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연석회의의 기묘한 지방대 걱정

[주장] 단과대학생회장 연석회의 '서울대 분리이전 논의 중단 요구'를 비판한다

 

8월 13일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직무대행 2020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는 '지방대학 발전, 교육공공성 강화로 실현하라'를 발표했다. 성명서는 최근 행정수도 이전 논의에 부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학체제 개편논의를 서울대 분리이전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서울대 분리이전이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일이며 지방대학의 발전은 국공립대에 대한 국고지원 확대와 사학에 대한 공적통제로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명서 전문 https://www.facebook.com/snuchong/posts/4231215890283788)

고등교육에 대한 지원강화와 사학에 대한 공적통제와 같은 내용, 학생자치라는 발표주체 등으로 인해 언뜻 보기에 이 성명서는 개혁적인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학벌주의 교육체제의 정점인 서울대가 그 피해자인 지방대의 발전방안을 논의한다는 지점은 이타적이기까지 하다. 학벌주의 청산을 위해 노력해온 지방대 학생인 나로서는 이제 지방대 개혁도 서울대가 주도하려는 건지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그러나 이번 서울대 학생자치의 성명서는 기업인 단체가 하는 노동운동 걱정과 같은 것이다. 그들이 이런 주장을 발표할 때는 사실 개혁 움직임을 어떻게든 저지해보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이번 서울대 학생자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글은 서울대 학생자치의 성명서가 어째서 반개혁적인지, 이들의 숨겨진 의도와 전제하고 있는 세계관이 무엇인지 지적하고자 쓰였다는 점을 밝혀둔다.  
 
1. 종합대학 서울대학교는 신성불가침?
 
성명서는 가장 먼저 서울대가 분리이전되는 것이 단과대간의 유기적 결합을 훼손해 종합대학으로서의 역량을 저하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정책을 정치인들이 쉽게 설명한 것에 대한 트집에 불과하다.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정책은 모든 국공립대학을 하나의 체계로 통합한 후 각 학과를 특성화하여 지역별로 분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정책이며 독일과 프랑스 등에서 시행 중인 대학체제를 모델로 하고 있다. 서울대 학생자치의 주장은 정책에 대한 몰이해이거나 일부러 맥락을 숨긴, 매우 부정직한 것이다.
 
서울대 학생자치의 성명서가 일부 정치인들의 설명과정에서 생긴 오해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미 서울대의 학생들은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정책 등의 대학서열 철폐 정책에 대해 공공연한 반감을 표현한 적도 있다. 만약 성명서가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정책에 대해 종합대학에 대한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한 것이라면 이는 종합대학이라는 대학제도가 발생하고 변천해온 역사와 시민사회의 논의과정을 도외시한 주장이다.
 
근대 종합대학의 형성과 한국 고등교육의 시작
 
대학이 처음 등장한 것은 중세유럽의 도시였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자치권을 가진 도시에 협동조합 혹은 길드의 성격을 가진 대학을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은 교회나 국가 등의 권력에 포섭되어 자유로운 지식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권위적인 엘리트 양성기관으로 전락했다. 그 대신 인쇄 혁명을 통해 형성된 대학 밖 지식인들의 네트워크, 그리고 이 지식인들이 모여 토론할 수 있었던 아카데미 등이 학문의 발전을 이끌게 된다.
 
위기의 대학을 구출한 것은 19세기 독일 민족주의 국민국가였다. 당시 독일의 지식인들은 나폴레옹의 프랑스에 패배한 원인을 반성하며 프랑스의 아카데미나 전문학교 등에 대항할 고등교육 제도를 요청했다. 칸트의 대학론에서 시작된 독일 지식인들의 논의를 현실화시킨 것이 바로 훔볼트였다. 훔볼트는 기존의 강의 중심 대학을 세미나와 실험실의 도입을 통해 연구중심 대학으로 개혁했다. '그는 지식이 이미 규정된 부동의 것이 아닌, 교사와 학생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형성되는 것이라 생각했고' 1) 이를 위해 학생이 주체적인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고안해낸 것이었다.
 
