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아프락사스

 「학벌과 불평등」은 두 가지 언제를 언급하는 걸로 시작된다. 첫째, 한국사회에서 학벌은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의 기준으로 만든다는 것. 둘째, 학벌은 학력, 곧 배움의 정도가 아닌 학교, 즉 ‘출신 성분’의 문제라는 것. 요컨대 학벌 문제를 계급문제라기보다는 신분 문제로 봐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셈이다.

그 타당성을 부정하진 않는다. 사실상 한국의 대학 입시는 프랑스의 바칼레로아나 미국의 SAT처럼 일종의 자격증 시험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규모가 커진지 오래다. 한국의 수능은 그 자체로 대학 입시를, 대학 입시를 넘어 인생을 결정짓는 시험으로 취급되곤 한다. 이를 테면 전근대 동양의 과거 시험이 그랬듯이.

김상봉은 학벌이 계급보다는 신분에 가깝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 저자 자신은 계급에 속한다고 여기는 - 직업 문제를 예로 든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직업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므로 신분이 아닌 계급 문제에 불과(?)하지만 학벌은 한번 얻은 이상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례가 학벌 문제 신분제적 성격을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사회에서 직업 변화가 그렇게 잘 일어난다면 모르되, 어제의 트럭운전사가 갑자기 오늘 의사가 되는 수준의 직업 변화는 실제 노동 시장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극심한 불황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에 진출하지 않는 상황을 보라. 이는 일단 중소기업에 들어가고 나면 대기업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걸 젊은이들이 알기 때문이다. 직업이 곧 현대판 ‘신분’ 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직업 또한 학벌과 마찬가지로 ‘신분’ 문제로 여겨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학벌차별을 학력차별이나 성별차별, 직업차별 혹은 외모차별과는 구분되는 ‘신분 문제’로 판단할 것인지는 좀 더 많은 논의와 좀 더 많은 논거를 찾아야 한다. 굳이 학벌 문제를 신분 문제로 이야기해야만 그 심각성이 부각되는 건 아닐 터이니, 보다 정확하고 보다 적절한 개념을 찾아내는 게 건전한 학벌 논쟁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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