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을 축하합니다. 서울대 OOO, 이화여대 OOO, 연세대 OOO, (○○여고)’
‘서울대 3년 연속 수시합격, 2009년도 O명 합격 (□□고)’
‘서울대 1차 합격 OOO, OOO, 포항공대 합격 OOO (△△고)’  


한국사회에선 이런 문구들이 전혀 낯설지 않다. 매년 대학합격자 발표가 나면, 해당학교에서는 학교를 선전하기 위해, 시골 군·면 단위에는 부모들이 자녀들을 축하하기 위해, 도심 학원가에서는 입시경쟁으로 방황하는 학생들을 잡기 위해, 특정대학교 합격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거는 것이 관행이 되었기 때문. 소위 이런 대학교들이 사회적으로 명문대라는 칭호로 축하받아야 할 일인가보다. 뭐~ 12년간 입시경쟁의 노예에서 해방되고 대학생이란 새로운 신분을 얻었다는 것은 축하해야 될 일이지만... 글쎄... 굳이 특정대학교 합격자만 축하하는 이유는 뭘까? 이에 광주지역 시민단체들은 특정대학교 합격 게시물이 인권침해가 있다고 판단하여 2009년 1월 14일 국가인원위원회 광주지역사무소에 인권침해 진정을 넣었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교육의 이념을 버린 학교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2조의 교육이념을 살펴보면 교육은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의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이바지해야 한다는 보기 좋은 목적으로 두고 있다. 뭐~ 입시학원에서야 교육이념과 상관없이 영리만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서 현수막과 전광판 등을 내세워 자랑을 한다지만, 공교육의 현장인 학교에서마저 이러한 행위를 한다는 것은 학교가 스스로 교육이념을 포기하고 입시학원이 되겠다는 선전용인가?

글을 쓰며 광주광역시 교육청의 홈페이지를 둘러봤다. ‘학생중심 으뜸교육’, ‘아름다운 품성과 창의성을 갖춘 글로벌 인재육성’ 말 그대로라면 학생들의 개성을 살리고, 다원화와 민주화적인 학교를 생각하겠지만, 한국 교육의 실태는 그렇지 못하다. 특정대학교 합격자수를 두고 학교를 평가하는 이중적인 모습들, 이를 중재해야 할 교육당국마저 말리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암묵적으로 특정대학 합격생 배출을 학교의 존재이유로 경쟁의 기준으로 삼고 있으니 교육의 목표는 홍보 게시용인가?

이젠 고등학교도 모자라, 광주 어느 사립중학교는 ‘상산고(자립형사립고) 합격’을 축하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국제중 설립, 마이스터고 설립, 자립형사립고 확대 등... 정부의 정책대로 흘러가다간, 특정 중고등학교로 입학시키기 위한 입시경쟁이 심각해질 것이고, 학벌의 뿌리는 초등교육까지 깊숙이 파고들 것이다. 조만간 초등학교 현장에서도 ‘국제중’ 합격 현수막을 내걸진 않을까 내심 걱정이다.

죽음으로 내모는 학벌주의

한국사회가 학벌사회이라 자칭한지 오래되었고, 결국 중·고등 교육과정이 대학교 진학을 위한 필연인 ‘대학졸업사회’가 되었다. 올해 통계청에서 발표한 ‘향후 10년간 사회변화 요인분석’자료에서 앞으로 대학진학률이 84%에 육박한다니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한 이들 모두가 대학교를 진학하는 것은 아니다. 취업, 재수, 유학 등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도 있다. 그럼에도 학교는 똑같은 졸업장을 받는 학생들 중 특정대학교 합격자에겐 축하를 하는 행위를 일삼고 있다. 이는 명백한 성적차별, 학력차별, 학벌차별(다함께 차차차)이다.

이런 학벌사회의 폐해는 고3학생에 그치지 않아, 교사-학생의 잘못된 만남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정대학 외에는 할 말이 없는 교사와 그걸 억지로 받아드리는 학생들 간의 관계는 결국 지식을 주고 파는 경제적 관계가 되었고, 결국 교사는 학생들에게 학습을 강요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생선가게를 지키는 고양이가 된 셈이다.

‘대학수능 성적 비관으로 인한 재수생 자살...’

매년 대학합격자 발표가 나면 특정대학교 합격 축하받는 현수막 뿐만 아니라, 성적비관으로 자살하는 학생들(수험생)의 뉴스도 낯설지 않다. 이처럼 특정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는 패배감은 성적에 대한 좌절감 그리고 자살로 되풀이 되고 있다. 어느 대학을 가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의 결정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을 거다. 더 이상 헛된 억울한 희생양이 생겨서는 안 되고, 매게가 되는 특정대학교 합격 현수막, 홈페이지 팝업창 등은 당장 사라져야 할 대상1호다.

마무리하며

사회적양극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교육으로 인한 양극화는 사회 양극화의 핵심요인이 되고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옛말이 되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열심히 공부하면 가난에서 벗어나고, 집안도 살려 계층 상승의 수단으로 인식되었지만 이제는 교육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심화로 인해 오히려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때에 학교에서조차 민주시민으로서의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기 보다는 오직 경쟁에서 승리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승자독식의 법칙을 가르친다면 대다수의 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자긍심이나 자신감보다는 어두운 미래에 대한 심리적 위축감을 먼저 가질 수밖에 없다.

교육은 교육주체들 간의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꿈꾸지 않으면 이란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거” 이제 교육은 단순히 몇 명 어느 대학 보내기 위한, 승자독식 학습이 아닌 꿈을 이야기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 이 글의 작성자는 학벌없는사회 광주모임(준) 활동가 박고형준 님이며, 국가인권위원회 잡지 '월간 사람'에 기고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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