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의 투쟁

 관광과 국제교역의 도시로만 여겨졌던 홍콩은 돌연 2014년부터 자유와 억압이 격돌하는 전선이 되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부터 꾸준히 민주화를 요구해왔던 홍콩의 시민사회와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며 통제와 검열을 강화해온 중국 정부가 2014년에 이르러 정면충돌한 것이다.

 2011년 중국 정부가 홍콩의 초·중·고 교육과정에 국민교육을 도입하려 한 정책을 저지하면서 민주화운동을 시작한 홍콩 청년들은 2014년 시위의 선두에 나섰다. 홍콩 경찰은 폭력적인 진압으로 시위를 억눌렀고 이들의 최루탄 발포에 맞서 시위대는 우산을 펼쳤다. 수많은 인파의 시위대가 우산을 펼치는 장면으로 인해 2014년 홍콩에서의 투쟁은 우산혁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우산혁명은 간선으로 선출되던 홍콩 행정장관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문제를 두고 중국 정부가 발표한 방안에 홍콩 시민사회가 반발하면서 촉발되었다. 중국 정부는 중국 전체인민대표대회가 지명한 후보들만이 직선제 선거의 후보로 출마할 수 있는 방안을 발표했고 홍콩 시민사회는 완전한 직선제를 요구했다. 약 3개월간 진행되었던 우산혁명 시위는 결국 직선제 개혁을 쟁취하지 못하고 광장의 시위대 농성천막이 철거되면서 끝났다.

 우산혁명의 청년활동가들은 2016년 홍콩의 입법의원으로 당선되는 등 투쟁을 이어나갔다. 4명의 민주파 의원들이 중국에 충성을 맹세하는 의원 선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원직이 박탈되고 시위에 앞장섰던 조슈아 웡 활동가는 투옥되는 등의 탄압이 이어졌으나 2019년에 이르러 홍콩의 시민사회는 다시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홍콩 정부가 추진하는 ‘범죄인 인도법안’이 홍콩내 민주화 인사들을 중국 본토로 체포하고 언론자유를 탄압할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2014년, 우산혁명의 실패를 경험한 홍콩의 청년들은 보다 더 준비된 자세로 다시 한번 역사의 흐름에 뛰어들었다. 일각에서는 1980년 5·18에서 2017년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한국에서의 장기적인 민주화운동을 참고하여 홍콩 청년들이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범죄인 인도법안’ 추진은 철회되었으나 경찰의 폭력진압 중단과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시위는 이어지고 있다.

 2019년 홍콩에서의 투쟁은 7월 1일 홍콩 입법회 청사를 점거한 후 ‘오늘의 사건이 폭동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며 일군의 활동가들이 마스크를 벗고 카메라 앞에 나선 사건, 한 홍콩 출신 프로게이머가 ‘나는 대회 준비에 4년을 썼으니 4년을 잃지만 홍콩이 진다면 그것은 영원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징계를 각오하고 국제 게임대회 우승 직후 ‘광복홍콩, 시대혁명’을 외친 사건 등 위대한 투쟁의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홍콩시민들의 연대요청

 2019년 6월 가석방된 조슈아 웡 활동가는 9월 한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촛불혁명이 홍콩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며 한국에 연대를 호소했다. 10월에는 재한 홍콩 시민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2019년 홍콩’은 ‘1980년 광주’라며 한국 시민사회의 지지를 구했다. 중국 정부 수립 70주년 기념 반대시위 광고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이 가장 먼저 등장하기도 했으며 홍콩 시위의 주제곡 ‘영광이 다시오길’의 한국어 버전이 인터넷에 공개되기도 하는 등 홍콩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한국의 지지와 연대를 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호소에도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는 이렇다 할 연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외교적인 문제를 고려하여 정부와 집권여당이 침묵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시민사회의 침묵과 의도적인 연대 거부에는 실망을 넘어 배신감이 들 지경이다.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시위를 주도하는 청년들이 노동자 계급이 아니라 중산층 대학생이다’, ‘ 서방세계의 연대를 구하는 것을 보니 제국주의 세력에 부역하는 운동이다’ 등의 주장으로 홍콩에서의 투쟁을 폄훼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영화 ‘택시기사’의 모델이 된 힌츠페터 기자의 연대를 잊었는가? 1980년 5월 18일 전남대 정문에 모인 대학생들도 노동자 계급이 아니라 특권적인 지식인 계층이었다는 것을 모르는가? 미국의 항공모함이 입항한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이 광주시민들을 구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광주시민들을 모욕할 셈인가? 활동가들이 성폭행을 당하고 변사체로 발견되는 와중에 도움을 줄 만한 곳이라면 어디든 만나야만 하는 홍콩시민들의 절박함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못하는가?
 
