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2008년, 정권이 바뀌면서부터 들었던 생각이 있다. 역시 지금도 역사는 진보하는구나, 거꾸로 말이다. 작년에 촛불로 모여들었던 시민들, 올해 용산에서 벌어졌던 살인철거 그리고 올해도 멈추지 않는 학교내의 수많은 인권침해들….

모든 개인의 인권보호를 목적으로 세워진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할일은 여전히 많음에도 행정안전부는 인권위 조직 축소방침을 내며 ‘인권의 시계’는 거꾸로가는 이명박 정부의 인권위에 대한 개념수준을 알려주었다. 인권위가 국가의 어느기관에도 간섭받지 않는 독립기관임을 알고 있다면 벌일 수 없는 일이다.

인권위 조직은 확대되어야 한다. 정부의 성향이나 수준을 고려해볼때 작년 촛불정국 현장에서도 볼 수 있었듯 인권에대한 개념이 경악스러울정도로 부족하다.

그런 정부에서 인권위 축소 방침이 나왔으니 사실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인권위가 할 일이 아직도 많다는 것은 인권위 진정건수를 통해서도 알 수 있으며 인권실태까지 고려해 볼때 인권위의 인력은 오히려 확대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필자는 작년까지 ‘인권의 사각지대’중 하나인 중등교육과정의 학생이었다. 학교현장에서의 인권 상황은 너무 처참하다. 이른바 ‘학습’만을 강요당하는 학생들, 권위에 짓눌린 학생·교사들, 다양한 가치를 수용 못하는 단체생활 등 학교의 일상에서도 수많은 인권침해가 녹아들어 있다. 인권교육과 더불어 인권감수성 높은 학교를 위해서도 인권위 같은 곳이 할일이 많은 것이다.

인권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그곳에서 필자는 단 한 번도 ‘인권교육’이라 할 만한 것을 받지 못했다.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자체가 그닥 인권적이지 못해 인권교육이 따로 필요한 현실자체도 우스울 뿐이다.

인권위는 존속되어야 한다. ‘인권’이라는 가치가 모든이의 가슴속에 스며들고 또 모든이가 서로의 인권을 존중 받을때까지는 말이다. 정부 사람들은 인권위에 대한 축소 방침을 내놓기전에 자신들 뇌속의 인권감수성 농도부터 측정해보길 바란다. 언제까지 독립기관의 ‘개념’도 이해 못하며 맘에 안든다고 깔작거리기만 할텐가.

이뮤 <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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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스스로 더 이상 차별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7년 동안의 기나긴 투쟁 끝에 장애인의 오랜 숙원인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이 2007년 4월에 제정되었다. 장애인으로 살아온 40여 년의 삶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그 중심에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장추련)의 297개 단체와 수없이 차별받아 온 장애인의 삶이 있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후 장추련에서 활동했던 이들은 “우리가 가는 길이 역사다”며 장애인의 인권보장과 삶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2008년 4월1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장차법은 채 1년이 못 되어 좌초의 위기를 맞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와 권리구제 업무를 전담하는 장애인차별시정소위원회를 국가인권위원회 내에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행정안전부(행안부)는 지난 11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직축소와 지방사무소 폐쇄 방침을 발표했다. 사실상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무력화하는 행위다.

2008년 4월 장차법이 시행된 이후 진정 건수가 696건으로 2007년의 두 배를 넘는다. 장애 차별 진정을 했지만, 진정 사건 조사 시작을 알리는 연락 한번 받아보지 못한 장애인이 부지기수이다.

인권위원회 조사관들의 노고를 고려한다 해도 스멀스멀 분노가 치민다. 장애 차별에 대한 권리구제가 현재의 인권위원회 인력만으로 실현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권위원회 조직 축소와 지역사무소를 폐쇄한다는 행안부의 통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한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인권침해는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많이 일어난다. 서울에 위치한 국가인권위만으로는 대다수의 권력이 수도권에 집중된 한국 상황에서 인권침해 구제와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 지역사무소는 인권침해의 시각지대(정신병원, 노인, 부랑시설 등)에 대한 현장성과 신속성을 높이고 면전 진정을 하여 인권을 증진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우리 지역에서는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등을 통해서 이미 지역사무소의 역할과 필요성을 절감했다.

더구나 지역사무소 개설 후 진정, 상담, 안내민원 등에서 지역사무소의 역할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지역사무소를 폐쇄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소외계층의 인권을 신경쓰지 않겠다는 의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또한 일상적인 인권교육 부재로 인한 지역민의 인권의식 향상과 인권침해 예방효과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장애인의 이동권 등을 고려할 때, 오히려 사무소가 없는 각 시·도에 하루라도 빨리 지역사무소를 설치해야 할 것이다.

김용목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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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여름, 아스팔트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던 그 때 나는 천막농성장에서 여름을 보냈다. 청각장애 학생들의 성폭력사건에 대한 진상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 사건에 대해 책임지는 곳이 없던 터라 구청으로, 시청으로, 시교육청으로 쫓아다니던 터였다.

몸도 마음도 지쳐갈 즈음 국가인권위에서는 인화학교에 대한 권고안을 발표하였다. 시청에 대해서는 인화학교의 우석법인 임원들의 해임명령을, 교육청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수화능력향상을 위한 노력과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운영을, 검찰에는 성폭력범 6인·성폭력사건 은폐혐의로 2인을 고발하였다.

단일학교에서 가장 많은 교직원이 성폭력에 가담하였고 가장 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당하였던 희대의 성폭력사건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인화학교의 아이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세상의 외진 곳에서 나쁜 어른들에게 시달렸던 그 이야기는 지금도 나를 잠 못 이루게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관공서는 없었다. 개인의 일이었고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었고 심지어는 인화학교의 교직원들의 인권도 보장해야 하기에 이 사건을 탁구 치듯 교육청에서 시청으로, 시청에서 구청으로 떠넘기기 바빴으며 수사기관의 수사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었다. 상처에 몸부림치는 여린 아이들을 위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줄 곳이 없다는 것, 아이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은 피가 솟구치는 분노이고 절망이었다.

절망의 바닥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손을 뻗은 곳이 국가인권위였다. 진정서를 내고 직권조사가 결정되고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가장 고마웠던 것은 우리의 이야기를, 인화학교 동문들의 이야기를, 아이들의 끝없는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것이었다. 40여년의 학교역사에서 일어난 일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고 하나 하나 가슴 아프고 기가 막힌 이야기들이었다. 40여 년 묵은 이야기들이니 오죽했으랴? 국가인권위 조사관들은 다른기관 공무원들이 들으려 하지 않았던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사를 해나갔다. 긴 조사와 깊은 논의 끝에 내놓은 인권위의 권고안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힘이 되었다. 영원히 묻힐 뻔한 인화학교의 사건들은 이렇게 해서 사회에 알려졌고 이후 우리 사회에 많은 과제를 남겨주었다.

국가인권위를 두고 현 정권은 여러 궁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가만히 두고 있기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니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고치든지 아니면 아예 기를 꺾어놓을 심산인 것 같다.

억울함을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작은 도움의 손길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또한 무시당하고 짓밟히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것이 그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의 품격을 높이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인권위를 축소하려는 현정권에 강력하게 맞서야 한다. 이곳 광주에서 피로 지킨 인권과 평화와 민주를 그렇게 호락호락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국가인권위를 우리가 지켜야 한다.

윤민자 <인화학교성폭력 대책위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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