훔볼트 모델은 곧 그 탁월성을 입증해 전 세계의 모범으로 인정받았다. 서양 세계의 변방에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던 19세기의 미국에서도 이 훔볼트 모델을 도입하려 했다. 그리고 이는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대학원 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구현되었다. 학부와 대학원의 구분으로 미국의 대학 제도는 대중적인 고등교육의 보급과 연구중심 고등교육으로의 발전이라는 목적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었다. 또한 전통에 영향을 더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던 유럽에 비해 미국 사회의 실용주의적 경향은 경영학과 시장화된 대학 모델을 발달시켰다.
 
근대화 초기 일본은 서양의 문명을 수입하고자 전문학교 형태로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단순히 서양의 기술을 따라잡는 것을 넘어 서양과 대등한 제국이 되어야 한다는 발상에서 이러한 전문학교들을 통합하여 종합대학인 제국대학이 탄생했다. 제국대학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설립되었으나 완전히 국가에 동화되지도 않는 자율성을 나름대로 구현해냈다는 점에서 독일의 훔볼트 모델이 전제하고 있던 위상까지 일본화하는 데에 성공했다.
 
일본이 제국으로의 도약을 본격화하면서 식민지인 조선과 대만에도 제국대학이 설립되었다. 식민당국 주도의 고등교육에 맞서 조선인들은 민립대학을 설립하려 했으나 조선총독부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인의 고등교육기관 설립 시도는 계속되었고 '조선인들은 사립대학이 아닌 사립 전문학교라는 차별적 지위를 견디면서 조선인에 대한 고등교육을 실시할 수 있었다.'2)
 
광복 이후 미군정은 사립전문학교의 설립자와 교수 등으로 조선교육심의회를 구성하고 이들로 하여금 고등교육 개편안을 심의하게 했다. '조선교육심의회를 주도한 핵심 인사 대부분은 미국 유학-기독교-한민당의 경력을 갖고 있었다. 또한 위원들 역시 대부분 친미-반공-보수 성향의 인사들이었다.'3) 이들은 제도는 물론 교육의 내용까지 미국의 것을 수입하려 했고 그 결과 발표된 것이 '국립서울대학교설립안(국대안)'이었다.
 
종합대학 서울대의 형성
 
국대안은 경성제대와 서울지역의 관립 전문학교들을 통폐합해 종합대학으로 만드는 한편 미국인으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미국인 교수와 교재로 교육을 실시하려는 계획이었다. 국대안을 구상하고 추진을 주도했던 미군정 문교부 차장 오천석은 '관립 전문학교에서는 보유 장서가 5만 권도 채 안 되는데 경성대학은 60~70만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서 고작 몇백 명의 경성대학 학생들만 혜택을 입고 있으며 고등교육기관 내 파벌주의를 청산해야 한다.'4)는 등의 대의를 역설했다.
 
그러나 국대안은 기습적으로 발표되어 구성원들의 의사를 무시했으며 미국에 의한 식민교육을 실시하려 한다는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게 되었다. 국대안 문제는 해방기의 학생운동과 지식인들의 좌우대립과 결합해 국대안에 반대한 과학자들의 김일성종합대 합류로 이어지기도 했다. 결국 미군정은 한국인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미국인 총장과 같은 부분을 수정하고 국대안 반대운동으로 퇴학조치된 학생들을 복학 조치하는 등 타협안을 내놓았다.
 
서울대가 지금과 같은 형태의 종합대학으로 거듭난 것은 군부독재 시절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1968년 '서울대학교 종합화 10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형식상으로는 하나의 대학이었으나 실제로는 네 곳의 단과대학으로 흩어져 있었던 서울대학교를 관악캠퍼스로 집중시켰다. 이와 함께 교육과정에도 개입하여 '실험대학'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대학교육의 질을 제고하려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결국 전자의 집중 부분만 성공하고 후자의 대학교육의 질 제고에는 실패했다.
 
