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년"이라고 했던가. 이런 구호를 외치며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비리를 저지르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립학교 구(舊)재단 인사들에게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그 자신이 사학 개혁에 반대하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간 적이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권을 잡자마자 분규를 겪은 임시 이사 체제의 대학들을 '정상화'하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다. 사학 재단 인사들은 대개 이 전 대통령의 충실한 후원자들이기도 했다. 


2009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조선대, 세종대, 상지대, 대구대, 동덕여대, 광운대, 경기대, 덕성여대 등 사학 분쟁을 겪은 대학들이 차례로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의 테이블에 올라갔다. 그로 인해 비리 사학 재단 관계자의 '귀환' 등 해묵은 문제들이 다시 불거졌다. 


역사가 거꾸로 가고 있다. 보다 못한 대학교수들이 나서서 '사학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회(사해연)'를 만들고 <사학 문제의 해법을 모색한다>(실천문학사)라는 책을 냈다. 사해연과 <프레시안>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오히려 수십 년 전 논쟁을 반복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 사학들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3번째 포럼이 조선대 문제로 열렸다. 


'사학의 민주적 운영과 대학교육의 공익성조선대 문제를 중심으로' 토론회는 지난해 12월 18일 방송통신대 3층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김성재 조선대 교수의 발제문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심각한 갈등 속의 조선대학교


1946년 7만2000여 명의 광주전남 시도민(설립동지회)의 성금으로 설립된 호남의 대표 사학인 조선대는 2008년부터 정상화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민립대학으로서 조선대는 1988년 부정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구경영진이 '1.8항쟁'으로 대학에서 추방된 후 20여 년 동안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조선대는 임시이사 체제를 마감하고 정이사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혼란의 시기를 맞게 된다. 대학이 신청한 정이사를 승인하지 않은 교육부와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이하 사분위)의 업무태만으로 2008년 6월부터 6개월간 이사 부재 상태를 경험했다. 그 후 구경영진의 방해로 2009년 다시 6월 임기 임사이사가 파견되었다. 그리고 2010년 말에서 2011년 2-3월 동안에 '구경영진 : 대학구성원 및 교육부 추천 이사' 비율 '5:4'라는 사분위 원칙에 따라 정이사체제가 구축되었다. 정이사체제는 구경영진 일가 추천 3인, 구경영진(직전 이사 자격) 2인, 교육부 추천 2인 그리고 학교 구성원 추천 2인의 이사 등 총 9인으로 구성되었다.


2012년 2월 교육부 추천 이사 남궁근 교수가 자신의 재직대학(서울과학기술대) 총장으로 선임되면서 사퇴하자 궐석이 된 이사 몫으로 대학정관에 명시된 개방이사3인 중 1인을 추천받기로 이사회의 결정이 났다. 그러나 대학평의회에 설치된 개방이사추천위원회는 재적위원 2/3 찬성이 필요한 개방이사 한 명을 일 년이 넘도록 추천하지 못했다. 그 후 개방이사추천위원회는 의결방식을 과반수 찬성으로 바꾸어 궐석 이사 몫의 개방이사 후보자와 함께 나머지 2인의 개방 이사 후보자까지 복수 추천했다. 그러나 이사회는 일년 넘게 과반수 찬성을 얻지 못해 궐석 이사 몫의 개방이사와 2인의 개방이사 선임은 지금까지 미결 상태로 남아 있다.


