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도서관 시민 개방’ 사회적 목소리 높아지지만 대학들 공간 부족, 도난 우려 등의

이유로 소극적… “대학은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악순환을 끊고 ‘교육문화 공간’으로서 도서관 기능 복원해야”


2014년 12월31일 오전 10시,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서울시립대 중앙도서관 앞.

학교는 한적했다. 오가는 학생은 거의 없고 지역주민이 자전거를 타거나 개를 데리고 산책하고 있었다. 서울시립대가 끼고 있는 배봉산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노년층이 대부분이었다. 도서관을 드나드는 학생 수는 손에 꼽혔다. 1시간에 10명이 채 안 됐다. 1988년에 건립된 도서관은 6488m² 규모의 4층 건물로 국내외 장서 85만5279권과 열람석 1420석을 갖췄다(2012년 12월31일 기준). 이곳이 ‘대학도서관 개방’ 논란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2014년 9월23일 오전 11시, 서울시립대의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 업무보고 현장. 맹진영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주민 건의사항”이라며 이건 총장에게 이렇게 묻는다.


‘도서관 시민 개방’ 예산 지원 받지만


맹 의원: 국립대 일부는 지역주민한테 도서관 일부를 개방해주고 있는 걸로 안다. 열람도 하고 대출도 해주고. 시립대는 주민 대상으로 그런 것이 없나?


이 총장: 도서관장의 허락을 받으면 할 수 있게는 돼 있다. 몇 명이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런 절차가 있다. 그런데 우리 도서관이 굉장히 협소하고 작은 편이다. 설혹 개방이 된다고 하더라도 자리잡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맹 의원: 자리 열람하는 것까지는 말고 대출 정도는 적극적으로 고려해주면 좋겠다.


이 총장: 그렇게 하겠다.


맹 의원: 왜냐면 사립대인 경희대나 중앙대도 일부는 해주고 있다. 주민 입장에선 우리 세금으로 운영되는데, (서울)시립대가 너무 전향적이지 않다는 얘기가 많다. 학생이나 교수들 연구하는 데 방해될 정도가 아니고 적절한 규모에서(개방해달라).


서울시의회는 서울시립대 예산 심의 과정에서 도서관 지역주민 개방을 전제로 서울시립대에 예산 1억7천만원을 추가로 배정했다. 1억원은 휴먼라이브러리(책 대신 사람을 빌리는 사람책 도서관) 사업비, 7천만원은 시민 도서 구입비다.




»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이 2014년 11월5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이날 “지역주민에게 개방하지 않는 서울시립대·서울교육대·광주과학기술원 도서관은 국민의 알 권리, 교육받을 권리, 평등권, 국민추구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뉴시스


2014년 11월5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이 대학도서관을 지역주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라며 국공립 도서관인 서울시립대·서울교육대·광주과학기술원 도서관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냈다. “대학도서관이 지역주민의 대출 및 열람실 이용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 교육받을 권리, 평등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으로 위헌이다.” 박고형준 상임활동가는 “대학도서관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지원 등 사회적 비용으로 만들어졌다. 공공기관이므로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학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지식을 생산하고 그것을 사회에 환원하려고 설립된 곳이다. 정보를 독점해 학벌,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악순환을 끊고 ‘교육문화 공간’으로서 도서관 기능을 복원해야 한다.”


“스터디룸은 평소에도 자리가 없는데…”


