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칼럼은 학벌없는사회 광주시민모임과 무관한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


지역사회의 변화, 발전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며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많은 광주지역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조직을 떠나거나 장기 휴식을 취하는 일이 최근 들어 많아지고 있다. 세대를 이어갈 젊은 활동가들이 시민운동계를 떠나가고 있어 비슷한 동년배 활동가로서 마음이 아프다. 한 친구는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몸이 좋지 않아 그만 두었고, 다른 한 친구는 복귀 이후 열심히 활동하나 싶더니 돌연 사직했다. 또 구속을 강요하는 조직 보다는 자유로운 활동을 원한다며 그만둔 친구까지…. 각자 다양한 사연들로 제 역할을 찾지 못하고 차근차근 시민단체를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갈수록 시민운동이 노령화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위기상황에서, 그나마 기대를 갖고 버티고 있던 청년활동가들 마저 그만두니, 지금처럼 젊은 시민운동가의 수급이 절실할 때가 없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시민단체 활동에 발을 들이기도 힘들다.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과 성찰, 토론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하루 이틀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월급도 변변치 않은데 평소에 사회적인 문제의식과 지식, 쪽팔림을 감수하고 다양한 행동까지 하라고 하니, 단순한 직장의 개념으로 지망한 사람들에겐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청년활동가들 그만두는 시민사회


 즉 시민운동가는 자기 삶의 지향으로서 만들어가는 충분한 과정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만한 투철한 희생과 봉사정신이 있기에 직업으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투철한 희생만을 강요할 수는 없다. 물론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이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그렇다고 자기 인생의 많은 부분을 쪼개가면서 일을 하기엔 그 댓가가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로 많은 시민운동가들이 그만두는 이유 중 하나가 경제적인 부분임을 무시할 수 없다. 예컨대 광주의 모 여성단체는 최저임금도 안주며 법정근로시간을 지키라 하고, 또 다른 광주의 모 청소년단체는 야근수당도 안주면서 청소년과 함께 하는 저녁 프로그램을 진행하길 강요한다.


 물론 대다수 우리가 알고 있는 시민단체는 가난하기 때문에 각종 수당과 임금을 줄 여유가 많지 않다. 그렇다하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휴일을 마련해주거나, 근무시간을 줄이는 방법은 고려하면 안 되는 것인가? 급속도로 진화하는 사회에 발맞춰 대응해야 하는 많은 사회문제들이 존재하지만 그것들을 일일이 쫓아가며 대응하기엔 시민운동 세력이 많이 위축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결국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제대로 해결하는 게 시급할 것인데, 시민단체들은 무엇에 목말라 있는지 규모에 넘치는 많은 사업들을 따와 성과를 돋보이려 하고 있다.


 그렇다고 사업을 집행하는 노력만큼, 현안문제에 대해 거세게 요구하거나 끈질기게 문제해결에 전념하는 것도 아니다. 대다수 광주 시민단체들이 지자체 보조금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지자체에 대한 비판이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며, 때문에 팔이 안으로 굽고 있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시민단체가 해야 할 비판과 대안을 내세우지 않으므로 인해 시민단체의 정체성은 흐려지고, 사업계획서 작성과 결과보고서, 정산서 제출 등 잡다한 행정업무에만 집중하다 보니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 곳에 일하는 활동가들은 처음 시민단체를 들어오게 된 목적과 개인적 삶의 지향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고, 집중된 행정업무, 과도한 근무조건 등으로 인해 지쳐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활동가들 살뜰히 살피고 조직 점검할 때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하지 않는 조직의 태도이다. 특히 시민단체장들은 지금의 세대활동가처럼 시민운동을 경험했거나 지원해왔던 선배들인데, 그런 과거들은 잊고 자기 명분과 조직의 명예를 위해서만 일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솔직히 말해, 얼마나 사업비를 가져오는지를 통해 조직의 성과를 판단하고, 어떻게 하면 공공기관에 제휴하거나 입성할까 협상하며, 행사에 머리 수 채우고 자기 이름 알리는 데 사활을 거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면 수평적인 시민단체의 수장이기 보다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조직의 우두머리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는 사이, 이미 조직은 피폐해지고 활동가들은 비전도 못 찾고 시간과 생계에 쪼들리며 건강마저도 잃는 것이다.


 최근 광주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5·18기념재단에서 조직개편을 위해 무기계약을 앞둔 계약직 사원을 해고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역량있는 청년활동가들을 붙잡아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조직 구성원들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대표자의 권한을 이용해 일할 기회마저 빼앗아버린 단체의 결정이 안타깝기만 하다. 언제까지 그 놈의 조직타령만 할 것인가? 이미 이빨 다 뽑히고 잇몸만 남은 광주 시민단체들이 허다하고, 많은 활동가들이 불안하고, 답답한 시민단체를 떠나거나 주변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이 2015년을 새롭게 계획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시기인 만큼, 조직의 사업규모·성과를 따져가며 다양한 일들을 진행해 가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더 늦기 전에 함께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살뜰히 살피고, 조직과 개인의 삶의 지향을 다시 한 번 점검하면서 함께 나아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 본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광주 시민단체 대표들, 활동가들과의 진심어린 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박고형준<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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