근대 종합대학의 발상지인 독일과 미국, 그리고 이것을 수입한 일본과 한국의 역사에서 살펴볼 수 있듯 종합대학의 형성에는 민족주의 국민국가의 발전이라는 의도가 자리 잡고 있다. 독일과 미국에서는 이렇게 형성된 종합대학이 학문의 발전을 이끌기도 했으나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그것은 '세미나와 실험실 중심의 교육', '경영학과 같은 실용 학문의 적극적인 수용'과 같은 혁신적인 교육 패러다임이 전제된 것이었다. 종합대학에 투자를 집중시킨 것은 이것의 구현을 뒷받침한 것인데, 두 차례에 걸친 종합대학 서울대의 형성은 교육 패러다임의 혁신과 같은 학문은 없고 시설과 투자의 집중을 이용해 학벌만 남겼다.
 
학벌주의 대학체제는 교육과 학문의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했고 2000년대에 이르러 시민사회에서 대안정책인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가 제출되었다. 서울대 학생자치는 국공립대 통합으로 학과들이 지역별로 나누어지면 연구가 불가능한 것처럼 전제하고 있으나 대학 간 교류와 통신을 금지하지 않은 이상 필요한 학술 활동을 못할 이유가 없다. 대학서열이 없는 독일의 경우 대학마다 주력 분야가 다르고 같은 분야에서도 각 학파들이 거점으로 삼는 대학이 나누어져 있다. 또한 대학 간 전학이 가능해 학생은 자신의 전공이나 학문적 입장에 따라 대학을 선택하고 이를 바꿀 수 있다. 시민사회에서의 논의과정과 모델로 참조된 독일의 대학체제를 살펴본다면 서울대 학생자치의 종합대학 논의는 진정한 학문발전의 조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득권 지키기일 뿐이다.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와 함께 한국의 대학에는 기초학문 분야와 응용학문 분야를 분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앞서 밝혔듯 양자 사이에 필요한 학술교류가 있다면 설령 학교 조직이 달라도 못할 이유가 없다. 더 나아가 아예 대학강의 자체를 완전히 개방해버려서 수강 자체는 누구나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정말로 서울대 학생자치가 학문 간 유기적 결합을 중요시한다면 이런 제안을 제출해야 한다. 지금 한국의 대학들이 종합대학을 고집하는 것은 학문 간 유기적 결합 같은 이유가 아니라 학벌이라는 권력 집단을 형성하고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능한 성격이 다른 분야들을 조직상 분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종합대학이라는 형태는 오히려 해체되어야 할 개념에 가깝다.
 
2. 기득권 수호를 위해 움직이는 서울대 학생자치
 
서울이라는 특권
 


종합대학에 대한 주장 다음으로 성명서는 서울대의 분리 이전이 실현될 경우 그에 따른 이사로 구성원들의 삶이 흔들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서울이 학벌주의를 이용해 지역의 인재들을 빼앗고 있는 현실에 대한 고려가 결여된 주장이다. 지방의 학생이 서울지역의 대학에 진학해 비싼 월세와 열악한 주거환경에 처하는 것이야말로 삶이 흔들리는 문제이다. 지금 행정수도 이전 논의와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대학체제 개편은 이러한 서울집중을 해소해 지방의 발전과 인간적인 주거환경을 보장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보다 더 직접적으로는 대학 간의 전학이 자유롭게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결국 대학 기숙사 확충도 함께 논의될 수밖에 없다. 과도기에는 기숙사가 부족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방대학의 근처에서 자취방을 얻는 것이 훨씬 더 저렴하고 쾌적한 조건이다. 서울대 학생자치의 주장은 주거환경에 대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주장이며 대안도 될 수 없다. 이들의 주장은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에서도 쾌적한 주거환경이 가능한 재산을 가진 계층의 입장에 서 있다.
 
