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스스로 더 이상 차별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7년 동안의 기나긴 투쟁 끝에 장애인의 오랜 숙원인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이 2007년 4월에 제정되었다. 장애인으로 살아온 40여 년의 삶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그 중심에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장추련)의 297개 단체와 수없이 차별받아 온 장애인의 삶이 있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후 장추련에서 활동했던 이들은 “우리가 가는 길이 역사다”며 장애인의 인권보장과 삶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2008년 4월1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장차법은 채 1년이 못 되어 좌초의 위기를 맞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와 권리구제 업무를 전담하는 장애인차별시정소위원회를 국가인권위원회 내에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행정안전부(행안부)는 지난 11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직축소와 지방사무소 폐쇄 방침을 발표했다. 사실상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무력화하는 행위다.

2008년 4월 장차법이 시행된 이후 진정 건수가 696건으로 2007년의 두 배를 넘는다. 장애 차별 진정을 했지만, 진정 사건 조사 시작을 알리는 연락 한번 받아보지 못한 장애인이 부지기수이다.

인권위원회 조사관들의 노고를 고려한다 해도 스멀스멀 분노가 치민다. 장애 차별에 대한 권리구제가 현재의 인권위원회 인력만으로 실현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권위원회 조직 축소와 지역사무소를 폐쇄한다는 행안부의 통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한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인권침해는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많이 일어난다. 서울에 위치한 국가인권위만으로는 대다수의 권력이 수도권에 집중된 한국 상황에서 인권침해 구제와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 지역사무소는 인권침해의 시각지대(정신병원, 노인, 부랑시설 등)에 대한 현장성과 신속성을 높이고 면전 진정을 하여 인권을 증진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우리 지역에서는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등을 통해서 이미 지역사무소의 역할과 필요성을 절감했다.

더구나 지역사무소 개설 후 진정, 상담, 안내민원 등에서 지역사무소의 역할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지역사무소를 폐쇄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소외계층의 인권을 신경쓰지 않겠다는 의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또한 일상적인 인권교육 부재로 인한 지역민의 인권의식 향상과 인권침해 예방효과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장애인의 이동권 등을 고려할 때, 오히려 사무소가 없는 각 시·도에 하루라도 빨리 지역사무소를 설치해야 할 것이다.

김용목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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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여름, 아스팔트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던 그 때 나는 천막농성장에서 여름을 보냈다. 청각장애 학생들의 성폭력사건에 대한 진상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 사건에 대해 책임지는 곳이 없던 터라 구청으로, 시청으로, 시교육청으로 쫓아다니던 터였다.

몸도 마음도 지쳐갈 즈음 국가인권위에서는 인화학교에 대한 권고안을 발표하였다. 시청에 대해서는 인화학교의 우석법인 임원들의 해임명령을, 교육청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수화능력향상을 위한 노력과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운영을, 검찰에는 성폭력범 6인·성폭력사건 은폐혐의로 2인을 고발하였다.

단일학교에서 가장 많은 교직원이 성폭력에 가담하였고 가장 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당하였던 희대의 성폭력사건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인화학교의 아이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세상의 외진 곳에서 나쁜 어른들에게 시달렸던 그 이야기는 지금도 나를 잠 못 이루게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관공서는 없었다. 개인의 일이었고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었고 심지어는 인화학교의 교직원들의 인권도 보장해야 하기에 이 사건을 탁구 치듯 교육청에서 시청으로, 시청에서 구청으로 떠넘기기 바빴으며 수사기관의 수사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었다. 상처에 몸부림치는 여린 아이들을 위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줄 곳이 없다는 것, 아이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은 피가 솟구치는 분노이고 절망이었다.

