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운동의 흐름과 과제

전누리(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

 

오래 전부터 자신들의 삶을 바꾸기 위한 청소년들의 저항들이 존재했었다. 저항의 흐름은 청소년이 살고 있는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때로는 무시 못 할 정도의 큰 흐름이 되어 기존의 사회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었다. 한국 사회 역시 짧게는 약 20년 전부터 청소년들의 행동이 나타났었고 그 흐름은 계속되어 미약하지만 일정한 성과와 변화를 얻어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의 청소년운동이 문제제기 했던 억압의 구조들은 여전히 강력하게 청소년들을 옥죄며 존재하고 있다. 지금 청소년운동은 억압의 구조를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어려운 물음에 딱 맞는 정답을 내놓을 자신은 없다. 다만 답을 찾기 위해서 필요한 단서들을 모아본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제목과 같이 그동안의 청소년운동의 흐름, 사회구조 속에서 억압받고 있는 청소년의 상황과 그것을 거부했던 청소년들의 저항을 짚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시대에서 펼쳐지고 있는 청소년운동이 갖고 있는 한계는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청소년운동이 쟁취해야할 과제는 무엇인지 개인적인 짧은 고민을 담았다. 내용적으로 부족한 글이지만 먼저 글을 쓴 목적대로 답을 찾기 위한 단서가 되길 바라고, 이 글을 계기로 답을 찾기 위한 더욱더 치열한 고민과 소통이 이루어진다면 더할 나위없는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적극적인 토론을 부탁드린다.

 

1. 청소년의 탄생, 억압의 현실

사실, 근대자본주의 이전에 생애주기 상 청소년 시기라는 개념, 혹은 순진무구함으로 대표되는 아동에 대한 특별한 생각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근대자본주의가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미성숙’이라고 특징되어지는 아동-청소년기가 인간에 의해 ‘탄생’되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미성숙’이라는 관념은 사회 속에서 청소년을 따로 분리해서 관리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생각과, 나아가 아동기의 시기에 있는 그들을 관리할 수 있는 다양한 공적·사적 시스템이 마련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아동기의 탄생과 그 시기를 관리하는 시스템의 등장의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한 효과적인 재생산구조의 도입. 다시 말해, 자본주의 체제가 별 탈 없이 돌아갈 수 있도록 자본과 국가권력 등 체제의 지배세력에 대해 묵묵히 순종하면서 노동을 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역할에 익숙해지기 위해 부당한 지배와 규율을 일찍부터 경험시키는 것이었다. 한국 사회의 청소년을 둘러싼 구조인 학교, 가족, 그리고 전반적인 사회의 모습을 하나씩 살펴보자.

<학교>

아동기를 관리하기 위해 탄생된 대표적인 공적 시스템이 바로 ‘학교’(로 나타나는 교육제도)이다. 물론, 학교 등의 교육제도가 민중들의 교육에 대한 요구가 반영되어 만들어졌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현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구조에 저항하지 않는 순종적인 인간을 만들기 위한 지배세력의 의도가 깊이 반영되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 결과 학교공간은 억압을 위한 다양한 수단들이 작동될 수밖에 없었다. 그 중 대표적으로 ‘통제’는 학생들을 지배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수단중의 하나이다.

구체적인 학교현장의 현실을 살펴보자. 통제의 형태는 다양하다. 체벌을 가하거나 두발 및 복장 규제 등의 규율을 통한 신체에 대한 직접적 통제. 혹은 소지품을 확인한다거나 학생의 교제에 대한 규율을 통한 사적 영역의 광범위한 통제. 반성문이나 학생의 글에 대한 검열을 통한 양심과 사상에 대한 통제. 이 통제들은 공과 사의 영역을 가르지 않고 학교에서 생활하고 있는 학생의 전반적인 삶을 규제한다. 나아가 통제는 학교공간을 넘어서(물론, 대부분의 생활이 학교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그가 어느 곳에 있던 작동되는데, ‘학생의 신분에 어긋나지 언행’이라는 규칙(그러지 않을 경우 처해지는 처벌들)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통제는 교칙, 혹은 학생생활규칙이라는 다양한 규율들을 통해 정식화되고 정당화된다. 물론, 이 통제들은 체제가 원하거나 유지되기 위한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무엇보다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다양한 통제와 그것들을 유지하기 위한 감시들은 청소년들이 스스로 통제와 규율을 내면으로 따르는 결과들을 초래한다. 어떤 외부의 감시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행동과 생각들을 스스로 감시하고, 혹은 다른 친구들의 행위들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심지어는 그 자신도 당하게 될 혹은 당하고 있는 부당한 통제들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오히려 옹호하기도 한다. 결국, 그들 내부에서 통제라는 것은 싫긴 하지만 익숙해지고 필수적인 것으로 인정되어 가는 것이다.

한편, 학교공간에서 청소년들에게 통제와 더불어 강력히 다가오고 있는 것은 경쟁이다. 경쟁은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지식에 대해 남보다 얼마나 더 많이 습득했느냐, 다시 말해 시험 등의 평가를 진행할 때 다른 이보다 더 높은 점수와 더 낮은 등수를 얻을 것을 청소년들에게 요구한다. 경쟁 속에서 자기 자신과 사회의 발전에 도움을 준다는 교육의 목적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1등만을 요구하고 인정하는 경쟁교육은 청소년들에게 스스로를 옥죄는 고통스러운 경주가 될 뿐이다.

그동안 한국교육에 있어 경쟁은 끊임없이 강화되어왔다. 집권을 했던 어느 정당이든 교육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경쟁의 강도를 계속 높여왔을 뿐이었다. 최근에만 살펴보더라도, 반과 학교 친구들과 상시적인 경쟁을 시작하게 만든 내신등급제, ‘어륀지’라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와 시작된 영어몰입교육, 국제중-특목고-자사고 등으로 이어지는 학교서열화, 전국의 학교를 경쟁의 수렁텅이로 몰아넣는 일제고사 시행과 그 등수를 알려주는 학교정보공개 등등. 물론 이 모든 경쟁은 보다 명문대학으로 가기 위한 대입경쟁으로 모아지고 있다.

경쟁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교육에 쏟아 붓는 시간과 스트레스는 높아져간다. 학교 선택제, 기초학습강화라는 이름의 경쟁교육의 강화는 그나마 상태가 양호했던 서울에서도 다시 0교시와 강제야간자율학습, 그리고 방과 후 학교 등의 강제학습의 붐을 일으키며 학생들에게 아침잠과 저녁잠, 그리고 방학을 빼앗았다. 공교육의 경쟁강화는 자연스레 사교육을 자의든 타의든 사교육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학생들은 학교수업이 끝난 후, 혹은 주말에 학원에서 자신의 일과를 보내야만 한다. 휴일도 휴식도 없이 진행되는 과중한 학습부담은 청소년들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정신적인 스트레스 부담은 심히 우려가 되고 있다. 한 조사에서는 최근 3년간(2005~2008) 강박장애 환자 중 청소년이 58%(2005년, 1824명에서 2008년, 2878명으로)나 증가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가족>

한편 청소년을 관리하는 사적영역, 즉 가족역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봉건제를 무너트리고 근대자본주의를 가능하게 한 프랑스혁명 등 변화의 움직임은 인간이 어떠한 사적소유물이 될 수 없고, 그 개인으로서 신과 법 앞에 평등한 존재라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 같은 생각은 위험한 것이었다. 기존의 불평등한 사회체제의 문제가 드러나고, 충돌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기존의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성과 모순이 망각될 수 있고, 인위적으로 배제될 수 있는 공간이 필요로 했다.