서울에서 지방으로의 이사가 자신들의 삶을 위협한다는 저들의 호들갑은 자신들에게는 학문이 중심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특권이 중심이라는 것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애초부터 서울의 철학도가 광주에서 철학을 공부하게 되면 그의 삶이 흔들리기까지 할 이유가 무엇인지 광주사람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진정으로 학문의 발전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국공립대 통합으로 인한 학계의 질서 재편과 드디어 한국에서도 학파가 등장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기만적인 대안 제시
 
자신들이 받을 것이라 예상되는 피해를 모두 늘어놓은 뒤 성명서는 지방대 발전을 위해서 지방거점국립대를 중심으로 한 고등교육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높은 사립대학 비율과 사립대학의 부패를 지적하고 정부가 이를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있다며 비판한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하는 대안과 사학에 대한 입장은 자신들이 발 딛고 있는 학벌이 사학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요소임을 망각하고 있다.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가 섣불리 확대되지 못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대학교육이 공공재가 아니라 사유재산이기 때문이며 이는 결국 대학을 공립도서관처럼 완전히 개방하지 않는 한 해소될 수 없다. 대학이 학벌의 권력과 부의 세습을 정당화하는 현실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국고지원은 빈부격차를 세금으로 가속하는 꼴이다. 학벌주의에 대한 언급을 쏙 뺀 채 국고지원 확대만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계속 누리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는 주장이다. 특히 지방거점국립대학교를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하라는 강조는 그야말로 자신들의 학벌주의적 세계관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교육개혁의 대상으로 사학을 지목하는 것은 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자신들의 책임을 은폐하고 시선을 돌리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교육개혁의 핵심목표인 대학서열 철폐와 사립대학 공영화를 못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학벌주의자들이 자신들은 노력했으니 평생 특별대우를 받아야 함을 주장하고 사학재단들이 사유재산의 자유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이라도 없으면 교육개혁에 진전이 생길 것이다. 따라서 서울대 학생자치가 정말로 사학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학벌주의 철폐에 나서서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확대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는 일에 일조해야 한다.
 
우려스러운 행보
 
서울대 학생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들은 대학서열 철폐에 대한 아주 작은 가능성에도 늘 호들갑을 떨며 과잉된 반응을 보여왔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에서는 청년 대 민주당의 구도를 만들기 위해 이를 부추겨 왔으며 이번에도 그러고 있다. 보수언론을 매개로 학벌-사학재단-보수정당의 반교육개혁동맹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대의 학생자치는 학벌에 기반해 있으면서도 학벌주의 수호를 공개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았던 체면조차 벗어던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첫 번째 대선 도전 때부터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정책을 공약했고 당선 직후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된 김상곤 교수는 자신의 임기 내에 반드시 이를 달성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었다. 그러자 서울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마치 자신들의 제도의 피해자인 양 선전이 시작되고 지방대의 SNS 커뮤니티에서는 여러분의 정든 모교가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로 사라질 위기라는 선동이 나타났다.
 
2019년 조국 전 법무장관 반대시위는 그야말로 순수혈통수호 운동이었다. 학벌의 잣대로 보면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청산 대상임에도 이들은 굳이 조국 전 법무장관만을 특정해 공격하는 협소한 구도를 만들었다. 이들의 주장은 사회정의를 내걸고 있지만, 결국 비서울대 학생과 대학 밖 시민들의 참여를 제한하는 데에서 순수혈통수호라는 그 의도가 드러났다. 그때 정말 궐기했어야 했던 것은 학벌에서 배제된 전체 시민이었고 외쳐야 했던 구호는 대학서열 철폐여야 했다. 서울대라는 정체성은 누구를 비판할 입장이 아니라 비판받아야 할 대상이었다.
 