서울시립대 재학생들과 중앙도서관은 반발한다. 서울시립대 총학생회와 사서과가 2014년 11월27일부터 12월2일까지 학생 835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 85%(713명)가 “도서관 (시민) 개방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찬성한 응답자는 1.7%(15명)에 그쳤다. 반대 이유로는 △공간 부족 △구립도서관 이미 존재 △물품 훼손·도난 우려 △성범죄·노숙자 출입 우려 등을 꼽았다. 김규성 중앙도서관장은 “대학도서관은 학생 학업과 교수 연구를 위해 설립된 곳이다. 따라서 학교 구성원, 특히 학생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 게 우선이다. 개방에 따른 연쇄적 문제는 계속 발생하기 마련이다”라고 비판했다. “연쇄적 문제”를 김정규 사서과 과장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책별로 한두 권밖에 비치돼 있지 않다. 시민들에게 도서 대출을 허용하면 학생들이 당장 수업과 학습에 필요한 책을 빌리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학생은 도서 반납을 하지 않으면 졸업을 못하는 등 실질적 제약이 있지만 시민에게는 특별한 제재가 어렵다. 도서 반납을 안 할 때 대처하기 어렵다.” (<서울시립대신문> 12월18일)


조창훈(24·철학) 총학생회장은 “왜 굳이 대학의 본질인 연구와 학습이라는 목적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공공성 확보를 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지민(21·국어국문)씨는 “(도서관) 규모가 작아서 시험기간에는 학생들이 이용하기에도 불편한데 시민에게까지 개방하면 문제가 많다”고 반대했다. 하아무개(23·자연과학)씨는 “스터디룸은 평소에도 자리가 없다. 이대로 개방하면 시민도, 학생도 다 같이 불편해진다”고 우려했다.


대학도서관 개방을 둘러싼 20대의 여론은 비슷하다. 전경석(29)씨는 “열람석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대학생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이라고 했다. 열람석 좌석은 실제로 충분하지 않다. 1995년에 전체 대학도서관 좌석당 평균 인원이 4.2명이었는데, 2013년에는 좌석당 평균 5.4명으로 법정 기준인 5명 조건도 충족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대학생 수는 늘었지만 그에 비해 도서관 열람석 좌석은 확충하지 않아서다. 김지민(26)씨는 “공공도서관이 부족하다면 그 책임은 지자체나 지역도서관에 돌려야 한다. 그렇다고 대학도서관을 개방하라는 것은 남의 집 정원에 들어가겠다는 것과 비슷하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1관당 인구수는 선진국의 절반 수준이다. 자료구입비도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우리나라 대학도서관은 공공도서관보다는 나은 상황이지만, 미국 대학도서관과 비교하면 역시 열악하다. 연간 자료구입비는 5분의 1, 소장 도서는 3분의 1, 직원 수는 10분의 1 수준이다.


미국 대학도서관은 1960년대부터 지역주민에게 문을 열었다. 1천여 개 대학도서관을 대상으로 개방 현황을 조사한 1967년 미국 논문을 보면, 지역주민에게 95%가 열람을, 85%가 도서 대출을 허용하고 있었다. 대부분 무료였다. 지역주민의 도서관 이용이 급속히 늘어나자 이후 유료로 전환했다. 2010년 기준으로 예일대학 서고 출입만 해도 하루 10달러를 내야 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은 1년 500달러, 6개월 350달러를 받았다. 졸업생은 각각 150달러, 90달러로 깎아준다. 컬럼비아대학은 1개월 열람 55달러, 대출 100달러였다. 켄트주립대학은 16살 이상 지역주민에게 대출을 허용하는데 연간 30달러의 이용료를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도서관 개방 논의가 1990년대에 불붙어 2000년대에 활발해졌다. 근거는 헌법과 도서관법이다. 헌법 제3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5항은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도서관법 제7조 3항은 “대학도서관 등은 그 설립 목적의 수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 안에서 공중이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 및 도서관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제43조 2항은 도서관은 “모든 국민이 신체적·지역적·경제적·사회적 여건에 관계없이 공평한 지식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돼 있다.