이사회는 2013년 6월 궁여지책으로 개방이사 몫을 정이사로 선임하기로 결정하고 2013년 9월 30일 조선대 총동창회장을 정이사로 선임했다. 하지만 구성원 대표들(대학평의회, 직원노조, 총학생회)은 소위 구경영진 일가와 야합한 '비리이사'가 추천했고, 사립학교법 상 궐석 이사는 개방이사로 먼저 충원해야 한다는 강제규정을 이유로 그의 선임을 반대하고 있다. 현재 정이사로 선임된 총동창회장은 그의 이사 선임을 반대하는 교수평의회 의장과 이사 1인이 제기한 직무정지가처분신청이 광주지방법원에 의해 인용되었고, 총동창회가 불복함으로써 현재 본안 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 11월말 교육부는 승인이 보류된 총동창회장을 제외하고 개방이사를 포함한 나머지 8명의 정이사를 빠른 시일 내에 선임하지 않으면 임시이사를 파견하겠다는 경고장을 이사회에 보냈다. 3년 임기의 제1기 정이사체제는 2013년 3월로 그 임기가 끝났지만, 아직까지 제2기 정이사체제를 구성하지 못한 채 민법 상의 '긴급처리권'을 행사 중이다. 그 원인은 사분위로부터 이미 정이사로 임명된 구 경영진 가족 측 이사 3명을 주축으로 한 대학복귀 음모에 있지만, 그보다는 2011년 실시된 총장선거에서 발생한 구성원들 간의 갈등과 차기(2016년) 총장 선임과 맞물린 대학 구성원들의 내부분열에 있다.


험난한 대학 정상화 과정


재단 이사회 구성을 둘러싼 조선대 정상화 문제는 2005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임시이사제도를 개선하라는 지적을 받은 교육부의 전국 실태조사에서 시작되었다. 교육부는 2005년 11월 1일부터 4일까지 조선대를 방문하여 운영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2006년 4월 학교법인 조선대를 임시이사 파견사유 해소대학으로 분류하고, 2006년 6월 30일까지 정상화 방안을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이는 당시 임시이사체제 18년 동안 투명하고 민주적인 대학경영과 눈부신 대학발전의 결과다.


교육부의 요구에 따른 조선대학교 법인 정상화는 연세대와 같은 '공영형 이사제도'를 모범사례로 삼아 진행되었다. 당시 구성원들이 내건 정이사 추천 4대 원칙은 1) 구 경영진(박철웅 일가)의 철저한 배제, 2) 대학 설립정신 구현, 3) 1.8항쟁의 민주화운동 정신 계승 4) 미래지향적 가치충족이었다. 이 원칙에 따라 학교법인 조선대는 2007년 12월 광주시청, 광주시교육청, 시민사회 대표와 학교법인 조선대학교 구성단위 15인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구성해 정이사 후보자 10명을 2008년 1월 교육과학부(사분위)에 추천했다. 그리고 사분위는 운영규정에 따라 조선대의 설립 주체 규명, 종전 이사의 의견 청취와 법적인 정당성 등을 검토한 후 조선대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해 정이사를 선임하기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사분위는 비리와 범법행위로 대학에서 물러난 4개 대학의 구 경영진(조선대, 상지대, 세종대, 광운대 등)의 이념공세('좌파')와 대학에서 추방된 비리사학 경영진들과 밀접한 유착관계가 있다는 혐의를 받았던 정부여당의 보이지 않는 압력을 받아 갑자기 방향을 선회했다. 잠정적인 임시이사 파견이 그것이었다. 이를 반대하는 구성원들은 "저지! 임시이사, 쟁취! 정이사"라는 구호를 내걸고 교육부 항의 방문과 시위로 수차례 상경투쟁을 전개했다. 1년 4개월 동안 정이사 선임을 미루던 사분위는 부정부패와 비리로 추방된 구경영진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선 임시이사 파견, 후 정이사 선임'의 원칙 아래 2009년 4월 광운대와 조선대에 6개월 임기 임사이사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교과부가 사분위에 일방적으로 통보한 조선대 임시이사 후보 18명의 명단은 구경영진과 관계된 인사들, 한나라당의 대선 공신들 그리고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사분위가 최종 선임한 7명의 조선대 임시이사는 위의 인사들 중에서 선택된 자들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목격한 조선대 구성원들은 지난 정권(참여정부)에서 임명한 몇몇 진보적 성향의 사분위 위원들의 임기가 2009년 말 종료되면 정부여당이 임명한 위원들이 구경영진의 요구에 따라 정이사를 선임할 것이라는 우려를 떨치지 못했다. 그래서 조선대 구성원들은 교과부의 임시이사 파견을 반대하고 비리집단의 학교 복귀저지를 위해 2009년 4월부터 1개월 동안 천막농성을 펼쳤고 다시 수차례 교육부를 항의 방문하는 상경투쟁을 전개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과부는 2009년 12월 31일 사분위로부터 추천받은 정이사 7명의 명단을 통보했다. 9명의 정이사 중 미결정된 구경영진 일가 추천 몫인 2명은 제2기 사분위가 구성된 이후인 2010년 2-3월에 결정되었다. 이로써 22년간의 임사이사체제는 끝나고 제1기 정이사 체제가 출범했다.


