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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광주드림_인권과 인권이 만났을 때 2013.07.26

   광주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3주가 넘게 광주광역시교육청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단순하게 교육청 앞에서 진행하는 천막농성이 아닌, 교육감실 점거농성이라는 높은 수위의 직접행동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청에서 일하는 장학사들은 매일 같이 돌아가며 당번을 서며 이례적으로 비상근무체제에 들어간 상황이다. 그동안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이 교육청을 상대로 각종 문제제기와 요구했던 사례를 비교하면, 이번 노조에서의 행동은 장휘국 교육감 취임이후 최고 수위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농성을 강행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영어전문강사 제도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한 때 유행어인 ‘오~렌지’를 기억하는가? 이명박 정권의 영어교육 프렌들리 정책에 의해, 전국 약 6200여 명의 영어전문강사가 학교 비정규직으로 채용된 바 있다. 현재 4기까지 운영 중인 영어전문강사 제도는 1년마다 강사들이 재계약으로 갱신해왔다. 문제는 이 중 2009년 채용된 1기 영어강사가 한 학교에서 근무가 가능한 4년을 채워 당장 오는 8월부터 계약이 만료된다. 1기 영어전문강사들의 재고용을 보장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법으로 4년 이상 재고용이 불가능하다는 단서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영어전문강사는 쓰고 재생 불가능한 휴지조각 인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제도로 인해 강사들만 노동권의 피해를 받는 것은 아니다. 바로 학생·교사들의 학습권 문제도 있다. 전교조 입장 중 일부 강사의 전문성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가 영어교육을 강화,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행 당시, 진보적인 교원단체나 시민, 학부모단체에서는 영어전문강사 제도는 말만 바뀐영어몰입교육이고 비판한 적이 있다. 학생들에게 영어라는 또 하나의 학습고통을 주며, 입시경쟁을 부추기는 비교육적인 교과학습구조를 만들기 때문이다. 비단 이 비판은 지금까지도 학교 안 밖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영어전문강사의 노동권과 학생·교사들의 학습권이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건 불가피한 상황일까? 물론 교육부가 영어전문강사 제도를 지속하거나 무기계약 등 고용안정 대책을 내놓았을 경우 상황은 좀 더 여유로워질 수 있다. 그러나 여유를 보는 건 영어전문강사들 뿐이다.


 한편으로 학생·교사들의 학습권에 대해서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이미 영어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도입취지가 무색하게 오히려 영어 사교육이 더욱 번창해 영어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영어중도탈락자 발생 등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게 돌이킬 수 없는 영어교육의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영어가 수능에 한 몫 하면서, 다른 과목은 ‘기타’과목으로 취급받고 있는 것 또한 또 다른 현실이다.


 이 제도에 문제제기하는 교사, 학생, 강사는 모두 학교구성원이다. 영어전문강사 제도 도입 초기부터 강사해고 문제와 영어몰입교육 문제가 맞물릴 것이라고 학교구성원들이 예상했다면, 갑작스럽게 일어난 지금의 상황을 대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점쳐본다. 서로 과거를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머리를 맞대어 보자는 얘기다. 물론 두 개의 인권이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때, 생각처럼 그 프레임을 뛰어넘어 사고하거나 권리를 옹호할 수 있는 논리들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모든 인권의 역사에서 보듯이 우리를 멈추게 했던 현실론을 뚫고, 권력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을 뛰어넘었을 때, 비로소 가려져 있던 권리에 다가설 수 있었다. 


 이것은 소통하는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고 힘이다. 지금이라도 영어전문강사와 학생, 교사 모든 학교구성원들의 소통을 통해 두려움 없이 함께 의견을 나누고 찾아가는 시도들이 필요하다.


박고형준<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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