그 결과 사회의 지배세력, 당시 부르주아들은 공적영역과 분리되는 사적영역으로 가족을 분리시키고, 전부터 흘러내려왔던 가부장제적 가족구조를 다시금 강화하고 과장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가족의 주인으로서 인정되고 권위를 갖게 되었으며 가족 속의 여성과 아동은 그 권위에 복종해야만 했다. 이 같은 가족모델은 처음에는 부르주아 가족에서부터 시작되어 점차 노동자계급의 가족까지 확대되어갔다.

아동기의 탄생과 더불어 이 같은 가부장제적 가족구조의 강화는 가족 속에서 아동과 청소년을 종속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독자적인 생각과 권리를 실현하는 주체로서 청소년들이 인정되기 보다는 친권이라는 이름아래 전적으로 아버지나 혹은 부모의 통제와 지시를 받아야만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실제로 부모에 의해 종교를 강요받거나 혹은 연예 문제이던, 나아가서는 진로까지 생활 전 영역을 통제받는 경우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나아가 통제는 갈등으로 이어진다. 2008년 보건복지가족부가 지난해 전국 일반 청소년 1만4716명의 유해환경 접촉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8.2%가 학업 성적이나 진로·진학 등 다양한 사안을 놓고 부모와 갈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삶에 대한 통제는 학교의 통제처럼 청소년들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와 갈등이 점점 극대화되면 될수록, 가족이란 억압과 통제의 공간을 떠나는 다시 말해, 가출을 선택하는 청소년의 수도 많아진다. 경찰청의 아동‧청소년 가출신고 건수자료에 따르면, 2008년에는 2만 3097건으로 역대 최고의 수준을 기록한 바 있고, 무엇보다 가출원인에 있어서 2008년 보건복지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부모님과의 갈등이 그 1위로서 19.4%의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서울지역의 한 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서도, 54.9%의 가출청소년이 부모나 가족갈등을 가출원인으로 응답한 바 있다.

물론, 많은 청소년들이 쉽게 가출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가부장적 혹은 가족 이데올로기에 포섭되고, 내면화된 결과일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집을 나온 후, 살아갈 방편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청소년 스스로의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 한 현실이다. 일반적인 가정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부모는 자신들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끈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청소년은 집을 떠나는 선택을 하기보다는 소소한 갈등을 일으키면서 어쩔 수 없이 통제를 받아드리는 경우가 많다.

<사회>

학교와 가족 외에 있는 사회전반적인 분위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길거리 곳곳에 있는 ‘청소년은 우리의 희망입니다.’라는 표어는 청소년에 대한 인식을 여실하게 드러내 준다. 청소년을 ‘현재의 주체’로 생각하기 보다는 ‘미래의 주체’일 뿐 지금은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상징되는 ‘미성숙’한 상태로 보고, 그들을 소위 ‘일탈’에 빠져들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이유로 억압과 통제를 가하고 있다. 당연히 그 속에서 청소년의 ‘참여’와 ‘자치’가 낄 여지는 없다.

대표적인 것이 청소년에게 정치권 권리가 보장되어 있지 못하는 현실이다.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는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청소년은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 선거는 물론, 자신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 지역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교육감 선거에서도 투표할 수 없다. 17살 고등학생이 하원의원에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는 영국 등 외국의 현실은 우리의 사회와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사실 이다. 청소년은 선거과정에서 단순히 투표만 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2007년, 선관위는 “현행 선거법상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10대 미성년자는 후보자 지지 혹은 반대 동영상 UCC를 만들어 올릴 수 없다”라고 밝혀 청소년들이 선거기간에 인터넷 속에서 정치에 관련된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조차 막고 있다.

선거권 외에도 정치적 권리에 대한 통제는 수없이 많다. 청소년의 집회참여가 금지되는 현실 역시 눈여겨 볼만 하다. 지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정국 때 교육당국은 상황실을 설치하고 장학사와 교사를 대규모로 광화문에 파견해 지도라는 명목으로 청소년들을 감시하고, 참여자체를 막는 등의 행위를 일삼았다. 또한 같은 때 전주에서는 광우병 관련 집회신고를 한 고등학생에게 배후가 누구냐며 정보과 형사가 학교를 찾아가 조사를 가한 일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물론 청소년들의 집회를 막기 위한 시도는 예전부터 있어 왔다. 지금처럼, 80~90년대 청소년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때에도 장학사들이 집회장소에 찾아가 학생들을 막기도 하였다. 특히 2003년, 부안 핵 폐기장 건설문제가 이슈가 되었을 때 노무현 정부는 ‘18세 이하의 청소년을 금지된 집회 또는 시위 등에 강제로 참가시키거나 참가를 강요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백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아동복지법 개정을 시도하기도 했었다.

정치적 활동에 대한 통제와 더불어 생활과 문화의 통제역시 무시할 수 없다. 청소년보호법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오후 10시 이후 PC방-찜질방을 출입 금지 시키는 등의 생활적인 측면에서부터 만화나 영화, 음악의 심의를 통해 문화적인 통제까지 가하는 청소년보호법은 일찍이 청소년계와 문화계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반두비’라는 청소년 영화의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은 큰 이슈가 되었다. 청소년을 주 관람 층으로 하는 청소년 영화지만 정작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에서 모방위험 등을 이유로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비판적인 내용이 들어갔기에 불이익을 받은 것은 아니냐고 의견이 나오지만 중요한 건 그 내용이 어떤 내용이든 보호라는 이름아래 심의가 실질적인 검열으로서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청소년의 문화적 접근에 장벽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에 대한 통제와 더불어, 청소년을 착취하는 현실 역시 계속 반복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청소년노동’이다. 산업혁명 초기, 아동을 착취하는 현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근래 빈곤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앞서 살펴봤듯이 경제적인 자립이 불가능 한 많은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로 상징되는 노동을 선택하고 있다. 2007년,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라는 단체에서 1500여명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진행했는데 52.3%가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을 했다. 이 결과는 청소년들의 노동이 노동임금시장에서 밑바닥에 처해있음을 알리고, 무엇보다 저임금으로 착취되고 있는 청소년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생애 첫 노동의 기억이 비참한 저임금 노동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억압의 다양한 수용>

물론, 그 같은 억압에 대해 수용방식은 굉장히 다양하다. 예컨대, ‘일탈’의 경우, 자신들의 미래가 밝지 않음을, 즉 체제가 요구하는 성공을 이룰 수 없음을 ‘간파’한 후, 적극적으로 학교를 그만두거나 소극적으로 수업을 포기하고 학교 및 사회가 요구하는 규율에 반항한다. 최근 교육포기와 일탈은 양극화의 심화-빈곤화와 맥을 같이 하고 있는데, 정부도 이를 인식하고 일탈청소년에 대한 교정정책 재정비와 특별복지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자살’은 변화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체념의 의미도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이 현실을 받아드리지 못하겠다는 소극적인 저항행위이다. 2007년, 교육과학기술부가 황우여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에서 학생 자살 수가 142건으로 5년 전보다 42%나 증가했고, 2008년 통계청 조사자료 따르면, 청소년 사망원인에서 청소년자살이 운수사고에 이어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고교생 8만 명을 대상으로 한 질병관리본부의 조사에서도 5명 중 1명이 자살충동을 느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입시경쟁교육의 강화와 억압적인 사회시스템은 청소년들의 자살을 증가시키고 있다. 아래 박스는 입시경쟁을 거부하며 자살을 선택한 청소년들의 유서들이다. 유서의 내용들은 죽음을 강요하는 경쟁교육의 변하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나머지 청소년들이 선택하는 것은 체념, 그리고 경쟁의 참여이다. 성공할 수 있다는 달콤한 거짓말을 믿으며, 아니면 울며 겨자 먹기로, 자의든, 혹은 타의에 밀려 경쟁의 대열 속에 들어가 12년 교육과정 내에 다른 학생들과 치열한 싸움에 빠져든다. 경쟁과 현실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나를 억압하는 것 따위야 지금의 현실을 조금만 참아내어 성인이 되고, 또 사회에서 성공하게 되면 해방 될 수 있다는 사회의 부조리한 조언을 진통제 삼는다. 그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연대는 꿈꿀 수 없다. 주위에 있는 친구들을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보기보단 더 나은 점수를 획득해서 밟고 일어서야 하는 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또한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폭력에 대해 민감해지기 보다는 부당한 권력, 혹은 구조에 대해 저항하지 못하고, 폭력에 무감각하며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소위 경제적인 인간이 되어간다. 그 후 다가오는 결과는 일부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 다시 시작되는 노동시장의 경쟁이다. 그리고 이미 익숙해진 폭력과 구조는 다시 또 다른 청소년들에게 그대로 가해지고, 체제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이렇게 청소년들이 이 억압의 체제를 그저 손 놓고 받아드렸던 것은 아니었다. 억압과 폭력에 맞서 자신의 인간다움을 찾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펼친 청소년들이 있었다. 그들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 요구하며, 적극적인 저항을 펼쳤다.

