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중단 청소년 문제에 대한 성찰과 전망
이치열(대안교육연대 사무국장)
매년 7만여 명의 청소년들이 학교를 그만 두고 있다.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욱 답답한 일은 이 청소년들이 왜 학교를 그만두었는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 청소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우리사회가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또 문제의 진단과 해결방안에 있어서도 본질적인 접근이 결여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현상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 없이 근원적 처방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학업중단현상을 초래하는 근저에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탐색을 시작하고자 한다.
1. 왜 교육이 문제인가
“그래도 아이들 학원비는 대줘야 할 텐데…” 밤새 소주잔을 함께 기울이는 권고 사직당한 어느 아버지의 넋두리이다. 다니던 직장의 구조조정으로 권고 사직해 이제는 실업자 혹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가 가장 먼저 아이들 교육문제를 고민하는데 그 첫 번째로 꼽는 것이 ‘학원비’이다. 여기에 우리사회 교육신화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되는 흐름과 함께 근대적 학교제도가 생겨났다. 이전까지는 선택받은 귀족이 아니면 받을 수 없었던 교육을 많은 사람들이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근대학교제도가 갖는 진보성이었다. 한편 자본주의 시회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숙련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재생산되는 구조가 필요했다. 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방식이 근대 학교제도인 것이다. ‘의무교육’이라는 명분하에 취학연령에 해당하는 모든 아이들을 한 교실에 몰아넣고 국가가 주도하는 교육과정을 통해 지배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자본이 필요로 하는 기능을 가르친다. 거기에는 개성보다는 획일성이, 비판보다는 순종이, 창의성보다는 무기력이 필연임은 말할 나위조차 없다.
이러한 학교제도를 통해 양산된 인간은 나만의 행복, 더 많은 돈, 더 높은 권력 등의 가치를 향해 체제 순응적이면서도 또 한편으론 경쟁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가끔 어려운 집안 출신 가운데는 드물게도 성공을 이루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러한 모델은 마치 학교제도가 이 사회의 평등에 기여한다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학교가 사실상 이 사회의 계급을 재생산하는 틀로서 기능해 왔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것이 바로 근대 학교제도가 갖는 본질적 속성인 것이다.
게다가 한국사회의 교육 현실은 어떤가? 2006년 판 OECD의 통계연보에는 우리나라가 OECD국가 30개국 중 GDP대비 공교육비 지출은 23위, 사교육비 지출은 1위로 나타나 있다. 왜 이토록 기형적인 교육비 지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는 한국사회가 철저한 신자유주의적 경쟁사회임을 반증한다. 학벌사회로 불리는 우리사회는 교육이 온전한 인성을 가진 사람을 길러낸다는 본연의 목적이 상실된 것은 물론이요, 학교에서조차 이러한 임무를 포기한지도 오래된 일이다.
일단 수능시험이 끝나면 바로 점수대별 전국대학의 순위표가 작성되어 나오고, 이에 따라 대학 입학이 결정된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자본과 권력에 근접한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믿기에 모든 이들은 이 ‘10대 결정론(어느 대학에 입학하느냐로 인생이 결정된다)’의 신화 앞에서 광신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모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자본력과 문화자본력이 청소년의 미래 삶을 결정한다고 믿는 사회가 되었다. 아직도 대도시 중·고등학교에 지역유지들이 돈을 모아 ‘공부는 잘하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에게 장학금으로 써 달라고 전달한단다. 그러나 이제 우리사회에 ‘공부 잘하면서 가난한 아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70년대까지만 해도 소위 고학생으로 상징되는 부모의 자본력과 아이의 성적간의 불균등 사례를 목격할 수 있었지만 21세기 한국사회에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은 나지 않는다. 이제 우리사회의 교육제도는 오직 계급 재생산의 기제로서만 작동할 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잘못된 이 교육신화와 내 아이만큼은 지긋지긋한 배제와 차별로부터 벗어나 경쟁의 승리자로 키우고픈 욕망에 가난한 노동자들도 너나할 것 없이 승산 없는‘로또 당첨’의 환상으로 그 ‘학원비’를 대주기 위해 오늘도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 학업중단 청소년 현황과 문제점
(1) 원인파악을 위한 통계자료 부족