불행의 씨앗은 총장선거와 구경영진 추천 이사 1인


2011년부터 임기가 시작된 정이사체제는 구경영진 일가에서 추천한 3인의 이사들에 대한 구성원들의 극단적인 반대에 부딪혀 단 한 번도 이사회를 교내에서 개최할 수 없었다. 초창기 서울과 광주의 호텔을 오가며 개최된 이사회는 대학 집행부와 크게 대립하지 않으며 대학경영의 법적 주인으로서 역할을 다 했다. 사분위의 이사회 구성 원칙, 곧 구상구경영진 이사와 나머지 이사 5:4의 비율은 2011년 9월 총장선거가 실시되기 전까지 구경영진 일가의 복귀를 견제하는 6:3으로 변경되었다. 이는 사분위가 구경영진으로 분류했던 직전 이사 2명이 박철웅 일가와 협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문제의 발단은 총장선거에서 연임을 계획했던 전총장이 결선투표에서 2위를 했지만(예비선거에서는 1위), 이사회의 결정으로 1위 득표 후보자(7인의 나머지 후보들과의 담합에 의한 결과)를 제치고 재임했으나 1개월 만에 저항에 부딪혀 사임했다. 그 후 부총장이 총장직무대리를 맡아 운영되었던 대학은 차기 총장선거가 실시될 때까지 약 1년 가까이 구성원들 간의 갈등으로 혼란을 겪어야 했다. 전총장의 재임을 반대하며 격렬한 시위와 현수막 등으로 대학을 혼란 속으로 몰아갔던 교수평의회와 노조의 대표들은 당시 4명(9명의 이사 중 구경영진 일가 추천 3인, 대학 추천 1인, 교육부 추천 1인의 이사는 소송에 참여하지 않음)의 이사들 및 총장직무대리와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피소되었다.


특히 소송을 제기했던 4명의 이사 중 구경영진(직전 이사) 추천 이사 1인은 총장선거 당시 총장추천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전총장 재임을 찬성했다는 이유와, 병원신축을 위한 건설회사 직원 5명을 부적절하게 채용함으로써 학교재정에 수억 원의 손실을 입혔고 통합석박사과정 진입시험에서 부정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비리이사'로 낙인 찍혀 이사퇴진을 강요받는다. 이 이사는 현재 대학원 시험부정으로 고발당해 재판을 받고 있다.


약 1년 후 다시 실시된 총장선거에서 2011년 1위를 했던 총장이 바뀐 선거규정에 따라 최다 득표자로 당선되어 현 총장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자신의 당선을 도왔던 교수평의회와 직원노조와 연대하여 이 한명의 이사를 퇴출시키고 궐석 이사 자리에 개방이사 1인과 나머지 개방이사 몫 2명 중 한 명을 추천하려는 시도를 1년이 넘게 진행해왔다. 그러나 이 이사 역시 다른 구경영진 추천 이사 1인(변호사)과 연대하여 법정투쟁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퇴진을 강력히 방어하고 있기 때문에 이사회 의결방식 상 제2기 정이사체제 구축이 어렵게 되었다. 현재 8명의 임기가 만료된 이사들이 자신이 연임(또는 타인을 추천해 자신의 지분 유지)되려면 자신을 제외한 과반수(4명) 찬성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구경영진 일가 3인 이사의 도움 없이는 누구도 이사직을 연임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소위 '비리이사'는 2013년 9월 30일 총동창회장을 정이사 후보로 추천해 다른 이사가 추천한 현 총장과의 경쟁에서 이겨(5:3) 정이사로 선임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 결과 구성원 대표들(교평, 노조, 총학)은 대학 추천 이사 1인과 함께 '비리이사' 퇴진을 계속 주장하고 있으며, 정이사로 선임된 총동창회장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며 법정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문제는 내부 분열