어른들은 그들이 왜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 보지 않고 그렇게 죽어간 학생들만 욕했습니다. (중략) 저는 지금 막 교실을 뛰쳐나왔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지옥에서 부르는 소리 같았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묵묵히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이 친구들은 감정도 없는 사람 같고 다 똑같아 보입니다. 전혀 개성이 없어 보입니다. 이 친구들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 어른들이 밉습니다. (중략) 반 학우들아, 너희들은 죽더라도 대학에 가서 죽어라. 나는 단지 죽음을 너희보다 빨리 불렀을 뿐이다. 잘 있거라.

- 1989년 10월 13일, 서울 면목고 3학년 김 아무개 씨가 남긴 유서

아빠는 이틀 동안 20시간 일하고 28시간 쉬는데 나는 27시간30분 공부하고 20시간30분을 쉰다. 왜 어른보다 어린이가 자유시간이 적은지 이해할 수 없다.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

- 2002년 11월 자살한 어느 초등학생의 유서

부 힘들어서 자살하는 사람들... 다 남이야기 같았어. 하지만 아니야.

공부 공부 공부 공부. 좁디 좁은 교실에 선풍기4대 히터2대. 40명이 넘는 아이들.. 같은 곳에서 각기 다른 재능을 지닌 아이들이 오직 한 가지만 배우고 있었어. “대학가는 법”.

슬펐어.

……내가죽는다고 변하는건 아무것도 없을 거야. 선생님들의 강력한 몽둥이도,,선생님들의 강력한 두발규제도,,선생님들의 공부공부소리..사회의 공부공부공부공부,,,

……난 사실 평범한 여중생일 뿐이야.

노래부르길 좋아하고, 그림그리길 좋아하고, 수다떨길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는,

하지만 사회는 내게 그걸 바라지 않아.

같은 머리 같은 옷 그리고 같은 공부.

쫍디 쫍은 교실에 아이들을 구겨 넣고, 선풍기4대와, 히터2대. 그리고 선생님..

- 2007년 4월 자살한 어느 중학생의 유서

2. 억압의 현실에 거부하는 청소년의 저항

청소년을 둘러싼 사회적 통제시스템은 20세기부터 큰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기존 교육에 반대하는 교육운동의 영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청소년들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통제시스템에 대해 저항을 진행한 것이었다. 서구사회에 큰 충격을 준 68혁명에서부터 청소년의 저항들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권’이라는 것을 통해, 특히 인권의 중요한 원칙중의 하나인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지금 바로, 인권을 누릴 수 있다.’라는 보편성에 기대어 자신들이 속해있는 사회전반에서 억압과 통제에 맞서 청소년의 해방을 위해 ‘참여’와 ‘자기결정권’등을 요구하는 운동을 진행했다. 청소년운동의 시작이었다.

68혁명은 일명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라는 슬로건처럼 다양한 주체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펼치며 저항했었다. 청소년들 역시 자신들의 삶 속의 요구를 거리에서 외쳤다.

1. 학교생활은 수감생활과 다름없다. 교육에서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2. 자유롭게 조직을 결성, 가입하고 정치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3. 두려움 없이 학교나 교사에게 불만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4. 부모의 동의서는 학생 의사가 아니므로 정당하지 않다.

5. 우리의 존엄성을 모욕하는 체벌은 없어져야 한다.

6. 자의적인 검열은 폐지되어야 한다.

7. 금지된 지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8. 우리에게는 실수할 권리가 있다.

- 68혁명 당시, 영국의 청소년들이 주장한 요구들

68혁명 당시, 수많은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나온 프랑스에서는 각 고등학교마다 자치회가 건설되었다. 그들은 교육이 결코 교사나 학교의 일방적인 지식의 전달로 되는 것이 아니고, 교사-학생이 동등한 위치 속에서 소통과 참여로 만들어 진다는 것을 인식하고, 교육에 있어 학생들의 더 많은 접근과 참여를 위해 교육에서의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다양한 교육적 실험들을 진행했다. 특히, 고등학생의 대규모 참여는 대학평준화 등 체제전복을 두려워한 지배세력의 큰 양보를 가져오기도 했다. 한편으론, 문화와 생활적인 측면에서도 자기 삶의 과정을 자기가 책임지고 선택할 수 있다는 요구를 하며 가족과 사회의 분위기를 변화시켜 나갔다.

그들의 행동은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을 물려줬다. 경험들은 계속 이어져 와서, 세계 각국의 청소년들은 지금도 부당한 교육정책에 반대하거나 자신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인 주장을 펼친다. 2006년 4월, 대만에서는 학생들이 인터넷에 두발규제 반대 토론방을 만들고, '학생 두발규제 금지 자치협회'까지 결성한 후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결국, 대만 교육부는 국‧공립학교에 학생의 두발 전면 자유화방침을 결정했다. 그 다음해인 2007년, 칠레에서는 대학의 무시험 진학, 교육의 지역 차 해소, 교원 수 확충 등의 교육개혁을 요구하며 60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수업거부와 가두시위를 일으키기도 했다. 같은 해 덴마크에서는 20년간 무료로 사용해오던 청소년회관을 코펜하겐 시가 일방적으로 매각해버리자 강력한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사르코지 정부가 취임한 뒤, 추진했던 고용을 유연화하려는 CPE법안을 노동자, 교사들과 함께 청소년들이 강력한 행동을 하여 법안추진을 무력화시켰고, 2008년 4월에는 교원감축안에 반대를 하며 전국 고교생 연맹(UNL)과 고교자주민주연맹(FIDL) 등의 청소년단체들이 2만 명의 반대집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한편, 작년 10월, 이탈리아의 청소년 베를루스코니 정부가 추진하던 교육개혁에 대해(학업 성적이 나쁜 학생들을 퇴학시키고, 초등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5년간 한 교사에게 배우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학교 개혁안) 수업거부와 학교건물을 점거하고, 시위를 전개하기도 했다.

 

3. 한국 청소년 저항의 흐름

세계의 청소년들처럼 한국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 역시 짧게는 20년 전, 길게는 그 이전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 동안 저항과 운동을 펼쳐왔었다. 청소년들의 저항, 청소년운동은 단순하게 펼쳐져온 것이 아닌 시대의 흐름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으며 이어져왔다. 간략하게 확인해보도록 하자.