절망의 바닥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손을 뻗은 곳이 국가인권위였다. 진정서를 내고 직권조사가 결정되고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가장 고마웠던 것은 우리의 이야기를, 인화학교 동문들의 이야기를, 아이들의 끝없는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것이었다. 40여년의 학교역사에서 일어난 일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고 하나 하나 가슴 아프고 기가 막힌 이야기들이었다. 40여 년 묵은 이야기들이니 오죽했으랴? 국가인권위 조사관들은 다른기관 공무원들이 들으려 하지 않았던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사를 해나갔다. 긴 조사와 깊은 논의 끝에 내놓은 인권위의 권고안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힘이 되었다. 영원히 묻힐 뻔한 인화학교의 사건들은 이렇게 해서 사회에 알려졌고 이후 우리 사회에 많은 과제를 남겨주었다.

국가인권위를 두고 현 정권은 여러 궁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가만히 두고 있기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니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고치든지 아니면 아예 기를 꺾어놓을 심산인 것 같다.

억울함을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작은 도움의 손길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또한 무시당하고 짓밟히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것이 그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의 품격을 높이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인권위를 축소하려는 현정권에 강력하게 맞서야 한다. 이곳 광주에서 피로 지킨 인권과 평화와 민주를 그렇게 호락호락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국가인권위를 우리가 지켜야 한다.

윤민자 <인화학교성폭력 대책위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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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30% 조직축소를 내용으로 하는 행정안전부의 조직개편안이 최종 통보되었다.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49%를 줄이겠다는 행정안전부의 안에 반대하며 기자회견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마치 시장에서 물건값 흥정하듯이 행정안전부는 30%를 제시한다.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와 친 시장주의자임을 외치는 이명박 정부다운 모습이다.

하지만 과연 인권위가 그렇게 흥정할 수 있는 기구일까? 국토해양부, 지식경제부, 기획재정부 같은 정부조직들과는 근본부터 다른 조직이 바로 국가인권위원회다.

명박산성에 둘러싸여 법치주의에 질식되는 국민들에게 인권위는 최소한의 산소공급을 담보하는 기구였다.

모두가 `Yes!’라고 입을 맞출 때 `No!’를 말하는 정부기구, 그것이 촛불국면에서 본 국가인권위원회의 모습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광주=5·18’을 떠올리겠지만, 장애인권 활동가들은 좀 다르다. 아니 적어도 나이 스물에 광주로 내려온 5·18 이후 출생자인 내게 있어 광주는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으로 연결된다.

`광주=인권의 도시’로 연결되는 일반적인 도식은 내게 있어 20여 년 전의 오래된 도식으로 느껴진다. 전국 최하위 수준의 장애인권 현실은 `예산 타령’에 반쯤 꺾이고 `무관심’에 싹이 밟힌다.

여성이라서 장애인이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이거나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속절없이 감내해야 했던 차별들을 진정하고 하소연할 출구가 바로 인권위였다.

인화학교 문제가 그 출구로 빠져나갈 수 있었고, 화장실조차 제대로 갈 수 없는 시청 건물의 문제가 빠져나갈 수 있었으며 수 천 건의 문제들이 3년 여 동안 드러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출구가 지금 행정안전부의 조직축소로 막히려 하고 있다. 광주, 대구, 부산에 설치된 인권위 지역 사무소는 폐쇄되고 진정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기본적인 인력의 ⅓이 줄어들 판이다.

지금도 부족한 인력 때문에 진정하고 조사될 때까지 한 세월인데 지역 사무소가 폐쇄되면 조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서울에서 조사관이 내려와야 한다는 얘기다.

일상적이고 구조적인 차별은 사람의 생명을 한순간에 빼앗을 수 있음을, 2006년 광주의 중증장애인 동사 사건은 보여준다. 뉴타운 이름 앞에 한겨울 길바닥으로 나앉아야 하는 이들의 몸부림이 법치주의란 미사여구 아래 새까만 죽음으로 변할 수 있음을 용산참사는 보여준다.

인권위는 법치주의니 `기업 프렌들리’니 하는 정권의 냄새 나는 불순물이 섞이지 않아야 하는 곳이다.

이 사회의 차별받는 모든 이들을 위해, 30%가 아닌 0.00003%라 할지라도 행정안전부에 의한 조직축소는 용인될 수 없다.

행정안전부의 막돼먹은 가위질 앞에 인권위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관심과 행동이 필요한 지금이다.

도연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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