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사회에 맞서 행동에 나서자


2015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전날인 어제, 한 고3 청소년이 안타깝게도 성적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3 수험생 투신자살’, ‘수험생, 수능날 투신자살로 안타까운 삶 마감’과 같은 적나라한 제목의 기사들이 보도되었는데 살펴보면 사건이 벌어진 년도와 기사가 쓰인 날짜만 다를 뿐, 매년 같은 내용을 담은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렇게 매년 수능을 전후로 죽음을 선택한 청소년을 다루는 기사들 중 한 가지 주목해볼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수험생’이다. 수험생의 뜻은 말 그대로 ‘시험을 치르는 학생’이다. 우리 사회에서 고등학교 3학년은 곧 수험생이다. 오로지 대학을 가기 위해 수능을 준비하는 사람. 대학이 목표인 학생. 청소년 시기에는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발견하고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인격을 쌓아야한다고 우리 사회가 그리 말해왔던가?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대학’이라는 목표 아래 이 모든 것은 쓸모없다는 것을. 그래서 고3은 곧 수험생이며 대학은 꼭 가야만 한다는 것을. 대학순위 배치표에서 좀 더 앞서 자리한 대학,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이름 있는 대학에 들어가야만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조금이나마 남들보다 나은 스펙을 하나 더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대학을 간다고 해서 졸업 후 곧바로 나은 삶이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쯤은 안다. 입학과 동시에 1학년부터 취업준비를 해야 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안정적인 직장에 다닐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역시 없다. 하여 자살한 고3 학생을 다룬 기사를 접하면 안타까운 마음에 ‘대학, 그게 뭐라고 자살을...’이라며 한마디씩 하기도 한다. 대학은 현실 속에 우리를 제압하는 허상이다. 


그러나 답이 보이지 않는 허상은 더욱 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나만 가지지 않기에는, 내 아이만 예외를 선택하기에는 이 사회는 대학 졸업장이 없는 개인에게는 여전히 잔인한 곳이다. 직장에서, 캠퍼스 안에서, 오랜만에 나간 동창모임에서, 연애와 결혼시장에서 학벌을 무시할 수 없음을 안다. 그래서 대학 졸업장을 얻는다고 하여 내 삶이 그다지 행복할 것 같지 않지만 당장의 목표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청소년들은 낮밤 가릴 것 없이 학교와 학원에서 입시공부에 매달리고, 학벌사회의 무서움을 밥벌이에서 경험한 학부모들은 빠듯한 월급을 쪼개거나 부러 빚을 내가면서까지 자녀를 학원가로 밀어 넣는다. 대학생들 중 상당수는 조금 더 서열이 높은 대학에 편입하기 위해 반수나 재수를 하고,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은 졸업을 미루거나 대학원을 진학하여 청년실업률 통계에서 벗어나려 마지막 몸부림을 쳐보지만 불안한 현실과 미래는 좀처럼 바뀔 것 같지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년 수능철마다 이러한 비극을 바라보고만 있어야하는가?


 수능날인 13일 아침 대학 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이하 투명가방끈)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학입시와 학벌주의에 담긴 이 사회의 차별과 경쟁의 논리에 반대하며 3명의 청(소)년이 대학을 거부하는 선언을 하였다. 물론 대학거부만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현실에서 대학을 거부한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기에 가치가 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함께 거부하자고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투명가방끈은 우리에게 대학이 무엇인지 물었다. 대학을 나와서 경쟁에서 이기지 못했다면 너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다그치는 이 사회를 향해서 과연 모두가 학벌과 스펙으로 능력을 증명해야만 삶을 영위하는 것이 가능한 이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인지 용기로 맞서며 되묻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사회에는 수많은 투명가방끈들이 존재한다. 어떠한 사정이 있어서든 남다른 목적을 가져서든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못한)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학교생활을 중단한 학교밖 청소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대학에서 캠퍼스가 다르거나 과별 수능점수 레벨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학생들을 비웃거나 손가락질하는 대학생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남의 일이 아니라고 느껴진다면 이미 우리는 투명가방끈이다. 


이제는 대학이 어떠한 의미인지 우리 스스로 질문을 해보고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하면서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이다. 서열화된 대학을 평준화하기 위해 제시된 국립대 네트워크 및 수능 자격고사화와 같은 대안을 도입하여 대학 문턱을 낮추고 궁극적으로 출신학교에 의한 학벌 차별을 없애야한다. 대학 공공성을 강화하고 무상등록금으로 대학 교육 비용을 개인이 부담하게 하기보다 국가가 책임져서 누구나 원한다면 고등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학 진학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사회를 바꾸어 나가야한다. 대학은 기업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취업준비소가 아닌 본연의 학문연구 기능을 하도록 되살려야하며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필수가 아니라 열린 선택의 장으로 만들어야한다. 배움은 대학 바깥 그 어디서나 존재해야하며 대학을 가지 않고도 평생 배움의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한다. 


이 많은 일들이 당장 실현되기는 어렵겠지만 투명가방끈인 듯 투명가방끈 아닌 투명가방끈 같은 우리가 조금씩이나마 움직인다면 언젠가는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학벌없는사회 역시 이 사회의 투명가방끈들과 함께 학벌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14.11.13 학벌없는사회,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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