학업중단 청소년에 대한 대책은 그 사유에 따라 다양하게 강구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의 학업중단 청소년들에 대한 실태조사는 터무니없이 열악한 수준이다. [표1]에서 보다시피 현재 중단사유를 제시하는 유일한 통계시스템인 한국교육개발원의 통계시스템에서는 대책을 세우기에 적당한 구체적 사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통계에조차 잡히지 않는 학업중단 청소년들([표2]참조)에 대한 대책은 오리무중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표1] 학업중단 청소년 현황 (단위 : 명, %)
연도 |
초 |
중 |
고 |
합계 | ||
인문계 |
전문계 |
계 | ||||
‘06.2 |
18,403 (0.46) |
15,669 (0.78) |
10,166 (0.81) |
12,910 (2.57) |
23,076 (1.31) |
57,148 (0.73) |
‘07.2 |
23,898 (0.61) |
18,968 (0.91) |
12,616 (0.98) |
15,314 (3.10) |
27,930 (1.57) |
70,796 (0.90) |
‘08.2 |
20,450 (0.55) |
20,101 (0.98) |
15,477 (1.15) |
17,466 (3.58) |
32,943 (1.73) |
73,494 (0.96) |
‘09.2 |
18,132 (0.52) |
19,681 (0.98) |
16,174 (1.14) |
18,099 (3.76) |
34,273 (1.74) |
72,086 (0.96) |
[표2] 학업중단 이후 동선이 파악되는 청소년 현황
학업중단 이후 상황 |
관련기관 |
현 황 |
대안학교 |
- 각 대안학교별 관리 (서울의 경우, 서울시대안교육센터 종합 관리) - 교육과학기술부 |
중등전원형: 약2,500명 중등도시형: 약 650명 초 등: 약1,300명 |
기초생활수급자 |
- 주민자치센터, 각 구청 - 보건복지가족부 |
|
미혼모지원시설 |
- 시설별 관리 - 보건복지가족부 |
약200명 추산 |
학업중단 이후 상황 |
관련기관 |
현 황 |
청소년 쉼터 등록 |
- 시설별 관리 - 광역자치단체, 보건복지가족부 |
|
그룹 홈 등록 |
- 시설별 관리 - 각 구청, 광역자치단체, 보건복지가족부 |
|
보호관찰소 등록 |
- 관찰소별 관리 - 법무부 |
- 서울지역 5개 보호관찰소 - 무직청소년으로 등록자 (약1,000명) |
소년원 입소 |
- 원별 관리 - 법무부 |
|
기타 상황 |
※ 기숙형 학원 등록 / 홈스쿨링 / 아르바이트 / 히끼꼬모리 / 아무일 하지 않는다 등등 |
이는 결국 구체적인 사유에 근거한 대책수립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으며, 계속되는 정책적 실패를 낳고 있다.
(2) 학업중단의 주요 요인
첫째는 제도권 교육의 문제이다. ‘교육=경쟁’의 논리로 교육 본연의 임무는 간 곳 없고 오직 상위 10%의 아이들의 성공신화를 위해 다수의 아이들이 들러리를 해야 하는 현행 제도권 교육의 문제가 1차적인 원인이다. 여기에서는 다수의 아이들이 소외될 수밖에 없으며 개개인의 개성과 인권이 존중되는 것은 고사하고 비민주적이고 억압적인 질서만이 있을 뿐이다.
둘째는 빈곤층 및 가족해체로 인한 문제이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학업을 중단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또 극심한 양극화 현상으로 인해 빈곤에 기인한 가족해체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청소년들을 돌봐야하는 사회적 안전망은 부족하다. 요즘 청년 노숙인이 증가하고 있다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학업중단 경험이 있는 청년들이라고 한다. 결국 학업중단은 OECD 보고서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빈곤의 대물림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셋째는 날로 증가하고 있는 각종 스트레스로 인한 청소년들의 개인적, 심리 정서적 어려움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청소년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낙관보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다가 과도한 문화적 자극과 소외의식, 현실과 가상세계 사이의 혼동 등은 원만한 관계형성에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3) 학업중단 이후의 경로
유 형 |
경 로 |
학교요인(1) |
학업부진→학교일탈(게임, 학업흥미 상실, 비행 및 무단결석)→ 장기(반복)결석→ 칩거→ 재수(시험준비)→ 장기실업(비정규직) |
학교요인(2) |
왕따(집단 괴롭힘)→ 전학반복→ 자퇴→ 검정고시(대안학교)→ 부적응→ 칩거→ 게임중독(은둔형 외톨이) |
가족요인(1) |
학대방임(가족해체)→ 가족으로부터 방출→ 학교 중도탈락→ 비행(불법취업)→ 사회적 낙인→ 취업(사회적 기회)상실→ 빈곤화→ 학대방임가정의 형성 |
가족요인(2) |
학대방임(가족해체)→ 가족으로부터 방출→ 기관입소→ 가족복귀→ 기관전전→ 자립기반 실패→ 기관에서 퇴출→ 생존적 취업(동거)→ 성인기관 입소(경계적 적응)→ 사회부적응 |
개인요인(1) |
외향적장애→ 반복적인 징계→ 정학(퇴학)→ 징계프로그램 실패→ 알바(인터넷게임, 폭주)→ 성인범죄(실업, 노숙) |
개인요인(2) |
내성적장애→ 불안(공포, 우울)→ 무기력→ 무존재감→ 학교흥미상실→ 칩거(게임) |
(4) 학업중단 대책의 반복적 실패 요인
우선 학교가 아이의 정서적 문제와 행동적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 전반적으로 학업중단 아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하게는 대응방식이 지나치게 개인상담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또 아이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실생활 반경을 충분하게 알고 못한 채 대책을 강구해 왔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빈곤의 어려움, 학교문화에 대한 반감, 가족을 잃은 정서적 어려움 등의 요인을 바탕으로 정확한 대응을 준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상담을 중심으로, 학업을 중심으로, 청소년들이 무료해 하는 이론적 진로교육 등을 반복했기 때문에 실패를 거듭해 온 것은 아닌지 반성적 평가가 필요하다.