개방 조건이 까다로운 국공립대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대학에 도서관 개방 요구가 빗발쳤다. <한겨레> 2004년 11월16일치에 독자 박순필(전북 전주시 송천동)씨가 쓴 글을 읽어보자. “요즘 학교 여기저기서 ‘국립대학교 도서관을 개방하라’는 대자보가 눈에 띈다. 1968년 프랑스의 소르본대학이 노동자들에게 24시간 도서관을 개방했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지식의 공중성은 오래전부터 추구돼온 중요한 사회적 가치다. 이미 선진국의 많은 대학들은 주민들에게 도서관을 개방함으로써 지역의 주체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의 대학 당국도 더 이상 대학도서관 현실론만을 문제 삼아 개방을 지루하 게 끌 것이 아니라 열람실을 확충하고 양서를 축적하는 데 노력해 하루빨리 도서관 개방에 자발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서울대(2000년) 등에서부터 하나둘 대학도서관 문이 열렸다. 2012년 현재 전체 대학도서관 433곳 가운데 48%(208곳)가 지역주민에게 개방하고 있다. 국공립대는 71.2%(47곳), 사립대는 43.9%(161곳)이다. 2005년(39.3%)과 비교하면 국공립대 개방 비율은 2배 가까이 늘었다. 지역별로는 강원도와 충남이 80% 전후로 높고 광주와 서울이 25%대로 낮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국공립대가 더 폐쇄적으로 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남대 문헌정보학 박사과정 정대근씨는 논문 ‘대학도서관 외부이용자제도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2011·한국도서관 정보학회지)에서 “외견상으로는 개방이 확대되는 듯 보이지만 개방 조건이 오히려 까다로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공립대 대학도서관 현실을 2007년과 2010년을 기준으로 각각 비교해보니, 첫째 이용료가 비싸졌다. 지역주민에게 이용증을 무상 발급하던 대학도서관은 예치금을 받거나 그 금액을 올렸다. 이용료 부과로 바뀐 곳도 생겼다. 예치금·연회비·도서관발전기금 등을 내야 도서관 이용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금액은 3만·5만·10만·20만원으로 천차만별이다. 둘째, 평균 대출권수는 3.6권에서 3.4권으로 줄었다. 지역주민의 대출권수와 대출기간을 축소했기 때문이다. 지역주민을 학생과 동일하게 대우하는 대학도서관이 2007년 44%에 달했는데, 2010년에는 16%에 그쳤다. 76%가 학생보다 낮은 대우를 한다.


논문은 또 대학도서관을 지역주민에게 개방하면 ‘학생 학습권 제약’이나 ‘도서 분실’ 등 “연쇄적 문제”가 발생한다는 서울시립대의 주장이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걸 보여준다. 2000년부터 지역주민에게 대학도서관을 개방한 A대학의 사례를 분석해보니 그랬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예치금 5만원을 내고 A대학도서관에서 이용증을 발급받은 지역주민은 3202명이었는데 이 중 A대학 졸업생이 51%(1631명)였다. 이용자의 평균연령은 30.8살로 20~30대가 89%를 차지했다. 또 44%(1415명)가 평균 571일(1년7개월) 만에 도서관 이용을 중단했다. A대학 졸업생들이 취업을 준비하려고 대학도서관을 한시적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졸업생에게도 폐쇄적인 대학도서관


1인당 대출건수는 지역주민(20권)이 학생(15권)보다 많지만 이용하는 책이 달랐다. 문학을 공통적으로 많이 대출했지만 학생은 법학·경영학·경제학을, 지역주민은 영어·교육학·경제 등을 주로 이용했다. 특히 대출권수 대비 연체율은 학생(20%)보다 지역주민(15%)이 낮았다.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석사과정을 밟은 김예찬(29)씨가 경험담을 말했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면서 대학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었다. 등록금을 내고 대학 구성원으로 살아왔는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됐다. (대학도서관을 지역주민에게 개방하면) 재학생이 단기적으로 불편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그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강예슬·천다민 인턴기자


■참고 문헌: ‘대학도서관과 지역사회의 상호협력에 관한 연구’(박원형·2012), ‘학습기능의 중심축으로서 대학도서관 개방 방안’(김선이·김윤섭·2011), ‘대학도서관 외부이용자제도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정대근·사공복희·2011) 


한겨레21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87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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