▲광주의 의무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은 전 세계의 시민들에게 빚을 졌다. 외신기자들의 진실보도와 기록으로 인해 80년대 대학생들은 5·18의 진실을 생생히 접할 수 있었다. 5·18의 학살에 책임이 있는 미국에서조차도 시민들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연대하고 함께 미국정부를 규탄하기도 했다. 2017년 영광스러운 혁명의 성공은 우리 스스로 이룬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받은 세계시민들의 연대를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이제 한국의 시민사회에는 아직 민주화 투쟁이 진행 중인 곳의 시민들과 연대해야 할 의무가 있다. 특히 5.18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표방한 광주는 이 의무에 앞장서야 한다.

 ‘5·18의 세계화’라는 말은 이제 우리가 전 세계의 민주화운동에 앞장서겠노라는 무거운 짐을 진 표어이다. 외국인들이 80년 광주의 이야기를 알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현지어로 된 홍보자료를 배포한들 외국인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굳이 찾아볼 이유는 없다. 그러나 광주시민사회가 먼저 세계 각지의 인권탄압과 자유투쟁의 현장에 연대한다면 그들이 먼저 5·18의 의미가 무엇이길래 자신들을 돕는지 물어올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투쟁이 승리한 후 그들도 자신들이 받았던 도움을 기억하고 연대에 나설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5·18의 세계화’가 실현된 모습이다.

 1980년 5월을 떠올리며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홍콩은 ‘5·18의 세계화’ 실현을 위한 첫 번째 계기가 되어야 한다. 만일 광주가 끝끝내 홍콩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5·18이 보여준 이상세계의 꿈을 우리 스스로 꺾어버리는 일이며 5·18을 광주와 한국이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일어난 우연적인 사건으로 격하하는 것이다.

 한편, 위와 같은 이유와 더불어 우리는 동아시아인으로서도 홍콩에 연대해야 할 이유가 있다.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민주화운동이 탄압을 받을 때 자주 등장하는 논리 중 하나가 ‘아시아와 서양은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의 박정희가 주장한 ‘한국적 민주주의’, 싱가포르의 리콴유가 주장한 ‘아시아적 가치’ 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민주주의나 자유 같은 것은 결국 서양인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며 아시아인에게는 억압적인 정치체제와 문화가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이다.

 나는 그 어떤 서양인의 인종차별적인 표현보다도 이런 주장들에 분노를 느낀다. ‘한국적 민주주의’ , ‘아시아적 가치’ 라는 말은 결국 아시아인들에게 자유를 누릴만한 존엄이나 이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에 맞선 반독재 투쟁과 리콴유와의 공개적인 논쟁으로 이런 주장을 반박했다. 그리고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라는 반봉건 투쟁에서부터 2017년의 민주주의 혁명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민중봉기사는 민주주의와 자유가 모든 인류에게 보장되어야 할 가치임을 증명했다. 시진핑의 ‘중국식 민주주의’에 맞서는 홍콩 시민들은 한국에 이어 다시 한번 그것을 증명하려 하고 있다.

 학벌주의라는 이름의 카스트제도와 말 그대로 ‘살인적인’ 노동자들의 현실 등 한국의 민주주의에는 모순이 분명하다. 그러나 천황제 미신과 봉건영주 가문 정치인들의 지배를 받는 일본, 공산당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황조가 통치하는 중국 등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2017년의 촛불은 자유로 향하는 길을 비추는 동방의 등불이다. 중국 정부 수립 70주년 기념 반대 시위 광고영상에서 다른 어떤 서양 정치인보다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이 먼저 나왔던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광주시민에게 고함

 2020년은 5·18 광주민중항쟁이 있은 지 4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나는 이글을 통해 5·18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자처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든 홍콩을 외면하지 않는 40주년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호소한다. 조슈아 웡을 비롯한 홍콩의 민주화운동 활동가들을 광주로 초청하여 전남대, 구도청, 민주묘역을 비롯한 5·18의 공간을 소개하고 그들에게 기자회견과 강연회의 기회를 주어 전 세계에 민주화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을 제안한다.

 이제 우리는 홍콩을 시작으로 티베트, 카탈루냐, 쿠르드 등 세계 각지에서 힘겹게 자유를 위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시민들을 광주로 불러 ‘5·18의 세계화’를 실천해나가야 한다. 돈이 많은 중국 공산당에 굽신거리는 서양의 자본과 기업들이 주장하는 거짓 자유가 아니라 시민의 손으로 만든 진정한 자유의 역사를 보여주자. 빛의 도시 광주가 칠흑 같은 압제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희망이 될 수 있도록.


황법량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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