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여름, 아스팔트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던 그 때 나는 천막농성장에서 여름을 보냈다. 청각장애 학생들의 성폭력사건에 대한 진상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 사건에 대해 책임지는 곳이 없던 터라 구청으로, 시청으로, 시교육청으로 쫓아다니던 터였다.

몸도 마음도 지쳐갈 즈음 국가인권위에서는 인화학교에 대한 권고안을 발표하였다. 시청에 대해서는 인화학교의 우석법인 임원들의 해임명령을, 교육청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수화능력향상을 위한 노력과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운영을, 검찰에는 성폭력범 6인·성폭력사건 은폐혐의로 2인을 고발하였다.

단일학교에서 가장 많은 교직원이 성폭력에 가담하였고 가장 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당하였던 희대의 성폭력사건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인화학교의 아이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세상의 외진 곳에서 나쁜 어른들에게 시달렸던 그 이야기는 지금도 나를 잠 못 이루게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관공서는 없었다. 개인의 일이었고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었고 심지어는 인화학교의 교직원들의 인권도 보장해야 하기에 이 사건을 탁구 치듯 교육청에서 시청으로, 시청에서 구청으로 떠넘기기 바빴으며 수사기관의 수사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었다. 상처에 몸부림치는 여린 아이들을 위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줄 곳이 없다는 것, 아이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은 피가 솟구치는 분노이고 절망이었다.

절망의 바닥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손을 뻗은 곳이 국가인권위였다. 진정서를 내고 직권조사가 결정되고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가장 고마웠던 것은 우리의 이야기를, 인화학교 동문들의 이야기를, 아이들의 끝없는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것이었다. 40여년의 학교역사에서 일어난 일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고 하나 하나 가슴 아프고 기가 막힌 이야기들이었다. 40여 년 묵은 이야기들이니 오죽했으랴? 국가인권위 조사관들은 다른기관 공무원들이 들으려 하지 않았던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사를 해나갔다. 긴 조사와 깊은 논의 끝에 내놓은 인권위의 권고안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힘이 되었다. 영원히 묻힐 뻔한 인화학교의 사건들은 이렇게 해서 사회에 알려졌고 이후 우리 사회에 많은 과제를 남겨주었다.

국가인권위를 두고 현 정권은 여러 궁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가만히 두고 있기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니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고치든지 아니면 아예 기를 꺾어놓을 심산인 것 같다.

억울함을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작은 도움의 손길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또한 무시당하고 짓밟히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것이 그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의 품격을 높이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인권위를 축소하려는 현정권에 강력하게 맞서야 한다. 이곳 광주에서 피로 지킨 인권과 평화와 민주를 그렇게 호락호락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국가인권위를 우리가 지켜야 한다.

윤민자 <인화학교성폭력 대책위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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