<청소년인권 담론의 출발, 온라인에서 다시 거리로>

90년대 초반, 중·고등학생 운동진영은 학교 밖에 지역 조직의 성격을 가진 청소년단체를 건설하는 등 운동의 활로를 모색했지만, 공안사건 등을 빌미로 한 정부와 학교의 계속된 탄압으로 인해 운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저항의 흐름은 멈추지 않고 새로운 공간 속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공간은 바로 당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던 피시통신이었다.

헌법의 고귀한 정신을 준엄하게 지키는 헌법 재판소에 학교장의 지나친, 전횡적인 학교 운영으로 말미암은 학생들의 기본권의 억압을 원상 회복시켜 주시기를 바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95년 7월, 춘천고를 다니고 있는 학생인 최우주는 학교의 강제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시행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며 청와대, 교육부, 강원도교육청 등에 민원을 제출하며 하이텔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학교장의 지나친, 전횡적인 학교운영’으로 인해 기본권의 침해를 당했다며 헌법소원을 이전 구제절차를 밟기 위해서 민원을 넣고, 글을 올린 것이었다.

그의 민원은 미적지근한 답변을 준 교육청과 대조적으로 온라인 공간과 언론에서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문민정부가 집권을 하고 전반적인 민주화의 열기가 끓어오르고 있었지만, 여전히 비민주적이었던 학교의 모습과 5.31교육 개혁안이 발표되고 교육현실에 대한 여론이 모아지고 있을 때 최우주의 문제제기는 학교와 청소년의 현실에 대한 사람들의 논의를 촉발시킨 것이었다. 8월 3일 하이텔에서는 [최우주 군의 학교 문제, 함께 따라가 봅시다]라는 토론방이 개설되어 많은 사람들이 의견과 소통을 시작했고, 논의는 최우주 씨의 문제제기 방법에 대한 비판과 재반박에서부터 체벌, 보충수업, 분반, 입시교육, 심지어 선거연령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청소년문제와 교육구조 전반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이 사건의 주목할 점은 청소년인권담론의 등장이다. 그전 중·고등학생운동에서도 인권이란 담론이 쓰였으나, 예컨대 정권의 탄압에 맞서 쓰이는 제한적인 사용에 그쳤다. 그러나 최우주의 헌법소원사건이후, 청소년운동에서 인권담론은 중심적인 근거와 운동적 프레임이 된다. 이는 더 나아가 한국사회에서 민주화라는 거대한 담론에서부터 다양한 운동으로 분화했던 과정처럼 청소년 운동이 청소년자체에 중심을 두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편, 온라인의 공간 역시 주목받게 되었다. 치열한 입시경쟁 속에서 주위 또래들과의 소통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서 온라인은 하나의 소통의 기회가 되었다. 청소년은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서 당시에는 급속도로 활성화되고 있었던 피시통신은 사회적인 광장이 되고 자유롭게 학교 등의 현실에 대해 자유롭게 소통하고 고발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온라인공간은 계속 청소년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수단과 공간으로 자리 잡히게 된다.

최우주의 헌법소원사건과 하이텔의 치열한 토론은 청소년들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토론 속에서 말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나타나고, 모임을 구성해 구체적인 활동을 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결국, 같은 해 12월 경 피시통신 <하이텔>과 <나우누리>에서 중고등학생복지회<이하 학복회>라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학복회는 인권에 대한 세미나를 진행하거나 소식지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고 진행했다. 무엇보다 학생인권의 담론을 사회에 알리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며, 98년에는 학생의 날을 맞아 ‘중고등학생인권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활동의 한계는 많았다. 무엇보다 오프라인까지 구체적인 힘이 발현되지 못했고, 활동을 하는 이가 성인이 되어버린 이후 활동가를 충원하지 못해 운동의 연속성을 유지하지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다행히도 새천년을 맞아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가 진행된다.

 

<노컷운동의 시작과 온라인과 오프라인 운동의 확산>

새천년을 맞이하고 수업거부, 탈학교 등 선정적인 미디어의 보도로 학교붕괴라는 현상의 이름으로 이슈가 되었고, 해법을 찾기 위해 민간영역에서는, 특히 문화담론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하자센터와 미지센터의 공간을 만들기도 하였다. 오프라인 공간 속에서 청소년들이 소통할 공간이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었지만, 그들이 쉽게 접근하고 소통할 수 있었던 공간은 여전히 온라인 공간이었다. 90년대, 피시통신이 역할을 했다면 2000년대는 인터넷이 그 역할을 물려받았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다양한 청소년들의 모임이 생겨났다. 채널 텐, 사이버유스(CyberYouth), 청소년인권동아리 타래 등이 그 대표적인 모임이었다. 특히 사이버유스의 경우, 청소년들은 성, 자퇴, 교실붕괴 등 다양한 섹션을 구성해 토론을 할 수 있었다. 한편, 피시통신의 학복회도 변화의 시기를 맞는다. 98~99년 침체기를 겪었던 상황에서 학복회 내부에서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었고, 소규모밖에 참여하지 못하는 동아리 식의 활동을 바꿔 대중적인 중고등학생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필요성이 생겨난 것이다. 또한 접근성이 높은 인터넷 공간으로 기반을 옮겨야 하는 주장이 나오고, 결국 ‘업그레이드 학복회’가 탄생하고, 논의는 더욱더 진전되어 2000년대 초 ‘전국중고등학생연합(준)’(아래 학생연합(준))이 탄생하게 된다. 한편, 70년대 학생운동을 계승하겠다는 주장을 펼치며 10개 지역의 학생회 및 여러 학생들이 모여 ‘전국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전고협)이란 조직이 나타나기도 했고, 5개 서울지역에서 각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단체들이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통합을 하기도 하였다.

한 고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을 데리고 세계 각지의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외국 청소년들은 다른 나라 아이들과 같이 앉아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물어보곤 했지만 유독 우리나라 학생들은 자기들끼리만 같이 앉아 이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고 합니다. 똑같은 교복, 똑같은 3cm 스포츠형 머리로 나온 학생은 창피하게도 대한민국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1999년 5월, 어느 현직 교사가 나우누리에 올린 글이 인터넷웹진에 실리면서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이 글은 학기 초 학교의 두발단속 때문에 쌓여가던 학생들의 분노를 자극했고, 마침내 아이두, 채널 텐, 사이버유스가 모인 웹연대 ‘위드’에서 두발제한반대 서명게시판이 만들어지게 된다.

2000년 봄, 학생들의 폭발적인 호응과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 속에 두발제한반대 서명운동은 16만 명을 돌파한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진 운동은 오프라인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학생연합(준)을 중심으로 캠페인과 거리집회가 열리게 되었다. 사실, 운동을 주도했던 운동 단위에서도 두발문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이견이 존재했다. 두발자유화를 원칙으로 운동을 진행하는 단위(학생연합 (준))가 있었고, 교육부가 자율화를 선언하고 각 학교학생회별로 자유화의 기준을 정하자는 주장(웹연대 위드)도 있었다.

노컷운동에 대해 2000년 10월, 교과부는 “각 급 학교별로 교사·학부모·학생 대표가 참가하는 토론회를 열어 두발규정을 다시 정하라”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이 지침은 학교현장에서 무용지물이었다. 교사-학부모와 학생의 의견 차이가 있을뿐더러, 무엇보다 힘의 권력차이가 엄연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학교 현장에서 두발개정이 이루어진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고, 심지어는 당시 운동을 주도했던 서울지역의 활동가들의 경우 시 교육청(교육감:유인종)에 의해 학교에서 퇴학 등의 징계를 받기도 하였다.

