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노동의 주인 된 세상을 위해…


임동헌 (광주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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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리바바(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내 노동빈곤팀)에서 진행한 캠페인 모습


“신세경(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가정부 역할) 시급 4,110원 이상 받아야 해”

푹푹 찌는 여름이 다 지나지도 않았는데 야속하게도 개학날은 다가왔다. 개학하는 날 광주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졌고 아이들은 때 이른 개학에 등교하는 발걸음도 무겁다. 그래도 명색이 선생이라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맞

이하며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반갑고 힘이 난다. 물론 이 반가움이 얼마나 갈지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사무실에서 이것저것 정리하며 동료선생님들과 방학 때 안부를 묻고 있는데 몇 몇 아이들이 사무실을 쭈뼛거린다. 들어오게 해서 사연을 물으니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임금을 못 받았다고 한다. 못된 사람들. 남들은 방학이라고 여기 저기 놀러 다니거나 대학 간다고 학원이나 학교 교실에서 에어컨 바람 쬐며 공부하고 있을 시간에 사는 것이 힘들어 무더운 여름에 돈벌이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 10대 청소년의 임금을 떼어 먹으려고 하다니…


세상이 아무리 염치가 없고 체면이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다고 하나 이건 해서는 안될 일이 아닌가? 하지만 실은 이러한 일은 매번 방학이 끝나고 나면 벌어지는 일이고 이제는 의례 이런 아이들이 찾아오지 않으면 결국은 내가 찾아 나서고 있으니 이제 이런 내 일도 없어질 때가 됐으련만 그렇지 못하다.


결국 상담일지를 작성하고 사업주와 통화를 시도한다. 최저임금위반, 근로계약서 작성 의무 위반, 가산 수당 지급 위반, 휴게시간 미확보, 휴일 강제 근로, 직원에 의한 성희롱, 사업주에 의한 폭언, 임금지급 4대 원칙 위반 등 위반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 위반한 사업주도 전화통화로는 당당하다. 학생과 4,000원을 주기로 사전에 약속을 했다는 둥, 가산 수당을 지급해야 하는지 몰랐다는 둥, 휴게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 하다는 둥.


뭐 말하자면 입을 아플 정도로 약속이나 한 듯 사업주들의 태도는 거의 비슷하다. 특히 자식처럼 생각해서 잘 해 주었던 학생이 자신에게 배신을 할 수가 있냐면서 흥분을 할 때는 차라리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보상을 해주겠다는 반응과 같은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인간적인 연민마저 든다. 자신도 어렵게 공부를 해서 아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면서 아이들이 너무 어린 나이부터 돈에 욕심을 갖는 것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좋지 않다는 교육적인 충고를 하고 있는 사장님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움에 대해서 어떻게 설득하고 가르쳐야 하나?


이번 상담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방학 때 도급업체에 채용되어 원청업체에 가서 일을 하고 도급업체로부터 시급 4,000원씩을 받기로 하고 일을 한 학생들이 있다. 급여가 지급이 안되어 나를 찾아 와서 상담을 하고 받아야 할 임금을 계산해 주려고 하는데 근로시간을 알 수 없어서 일단 일주일만 임금이 입금되기를 기다리고 입금되고 나면 회사에 가서 근무일지를 받아오기로 했다. 5일 정도가 지나자 급여가 지급이 되었는데 너무나 터무니없는 액수가 입금이 되었고 학생들은 담임선생님(여선생님)과 함께 회사에 찾아가 근무일지를 요구했다. 담임선생님은 도급 회사 사장에게 선생이 왜 나서냐며 삿대질과 모욕을 당했고 결국 나에게 전화가 와서 사장과 이야기를 하고 근무일지 사본을 받아 오게 되었다.


