자격증은 기업이 요구하는 것들이다. 이윤을 위해 저비용 고효율의 잣대를 최상으로 여기는 자본이 대학을 하청업체로 만들었다. 본질에서 사람을 도구로 여기는 자본에게 대학생은 거대한 이윤구조의 한 부품일 뿐이다.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그러한 구조를 유지하게끔 하는 국가의 역할을 감안하면 국가, 자본, 대학이라는 억압의 삼각동맹이 청년들을 인간이 아닌 자원화하고 그들의 꿈과 삶을 송두리째 집어삼키고 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직시해야할 근원적인 사실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교육은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부의 세습화를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의무교육의 틀은 사회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수단이며 ‘학교 교육의 주술’과 ‘능력사회’라는 구호 속에서 계급적 낙인을 내면화하는 시스템이다. 저자는 국가의 의무교육과 자본과 기업이 요구하는 자격증 제도가 살아있는 한 배움의 자유와 삶의 자유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교육이나 지식이 상품화되어 소비되고 있고 끊임없이 소비를 자극 당하고 있음을 꼬집는다. 소비를 위한 소비가 되어버린 소비사회는 우리에게 돈을 계속 벌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계속해서 주입한다. 그야말로 과잉경쟁과 과잉소비의 사회인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사회적 모순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 그는 다른 세상을 상상한다. 자급자립의 기반과 공동체가 살아나 자격증이 없이도 자신이 나름의 재능과 관심사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곳, 장인성과 인간됨으로 존경받는 그런 곳 말이다. 소박하고 자유로운 농부, 자격증이 필요 없는 목수, 요리사, 시인 등등 각자 자신의 재능을 살려나가면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공동체를 꿈꾼다.

거짓희망에 맞서다

그는 한국사회의 진보에 대해 묻는다. 충분히 레디컬(Radical)한가? 그리고 다시 말한다. 그렇지 않다고. 일상과의 연결이 느슨한 진보운동, 감동이 없고 사람향기 나지 않는 주장, 권력부터 달라고 하는 진보세력이 진정한 진보일까 라는 회의적인 의문과 함께 우리사회의 진보는 근원적인 가치투쟁에 실패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것은 충분히 근원적이지 못했기에 불필요하게 과격하고 위험하게 실용주의적이고 투박하며 분열적이고 놀랍도록 실적경쟁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근원적이기 위해서는 넓은 시각과 고민을 가지고 구조에서 생활문화, 감성, 영성까지 품어내는 운동을 해야 하며 진보적 신념을 운동가 자신의 삶을 통해 실현해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근원적 문제의식을 끌어내리려는 다양한 담론들을 지적한다. 김연아를 상징으로 청년 세대를 ‘G세대’로 부른다. ‘김연아를 꿈꾸라’는 담론에는 거짓이 숨어있다. 그것은 모두가 김연아가 될 수 없는 현실, 오히려 청년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과 알바생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은폐하고 거짓 희망을 품에 안기는 ‘G세대’는 글로벌 카스트에 가깝다. 88만원 세대 운동도 청년실업 해결과 사회복지 확충과 임금 상향을 위한 연대투쟁으로 현실성이라는 이름의 중도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88만원이라는 수치화가 우리 세대가 안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항하지 않으면 젊음이 아니다

우리세대는 욕망이라는 굴레에 사로잡혀 있다. 그것은 진정한 욕망이 아닌 자본에 의해 주어진 욕망이다. 그 안에 단답형이 되어버린 우리의 꿈이 있다. 그건 대개는 돈이 있으면 해결되는 꿈들이다. 또한 돈이 없으면 안 된다는 학습된 두려움에도 갇혀 있다. 우리는 주어진 꿈, 오염된 꿈을 버리고 근본적인 문제의 뿌리를 직시해야 한다. 대학이나 직업이 먼저가 아니라 내 자신, 나의 삶이 더 큰 존재다.

앞서 말해온 악순환, 국가-자본-대학이라는 억압의 삼각동맹에서 의무교육과 자격증제도는 우리의 삶을 거짓 기준들로 수단화하고 비인간화된 비교경쟁 속으로 등 떠민다. 끝없는 트랙을 그저 당근을 생각하며 의식 없는 경주마처럼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 트랙에 벗어나기 위해서는 용기 있는 자기 부정이 필요하다. 저자는 ‘나 자신이 바로 그 적이다.’라는 명제를 자신에게 각인시키며, 대학을 거부하기까지 무수한 성찰의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한 개인에게는 너무나 거대한 잘못된 사회구조, 의식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그가 얻어낸 결론은 불복종이다. 자신의 불복종을 통해 거대한 벽에 작지만 의미 있는 균열을 냈다. 그러한 저항은 그가 특별하기보다 어쩌면 젊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청년은 곧 저항을 상징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불경어수 경어인(不鏡於水 鏡於人)이라는 신영복 선생님의 글이 있다. 옛 사람들에게는 물에 얼굴을 비추지 말라는 경구가 있는데(不鏡於水) 물을 거울로 삼던 시절의 이야기다. 거울에 비치는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경어인(鏡於人), 모름지기 사람들 속에 자신을 세우고 사람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비추어 보기를 가르치는 글이다. 우리는 국가와 자본, 대학이 만들어낸 자격증 시스템의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김예슬이라는 사람의 ‘삶’을 거울로 삼아볼 필요가 있다. 그에게서 필자는 주어지는 삶이 아닌 참된 자신의 삶을 선택한 한 개인이 보인다. 또 청년으로서 실천하는 저항만이 진정한 꿈을 품고 나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방법임을 깨닫는다. 그를 거울로 비춰보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앞서 말한 균열은 더 이상 작은 균열이 아니며 거대한 적은 더 이상 그 지위에 있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본 ‘내 깡패같은 애인’이라는 영화에서 옆방 깡패(박중훈)가 취업에 좌절해있는 지방대생인 옆방이웃(정유미)에게 던진 대사를 기억해본다.

“우리나라 백수들은 참 착해. 거 텔레비전 보니까.. 외국에서는 일자리 안 준다고 대학생들이 데모도 하고 난리던데 우리나라 백수들은 그저 자기 잘못인줄 알아.. 사회가 제도적으로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걸 다 자기 잘못인줄만 알아.. 사회가 잘못한 거야.. 괜찮아.. 당당하게 살아~!”


“억압 받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다

상처 받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저항하지 않으면 젊음이 아니다.“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