난국에 봉착한 이사회 문제를 푸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대학 집행부 및 대학 구성원 대표들을 이용해 대학의 주도권(차기 총장)을 장악하고 경제적·정치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는 교내외 세력이다. 교내 세력은 우선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이사들이고, 그 다음으로는 차기 총장 자리를 넘보고 있는 현 집행부 및 교수평의회 소속 몇몇 보직자들이다. 교외 세력은 전임 총장 또는 부총장을 역임하고 과거 민주당 또는 열린우리당에 적을 두었던 정치적 성향이 강한 퇴직 교수들, 1988년 1.8대학민주화 운동의 주체로서 현재 지역사회에서 정치적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조직인 '민주동우회' 그리고 소위 '민주교수'라고 불리는 퇴직 교수 등이다.


특히 외부 세력의 인물들은 현재 대학집행부 및 구성원 대표들과 결속하여 3인의 개방이사 후보자에 복수로 추천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1년이 넘게 이사회에서 대학 경영에 자질이 부족한 후보자들이라고 폄하되어 개방이사로 선임되지 못했다. 대학 내외부 세력의 이권다툼은 결국 이명박 정권 때부터 대학 복귀를 치밀하게 준비해온 구경영진 일가가 원하는 상황이고 제2기 정이사체제 구축을 방해하는 원인이 된다.


이러한 난국에서 의식 있는 교수들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조선대 분회를 중심으로 2013년 4월 임기 만료된 법인 이사회의 공백을 틈 타 구경영진과 영합한 세력이 제2기 이사회의 구성을 가로막고 있다는 성명서를 전구성원을 상대로 대학 홈페이지 게시판에 발표했다. 이 성명서에서 구경영진 이사들이 섞여 있는 현재의 이사회(긴급처리권행사 주체)는 이사들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해 새로운 이사회를 구성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민립대학의 설립정신을 구현하고 그동안 이룩해온 호남 고등교육의 성과를 국가와 시민사회로부터 인정받아 조선대학의 국립화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고민은 67년 동안 호남의 고등교육을 가장 앞장서 책임져온 조선대를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는 한 교육기관으로 보는 데서 출발한 것이다.


또한 구경영진 측 추천 이사 1명을 선임하려고 시도했던 2013년 7월 22일 이사회를 앞두고 조선대 민교협을 중심으로 77명의 교수들은 "구경영진 복귀 임박을 경고하며"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이사회가 모종의 담합으로 구경영진에서 추천된 이사 1인을 선임하든 아니면 교육부에 임시이사 파견을 요청하든 어떤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구 경영진의 복귀를 통해 대학을 다시 25년 전의 상황으로 되돌리는 불행한 일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만일 위와 같은 불행한 사태가 일어난다면, 구경영진의 복귀에는 침묵한 채 오로지 개방이사 선임 문제를 놓고 이사회와 비생산적으로 대립해왔던 현 대학집행부, 교수평의회, 노동조합, 총학생회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9월 30일 이사회에서 총장과 총동창회장 두 후보 중 총동창회장이 이사로 선임된 후 오랫동안 궐석으로 남아 있던 1명의 이사가 채워졌지만 대학 집행부와 구성원 대표들은 객관적 근거도 없이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총동창회장이 구경영진 측 이사 3명과 소위 '비리 이사파' 2명의 도움으로 선임되었으니 이제 대학은 25년 전 구체제로 회귀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들은 임기가 끝난 이사회의 이사 선임은 원천무효이고, 궐석이사 몫으로 개방이사 우선 선임이라는 사립학교법상의 강제규정을 들어 총동창회장에 대한 직무정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대학 집행부와 구성원 대표들이 오직 소위 '비리이사'와 개방이사 선임 문제를 놓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이사들과 격한 대립관계를 유지하면서 차기 이사회 구성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조선대 공영화가 답