참! 담임선생님도 용기가 가상하지? 그 험한 곳을 혼자 가서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세상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 무모한 용기를 갖게 한 것 같았다. 더 험한 일을 안 당한 것이 다행이었다. 아무튼 근무일지를 받아와 임금계산을 해서 사장에게 받아내기는 했지만 이번 일을 통해서 아이들이 배운 것도 있었을 것이고 상처받은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상담 과정 중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도급회사에서 일하는 분들이 이와 같은 환경에 노출이 되어 있고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또한 도급회사의 사장이 아르바이트생을 시켜서 원청회사의 근무기록을 조작하도록 하여 원청회사로부터 부당한 임금을 받아내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수많은 사례 중의 하나이지만 이 상담을 진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기성세대의 부도덕한 모습이 학생들에게 그대로 노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상처를 받고 있는 것이었다. 여전히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편의점에서 야간 근로에 대한 가산수당은 커녕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일하면서 유통기한이 거의 임박하거나 살짝 지난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과 담배연기 자욱한 PC방에서 손님이 아닌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CCTV 아래서 담배연기에 흠뻑 버무려진 컵라면으로 허기를 때우는 PC방 아르바이트생까지, 우리 시대의 청소년들은 가난의 고통을 온 몸으로 버티며 견디고 있다.


청소년노동인권에 대한 사업은 단순히 노동법을 위반하여 돌아오는 불이익에 대해서 상담하고 구제해주는 수준을 넘어서는 중요한 사회적 과제이다. 청소년들이 노동이라는 삶의 과정을 통해서 학습되는 노동관은 평생의 노동관으로 자리잡게 되고 이러한 노동관은 우리 사회의 노동에 대한 가치관으로 자리잡게 된다. 노동자는 언제든지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좀 무시당할 수도 있으며 노동은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행위이고 노동자라는 것은 별로 되고 싶지 않은, 사실 피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것으로 자리매김 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 이상의 희망을 꿈 꿀 수가 없을 것이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아무도 노동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희망을 꿈 꿀 수 없는 사회로 가기 위해서 청소년들에게 가혹한 노동의 과정을 통해서 교육을 하고 있다. 마땅히 청소년은 공부만을 해야 하며 일하는 청소년은 불량하거나 불쌍한 청소년으로 우리 사회의 의식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으며 일을 하는 청소년들은 돈을 밝혀서도 안되고 자신의 권리를 요구해서도 안되는 사람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상황을 보고 선진 외국인들은 비웃고 있다. 한국방송에서 방영하고 있는 미녀들의 수다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요. 외국에서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일을 하지 않으면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거리가 되요.”

“언제까지 부모님께 의지를 해야 하지요? 한국은 결혼을 해서도 부모님께 의지하는 것 같아요. 솔직히 한심해요.”

“중학교때부터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 그 경험들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가장 큰 힘이 되요.”


솔직히 이 방송을 보면서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리나라의 수준이 이 정도 밖에 안 된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이러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으니 올바른 노동관을 갖는 다는 것은 마치 북한에서 민주주의적 가치관을 갖는 것과 같이 불가능한 일이며 실제로 노동자가 되었을 때 주체적인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노동자는 조금 가난해야 하고 자신의 권리는 내세우는 것은 조직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며 해서 되는 일이 있고 안되는 일이 있어서 가능하며 꾹 참고 조용히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생활하고 있는 공간에서 마치 청소노동자들이, 혹은 경비노동자들이 아스팔트의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맞아가며 볼품없는 도시락을 계단이나 화장실에서 먹으며 허기를 채우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애써 모른척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 비인간적인 인간으로 교육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 되고 노동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고 보람된 아름다운 행위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에게 정규교유과정을 통한 올바른 노동인권교육과 일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적극적인 상담과 구제활동이 동반되어야 한다. 또한 현재 교과서에 기술되어 있는 반노동적인 철학적 접근을 친노동적인 철학적 접근을 개정해야 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교육 중 하나는 노동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노력 이외에도 우리 사회에서 올바른 노동관을 세우기 위한,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노동인권이 아름답게 옹호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몸짓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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