비록 목표는 달성되지 못 했지만 노컷운동은 청소년들 스스로 활동을 고민하고 진행하는 계기가 되었고, 청소년 조직들의 급속한 성장을 갖고 왔다. 학생연합(준)의 경우, 광주, 부산, 목포 등 각 지역에서 지부가 만들어졌고, 가장 활발하던 시기에는 오프라인 활동을 하는 회원이 200여 명에 육박할 정도였다. 그리고 미지센터에서 청소년인권센터를 운영하면서 2000년 12월 22일, ‘학생인권과 교육개혁을 위한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이하 학생연합)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출범을 하게 된다. 학생연합은 이후, 두발자유화를 넘어 체벌반대, 학교운영위원회의 참여, 고교등급제-자사고 반대 등의 교육투쟁까지 이슈를 제기했다. 무엇보다도, 학교 안 지회모임을 구성하기 위해 큰 역량을 쏟기도 했다.

2002년, 미군장갑차 사건으로 인해 많은 청소년들이 분노를 갖고,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같은 해 점차 학생연합을 필두로 청소년 조직들은 활동가 부재라는 위기를 겪고 있었다.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경험들이 축적되지 못하고, 무엇보다 중고등학생이외의 참여를 엄격히 배제한 것도 큰 원인이 되었다. 다행이 학생연합은 사실상 해체되었지만 흐름은 계속되어 청소년인권과 관련한 ‘청소년의 힘으로’, ‘희망네트워크 작은숲’ 등의 풀뿌리 지역모임이 생기게 되었다. 이 모임들은 2003년 발생된 네이스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데, 10월 경 서울, 강릉, 산청, 부산 등에서 전국동시다발 교육청 1인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네이스 투쟁과 지역모임은 학교 밖의 싸움을 학교 안 까지 가져가지 못하는 한계에 처했지만, 다음해에는 그 한계를 넘어서는 투쟁이 나타나게 된다.

<청소년 인권 담론의 확대와 거리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거리로>

새로운 흐름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먼저, 첫 번째는 청소년들의 싸움이 학교현장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바로 2004년에 일어났던, 대광고 강의석의 종교자유투쟁과 인천외고의 사학민주화 투쟁이었다. 6월 16일, 강의석은 학교에서 종교의 자유가 지켜지지 않는 학교의 현실을 지적하는 학내방송 한 후, 교육청 앞 1인시위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러나 여기에 학교는 퇴학이라는 징계로 화답하고, 강의석은 45일간의 단식을 들어간다. 결국, ‘강제적으로 실시되는 ‘강제적으로 실시되는 예배를 중단하고 학생들에게 예배 참석의 자율권을 준다.’는 내용에 합의에 이르고, 이후 법원에서도 퇴학처분무효라는 승소를 거두게 된다.

같은 해에 활발히 싸움이 진행되었지만 청소년운동진영에서 관심을 받지 못했던 인천외고 투쟁의 경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년 전, 새로운 교장(이남식)이 부임하면서 인천외고는 교사의 발언권을 제한하고 경고장을 남발하는 비민주적인 공간이 되어버린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억압도 강화되어 수업시작 시간 앞당기기, 전원강제야자 실시, 두발규제 강화, 외출제한, 벌점제와 유급제 등이 도입되었다. 4월 24일, 교장과 학교 운영이나 학생 지도 등의 문제를 두고 마찰을 빚어왔던 전교조 박춘배 교사와 이주용 교사가 파면되었고, 이에 학생들은 학생대책위를 꾸리고 교장실 앞에서 집회를 진행했다. 그리고 6월 4일부터 600여 명의 학생들이 100일 가까이 수업거부를 시작, 결국 교장이 옆 학교로 전근이 되면서 투쟁은 마무리되었다.

특히 강의석의 투쟁은 학교 내 다른 학생들을 모으기보다 이슈파이팅에 기댄 점이 한계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두 투쟁은 공통적으로 무엇보다 ‘학교 내 저항’의 단서를 제공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특히, 인천외고의 경우, 2003년 용화여고를 포함해 사학민주화 투쟁의 흐름이 이어진 것도 있지만, 학생인권 문제를 포함해 학교의 민주화를 위해 현장의 학생들이 모임을 만들고 강도 높은 투쟁을 벌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같이 학교현장에서의 투쟁의 흐름들은 2005년 송파공고 비행기시위, 2006년 동성고의 학생인권보장을 촉구한 오병헌의 학교 앞 1인시 위, 두발자유를 요구하며 학내 집회를 연 양동중 사례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두 번째는 기존의 청소년운동의 의제들이 다시 광장에서 분출된 점이다. 2005년, 3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라카 시위’가 진행되었다. 강제적인 두발규제와 강제이발에 맞서, 두발자유를 요구했던 것이다. 학교의 두발단속을 고발하는 글이 온라인에서 이슈가 되고, 청소년웹 사이트인 아이두에서는 두발제한폐지 온라인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5년 만에 대규모의 두발자유운동이 일어났다. 청소년단체의 활동가들은 ‘두발자유 학생운동본부’(이하 학생운동본부)를 결성하기도 하고, 거리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운동의 흐름은 이어져 5월 14일, 광화문에서는 학생인권수호전국네트워크에서 마련한 ‘두발제한폐지·학생인권보장을 위한 청소년 거리축제’와 학생운동본부가 개최한 ‘두발자유와 인권을 위한 5.14 청소년 행동의 날’이 열려 많은 청소년들의 참여가 이루어졌다. 5년 전, 노컷운동의 움직임과 다른 점은 앞서 언급한 송파공고의 비행기 시위, 성남 풍생고의 운동장 시위 등 (앞서 학교 내 투쟁의 흐름이 이어진)집단학내시위들이 일어나 거리와 학교 곳곳에서 투쟁이 터져 나왔다는 점이다.

같은 해 5월 또 눈여겨봐야 할 투쟁은 내신등급제 투쟁이다. 80~90년대 이후, 교육관련 의제와 관련 거리로 나오는 청소년들의 자발적이고 강력한 행동이 나타났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내신등급제는 청소년들이 자신들을 ‘저주받은 89년생’이라고 이름을 붙일 정도로 분노가 모아지고 있었다. 마침, 입시경쟁으로 자살을 선택한 학생들의 뉴스가 줄을 이으며 보도가 되었고, 결국 분노는 행동으로 촉발 되었다. 5월, 한 청소년단체가 광화문에서 자살학생 추모제를 연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몇몇 내신등급제를 반대하는 청소년 카페들도 촛불문화제를 하자는 의견이 모아지기 시작했고, 학생들 사이에서 촛불문화제에 참석하자는 문자가 돌려지기 시작했다. 이를 막기 위한 교육당국과 경찰당국의 협박과 방해가 있었지만 결국, 5월 7일 광화문에서는 청소년들이 약 천 여명이 모여 촛불을 들고, 내신등급제 반대와 자살한 학생들을 추모했다.

세 번째는 청소년인권담론이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학생인권문제에 치우쳤던 청소년인권담론의 확대가 이루어졌다. 일군의 청소년단체들이 모인 18세선거권낮추기연대는 말 그대로 선거권 하향을 주장하며 다양한 행동을 펼쳤고, 2005년에는 비록 원했던 목표를 얻어내지는 못했지만 국회가 19세로 선거권을 낮추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편,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문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학교와 가정 안에서 성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갖가지 탄압을 받았던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성소수자 운동진영에서도 큰 화두가 되었다. 이어서 비록 법의 규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지만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온라인 커뮤니티가 등장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다양한 고민과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청소년노동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점차 그 수가 증가하고 있는 청소년노동에 대한 관심들이 높아져가고 있는데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결성, 실업계 학생들의 간접고용의 실태, 청소년 저임금노동실태를 사회에 공론화시키기도 하였다. 이렇듯 의제들은 점차 확대되어 최근에는 청소년보호주의 문제나, 여성청소년 문제가 고민되기도 한다.