조선대의 공영화(시립화 또는 국립화)에 대한 논의는 김대중 정부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조선대 시립화 문제는 1999년 7월 김대중 대통령이 초도순시차 광주를 방문했을 때 동행한 김덕중 교육부장관에 의해 처음 제기됐었다. 그러나 그 해 9월 고재유 광주시장은 광주시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의 광주시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이윤성 의원이 제기한 조선대 시립화 여부에 대해 현재 국가기관의 민영화 추세에 반하고, 매년 200억-300억 원을 시에서 지원해야 하는 만큼 광주시로서는 그만한 여력이 없으며, 본연의 시 행정 업무도 벅찬 상황이라 교육부에 난색을 표명했다. 그러나 고시장은 학교구성원과 시민 등 각계각층이 찬성할 경우 검토해 볼만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조선대 시립화 논의의 핵심 주체인 대학 구성원 대표들(교협의장과 노조위원장)은 당시 조선대가 시립화되면 동사무소 직원과 같은 신분이 되어 임금과 복지의 격감이 예상됨으로 격렬히 반대했고, 서명운동을 전개해 시립화 논의를 시작하려던 총장(서리)을 퇴진시켰다. 이로써 첫 번째 조선대 시립화 논의는 백지화 되었다.


두 번째 조선대 시립화 논의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3월 광주를 방문한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재단 운영 문제로 잡음이 일고 있는 조선대학교에 대해 광주 시립대학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며 광주시가 조선대를 인수해 아시아중심대학으로 만드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시작되었다. 진보신당 광주시당은 정병국 장관의 발언이 조선대 시립화 공론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 환영한다고 했다. 진보신당 광주시당 윤난실 위원장은 지방선거 당시 광주 시장 후보 공약으로 '조선대 정상화 방안은 시립대학으로의 전환'에 있음을 제시한 후 대학 구성원, 동문, 시민, 지자체 등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공론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조선대 시립화의 목적은 '민주적 교육기관으로서의 운영', '학부모들의 부담금 대폭 완화' 그리고 '지역 인재 양성'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 조선대 집행부는 이미 정이사체제가 수립된 마당에 시립화는 대학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조선대 시립화 논의는 2012년 6월 지역 시민단체들에 의해 세 번째로 제기되었다.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과 광주지역 대학생들로 구성된 '조선대학교 시립대 전환을 위한 시민포럼'은 "한국 최초의 민립대학인 조선대를 시민의 품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밝히면서 조선대 정문 앞에 현수막을 걸고 기자회견을 하였다. 이들은 "조선대가 시립화되면 민주적이고 투명한 운영은 물론 학문의 질적 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며 "각종 낭비 요인을 없애고 학비를 대폭 감면함으로서 학생과 그 가정이 등록금 문제로 고통받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더 나아가 획기적인 학사운영 방식과 유럽 선진대학의 제도를 도입한다면 더 이상 학생들이 입시에 좌절하고 고통 받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며 "광주뿐만 아니라 한국 대학교육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 서명운동을 비롯해 토론·강연회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제안 역시 총장 선거 후유증에 시달렸던 조선대 집행부에 의해 아무 이유 없이 거절되었다.


2007년 임시이사들이 정이사를 선임하는 것은 무효라고 판결한 소위 '김황식 판결'에 의해 한국 최초로 공영형 이사로 출발했던 상지대가 지금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이 판결은 공교육과 교육자치를 위해 노력해온 교육운동의 성과를 일거에 부정했으며, 지금 조선대가 안고 있는 이사회 문제도 이 판결에서 비롯되었다. 조선대가 우선 시립화된다면 대학교육의 공익성을 실현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지역사회의 여론은 조선대가 시립화되면 낮은 등록금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모집할 수 있으며, 광주시가 연 300억-500억 원 가량 지원하고 조선대의 막대한 재원을 잘 활용하면 모범적인 시립대를 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 역시 서울시립대처럼 반값 등록금에 대학을 다닐 수 있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조선대와 광주시 관계자들이 서로 합의하면 지금처럼 얽히고설킨 이사회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고, 한국 최초의 민립대학으로서 공영형 고등교육기관으로 부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더 나아가 시립화 단계를 거쳐 국립대로 전환된 인천대처럼 67년 동안 호남의 고등교육을 책임져온 조선대는 공공성과 공익성을 담보로 한 민주적인 교육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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