3. 학벌주의와 청년 정치
 
김태년 원내대표를 시작으로 문재인 대통령 등의 정치인들이 행정수도 이전을 다시 꺼내 들었을 때 나는 오히려 이들이 학벌주의 청산이라는 자신들의 약속을 점진적으로나마 어떻게든 실현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벌주의는 서울중심주의와 결탁한 지배체제이기 때문에 둘 중 하나가 먼저 흔들리면 나머지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대 학생자치의 성명서는 이러한 수도 이전 논의가 목표하고 있는 한국사회 기득권 해체에 자신들도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상한 구호가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시대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것은 학생자치와 청년계층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자신은 아직 권력을 누려보지 못했다고 여기는 청년계층의 반성 능력 상실이 반개혁의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 학벌주의자들의 억울함이란 근본적으로 하나회 소속 초임장교의 억울함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기득권 체제에 진입했다는 개인적인 사정이 사회구조에 대한 개혁을 가로막을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는데, 지금 서울대의 일부 학생들은 그 두 개를 뒤섞어버리고 있다. 또한 이들의 주장과 관점이 청년의 목소리를 참칭하며 청년 정치로 둔갑하기까지 하고 있다.
 
청년 정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다른 세대의 주류집단과 대결하기에 앞서 먼저 자기계층 내에서의 부조리를 극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은 사회의 모순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생각과 그에 기반해 부당한 사회질서를 연장시키려 하는 가짜 청년 정치부터 청산해야 한다. 내로남불이 정말 이 시대의 문제라면 그걸 극복하자고 주장하는 세력은 적어도 일부일처를 지키든가 더 나아가 '나는 조국과 결혼했노라'는 결기를 보여주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혈연적 씨족이 무의미해졌어도, 아니 바로 그 때문에,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삭막한 사회관계 속에서 자신을 의탁할 새로운 씨족, 새로운 문중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사람들은 결코 변경될 수 없는 귀속과 유대 그리고 동시에 확정된 상하관계를 규정해주는 현대판 씨족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현대판 씨족, 현대만 문중이 바로 학벌이다." - 김상봉, <학벌사회>
 
이미 2000년대 초에 지적된 바 있듯 학벌은 봉건시대의 문중을 대체하여 등장한 대가족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모교의 품속에서 자라난 동문은 서로를 형제자매처럼 밀어주고 끌어주었고 이제 그게 잘 안되니 과잠을 맞춰 입고 자신들만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양반 대접을 받아보려 하는 것이다. 이런 구시대의 잔재를 그대로 지닌 채로는 민주화, 산업화 등의 세대로 규정지은 기존의 주류집단을 극복할 수 없다. 정작 그들 내부에서는 반성의 목소리와 움직임이 있는데 청년 정치라고 하는 것에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관심조차 받을 가치도 없는 서울대 학생자치의 성명서를 굳이 공들여 비판한 것은 청년 정치의 실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학벌주의 철폐를 호소하기 위함이다. 서울대 학생자치는 이번 성명서를 통해 자신들이 누릴 기득권 수호를 위해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제 시대는 이들에 맞설 대오의 등장을 요청하고 있다. 내로남불로 시끄러운 가족주의 사회를 종식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어갈 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의 첫 번째 과제는 청년계층 내부에서 학벌을 수호하고자 하는 서울대 학생자치에 대항하는 일이다.

참고
1) 요시미 순야, <대학이란 무엇인가> (서재길 옮김), 글항아리, 2014, 111쪽
2) 김정인, <대학과 권력>, ㈜휴머니스트 출판그룹, 2018, 49쪽
3) 2번과 같은 책, 58쪽
4) 하성환, '국대안 사건의 교육사적 함의', <진보평론> 제69호, 292쪽~293쪽

 

 

 

 

 

서울대 연석회의의 기묘한 지방대 걱정

[주장] 단과대학생회장 연석회의 '서울대 분리이전 논의 중단 요구'를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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