2006~2007년에는 그동안 청소년운동진영의 숙원이었던 학생인권의 제도적 장치의 마련 요구가 민주노동당 최순영의원이 대표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일명 학생인권법으로 모아지고 법안통과운동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청소년인권운동의 대중화와 안정화 및 전문화를 고민하기 위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결성되기도 하였다. 이들은 학생인권보장을 위해 인권침해현장을 기습방문하거나 학생들의 학내집회를 지원하고, ‘청소년행동의 날’을 개최하였다. 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청소년인권운동의 역사를 정리하기도 하였고, 앞서 청소년인권의제를 더욱더 포괄적으로 확대하기위해 다양한 고민을 가졌다.

<이명박 정부 하의 청소년의 분노>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초기부터 특히, 교육 분야에 더욱더 경쟁을 강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청소년들은 강력한 분노와 거부의 표시를 나타냈다. 인수위 시절, 어륀지로 대표되는 영어몰입교육은 분노의 시작이었다. 청소년들은 싸이월드의 이명박 미니홈피 방명록에 영어몰입교육에 반대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학교자율화 조치가 발표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0교시와 야간자율학습의 부활 혹은 정당화를 우려한 청소년들이 학교자율화 조치를 규탄하는 수많은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수도권 학생들의 75.2%가 학교자율화 정책이 학업스트레스를 증가시켰으며, 66.3%의 학생이 입시경쟁교육이 심화되었다고 응답해 학교자율화 조치에 반대하는 흐름을 살펴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의 분노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고 표출된 것은 미국산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였다. 5월 3일, 촛불집회의 하나의 전환점이 된 날, 집회에 참가한 청소년의 모습은 언론에 큰 이슈가 되었고, 이내 그들이 거리에 나온 이유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스타들이 인기를 위해 그들의 팬인 순진한 청소년들을 선동한 결과, 혹은 광우병에 관련된 일부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의 결과라고 얘기한 보수·경제언론. 386세대의 자식으로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물려받았고, 또 논술교육을 받아 논리적인 자기주장의 능력이 있었기에 거리로 나왔다는 주장을 한 다양한 해석들이 나왔었다.

물론, 그런 해석들은 청소년들이 살고 있는 당시의 삶을 살펴보지 않았기에 큰 한계를 지닌다. 우리에게 촛불집회에 나온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큰 단서를 준다.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처음 촛불집회에 나오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광우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라고 응답한 것 보다(14.0%) 많은 수의 학생들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고 응답했다(56.1%). 이 응답은 다른 질문과 연관되는데 ‘만약 쇠고기 협상이 타결될 경우, 다른 현안에 대해 촛불집회를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 하는가’라는 질문에 67.0%가 ‘예’라고 응답하고, 쇠고기 협상 관련 이외 다른 이슈 의 집회에도 적극적인 참여 의지를 보이면서 67.8%정도가 교육 문제(0교시 수업, 영어몰입 교육 등)에 참여를 밝혔다.

자신들에게 경쟁을 강요하고 억압을 가하는 학교교육에 대한 분노는 쌓여있었고, 광우병 위험은 청소년들에게 쌓여있던 분노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했다. 결국 청소년들은 촛불집회라는 ‘저항이라는 행위’를 표출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청소년들은 특히 촛불정세 중, 현재의 교육에 대해 '미친교육'이라고 명명함으로서 그들이 갖고 있는 지금의 교육에 대한 인식과 분노를 드러냈다. 촛불이 사그라진 이후에도 청소년들의 저항은 은밀한 방식으로 계속 이어졌다. 대표적인 것으로 일제고사를 둘 수 있는데, 청소년들은 차라리 시험을 보는 예산을 갖고 어려운 친구를 돕는 복지예산을 더 늘렸으면 좋겠다는 얘기들을 하며, 자발적으로 OMR카드를 백지로 혹은 낙서를 해 제출하기도 하였다.

청소년운동진영 역시, 이명박 정권하에서 분노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흐름과 함께 하고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참여해 집회를 조직하거나 등교거부의 움직임에 함께하려고 했었고, 이 가운데에서는 수많은 촛불청소년단체들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 청소년운동진영은 이어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도 적극 참여해 진보후보였던 주경복 선본에 적극 결합하는 단위들도 있었고 ‘기호 0번 청소년 후보’를 띄어 독자적인 청소년 공약을 제출하고 교육감 선거에 청소년의 참여 보장을 요구하는 청소년 단위들도 있었다. 일제고사 투쟁역시 놓칠 수 없는데, 일군의 청소년단체들이 ‘무한경쟁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모임 Say-NO’를 결성해 등교거부와 백지동맹 등 청소년들의 저항을 모아내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다.

 

4. 청소년운동의 성과와 한계

간략하게 청소년운동의 흐름을 살펴보았다. 치열한 운동의 과정 속에서 무엇보다 큰 성과들이 있었다. 성과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청소년인권이란 의제를 어느새 한국사회에 공론화시켰다는 점이다. 그동안 청소년의 인권이란 것은 회피되거나 언급조차 되지 못하는 의제였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저항은 점차 한국사회 속에서 청소년인권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고 수많은 인식의 전환들을 가져왔다. 기존질서와 인권적 기준사이에 타협점을 추구해온 한계는 있지만 청소년의제와 관련 된 국가인권위의 전향적인 권고, 국회에 발의된 학생인권법과 최근 경기도에서 추진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가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앞서 살펴봤듯이 또 학생인권이외에 다양한 청소년관련 의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둘째,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인권의식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청소년인권이란 의제가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론화되는 가운데, 무엇보다 청소년들 역시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민감해지고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 억압된 공간 속에서 자신들이 당하는 인권문제를 고발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저항의 경험이 익숙해지고, 또한 저항에 대한 접근이 쉬어지고 있어 자신들의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자발적인 저항이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한편, 인터넷은 이러한 점을 가능하게 한 조건이다. 인터넷 공간을 통해 학교나 사회에서 겪었던 일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하거나, 혹은 자신이 있는 공간 속에서 저항을 하기위해 청소년운동진영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그 전에 있었던 사례들을 보는 일이 쉬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들은 분명 지금까지 청소년운동이 쟁취한 큰 성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앞서 청소년운동의 흐름을 살펴봤듯이, 성과 외에도 운동의 한계 역시 나타났다. 운동의 흐름 속에서 한계들이 나타났을 때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활동가들이 고민을 나눴지만 쉽사리 해결되지 못하고 한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운동과정에 참여하고 또 지켜보면서 느꼈던 한계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한계지점>