3. 학업중단 청소년에 대한 대안적 제언
(1) 경쟁과 서열중심의 교육을 바꿔야 한다
우리사회의 교육은 철저한 약육강식의 늪이 되어가고 있다. 경쟁만을 앞세우는 입시지옥 속에서 아이들은 성적의 노예가 된다. 시험으로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기하고 점수가 인격을 대신하는 야만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1등을 하는 아이 외에 모든 아이들은 반복되는 패배와 열등감을 내면화하며 자라고 있다. 이것이 학업중단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것이 지속되는 한 학업중단 현상을 지속될 수밖에 없다.
등수는 인격이 아니다. 서열 중심주의는 인간을 노예화하는 파렴치한 교육관이다. 점수와 등수로 환원되는 ‘경쟁’을 ‘교육’이라 믿는 허상을 깨뜨려 한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학교를 등지는 아이들의 숫자는 현격히 줄어들 것이라 확신한다.
(2) 학교로 돌아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흔히 학교로 다시 복귀하는 것만이 능사인 것처럼 말한다. 학교라는 제도에 아이들이 모두 잘 적응해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학교에 잘 맞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음을 인정한다면 해결방식도 더 넓게 열리게 된다.
아이들은 학업중단을 함으로써 겪게 되는 심리적 고통과 진로불안, 사회적 고립감, 진학이나 취업 등의 고민을 갖는다. 이러한 문제 상황에 대해 학교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다양한 방식을 통해 그들이 학습하고 자립하여 민주적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중요하다.
(3) 학습자의 권리, 청소년의 인권에 주목하자
비록 학교에서 나왔지만 엄연히 이들에게도 천부인권으로서의 교육받을 권리는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학교에 다니지 않기에 받게 되는 사회적 편견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이들의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학교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학습과 성장이 가능하도록 따뜻한 사회적 배려와 돌봄이 있어야 한다. 학교를 떠나더라도 가정에서 교육의 기회를 펼칠 수 있도록 가정학교(Home schooling)를 활성화 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했으면 한다. 또한 청소년도 엄연한 인격체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적 풍토가 형성되어야 하겠다.
(4) 지역사회가 나서야 한다
학교는 이제 아이들의 문제를 학교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아울러 지역사회는 어려움에 처해있는 지역 청소년들을 지역사회가 돌봐야한다는 공동체의식으로 학교-가정-지역사회간의 지역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지역사회가 연계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문제이다. 자발적으로 지역의 주민들이 모여 작은 것부터 모범적인 사례를 만드는 것이 우선 중요하며, 정부와 지자체는 이러한 자발적 흐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5) 아이들의 실체에 접근하는 다양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우선 학업중단 청소년들의 정확한 현황파악을 위한 실태조사와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들이 학교 밖에서 대체 무엇을 하면서 지내는지, 어려운 점은 무언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아야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잘 이해하고 구태의연한 방식이 아닌 아이들의 감성과 눈높이로 기꺼이 멘토가 되어 줄 다양한 전문가들이 주변에 필요하다. 또한 많은 예산을 들여 새로운 것을 하기보다는 기존의 자산을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존 청소년수련관, 위탁 또는 비인가 대안학교, 청소년 자활기관, 야학, 공부방, 쉼터 등 다양한 공간을 새로운 상상력으로 재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인터넷상에서 학업중단 청소년들이 안정적인 성장과 자립을 할 수 있도록 소통, 상담, 교육, 관계 맺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매우 적절할 것이다.
(6) 새터민,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도 관심 쏟아야
새터민과 다문화가정 학생의 학업중단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나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고 오히려 민간차원에서 대안학교(한겨레학교, 셋넷학교, 자유터학교, 여명학교, 아세아공동체학교 등)를 설립하거나 다문화가정 지원프로그램(간디교육연구소)을 전개하고 있다.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지역에서 들어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성원임에도 불구하고 뿌리 깊은 폐쇄성과 차별의식이 이들의 적응을 어렵게 하고 있으며, 아이들 또한 제도교육 체계에 부적응하는 사례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사회의 새로운 소수자인 이들에게도 각별한 배려가 요구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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