① 소규모로 계속되는 청소년운동

그동안 청소년들의 저항은 무수하게 나타났지만, 정작 운동조직에 참여하는 청소년의 수는 계속 소수로 머무는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물론, 시기에 따라 대규모의 청소년들이 저항을 펼칠 때, 그에 비례해서 청소년단체의 활동에 참가하는 청소년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운동의 흐름을 살펴봤듯이, 이 규모는 지속화되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에 머물거나 혹은 급격하게 축소되고, 심지어는 조직의 해체까지 가져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사실, 청소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체성이 변화하는 특성(청소년에서 성인으로)을 가지고 있기에 청소년운동진영의 흐름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청소년을 지속적으로 충원해야하는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청소년의 특성 상 시기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것(길어야 6년)도 있고, 또 한국의 교육현실 상 치열한 입시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청소년이 쉽게 시간을 내 참여하기 어려운 조건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운동진영 역시 조직화 사업에 큰 힘을 쏟지 못한 책임도 있다. 그동안 청소년운동진영은 조직의 사활이 걸려있는 문제임에도, 조직화의 고민과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이슈파이팅의 방식에 머무르거나 현안 싸움에 치이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다. 특히 학교에서 혹은 인터넷 상에서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저항의 흐름에 청소년운동진영이 함께하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최근에 일어났던 촛불집회의 경우 아쉬움이 크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의 흐름이 거리로, 운동적으로 가시화 됨에도 불구하고, 이 흐름 속에 들어가 그들과 계속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지 못하고, 나아가 이 청소년들의 흐름을 영속화시키지 못했던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② 청소년운동진영 내 청소년과 비청소년의 관계설정

그동안 청소년 운동진영의 큰 고민 중의 하나는 운동 내 청소년과 비청소년(성인)의 관계설정 부분이다. 청소년 운동의 목적 중에 하나는 나이로 인해, 차별받는 현실을 극복하고 청소년과 비청소년이 동등한 위치에서 관계를 맺어나가자는 것이 있다. 그런데 정작 실제적인 관계, 특히 운동 안에서 어떻게 설정되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상이 마련되지는 못했다. 또한 당사자운동의 성격을 지닌 청소년운동의 특성상 예컨대, 장애인운동 속에서 비장애인의 참여, 그리고 그의 역할 문제처럼 당사자운동 속에서 당사자의 정체성을 지니지 않은 주체는 어떻게 참여하고 어떤 역할을 맡아 나가야 할지의 물음에 대한 명확한 답이 나오지 못 했다.

예전 운동의 흐름 속에서는 이 같은 물음에 대해 소위 ‘피터팬주의’라 불리는 것처럼 비청소년의 활동을 배제해버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비청소년의 의견이 청소년의 의견보다 비중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것에 우려도 있었고, 무엇보다 당사자운동은 당사자가 스스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들은 많은 한계를 가져왔다. 위의 한계와 연결되지만 조직의 운영에 있어 연속성과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것과 더불어 당사자 운동의 범위를 좁게 가둘 필요가 없다는 문제제기가 있어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은 청소년단체에서 청소년과 더불어 비청소년들이 함께 운동을 진행하고 있으나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특히 경험에 있어 비청소년이 더 우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 또 시간적으로나 더 많은 활동이 보장되는 가운데 역할이 집중되는 상황, 그리고 여전히 나이를 통한 권위적인 분위기가 남아있는 경우도 있어 관계설정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는 변화된 사회 속에서 청소년과 비청소년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청소년 운동 속에서 청소년과 비청소년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져야 할지, 여전히 답은 나오지 못한 채 한계로 남아있다.

③ 운동문화의 한계

사회운동 내 문제가 되고 있는 운동문화가 청소년운동 내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상황은 그 자체로 큰 한계이다. 하나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조직에 따라 생각이 다른 부분에 대해서 소통하지 않는 부분이다. 한 가지 사안을 두고 조직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입장이 다른 것에 대해 논의하고 점차 그 차이를 극복해서 운동진영 안에서의 연대와 협력이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전 조건인 소통에 대해 별다르게 노력하지 않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그런 가운데 조직에 대한 소통이 안 되어서 생긴 입장차가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잦아 운동의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두 번째는 명망가적 운동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운동진영 내 일부 활동가들의 경우, 자신들이 하고 있는 운동의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까 고민하고 노력하기 보단, 자신의 이름이 더 많이 알려지는 것과 조직 내 직위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특히 수시 등의 대학입시에 유리하고자 경력을 쌓기 위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운동진영 안에서 큰 물의를 빚고 있다.

세 번째는 사업만이 중요시되고 정작 일상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 태도이다. 현안과 사업만을 중요시 할 뿐, 정작 활동을 진행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문제나 혹은 사업을 준비하는 공간이용 등 일상적인 부분에 고민과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다반사이다. 다시 말해, 운동 내 재생산의 영역에서 발생되고 있는 문제들을 사업보다 부차적인 문제로 생각하는 등, 예컨대 가족 내 가부장의 모습처럼 운동의 목적과 모순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 운동문화에 대해 활동가들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것에 대한 소통과 해결은 요원하다.

④ 구체적 변화가 없는 현실

그동안 청소년운동진영에 의해 청소년인권담론이 확대되거나 혹은 청소년과 관련된 의제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이는 앞서 지적했듯이 청소년들의 의식을 높이는 등 큰 성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정작 그동안 청소년운동진영이 제기해왔던 요구들은 거의 수용되지 않고, 변화가 더딘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자면 학생인권과 관련 학생인권법이나 학생인권조례 추진이 그것이다. 제도화, 혹은 법의 제정과 개정이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성과가 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관심을 기울이고 또 많은 노력을 쏟았으나 성과는 미진하다. 사실 학생인권의 경우, 청소년운동진영에서 오랜 시간 동안 제기되어왔기에 약간의 변화가 있어왔지만 다른 의제의 경우, 여전히 출발에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이 같은 현실은 운동의 방법이 이슈파이팅에 머물고 있는 것이 크다. 각 의제에 따라 당사자들을 만나고, 그들을 중심을 두고 같이 고민을 나누며 함께 운동을 하면서 변화를 요구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사례는 드물었고, 지금도 쉽게 진행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⑤ 운동의 중‧장기적인 계획 부재

무엇보다 청소년운동에 있어 앞서 언급해왔던 한계를 넘기 위해 또 운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필요할지에 대한 중‧장기적인 계획이 부재한 것은 큰 한계이다.

그동안 운동의 과정을 살펴보면, 갑자기 발생하는 현안에 대해 대응하기 바쁘거나 혹은 연초에 정세를 전망하고 계획을 급급하게 세웠지만 지극히 단기적이고, 달력사업 중심적인 계획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런 상황 속에서 운동의 구체적인 미래를 구상하고, 운동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해 추상적인 고민을 넘어 구체적인 고민을 나누긴 어려웠다. 결국 단기적 사업에 치여 중‧장기적으로 준비가 필요한 운동의 과제들은 매번 아쉬움을 남긴 채 해결할 수 없었고, 운동의 발전은 더디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5. 청소년운동의 과제

짚어본 성과와 한계를 바탕으로, 청소년운동진영이 지금보다 더 성장하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쟁취하기 위해 이뤄내야 할 6가지 과제를 제안해보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구체적인 제안이 아닌 추상적인 내용으로 머물러 있어 아쉬움이 남지만 그러나 이것을 바탕으로 풍부한 논의가 나와 더욱더 세세한 내용을 채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많은 의견을 부탁드린다.

(1) 청소년운동의 중‧장기적 계획 마련

앞서 살펴봤듯이 단기적 대응에만 치중할 뿐 긴 호흡을 갖고, 운동의 발전을 위한 기반마련 혹은 전망을 고민하고 계획하는 기회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좀 더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운동의 전략과 계획을 구성해 나가야 한다.

중‧장기적 계획을 구성하기 위해 먼저 필요한 세부적인 과제들이 있다. 첫 번째로, 지금까지 청소년운동의 역사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와 평가가 필요하다. 그동안 청소년운동은 기억되지 못했으며, 새롭게 운동을 시작하는 청소년들은 기존의 시행착오를 다시 밟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고민을 갖고 있었던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는 2006년, 역사연구팀을 꾸려 주간웹진인 ‘인권오름’에 ‘청소년 인권운동, 길을 묻다.’라는 기획기사 형태로 청소년운동 역사를 정리하기도 했다. 역사정리를 시도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력과 시간의 부족 등의 이유로 인해 한계가 많다. 하루빨리, 청소년운동사에 대해서 운동자료의 데이터 화 등을 포함해 체계적인 정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심도 깊은 평가를 진행하여 앞으로 청소년운동의 계획과 전략을 구성하는 데 큰 기반이 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청소년운동진영을 구성하고 있는 단위들의 치열한 소통이 가능한 자리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한계에서 살펴봤듯이 단위 간 소통의 기회는 굉장히 드물다. 청소년운동의, 청소년운동진영의 중‧장기적 계획과 특히 운동의 전략을 마련하는 것은 일부 단위의 고민으로는 해결될 수 없으며, 운동진영을 구성하는 단위들이 모여서 함께 고민을 나눠야 더 구체적이고 의미 있는 내용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서로의 입장차가 있어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 치열하게 소통하는 기회가 많아져야 되고 단위 역시도 소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구성해야 한다. 먼저 청소년운동의 전략을 수립한 후, 이에 필요한 과제들을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계획,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의 로드맵이 구상되어야 한다. 예컨대, 운동의 기반마련을 중심으로 보자면, 청소년운동사 자료 데이터화(자료실 설립), 청소년인권담론 혹은 의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연구소(모임) 구성의 계획들이 담겨질 수 있다. 로드맵 속에서 사업에 대해 각각의 역할을 나누고 계획에 맞추어 추진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2) 조직화 모델의 고민 및 지원체계 마련

어느 운동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조직화 문제는 청소년운동에 있어 더욱더 힘을 모으기 위한 작업 일 뿐 아니라 운동의 존속을 위해서라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이다. 먼저 조직화와 관련되어 시도했던 수많은 사례들이 있는데 이를 우선 정리하고 평가해야 할 것이며 소위 긍정적인 성과를 남긴 조직화 모델의 경우 적극적으로 보급해야 할 것이다.

조직화라는 과제를 위해서는 두 공간에 관심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인터넷’이다. 운동의 흐름 속에서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점은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청소년들 피시통신, 인터넷을 비롯한 사이버 공간을 거점으로 삼고, 또한 활동을 모색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운동조직이 이런 넓은 온라인 공간 속에서 청소년들을 어떻게 만나고 그들을 모아낼 수 있을지, 그것보다 더 나아가자면 어떻게 하면 그들을 다시 또 오프라인까지 활동을 끌고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지역’이다. 가상의 온라인 공간이 아닌 실제로 그들의 삶이 구성되는 공간, 지역에서 어떻게 그들을 만나고 하나의 흐름으로 모아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이미 몇몇 소중한 성과들이 나타났는데, 경기도 고양의 교사-학생연대모임인 ‘새늘’과 서울의 구로지역에서 진행된 인문학아카데미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새늘의 경우, 전교조 지회교사들이 학생들과 함께 사회적 이슈에 대해 토론을 진행하는 모임인데 굉장히 오랫동안 운영이 되고 있다. 서울 구로지역에서 열린 인문학아카데미의 경우, 전교조 남부지회와 청소년활동가 그리고 교육공동체 ‘나다’라는 청소년단체가 함께 인문학아카데미를 진행 한 후, 참가자들을 모아 지역청소년모임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러한 모델들을 적극적으로 보급하고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변형시켜야 할 것이다.

한편, 청소년들이 안정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경제적 능력이 없는 청소년들의 경우, 교통비나 휴대폰비가 없어 활동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가족이 활동을 반대할 경우, 제일 먼저 경제적인 부분을 갖고, 청소년들의 활동을 막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지원의 필요이다. 예컨대, 후원들을 모아 재단을 구성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기본적인 생활비(교통비, 통신비, 식대 등)를 제공하는 것도 깊이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후 재단의 규모가 더 커진다면 활동가들의 생활비 지원뿐 아니라 운동진영의 사업에 대한 재정지원까지 가능할 것이다.

(3) 사회운동진영과의 관계문제

촛불집회 이후, 아직 청소년운동에 대해, 혹은 청소년운동이 주장하고 있는 요구에 대한 이해는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등 한계가 큰 현실이지만 한국 사회운동진영(진보진영) 내에서 다시 청소년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가고 있다. 이런 상황 속 청소년운동진영은 사회운동진영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진보진영의 목표 속에 대안적인 사회의 모습에 있어 혹은 그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청소년의 억압을 없애는 것 역시 주요한 과제로서 인정할 것을, 그리고 그것을 위해 적극적인 연대를 주장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운동진영 내 만연해있는 청소년을 대상화하거나, 나이에 따라 위계질서가 있는 문제 많은 운동문화를 혁신하는 것도 청소년운동의 중요한 과제로서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위와 같은 생각들은 그동안 주요한 연대의 주체였던 전교조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역시 가져온다. 그동안 전교조는 청소년운동의 주요한 우군이었으나, 앞서 언급한 운동문화, 청소년이나 청소년운동을 동등한 운동주체로 생각하기보다는 여전히 대상화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학생사업은 현재의 문제를 포함해 미래의 문제에 있어서도 전교조의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거나 혹은 레토릭으로만 그친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들을 극복하기 위해 청소년운동진영의 적극적인 비판과 고민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자면, 학교 현실에서 교사와 학생간의 위계적 권력관계와 권위적 질서가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에 대해 이를 어떻게 해소할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전교조와 함께 답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4) 청소년인권담론에 대한 구체적 고민

그동안 청소년인권담론 혹은 청소년의제가 확대되어왔지만 학생인권 담론에 비해 다른 의제들은 아직 전문적인 고민이 낮은 상태이다. 갖가지 의제에 있어서 여전히 쟁점과 고민이 많은 상황에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구체적인 논의와 모색이 필요하다. 이런 작업들은 나아가서 구체적인 대안까지 생산해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운동진영 차원에서 해외 청소년운동진영의 사례 등을 적극적으로 수집하는 등의 작업이 이뤄진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청소년 담론을 진보적인 혹은 청소년운동의 시각에서, 고민할 수 있는 연구모임 혹은 연구소의 구성역시 필요하다. 이를 통해 의제의 생산과 구체적인 대안 마련을 통해 청소년운동의 원칙에 기반 한 대안과 요구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 이 연구모임에서 청소년운동의 역사와 자료를 정리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맡을 수도 있을 것이다.

(5) 내부 운동문화의 혁신

앞서 한계에서 지적한 지금의 청소년운동 내 운동문화에 대한 고민과 반성이 필요하다. 지금 안고 있는 운동문화를 열어놓고 토론하는 자리를 만들고 논의를 진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운동문화를 극복하는 것에 있어 레토릭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이 이뤄져야 하는 점이다. 예전에도 문제제기가 있어 논의가 이뤄진 적이 있었지만 그 자리의 논의뿐으로 그치고 말 뿐로만다. 논의가 실천적으로 논의날 수 있기 위해서 예컨대, 논의를 한 바탕으로 공동의 활동원칙을 만들어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의가 이런 논의와 실천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전히 남아있는 논의를 부차시한 것으로 만드는 분위기를 조직 내부에서 문제제기하고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조직 내 청소년과 비청소년 활동가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진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우위에 서있을 수밖에 없는 비청소년 활동가들의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며, 구조적으로는 상대적으로 비청소년활동가들에게 업무와 경험이 집중되는 형태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논의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한 업무를 비청소년 개인만이 맡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과 함께 맡아 경험을 나누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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